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씨, 민주당에 “국선변호사로 재판받는 중”
- “핵심 정보는 이영호 비서관에게만 보고”
(작은 사진)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4층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있다.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민주 사회에서 일어나선 안 될 범법행위. 검찰은 이인규 당시 공직윤리지원관 등 총리실 직원 7명을 기소했다.
당시 민간인 사찰에 청와대도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소위 영포(영일·포항)라인 직원들이 같은 고향 출신인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의 최측근인 최종석 전 행정관에게 사찰정보를 보고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 비서관 윗선으로 ‘왕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목되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했다.
민주당 통해 포문
공직윤리지원관실 측은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사찰증거를 인멸했다. 장진수 씨(당시 주무관)는 사무실 내 직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은폐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독자적 행위며 청와대와 무관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장진수 씨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을 통해 이를 뒤엎는 내용을 폭로했다. 민주당이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장 씨는 “최종석 당시 행정관으로부터 모든 컴퓨터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아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기로 민정수석실과 얘기가 됐다” “검찰이 오히려 (증거인멸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장 씨는 최종석 당시 행정관과의 대화 녹취록도 민주당을 통해 공개했다. 최 씨는 대화록에서 장 씨에게 “내가 상관인 이영호 고용노동비서관을 원망하는 마음이 좀 있지만 저 사람을 여기서 더 죽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내가 위험을 무릅쓴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내가 평생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먹여 살려줄게. 캐시로 달라고 그러면 내가 그것부터 처리해줄게”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최 씨는 녹취록에서 심지어 “검찰에서 절절매면서 나에 대해 조심했던 게, 내가 죽으면 당장 이 사건이 특검에 가고 재수사 갈 수밖에 없는 걸 검찰도 안단 말야”라고 했다.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은폐에 개입했고 검찰이 여기에 공조해 축소 수사했다는 게 이번 폭로의 핵심일 것이다.
김황식 총리는 2010년 11월 23일 국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판단하고 평가했던 자료 이상의 더 확실한 자료나 증거가 있으면 얼마든지 또 필요에 따라서는 수사할 여지도 있다”고 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장 씨의 주장이 이러한 재수사 요건을 충족한다고 본다. 일각에선 재수사가 안 되거나 미진할 경우 특검 등으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묵계와 폭로’의 전모
다른 한편으로 이런 중차대한 증언이 왜 지금 나왔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인다. 현재 기소돼 2심 판결까지 끝낸 장 씨는 검찰이나 법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힐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장 씨는 청와대 개입이 없었다고 꾸준하게 진술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검찰에서의 제5차 피의자 심문조사 때 검찰은 최종석 전 행정관이 장 씨에게 컴퓨터 폐기를 지시하며 건넸다는 대포폰 자료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 자료를 피의자인 장 씨에게 제시하면서 최 씨의 증거은폐 가담 여부를 추궁했다. 그러나 장 씨는 자신이 혼자서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장 씨는 갑자기 폭로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검찰이나 사법부에선 진실대로 털어놓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최종석 등 청와대 측이 장 씨에게 “변호사를 대주고 뒤를 봐주겠다. 대신 증거인멸을 혼자 다 안고 가라”고 제시해 한동안 이 묵계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 씨는 4·11 총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민주당이라는 특정 정당을 끼고 폭로에 나선 모양새다. 청와대 측과의 묵계가 깨지자 정반대 정파로 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확산시켜야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에 장 씨는 저절로 굴러들어온 복이었을 것이다.
‘신동아’가 장 씨와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 자료를 구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장 씨는 민주당 측과 오랜 시간 심층면담을 했다. 이후 장 씨의 진술내용이 민주당 창구를 통해 순차적으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폭로정국이 촉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장 씨와 민주당의 대화 중 상당 부분은, 청와대와 연결되는 단서들을 장 씨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민주당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장 씨가 답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장 씨는 최종석 전 행정관과의 대화 녹취와 같은 핵심 내용을 처음부터 다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대화의 상당 부분은 검찰 조사 및 법원 재판을 받고 있는 장 씨 자신의 처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장 씨는 최종석 등 청와대 측이 뒤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거의 봐주지 않았다는 점, 최종석 씨가 붙여준 변호사가 장 씨 본인보다는 최 씨 측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 결국 마땅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 2심 재판결과가 유죄로 안 좋게 나왔다는 점, 대법원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주로 민주당에 이야기했다. 최종석 등 청와대 측과 장 씨 간 묵계가 있었지만 재판과정에서 금이 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장 씨의 이러한 진술에서도 엿보였다.
“사람에게 의리라는 게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다 무료변론 해드려야지. 책임지겠다”고 장 씨에게 약속했다. 국선변호인으로 어렵게 끌고 온 재판에 변호사의 조력을 제공해주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장 씨와 민주당 관계자의 발언 요지다.
