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위장결혼 무국적자에겐 인권도 없다?

  • 김용필│동포세계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전(前)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대표

    입력2012-03-21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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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정부는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의 한국 체류 방안을 마련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과 위장결혼했다가 그 사실이 적발돼 국적을 잃은 중국 동포 여성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혹한 현실에 머물게 됐다. 한국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인도주의적인 배려를 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무국적자는 건강보험, 휴대전화 가입이 안 되고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위장결혼에 따른 국적 말소로 무국적자가 된 한 여성이 단칸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중국동포 김숙희(가명·여·46) 씨는 1996년 결혼해 한국으로 오자마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1999년 1월 결혼소개자가 허위결혼 알선혐의로 체포된 뒤 위장결혼자로 몰려 2000년 2월 집행유예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지인의 신원보증으로 출소했다. 이후 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2002년 8월 한국 여권으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중국에 다녀오려고 인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다 단속돼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김 씨는 그제야 자신의 한국 국적이 말소됐고,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법무부가 김 씨를 중국으로 강제퇴거 조치하려 해도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점. 당시 김 씨는 “중국으로 보낼 수 있으면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 상태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8개월 이상 보호소에서 머물던 김 씨는 공탁금 1000만 원을 내고 보호일시해제로 풀려났다. 김 씨는 이후 3개월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해 체류연장 신고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에겐 인권이 없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해 9월 1일 법무부, 외교통상부, 보건복지부 등 3개 정부 부처에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인권증진 방안’을 권고했다. 주요 내용은 무국적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 대한민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체류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타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사망 등 인도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타국으로의 출국 및 재입국이 가능하도록 여행증명서를 발급할 것, 건강한 생활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에 포함시킬 것 등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위법한 행위로 무국적자가 된 사람의 체류를 허용할 경우 위장결혼을 방조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통보해왔다고 한다. 이번 3개 부처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 결정을 통해 위장결혼으로 인한 국적취득 행위는 내국인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를 기만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정부 당국의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약한 개인

    이러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필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국가를 지향하는 국가의 시책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7년부터 무국적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2009년부터는 법무부,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무국적자를 대변해 문제제기를 해온 바 있다. 아래에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정부의 판단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정부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은 ‘모든 책임을 나약한 개인에게 떠넘기고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소극적 태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없을까? 사안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 씨의 사례를 보자. 그는 체류연장 신청을 하러 갈 때마다 출입국 공무원으로부터 빨리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추궁을 당한다. 중국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판에 이런 치욕스러운 말까지 듣다 보니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김 씨는 화가 나서 중국영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중국영사관 측은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출입국사무소 직원과 함께 중국영사관을 방문했지만, 역시 답변은 “무국적자가 다시 중국 국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었다. 입국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국 측의 입장이다. 김 씨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한국 법무부의 비공식적인 요청에 대해서도, 중국 측은 “한국 정부와 당사자 사이의 문제”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 씨의 한국체류 기간은 벌써 16년째. 그중 무국적자로 살아온 기간이 8년이다. 무국적자인 그는 본인의 이름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없고, 통장을 개설할 수 없으며,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심지어 현재 동거하는 한국인과 혼인신고조차 할 수 없다. 그는 한국 땅에서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 소식을 접한 김 씨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친 것처럼 허탈해했다. 그는 “저는 언제까지 무국적자로 살아야 합니까, 위장결혼 문제로 이미 벌은 다 받았는데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부의 책임

    2009년 2월 김 씨와 비슷한 사연으로 무국적자가 된 중국동포 여성 12명이 모였다. 당시 필자는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해 이들을 도울 방도를 찾고 있었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통해 무국적자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 해 3월 10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위장결혼으로 인한 한국 국적 상실자 구제를 위한 입법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이 무렵만 해도 김 씨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붙들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자신의 위장결혼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법무부와 인권위에 도움도 요청했다. 그러나 김 씨와 동료들의 간절한 노력에도 한국 정부의 방침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 김 씨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자포자기한 상태다.

