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두의 우려를 뒤로하고 ‘사회적 공유’를 지향하는 벤처 코자자(kozaza. com)를 창업했다. 2월 2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에서 만난 조산구(47) 코자자 대표는 “혼자 힘으로 회사를 세우는 것은 사막에서 눈보라를 맞는 것과 같지만, 모바일 인터넷이 초래한 혁신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KT와 LG U+는 변화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회사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안에서 답답해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단검이라도 휘두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 대표는 KT 전임연구원으로 일하던 1991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 커뮤니티 KIDS BBS의 ‘시삽(관리자)’을 맡은 ‘한국 인터넷계의 전설’이다. 미국 UC버클리 컴퓨터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2000년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넷지오(NetGeo)’를 세웠고 2007년 귀국해 KT 신사업추진단장(상무) 등을 맡았다. 2010년 이상철 LG U+ 부회장의 권유로 LG U+로 자리를 옮겨 ‘한국식 트위터’ 와글(Wagle)과 ‘한국식 포스케어’ 플레이스북(Placebook)을 잇따라 선보였으며 페이스북, 트위터와의 전략적 제휴를 이끌었다.
2011년 1월 조 대표는 와글 서비스를 발표하며 “연말까지 국민 1000만 명이 쓰는 서비스로 키우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이 서비스는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그는 “와글은 카카오톡에 트위터를 가미한 것으로 서비스 자체로는 고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지만, 통신과 웹의 결합이 쉽지 않았다”고 실패 이유를 설명했다.
“통신은 안정성이 중요하지만 웹은 스피드가 생명입니다. 웹은 부족한 상태라도 시장에 먼저 내놓고 계속 개선해나가야 하는데 통신회사인 LG U+는 피드백이 느렸어요. 정작 중요한 개발은 아웃소싱 하고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죠. 독립된 사업체로서 인정해주지 않았고요. 우왕좌왕하다 결국 실패했죠.”
그는 “통신사의 마케팅과 SNS 마케팅 차이를 이해하려면 페이스북과 마이스페이스의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이스페이스는 ‘SNS 시초’였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페이스북에 SNS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마이스페이스는 초반에 열풍을 일으키다 갑자기 사라졌고, 페이스북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간단한 개념만 가지고 시작해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입소문이 나 결국 현재의 위치까지 왔습니다. ‘화제를 만들어 사람을 모은 후 제품을 판매하는’ 통신사의 마케팅 기법이 웹에서 통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최근 통신사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변화의 욕구가 대단하다. 카카오톡, 틱톡 등 무료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때문에 문자메시지 이용이 줄고 있다. 앞으로 바이버, 스카이프 등 무료통화 앱까지 활성화되면 전화 이용도 줄어들 게 뻔하다. 전 세계적으로 “통신사가 살아나려면 ‘통신을 겸한 SNS 회사’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현재까지 웹에서 성공한 통신사는 거의 없다. 그는 “통신사가 살길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회사를 세운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를 만드는 건 DNA를 만드는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대기업 마인드로 접근해선 안 돼요. LG U+는 전 직원이 와글 서비스에 필수 가입하게 하는 등 위로부터 접근했습니다. SNS 등 서비스를 통신사의 일개 ‘신사업’으로 볼 게 아니라 ‘목적지’로 봐야 합니다. 자유롭게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 DNA를 도입하지 않으면 통신사의 변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한옥, 차, 경험… 모든 걸 나누자”
코자자를 통해 더 많은 외국인이 한옥을 손쉽게 체험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공유경제. 공유경제란 차, 집, 옷 등 당연히 개인 혹은 단체의 소유라 여겼던 것들을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기업 컨설턴트 레이첼 보츠먼에 따르면 사람들은 100달러에 산 전동 드릴을 평생 단 13분간 사용한다. 만약 전동 드릴이 필요한데 지인 소유의 전동 드릴을 SNS를 통해 빌려 사용료 10달러를 낸다면, 상대는 돈 벌어서 좋고 나는 돈을 아끼니 좋다. 불필요한 전동 드릴 제작을 줄이니 환경도 보호하고, 지역 사회에 유무형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긍정적이다.
최근 공유경제가 자본주의의 대체재 혹은 보완재로 대두되면서, 해외에서는 이미 에어비앤비, 집카, 릴레이라이즈 등 다양한 공유경제 서비스가 성공을 거뒀다. 코자자는 이 중 에어비앤비와 같이 숙소를 공유하는 모델을 택했다. 인터넷에 민박 및 숙박업소 정보를 올리면 이용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신청한다. 숙박업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장기간 집을 비우거나 집에 남는 방이 있을 때도 숙소를 공유할 수 있다.
“서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았지만 숙박업소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호텔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호텔 객실 수는 2만4000개로, 수요에 맞추려면 객실이 현재의 2배 이상 필요합니다. 코자자를 통해 숙소를 공유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받을 수 있겠죠.”
