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월 만에 만난 지인이 못 알아볼 정도로 갑자기 늙어버렸다면 우리는 내심 크게 놀라게 된다. 그러나 차마 말을 꺼내기 어렵다. 당사자는 얼마나 속이 상할지가 짐작되기 때문이다. 외모 관리의 달인인 연예인에게도 갑작스러운 노화가 찾아온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데미무어
해외 토픽을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나이 든 얼굴이 된 배우들이 종종 등장한다. 매컬리 컬킨은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귀엽고 깜찍한 어린이로 나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최근 자기 나이(31세)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모습을 공개해 충격을 줬다. 그는 영화의 대성공 이후 부모의 이혼 소송, 혼인과 이혼, 마약 복용 등 여러 사건을 겪었다. 사람들은 그의 늙은 외모를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여배우 데미 무어(49)도 최근 급격히 노화한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무어는 두 차례나 전신 성형수술을 받았고 영화에서 20대 여배우들과 비키니 차림으로 맞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배우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어린 남편의 불륜에 이은 이혼 탓인지 갑자기 늙어버린 것이다. 무어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린제이 로한, 매컬리 컬킨, 데미 무어…
얼굴의 노화는 곧 얼굴 피부의 노화다. 이는 수분 부족으로 인한 피부의 푸석거림, 피부의 처짐, 눈 밑 다크 서클, 주름살의 깊어짐에 의해 외부로 표현된다. 얼굴 피부의 노화는 자연적인 과정으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20세가 넘으면 피부에 탄력을 유지해주는 콜라겐이 해마다 약 1%씩 줄어든다. 당연히 피부는 탄력이 떨어지고 얇아지며 처진다.
여기에 피부를 빨리 늙게 하는 외부 요인도 작용한다. 대개 7가지로 요약되는데 가장 큰 요인은 햇빛이다. 자외선은 콜라겐 같은 피부 성분을 파괴하고 멜라닌 색소를 늘려 잡티, 기미를 일으킨다. 흡연은 피부의 수분을 유지해주는 주된 성분인 비타민C를 파괴하고 산소 공급을 막는다. 이에 따라 피부가 메마르고 주름이 늘어난다.
매컬리 컬킨
운동 부족도 한몫을 한다. 운동량이 줄면 혈액 순환이 나빠져 피부의 생기를 줄인다. 수면 부족도 있다. 잠을 설친 다음 날이면 누구나 알 듯이, 눈가가 처지고 다크 서클이 생긴다. 스트레스도 피부 노화의 원인이다. 스트레스는 얼굴을 찌푸리게 함으로써 주름을 만든다. 전반적으로 몸 상태를 나쁘게 해 피부에 악영향을 준다.
린제이 로한은 노화 촉진 요인들을 자주 접한 것으로 짐작된다. 심지어 마약류도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 노화를 막으려면 노화 촉진 요인을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녀는 이런 조치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동안(童顔)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거꾸로 자외선 덜 쪼이기, 금연, 절주, 찬바람 덜 쐬기, 유산소 운동하기, 충분한 수면 취하기, 스트레스 덜 받기를 꾸준히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늙은 얼굴 되돌릴 수 있다
갑자기 폭삭 늙었다고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피부클리닉 분야가 호황을 누리는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화된 피부도 관리를 통해 어느 정도 되돌릴 수 있다. 자외선에 손상된 피부는 돈을 들여 잘 관리하면 깨끗한 피부로 복원될 수 있다.