    김 씨에게 국가는 ‘위장결혼은 한국 사회에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 중의 중죄이며, 그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인간적인 대접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김 씨가 가혹한 현실에 처해 고통받는 것이 바로 정부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진지하게 짚어볼 문제가 있다. 인과응보에 따른 일벌백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하는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는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할 처지가 못 된다. 이제 와서 처벌의 효과를 누릴 입장도 아니다. 김 씨와 같은 무국적자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1998년 이후 국적 취득 절차가 강화돼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도 바로 국적을 받을 수는 없게 됐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서울 성동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국적취득교실’에서 수업시간에 그린 태극기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는 28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1998년 국적법 개정 이전에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중국동포 여성이다.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9명 중 7명도 1998년 이전에 결혼 입국해 중국대사관에 국적포기 각서를 제출하고 한국 국적을 새로 신청했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온 지 채 1개월도 안 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한국 국적은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서류와 본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각서만 제출하면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이런 법적 허점은 한창 일기 시작한 코리안 드림과 결합해 브로커에 의한 결혼 알선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한 중국동포 여성이 브로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건 당연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과 중국교포 사이의 위장결혼이 폭증했고, 진짜 결혼인데도 소개자가 위장결혼 알선 혐의로 구속돼 덩달아 위장결혼자로 몰리는 억울한 피해자도 속출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외국인이 위장결혼을 하거나 허위서류를 제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일을 막기 위해 국적법을 개정했다. 1998년 6월 12일부터 ‘결혼비자체류 2년 거주 후 귀화신청 및 귀화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결국 김 씨의 경우 같은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문제’는 1998년 6월 12일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 쉽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던 당시 법률이 낳은 문제인 셈이다. 물론 이후에도 위장결혼과 허위서류 제출로 인한 무국적자가 발생할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현행 법령에 따르면 2년간 국내 거주 후 귀화를 신청하고 실태조사를 받고 귀화시험을 치르는 등의 절차를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는 최소한 3~4년이 걸린다. 따라서 국적취득 이전에 위장결혼 여부가 결정돼 무국적자로 전락하는 사례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무국적자 사후 관리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는 본래의 국적을 회복하기도 매우 어렵다. 국적포기 각서 때문이다. 현재는 한국 국적을 받은 상태에서 6개월부터 1년 사이에 본국 국적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지만, 1998년 6월 12일 이전에는 본국 국적을 먼저 포기해야만 한국 국적 취득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무국적자가 모국 국적을 포기할 때 신중을 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0년 중국동포 사이에서는 한국행 열풍이 불었다. 당시 한국에 온 중국 동포는 상당수가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건 큰 혜택이었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쉽게 일자리를 찾고 편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한국에 들어와 현재 무국적자 신세로 살아가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국적을 취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만 생각했지 무국적자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위장결혼 무국적자에 대한 사후관리 문제다. 정부는 위장결혼을 적발한 뒤 가담자들을 형사처벌했지만, 바로 그들의 한국 국적을 말소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은 뒤에도 장기간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 신분증과 여권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김정숙(가명·여·50) 씨는 1997년 1월 결혼 입국해 2001년 8월경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003년 7월이 되어서야 국적이 말소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하순(가명·여·55) 씨도 1998년 2월 결혼 입국해 1999년 1월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고, 국적이 말소된 건 2005년의 일이다. 한분희(가명·여·57) 씨는 1998년 2월 입국해 2001년 6월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5년 넘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다 2006년 7월 국적말소로 무국적자가 됐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위장결혼 판결을 받고도 3~5년 지난 뒤에야 국적말소 행정처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이들은 한국에 살면서 이미 생활기반을 이곳에 둔 상황이었다. 무국적자들은 한결같이 “솔직히 다시 중국에 가서 생활할 걸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한다. 한국 생활이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박한 소망은 ‘한국인이 되어 떳떳하게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국적자가 전부 위장결혼으로 입국한 사람인 건 아니다. 이난영(가명·여·47) 씨는 1997년 9월경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뒤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씨는 1998년 8월 위장결혼 판결을 받고 2006년 11월 한국 국적이 말소돼 국적이 없는 상태다. 이 씨 부부를 소개한 브로커가 위장결혼 알선 혐의로 단속되면서 덩달아 조사받고 위장결혼자 신세가 된 것. 황당했지만 부부 둘 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위장결혼자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한국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도 이들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 씨는 이후에도 한동안 중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단행된 한국 국적 말소는 날벼락이었다. 금융거래와 취업활동이 금지되면서 그의 삶은 고단한 길로 들어섰다. 뒤늦게 남편과 함께 법무부, 국회, 인권위 등을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한번 말소된 국적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필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무국적자를 만나고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그들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대승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인도적 배려

    첫째, 현재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문제는 국적법과 국제결혼제도의 틀이 상대적으로 미흡했을 때 발생한 사안이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무국적자로 생활하는 여성의 경우 그동안 실정법 위반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무국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부류는 중국동포 여성이다. 비록 국적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의미의 재외동포인 것이다. 이들의 모국이 대한민국이라는 측면을 십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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