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열 명 중 세 명은 억대 연봉, 007 특수장비로 무장한 신고 전문가

포상금 사냥꾼 파파라치의 세계

  • 박은경| 객원기자siren52@hanmail.net

    입력2012-03-20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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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최근 파파라치 양성 학원이 성업 중이다. 지난 2월 경북 선거관리위가 선거사범 신고자에게 포상금 1억2000만 원을 지급하면서 ‘선거 로또’를 노리는 파파라치 지원자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첨단 특수 카메라와 법률 지식으로 무장하고 불법·탈법 현장을 노리는 전업 파파라치 중 상당수는 연간 억대 수입을 올린다. 기자가 직접 그들의 뒤를 쫓으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파파라치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열 명 중 세 명은 억대 연봉, 007 특수장비로 무장한 신고 전문가

    시계, 자동차 열쇠 등으로 위장한 특수카메라. 파파라치는 이런 장비를 사용해 적발 현장의 동영상과 스틸 사진을 촬영한다.

    지난해 11월, 치과 7곳이 ‘보톡스(필러) 불법시술과 허위광고’로 업무정지 2개월과 면허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미용 보톡스 시술 자격이 없는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보톡스 주사를 놓고 병원 홈페이지에 버젓이 광고까지 한 게 적발됐기 때문이다. 병원 안에 물리치료실을 운영하면서 무자격자에게 물리치료를 맡기고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방법으로 2000여만 원을 받은 A의원과 덤프트럭 운전자들과 공모해 등유 등을 덤프트럭 연료로 불법 판매한 B주유소도 관계기관의 단속에 적발됐다.

    전국적으로 한 해 수백·수천만 건의 위법·탈법 사례가 관계기관에 적발된다. 그 뒤에는 이를 몰래 지켜보고 신고하는 눈이 있다. ‘사회의 파수꾼’ 혹은 ‘포상금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파파라치’다. 첫 사례의 경우 수사기관 조사결과 치과가 벌금형을 선고받는다면 이를 신고한 사람은 벌금의 20%를 포상금으로 받는다. 두 번째 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400여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사람이 늘면서 각종 포상금을 겨냥한 ‘파파라치’가 늘고 있다.

    지난 3월 7일 오후 5시경, 원산지표시위반 식당을 표적 삼아 불법행위 수집에 나선 경력 2년차 파파라치 박모(36) 씨를 따라나섰다. 서울 서초중앙로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잠깐 동안 박 씨가 손짓을 해가며 말했다.

    “저기 생활용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봉투 하나 달라고 하면 별생각 없이 줄 거다. 그걸 신고하면 1회용 봉투사용 금지 위반으로 포상금 10만 원, 변호사사무실의 영수증 미발급을 신고하면 최소 5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저기 낡은 5층 건물 비상구는 틀림없이 막혀 있거나 잠겨 있을 거다. 저것도 신고하면 건당 5만 원. 저기 보이는 한의원은 내가 가본 곳인데 한의사 말고 간호사가 부항 시술을 한다. 무면허 의료시술로 신고하면 포상금이 최소 30만 원이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박 씨의 레이더에 포착된 신고포상금 액수가 가볍게 100만 원을 넘겼다. 그는 “우리 같은 파파라치 눈으로 보면 길거리에 돈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렇게 쉽게?’라는 속내를 감추고 박 씨의 뒤를 따라갔다. 대로 뒤편으로 들어가자 식당가가 펼쳐졌다. 오피스 빌딩이 즐비한 곳에 위치한 먹자골목은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한산했다.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을 눈으로 훑으며 걷던 박씨가 걸음을 멈추고 턱짓으로 5m 앞의 한 횟집을 가리켰다. 원산지 표시 위반이 의심되는 곳이다. 그는 “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주인의 의심을 살 수 있다. 여기서 간판이 들어간 업소 전경을 먼저 찍어두는 게 좋다. 간판에 전화번호도 크게 나와 있으니 증거는 일단 잡히는 거다. 요즘 원산지 표시 위반 행위는 가게 규모가 최소 30평이 넘어야 신고대상이 된다. 파파라치들이 규모가 작은 영세식당까지 모조리 신고하는 바람에 업주들 불만이 커서 포상금 지급대상에서 빠졌다”고 했다.



    잠시 후 횟집 안으로 들어가자 여주인이 반갑게 맞았다. 실내에는 손님이 전혀 없어 텅 비어 있었다. “오늘 저녁에 회식이 있는데 7시 반쯤으로 예약이 가능한가. 일행은 8명이고 방으로 예약해주면 좋겠다”고 박 씨가 말하자 주인은 “저쪽 방이면 8명이 충분히 앉고도 남는다”고 했다. 이어 메뉴판을 보여달라고 한 박 씨는 눈으로 메뉴를 확인하며 “음식 종류와 가격대를 알아야 회식비 규모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여주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메뉴 결정을 끝내고 거짓 예약을 한 뒤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남짓. 그 사이 박씨는 원산지 표시가 적혀 있지 않은 메뉴판, 여주인의 얼굴과 목소리, 대화내용 등 필요한 증거자료를 모두 채집했다. 그의 손에 들린 자동차열쇠에 비밀이 숨어 있었다. 동영상 및 스틸사진 촬영과 녹음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특수카메라로 요즘 파파라치들의 필수품이다.