정치인이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구속될 때 대개 초췌한 모습이다. 그러나 몇 년 뒤 재기에 성공해 공직에 복귀하고 나면 다시 피부가 팽팽해지고 얼굴에 윤기가 돈다. 초췌한 모습은 연출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피부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고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니 과학적 진실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다시 대중에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기에 정치인의 얼굴이 펴지는 것도 우연이나 연출이 아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도 줄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운동도 한 성과라고 본다. 해가 바뀔수록 사람은 점점 늙게 마련이지만 단기적으로 노화 촉진 요인들을 억제하는 것은 분명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하는 효과를 낸다. 린제이 로한도 다시 영화 작업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곧 20대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늙어보이는 겉모습이란 상당히 가변적인 듯하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과학의 발달이 가변성을 더 심화시켰다. 자기관리의 실패로 인한 노화를 일정정도까지는 인위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30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겉모습 자체가 다르다. 지금의 60대가 훨씬 젊어보인다. 지금의 60대가 피부 노화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7가지 요인에 덜 노출됐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운동량, 영양 상태, 화장품, 선크림, 의학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운동이 노화를 확실히 억제
텔로미어
이유는 텔로미어 때문이다.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의 끝에 올이 풀리지 말라고 감아놓은 플라스틱처럼, 우리 세포에 든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조각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는 길이가 조금씩 줄어든다. 세포 분열이 계속되면 이윽고 텔로미어가 다 닳는다. 그러면 세포는 제 기능을 못하고 죽는다. 이런 세포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몸은 늙는다. 과학자들은 나이가 아니라 텔로미어의 길이가 몸의 노화 정도를 측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일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빨리 늙는 사람은 세포가 더 빠르게 분열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람의 세포 분열 속도는 비슷비슷하다. 과학자들은 그보다는 생활 습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텔로미어의 기능이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결과가 그리 풍부하지는 않다. 최근 영국 킹스칼리지 연구진은 쌍둥이 2400명의 피를 뽑아 DNA를 조사했다. 이들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살펴본 결과 놀랍게도 운동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가장 적게 한 사람보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체중, 흡연, 사회경제적 지위, 육체 활동 같은 변수들을 다 제거한 뒤 나온 결과였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까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단지 운동을 함으로써 염증과 같은 것에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본래 세포가 대사 활동을 하면 산화력이 강한 물질이 나온다. 흔히 활성 산소라고 하는 이 물질은 세포를 손상시켜서 노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노화과정을 설명해온 주된 이론이었다.
연구진은 운동을 거의 안 하는 사람들의 몸에서는 활성 산소가 특별한 방해를 받지 않고 텔로미어의 길이를 줄일 것이라고 봤다. 반대로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몸에서는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기능이나 활성 산소에 의해 손상된 부분을 수선하는 기능이 더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전혀 안 하는 사람보다 길면 10년까지 덜 늙을 수 있다고 본다.
운동 부족이 피부뿐만 아니라 세포의 나이까지 늙게 하므로 급격한 피부 노화를 가져오는 다른 요인들도 세포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선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끼는 사람은 텔로미어의 길이도 더 짧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도 텔로미어의 길이가 확연히 짧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 만성 피로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도 그랬다.
많은 학자는 열량 섭취 제한, 즉 소식(小食)이 노화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말해왔다. 섭취하는 열량과 수명의 반비례 관계는 거의 모든 생물 실험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쥐, 두더지, 선충,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열량 섭취를 제한해 수명을 2배, 많으면 4배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경우도 열량 섭취를 제한하면 노화 속도가 떨어지고 수명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열량 섭취를 줄이면 대사 활동이 줄어들어 활성 산소 같은 노폐물이 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소식을 한다고 대사 활동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보다는 대사 방식이 바뀌는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한 연구진은 젊은 선충과 늙은 선충의 활동 유전자들을 비교했다. 1000여 개가 달랐는데 주로 3개의 전사 인자에 따라 활성이 좌우됐다. 이 3개의 전사 인자는 한 건물 내 조명 1000여 개를 켜고 끄는 주 전원 스위치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전사 인자들은 인슐린 유사 신호 경로의 통제를 받았다. 인슐린은 음식물 섭취량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진다. 연구진은 열량을 제한하면 이 신호 경로가 달라져 전사 인자들을 재설정하며 이에 따라 늙은 선충이 아니라 젊은 선충의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상태로 바뀐다고 추정했다. 그 결과 노화가 억제돼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합동 연구진은 소식을 한 남성이 소식을 하지 않은 남성보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의 텔로미어 길이가 선천적으로 똑같은지 아니면 사람마다 다른지도 관심거리가 될 수 있다. 영국 레스터 대학교의 닐레시 사마니 연구진은 실제로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은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연구진은 약 3000명의 피를 뽑아 50만 가지가 넘는 유전적 변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텔로미어의 길이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짧은 이들이 있었다. 세포의 나이로 보면 평균 3~4년 더 늙은 상태로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변이 유전자를 쌍으로 지닌 사람은 6~8년 더 늙은 셈이었다. 이런 변이 유전자를 하나라도 지닌 사람은 전체의 45%에 이르렀다.