“증거인멸 사건 터질 때 내 업무 전임자인 선배가 ‘사람에게 의리라는 게 있다. 네가 그런 걸 생각해서 가서 있어야 할 거다. 그래야만 뒤가 생긴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그래야 되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민주당 : 사건 터지면서 변호인 선임을 누가 해줬나?) 최종석 행정관이 소개를 해준 변호인이 이영호 비서관의 변호인이더라. 그분이 자기 후배를…. (민주당 : 수임료는 누가 냈나?) 내가 안 냈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 없는데…. 최 행정관이 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자리에 최 행정관이 같이 있었다. 최 행정관이 항상 그렇게 말했다. 기소된 총 7명에 대해 전체적으로 K 변호사가 하는 것이라고. 내 변호인이 ‘청와대로 확대하면 더 불리하다. 이걸 할 필요가 없다. 형량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재차 ‘법리적으로 증거인멸인데 최 행정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걸 이야기하는 게 형량에 도움이 안 된다. 어차피 진경락 공직윤리지원관실 과장의 지시가 있지 않으냐. 이걸로 충분한데 최종석 지시까지 이야기할 필요 없다’고 했다.
영장실질심사 받기 하루 전 진경락 과장이 억울하다며 자기도 빼달라고 했다. 나는 ‘말도 안 된다. 나 혼자 들어가라는 말인가’라고 했다. 변호사가 ‘진 과장 지시를 받아 이행한 단독범행으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검찰에서 세 번 피의자 심문받을 때 변호인이 검찰에 동행했다. 변호사가 코치하는 대로 했다. 변호사는 ‘주로 모른다고 해야 한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주당 : 검찰에서 청와대 지시나 증거인멸 질문 있었나?) 5차 피의자 심문 때 대포폰 이야기, 최종석 이야기가 다 나왔다. 내가 사실과 다르게 대답했다. 검찰에서 질문한 게 사실은 다 맞았다. 내가 ‘예’하면 끝나는 것인데 ‘모릅니다’라고 했다.
(최종석 행정관이 소개해준 변호사를 물러나게 하고) 항소심 때는 내가 최모 변호사를 선임했다. 최 변호사는 내가 주장하는 대로 팩트를 밝히고 다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다른 법무법인도 어렵다고 해서 국선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 항소심에서 징역형이 나왔다. ‘(최종석 행정관 등이) 말만 그렇고 하나도 보호해주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석 행정관과 여러 번 만났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나도 너하고 똑같은 입장이다. 나를 원망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평생을 케어해주겠다’고 했다. 언제부턴지 반말하더라. 친한 거 과시하는 건지. 나보다 높은 사람이고 나이도 두 살 많아서 듣고 있었다.
최종석 행정관에게 따지지는 못했다. 내가 제압할 수도 없고. 직급 차이도 원체 나고. 최종석 행정관이 ‘현대자동차 부사장을 아는데 오늘 당장 만나자. 확인시켜줄게’라고 하더라. 내가 됐다고 했다.
(민주당 : 다 무료 변론해드려야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대법원 상고이유서 내고 나서 ‘지금이라도 밝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고이유 보충서 쓰기 전에 진실을 밝히려고 고민했었다. ‘정말 국가공무원으로서의 마지막 도리가 아닌가’ 여겼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고민하고 준비했다. 연이 닿지 않아 못 했고. 집에서 작은딸을 보면서 ‘얘들이 크고 나서 내가 떳떳할 수 있느냐’ 이 문제를 생각했다. 주변 사람은 ‘가만히 있고 적당히 삶을 살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내가 떳떳하려면, 이걸 안고 가기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장 씨는 “최종석 행정관이 ‘이거를 사면을 시켜주고 공공기관에 괜찮은 직책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표시 안 나는 협회 같은…. 구체적으로 은행연합회’라고 회유했다. 잠시 유혹이 되기도 했었다”면서 복잡했던 자신의 심정을 말하기도 했다.
장 씨가 최종석 전 행정관이 개입한 사실을 폭로한 이후 최 전 행정관의 상관인 이영호 당시 고용노동비서관의 연루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 전 행정관은 장 씨와의 대화 녹취록에서 이영호 전 비서관도 이 사건에 관여돼 있다고 했다. 매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280만 원을 이 전 비서관 등 고용노동비서관실에 전달했다는 주장도 공개됐다.
청와대 커넥션의 진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민간인 김종익 씨(사진)를 사찰했다.
야당은 민간인 사찰 문제가 처음 나온 2010년 이인규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이 같은 ‘영포라인’인 이 전 비서관과 커넥션을 이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장 씨는 이 전 지원관과 이 전 비서관이 불편한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과거 주장과 배치되는 이러한 대목은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공개 대화내용에 따르면 이인규 전 지원관의 수하인 진경락 전 과장이 이영호 전 비서관과 직통했으며 이로 인해 이 전 지원관과 진 전 과장이 고성(高聲)으로 말다툼을 벌이는 등 내부에서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민간인 사찰을 주도해온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이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커넥션에 의해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영호 전 비서관 대목과 관련해 장 씨는 2009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받자마자 진 전 과장의 인솔로 이 전 비서관에게 인사를 한 경험부터 진술했다.