    교과부 포상금만 연간 37억 원

    열 명 중 세 명은 억대 연봉, 007 특수장비로 무장한 신고 전문가

    파파라치 양성 학원에서 강사가 파파라치 지망생들에게 특수 촬영 장비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박씨는 이런 신고 활동으로 월 평균 400만~500만 원의 포상금을 버는 ‘투잡족’이다. 2001년 교통법규 위반 신고포상금제로 ‘카파라치(교통질서 위반 적발)’가 생겨난 이후 ‘쓰파라치(쓰레기 무단투기 적발)’ ‘담파라치(담배꽁초 무단투기 적발)’ ‘투파라치(부동산 불법투기 적발)’ ‘성파라치(불법 성매매 위반 적발)’ ‘쇠파라치(쇠고기 원산지 표시 위반 적발)’ ‘식파라치(불법 위해식품 적발)’ ‘청파라치(청소년 등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파는 행위 적발)’ ‘봉파라치(1회용 비닐봉투 사용금지 위반행위 적발)’ ‘신파라치(신문사의 불공정 판촉행위 적발)’ ‘세파라치(탈세 적발)’ ‘학파라치(고액과외 등 학원 불법영업 적발)’ ‘낙파라치(불법 낙태시술 적발)’ ‘영파라치(영화 불법 다운로드 적발)’ ‘소파라치(비상구 폐쇄 등 소방법 위반 적발)’ ‘병파라치(병역기피 행위 적발)’ ‘넷파라치(파일공유 사이트의 불법파일 소유자 적발)’ ‘짝파라치(짝퉁 판매·제조 적발)’ ‘잡파라치(불법 직업소개소 및 허위 구인광고 적발)’ 등 다양한 이름의 포상금 사냥꾼이 생겨났다.

    흔히 다 같은 ‘파파라치’로 생각하지만 신고포상금 제도가 10년 넘게 이어져 오면서 이들 사이에도 전문 종목이 생겼다. 업계에는 “능숙한 파파라치는 포상금액이 큰 두세 종목에 집중해 한 달에 4~5건만 하고도 500만 원 이상 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돈다. 이 정도 수입이 가능한 것은 파파라치 포상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 시행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규정된 공익침해 신고대상 법률이 180개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운영 중인 신고포상금 제도가 몇 개나 되는지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각각의 법률이 최소 1개,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공익침해 사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포상금의 종류는 법률 수를 훨씬 상회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의료법’에 따른 신고보상금(포상금)은 무자격자 의료행위, 면허사항 외 의료행위, 면허조건 불이행 행위, 의료기사 아닌 자의 의료기사 행위, 안마사 무자격자의 영리목적 안마 행위 등 다양하다. ‘식품위생법’에 의한 ‘부정·불량 식품’ 관련 신고포상금 종류는 무려 36가지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현재 정부가 현황파악을 위해 자료를 수집 중인데, 이 작업이 끝나면 기업이나 각종 협회 등 민간 부문을 제외한 정부 부문의 신고포상금 종류와 금액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전체 신고포상금의 종류와 포상금 지급규모 등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는 있다. 지난해 법 시행에 맞춰 권익위가 개설한 ‘공익침해신고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2011년 1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접수된 공익침해 행위 신고 건수는 292건이었다. 신고내용은 화장품 허위광고, 무면허 약사 행위, 무자격자의 의약품 판매, 무면허 의약품 조제 등 다양하다. 신고내용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온 사례가 없어 아직 포상금이 지급되지는 않았다. 권익위가 공익침해 행위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으로 올해 책정한 예산은 3억 원이다.

    이미 지급된 사례도 있다. 정부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접수한 학원법 관련 신고 건수는 5만5335건이며 이 가운데 9662건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했다. 액수는 37억3200만 원이었다. 교과부 산하 16개 시·도교육청이 학원법과 관련해 올해 책정한 신고포상금 예산은 총 10억7000만 원이다. 지난해 의료기관의 허위·부당청구와 관련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접수한 신고 건수는 181건이며 이 가운데 81건에 대해 지급한 포상금 금액은 7억5988만 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부정·불량식품 등 식품법 위반행위와 관련해 2010년 접수한 신고는 총 8050건이며 이 가운데 2004건을 대상으로 지급한 포상금액은 1억9127만 원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비상구 신고포상금제’를 처음 도입한 2010년 7월 15일부터 4개월간 접수한 비상구 폐쇄 등과 관련한 불법행위 신고 건수는 총 2402건이었다. 이 가운데 850건에 대해 포상금이 지급됐고 액수는 4250만 원이다. 그 외에 개인택시 불법대리운전과 무면허 개인택시 등 택시 관련 위반행위에 대해 지난해 서울시에 접수된 신고는 26건이며 6480만 원의 신고포상금이 지급됐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가 올해 책정한 포상금 예산은 1억 원이다.