코자자가 세계인을 사로잡기 위해 주목한 것은 한옥이다. 코자자 한국 숙소 예약 사이트에는 별도로 ‘한옥(Hanok)’이란 아이콘이 있다. 현재 서울 시내 300여 한옥에서 ‘체험살이(홈스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외국인이 한국 전통가옥에 머물고 싶어하지만, 호텔에 비해 수도 적고 예약이 쉽지 않다. 조 대표는 “서울시내 한옥을 현재의 2배 이상 확충하고 원활한 예약 및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면 외국인들에게 ‘한국 한옥살이 여행’ 신드롬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한국 전통문화 체험’ 등 특화된 여행 상품을 만들 예정이다.
코자자에 숙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대신 거래가 성사되면 숙박비의 6~12%를 코자자가 갖는다. 영세 규모로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관광객이 숙소를 신청하면 숙소 제공자가 코자자와 연동된 관광객의 SNS 프로필 및 평판을 보고 숙소 사용을 허가한다. ‘모르는 외국인에게 집을 공개하는 찝찝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코자자 차원에서 보험 서비스도 제공한다.
현재는 서울시내 한옥 및 기존 숙소를 이용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점차 일반인과 지방 거주자에게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유려한 유적지가 있지만 숙소 예약이 어려워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지방에도 코자자를 통해 글로벌 여행객이 유입되면, ‘전국이 관광지화’ 될 수 있다. 그는 특히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큰 집에 내외만 살면서 노후대비를 충분히 못한 ‘하우스 푸어’ 어르신들에게 코자자는 해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 빈 방 하나를 코자자에 올려놓고 하루 5만 원씩 한 달에 손님 20명만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한 달이면 100만 원, 1년이면 1200만 원입니다. 연금 외에 일정 수입이 없는 어르신들께 큰 도움이 됩니다. 본인이 원하는 날에만 손님을 받으니 개인 생활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내외간에 적적할 텐데 집에 젊은 사람들이 드나들면 생기가 돌잖아요. 서로 신뢰관계가 생기면 이게 바로 ‘민간외교’죠.”
코자자의 목표는 2012년 안에 객실 5000개를 확보하는 것. 1박에 5만 원, 예약률 50%만 달성해도 매출 총액 450억 원을 달성할 수 있다. 이처럼 코자자 숙소 공유 서비스가 연착륙하면 공유의 대상을 집, 음식, 가전제품, 경험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조 대표가 꿈꾸는 코자자의 미래는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나누는 새로운 세상이다.
불과 석 달 만에 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대기업에서는 별도 사무실에 개인 비서까지 뒀지만 지금은 회사 사무실도 없어 웹에이전시의 사무실 한편을 공유(셰어)해서 쓴다. 국내 상주 직원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 개발은 인도 내 벤처기업에 아웃소싱했고 최고기술경영자(CTO)는 미국 거주자다. 그는 “사이트 코딩(기호 부여) 등 사소한 작업부터 IR(홍보활동)까지 스스로 한다”고 말했다. 비전과 확신은 충분했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대학 진학을 앞둔 두 아들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때 아들의 편지가 힘을 줬다.
“LG U+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날 열여덟 살 된 아들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너의 삶의 주인이 되라’는 넬슨 만델라의 시와 함께 ‘아빠의 꿈을 따라가세요’라고 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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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하우스 푸어’에 도움 될 것
LG U+에서는 벤처 프로젝트 심사위원이었던 그가, 이제 심사 대상자가 됐다. 이전엔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던 20~30대 벤처사업가들이 이젠 그의 동료다. 한참 아래 또래의 벤처캐피털 심사역들이 “수고하세요”하고 인사할 때는 어색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 아직 내가 덜 깨졌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전 임원직에 있으면서도 비행기는 늘 이코노미석만 타고 다녔어요. ‘한번 비즈니스석을 타기 시작하면 다시 이코노미석은 못 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요. 앞으로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지 않고 벤처정신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인터넷 1세대로서의 사명감 역시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는 “인터넷 전문가로서 통신을 알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이 국내에 많지 않다. 대기업에서는 내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지만 한국 인터넷계에 뭔가 족적을 남겨야 한다는 욕구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의 경험과 노련미를 살려 한국 인터넷계에 큰 획을 긋겠다고 밝혔다.
“‘웹 2.0’ 시대를 지나 모바일과 오프라인이 만난 ‘삶 2.0’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 오너십(ownership)의 시대가 아닌 접근(access)의 시대입니다. 이제는 영리기업, 비영리기업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유경제의 주체가 될 겁니다. ‘나눌수록 커진다’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코자자에 모여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길 바랍니다. 제 꿈은 단순히 사업에 성공하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공유경제에 획을 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