2017년 11월호

〈20대 리포트〉 이색테마기획: 빌딩

“조망권은 권력순, 당선 횟수에 비례”

  • 정보라|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tototobi@naver.com

    입력2017-10-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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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선은 좋은 조망권, 초선은 나쁜 조망권
    • ‘민주주의 산실’서도 ‘더 센 사람’이 차지
    • 제도화된 조망권 기득권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부터 단층 구멍가게 건물까지 도시는 수많은 빌딩(건물)으로 채워져 있다. 빌딩 속엔 사람들의 꿈틀대는 욕망, 사회의 완고한 계급구조, 현세대의 세태가 녹아들어 있는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신동아’는 빌딩을 테마로 하는 4편의 기획기사를 소개한다. 고려대 재학생들이 ‘고려대언론인교우회’의 지원을 받아 이 기사를 제작했다.(편집자)


    ‘빌딩 안에서 밖의 경관을 볼 수 있는 권리’인 조망권은 가끔 우리를 매료시킨다. 재력가들은 조망이 좋은 빌딩이나 집을 얻기 위해 상당히 큰 금전적 희생을 치른다. 예컨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조망권에 따라 수억 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반면, ‘반(半)지하’에 사는 서민들은 ‘0’으로 수렴되는 조망권을 가질 뿐이다. 이런 점에서 조망권은 ‘재력’이다.

    이 연장선에서 조망권은 ‘권력’인지도 모른다. 필자는 ‘정치권력의 본산’인 국회에서 조망권이 국회의원들에게 어떻게 배분되는지 정밀 분석했다. ‘민주주의 산실’인 국회는 과연 ‘민주적으로’ ‘평등하게’ 조망권을 처리할까?



    과학적 조사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당선된 299명의 현역 국회의원은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내에서 본인과 보좌진이 근무하는 의원실을 배정받았다. 의원실 내 의원이 집무를 보는 방과 보좌진이 상주하는 사무실엔 각각 같은 방향으로 매우 큰 창문이 나 있다. 이 창문으로 밖의 경관이 쏟아질 듯 들어온다. 

    10여 명의 의원 보좌진은 필자에게 “의원들 사이에서 ‘조망이 좋은 의원실’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결국, ‘다선(多選) 의원’ 혹은 ‘더 센 권력을 가진 의원’이 더 좋은 조망권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선수가 많은 의원에게 의원실 선택 기회를 먼저 주는 국회 시스템이 이러한 조망권 기득권을 ‘제도화’ 한다”는 설명도 나왔다.

    필자는 299개 의원실을 일일이 방문해 이 의원실 창문에서 보이는 경치를 ‘좋음, 보통, 나쁨’ 3단계로 나눠 측정했다. 이어 이 측정치와 의원의 선수(選數) 간 상관성을 따져봤다.  

    의원회관의 건물 구조는 독특하다. 1~6층은 ㄸ자, 7~9층은 ㄷ자, 10층은 二자 형태로 돼 있다. 의원실은 3~10층에 위치한다. 이에 따라 의원회관에선 크게 5가지 방향의 경관이 보인다. 국회 잔디광장 쪽 경관, 여의하류 교차로 쪽 경관, 당산동 아파트단지 쪽 경관, KBS 쪽 경관, 의원회관 맞은편 사무실과 마주 보는 쪽 경관이다. 물론 같은 방향이라도 층에 따라 경관의 가치는 달라진다.


    “초선이라도 당 대표급이면…”

    다른 한편으로 초선의 45%는 ‘경관 나쁨’에 해당하는 의원실을 배당받아 초선~7선 의원 중 ‘경관 나쁨’ 1위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7선과 6선 의원들 중에 ‘경관 나쁨’ 의원실을 가진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5선의 7%, 4선의 3%, 3선의 12%, 재선의 17%가 ‘경관 나쁨’ 의원실을 쓰고 있었다. 선수가 낮아질수록 의원실의 조망권이 뚜렷하게 열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초선의원 중에 전망 좋은 의원실을 배정받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러나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예외도 권력관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모 의원 보좌진은 “예를 들어, 초선 의원이더라도 당 대표급 거물 초선의원이면 다른 의원들의 배려를 받아 사실상 우선적으로 의원실을 선택하는 권리를 누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권력관계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도 있다. 몇몇 선수가 높은 의원은 조망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경관 좋음’ 의원실 대신 ‘경관 보통’ 의원실을 택했다. 이들이 이렇게 조망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좋은 조망권을 누리게 됐다고 한다. 재선의원이지만 전망 좋은 방을 배치받은 한 의원실 관계자는 “운이 좋았다. 다른 재선의원들이 우리 방을 보고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임기 중 법원 판결에 의해 의원직을 잃기도 한다. 그러면 이들은 지체 없이 방을 비워야 한다. 이때 이들의 의원실이 좋은 조망권을 갖고 있다면, 비(非)다선의원이 이 의원실로 이주하겠다고 신속하게 신청해 차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당(혹은 다수당) 의원들이 야당(혹은 소수당) 의원들에 비해 더 좋은 조망권을 누리는지 조사한 결과, 조망권과 소속 정당 간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 이유에 대해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좌진은 “정당별로 구역을 배분한 뒤 각 정당에서 의원들에게 신청서를 받아 방을 배정한다. 구역을 배분할 때 정당 의석수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갑 중 갑’의 ‘조망권 전쟁’

    결론적으로 필자의 이러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선의원일수록, 권력이 센 의원일수록, 더 좋은 조망권을 누린다”는 통설은 ‘과학적으로’ 입증된다. 우리나라에서 권력이 가장 센 ‘갑 중 갑’이 국회의원인데, 이 국회의원들 간의 권력 격차에 의해서도 조망권이 차등 분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갑 중 갑’의 ‘조망권 전쟁’에서 패한 쪽은 분함을 삭힌다. 한 자유한국당 재선의원 보좌진은 “국회가 개원하면 조망권을 놓고 의원들 간에 눈치 게임이 벌어진다. 몇몇 의원은 자신이 쓰고 싶은 의원실 호수를 적어냈다가 다른 의원에 밀려 배정받지 못하면 비애를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한 초선 의원실 보좌진은 “의원회관에서 가장 안 좋은 자리가 우리 방이다.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치고 지낸다. 남은 자리가 여기밖에 없다고 하더라”라고 푸념했다.

    국회의원 같은 권력자가 왜 조망권을 그토록 사랑하는지에 대해 한 중진의원 보좌진은 “의원들은 집무실에서 좋은 경관을 볼 수 있어야 바쁜 의정활동과 치열한 생존경쟁에 지친 자신의 심신을 달래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다 그렇다”고 설명했다.

    한 더불어민주당 보좌진은 “선수를 쌓아 조망권이 더 좋은 방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옮겨가는 것도 국회의원을 오래하면서 누리는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빌딩의 조망권은 ‘미학(美學)적으로 포장된 권력욕’인지 모른다. 정치권력의 본거지인 의원회관의 조망권 계급 구조가 이를 너무나 명확하게 입증한다. 여기에 ‘민주(民主)’와 ‘평등(平等)’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이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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