    78세 백발 파파라치

    파파라치 업계에서 추정하는 포상금 종류는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을 합쳐 300여 가지에 달한다. 이를 좇는 전국의 파파라치 수는 1만2000~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파파라치를 직업으로 삼은 전업 파파라치는 약 60%로 집계된다. 나머지는 투잡족이거나 주부, 대학생이다. 전국을 무대로 뛰는 파파라치 중에는 화물차 운송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전직 경찰관과 현직 공무원도 있다.

    요즘 파파라치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고 분야는 고액과외 등 학원 불법 영업 신고. 특히 자녀를 둔 40~50대 주부들이 ‘학파라치’를 많이 한다. 허위 구인 광고 신고는 20~30대 여성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다. ‘카페 서빙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낸 뒤 막상 면접에서 술 접대를 요구하는 식의 허위 구인 광고를 신고하면 건당 50만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남자들은 불법 도우미 고용과 술 반입 등 노래방의 위법행위, 짝퉁 판매와 제조, 유사휘발유 불법판매, 사행성 게임업체의 불법영업, 보험금을 노린 일명 ‘나이롱 환자’ 등의 신고 분야에서 많이 활동한다. 이 분야의 포상금은 건당 1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에 달한다. 최근 수가 늘어난 대학생 파파라치는 건물 비상구를 폐쇄해놓은 것 등의 소방법 위반이나 택시 승차거부, 장애인 주차구역 불법주차 등 자신들의 생활 반경에서 쉽고 간단하게 잡을 수 있는 것들을 주로 신고한다. 문신과 피어싱 시술 업소의 불법 의료시술 행위를 적발·신고하는 파파라치 중에도 대학생이 많다.

    경력 6년차 파파라치이면서 서울 서초동에서 파파라치 전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태현(38) 대표는 “과거에는 돈벌이가 시원찮고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나 사업실패자, 기초생활수급자, 지체장애인 등이 주로 파파라치 활동을 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다 보니 40~50대 주부와 자영업자들도 부업으로 이 일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도 사업 실패 후 “지푸라기를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파파라치 활동을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다 2억 원의 빚을 진 채 망한 그는 지인으로부터 어렵게 200만 원을 빌려 줌렌즈 등 카메라 장비를 구입한 뒤 ‘카파라치’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요령을 터득한 그는 이 생활 1년6개월 만에 빚을 모두 청산했다고 한다. 이처럼 돈이 되니 파파라치 수가 늘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비상구 신고포상금제’를 주종목으로 삼는 78세의 백발 할아버지,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 2인1조로 움직이는 부부, SUV 차량에 장비를 싣고 전국을 누비는 가족 등 다양한 유형의 ‘이색’ 파파라치가 업계에서 화제를 모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초보자에게 파파라치 노하우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성업 중이다. 현재 알려진 파파라치 학원은 서울에 6개가 있다. ‘1대 1 맞춤 교육’을 내세우는 파파라치 개인교습 강사는 전국적으로 활동 중이다. 파파라치 학원에서는 300여 가지 신고포상금 종류 중 30~40가지만 가르친다. 국세청 탈세제보, 공직자 부패 신고, 선거사범 신고처럼 내부자가 아니면 잘 알기 어려운 종류는 피하고 누구나 쉽게 위법행위를 잡을 수 있고 현장 접근이 쉬운 것들을 뽑아 단시간에 집중교육하는 방식이다. 이후 장비 사용법을 지도한다. 요즘 파파라치들은 007영화의 비밀특수요원이 쓸 법한 특수카메라를 사용한다. 안경·시계·볼펜·자동차열쇠·단추·반지·USB 등 다양한 형태의 카메라는 타인의 시선을 끌지 않고 증거 장면을 포착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조작이 어렵다. 초보 파파라치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카메라 사용 미숙으로 증거 영상을 아예 녹화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증거 장면을 포착하지 못하는 것. 교통신호 위반 차량을 영상으로 촬영했는데 번호판이 찍히지 않거나 1회용 봉투를 건네는 장면과 함께 업소 주인의 얼굴을 찍어야 하는데 이를 놓쳤거나 하는 것들이다.

    열 명 중 세 명은 억대 연봉, 007 특수장비로 무장한 신고 전문가

    장애인주차구역 위반 차량을 촬영하고 있는 파파라치(왼쪽)와 학원법 위반 신고 포상금 신청서.