이러한 차이는 겉모습의 차이가 아니라 세포의 나이 차이다. 텔로미어가 선천적으로 짧으면 실제 외모도 더 늙어보이는지에 대해선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노화와 관련된 질병이 더 일찍 나타나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 역시 향후 연구되어야 할 과제다. 현대인은 배우자를 고를 때 육안으로 판별되는 얼굴의 노화 정도를 중요한 선택기준으로 삼는 경향이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어린 배우자,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배우자를 더 선호하게 마련이다. 가까운 미래엔 여기에 더해 상대편의 텔로미어 길이 정보까지 알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암이냐 회춘이냐
급격히 늙은 얼굴 피부를 어느 정도 되돌릴 수 있다면 세포의 노화도 어떠할까? 텔로미어의 길이가 세포 노화의 기준이라면 짧아진 텔로미어의 길이를 다시 늘여야 할 것이다. 운동, 스트레스 억제, 소식은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 과일과 견과류에 함유된 항산화제인 폴리페놀류도 비슷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텔로미어를 다시 늘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포에 텔로미어를 늘이는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세포 생물이나 재생 능력이 뛰어난 하등한 생물들은 이런 효소를 이용해 젊음을 유지한다. 사람의 몸에도 비슷한 효소가 있다.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세포나 면역 세포는 짧아진 텔로미어를 복구한다. 그래서 정자를 계속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의 몸에 있는 대다수 세포에서는 이런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잠자고 있다. 이것을 잘못 깨우면 무한히 증식하는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암세포가 되지 않도록 잘 조절하면서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늙었다 싶을 때 잠시 깨워 젊음을 되찾은 뒤 다시 푹 자게 하는 것이다. 이러면 이론상으로 사람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인류가 그런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는 연구자도 많다. 텔로미어 길이를 조절하는 기구를 원하는 대로 만지작거릴 수 있다면 무병장수라는 인류의 꿈도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심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연구자들은 수명의 연장이 일차 목표라고 말하지 않는다. 텔로미어와 노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유는 회춘이나 장수가 아니라 노인성 질환의 예방과 억제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이가 들면 각종 질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동맥경화와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 당뇨, 암, 관절염, 치매까지 다양하다. 노화를 억제하거나 되돌리면 이런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의료비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오래 살겠다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고 소식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약물을 개발하겠다고 벤처기업을 세운 연구자들도 있다. 이들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낙관한다. 심지어 이미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한 회사는 한약재인 황기에서 추출한 물질로 텔로미어를 늘이는 효소를 깨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는 약품이 아니라 식품 보조제로 판매한다. 실제 효과가 어떤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식품 보조제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역으로 제약회사가 획기적인 노화억제약품을 이미 개발해놓고도 묵혀두고 있다는 음모론도 나올 수 있다.
약 3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 말기 인류에게 큰 혁명이 일어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 만큼 나이를 먹은 이들이 갑자기 4배로 불어난 것이다. 이는 인류의 진보를 촉진했다.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면서 가족의 유대가 강해졌고 부모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고 한다. 지식이 계승되고 축적됨으로써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할머니 가설이다.
이것을 첫 번째 고령화 혁명이라고 부른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명의 증가는 두 번째 고령화 혁명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아직 우리 인류가 이런 현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은 성년기의 의학적 문제에 치중해 많은 성과를 냈다. 인류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이 덕분이다.
최근 들어선 발생과 발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줄기세포와 배아에 관심이 쏠리고 어린이의 신체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의학 용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에 비해 노인학과 노화 분야에선 연구가 부족한 편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기간으로 따지면 유년기와 성년기보다 노년기가 훨씬 긴 기간이 되는데도 말이다.
젊음은 깨지기 쉬운 유리
사실 과학은 노화의 의미 자체도 아직 잘 모른다. 병들기 때문에 늙는 것인지, 늙기 때문에 병드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대다수 사람은 늙기 때문에 병이 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린제이 로한의 경우처럼 갑자기 늙어버린 사례는 늙기 때문에 병드는 것이 아니라 병들기 때문에 늙는 것이라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젊음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아서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사회이므로 누구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나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노화 촉진 요소들이 급격하게 활성화돼 얼굴에 갑작스러운 노화가 찾아올 수 있다. 몸 전체 세포의 노화도 동반될지 모른다.
결국 얼굴은 마음에 달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려 자제력을 발휘한다면 자신의 얼굴이 급격하게 노화되는 것과 같은 일은 겪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