    김 대표는 “4년 전 개원 초창기 때는 한 달 수강생이 10~15명이었다. 지금은 매달 100~120명씩 몰려 한 달 전 규모를 넓혀 학원을 옮겼다. 수강생이 전국에서 찾아와 최근 부산에 지사를 열었고 4월 중으로 인천점도 낼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도 학원을 하나 더 열 계획이다. 그는 “수강생의 약 40%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대학생과 대학을 갓 졸업한 취업준비생이다. 그 외에 40~50대가 40%, 60~70대가 20%를 차지한다. 수강생의 남녀 비율은 6대 4 정도”라고 밝혔다.

    전략과 정보

    취재차 들른 한 학원에서 50대 남자와 현역 파파라치 강사의 상담 내용을 들었다. “파파라치 하는 사람이 많아 이미 포화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에 강사는 “포상금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부족하다면 모를까 포화상태는 아니다”라고 했다. “어렵게 얻은 현장 노하우를 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나? 세파라치, 카파라치 같은 신고포상금에 1인당 한계가 있나?”라는 질문에는 “관련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른데 보통 200만~300만 원 정도”라고 답했다. 이런 문답식 상담이 30분 넘게 이어졌다.

    사람들이 파파라치 학원을 찾는 이유는 포상금의 종류와 신고 기관, 신고 양식, 증거 장면 촬영 방법 등 실전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다.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파파라치 활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된 이영진(39) 씨는 장사를 하다 접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학원 수강 후 3주 만에 1회용 봉투 사용 업소를 신고하고 첫 포상금 3만 원을 받은 그는 네 번 포상금을 받은 뒤 고액과외를 적발하는 ‘학파라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씨가 지금까지 받은 포상금 중 최고액은 420만 원이다. 고액과외 적발에 나서기 전 그는 3~4일간 ‘사전작업’에 공을 들인다.

    “강남의 부유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면 미국 OO대 졸업 등 쟁쟁한 경력을 자랑하는 과외 전단지가 많이 붙어 있다. 그 중 70~80%는 고액과외다. 여러 아파트를 돌며 그런 전단지의 연락처 수십 개를 뜯어와 일일이 전화를 건다.”

    강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과외비가 월 100만 원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되면 본격적으로 증거 영상을 담기 위해 ‘샘플수업’을 요청한다. “아이를 맡기고 싶은데 우선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다”며 자연스럽게 현장에 접근하는 것이다. 강사를 만날 때는 고액과외에 관심이 있는 부모처럼 보이기 위해 옷차림에도 신경을 쓴다. 요즘 이씨는 포상금이 건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액 과외뿐 아니라 불법토지용도변경, 허위 구인·구직 광고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포상금 수입은 월 700만 원 정도다.

    경력이 많은 파파라치들은 이 씨처럼 치밀하고 철저하게 활동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각본 짜기와 공략 대상 물색, 포상금 관련 정보 업데이트 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심지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자체에 등록된 사업체 리스트를 확보한 다음 이를 피해 미등록 업체만 골라 신고하는 파파라치도 등장했다. 신고포상금 종류와 한도 등의 기준에 따라 인터넷 동호회를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2월 중순 경북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사범을 신고한 A씨에게 포상금 역대 최고액인 1억2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계기로 ‘포상금 로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자 일각에서는 4·11총선과 대선 기간 ‘선파라치’가 들끓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모든 파파라치가 큰돈을 버는 건 아니다. 파파라치 업계에서는 전체 파파라치 10명 중 3명이 월수입 1000만 원 이상, 4명은 500만 원 이상을 벌고, 나머지는 매달 300만 원 이하를 벌 것이라고 추산한다. “1억 원은 그야말로 상위 1%의 얘기일 뿐”이라는 게 이들의 귀띔이다. 그야말로 ‘프로’가 아니면 월수 3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평가다.

    포상금 종류도 많아지고, 이 일을 시작하려는 이도 계속 늘면서 정부가 나서서 손쉬운 돈벌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 등은 사회적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부문별로 ‘1인 신고 5건 이내’ ‘1인 지급 포상금 연간 한도 300만 원’ 등의 규정을 만들고, 포상금도 당사자가 직접 수령기관을 방문해 확인서를 작성해야 지급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총리실이 관계 부처와 함께 신고포상금 제도 정비를 위한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경기불황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청년 취업난도 계속되는 상황에서 파파라치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년차 전업 파파라치 이영진 씨는 “이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 언론에서 ‘불법행위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하다. 공무원이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하고 포상금을 받는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년까지만 이 일을 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부모님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 ‘파파라치’라고 할 순 없지 않으냐”는 말에서 사회적 논란과 비판, 부정적 시각을 피해갈 수 없는 파파라치의 고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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