“이건(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정의 조직이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가니 저쪽(고용노동비서관실)이라고 하더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까 진 과장이 이영호 비서관에게 ‘새로 온 서무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 비서관은 ‘그래 수고해’라고 말했다. 이어 최종석 행정관을 소개했다. 나오면 복도에 회의실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서 진 과장과 최 행정관이 형 동생 하더라. 나는 옆에 있다 나왔다. 처음으로 이 비서관과 최 행정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보다 먼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워크숍에서 이영호 비서관에게 다 인사했을 테니까.
최종석 행정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처음 생긴 이후 직원 워크숍을 갔다. 최 행정관에게 이영호 비서관이 ‘같이 가자’고 했다고 한다. 최 행정관이 ‘같이 가면 말 나옵니다. 혼자 가십시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이 비서관) 혼자 보냈다고 한다. 진경락 공직윤리지원관실 과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이 비서관과 최 행정관은 같은 포항사람이고 고용노동비서관실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담당을 최 행정관이 한 거다.
(최 행정관의 청와대 내 파워와 관련해) 최 행정관이 내게 말하기를, 어떤 일로 민정수석실에 항의를 하니까 김진모 당시 민정비서관이 ‘당신 참 대단하다’고 자기한테 말하더라는 거다.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행정관이 와서 이렇게 할 정도의 배포를 가지고 있느냐. 대단하게 본다’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 언성을 높였지만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민주당 :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민정과 고용노동비서관실에 각각 보고하도록 하는 업무 분장을 어떻게 정하게 됐나?) 이영호 비서관이 청와대 내에서 폭언을 하는 등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2010년 당시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이 사건 이후 MB(이명박 대통령을 지칭)께서 ‘너는 지원관실 손 떼라’라고 이 비서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민정이 ‘앞으로 우리와 업무하면 된다’고 했다. 그게 2010년 2월쯤으로 기억된다.
그런데도 진경락 과장은 다시 목록을 만든 거다. 그 이후에도 고용노동비서관실이 중요한 거를 더 가지고 있고. (※ 대통령 지시에도 불구하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고용노동비서관실에 여전히 보고서를 올렸으며 중요 정보는 민정 대신 고용노동비서관실에 보냈다는 의미) 예를 들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인사 스크린을 가장 많이 한다.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하고. 술 많이 먹는지, 도덕성과 업무능력은 어떤지, 부하들 평은 어떤지. 이걸 보고하는 게 중요한 자료다. 이것도 민정에는 대충 초안짜리를 올린다. 아직 가공이 덜 된 거. 잘 만든 거는 이영호 비서관에게 준다. 이렇게 진 과장이 계속 (이영호) 라인을 이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인규 국장(공직윤리지원관)은 이영호 비서관과 안 맞았다. 이 국장은 실제로 업무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민정 쪽으로. 사선(私線) 라인 끊어내고. 그러다 보니…. 진경락 과장이 말하기를 이영호 비서관이 욕도 했다고 한다. ‘이인규 ××’라고. 술자리에서 욕을 막 했다는 거다.
“비밀표시 ‘EB’ 사용”
그래서 교체가 되려고 했다. 이인규 국장을 교체…. 왜냐하면 이영호 비서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감사원에서 후임이 오려고 했다는데…. 진경락 과장이 사무실 안에서 이인규 국장에게 더 큰 목소리로 ‘국장님, 그러시면 되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조직이 콩가루인가 싶었다. 그래도 진경락 과장 이야기가, 승진자리가 있을 때 배려해 노동부의 한 직급 윗자리로 이인규 국장을 보내려고…. 그러던 시기에 사건 터진 거다. (※ 민간인 사찰 건으로 이인규 전 지원관은 검찰에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인규 국장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사인한 것 내용도 잘 모를 거라고 본다. 업무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잘 안 보고 결재만 하니까. 얼마 전 만나서 ‘국장님 속 많이 안 상 하십니까’라고 물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제 다 삭혔다. 삭혔어’라고 하더라.”
2010년 7월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은폐에 대한 검찰 수사 때에도 이영호 전 비서관 개입 문제는 사건의 핵심 사안이었다. 그런데 장 씨의 진술에 따르면 검찰의 공직윤리지원관실 압수수색 당시 이 전 비서관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커넥션을 입증하는 업무분장표가 직원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도 검찰이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검찰 압수수색이 쇼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어지는 장 씨의 진술 요지다.
“(민주당 : 검찰 축소조사가 이 사건의 다른 한 축인데….)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오기 전 압수수색이 있을 거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 들어온다’고 그랬고. 사전에 알았고. 검찰에서 10여 명이 압수수색 와서도 대충….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 깔아놓은 것도 안 갖고 가고.
책상 밑에 깔려 있던 것이 공식 직제가 아니라 모 사무관 자리에 있었는데 업무분장표가 딱 있었다. 이영호 비서관에게만 보고할 업무는 EB란에, 민정에 보고할 업무는 민정란에 동그라미가 되어 있고 양쪽에 다 보고할 업무는 두 개 다에 동그라미가 되어 있는…. 이건 EB한테만 하고, 이런 식으로 업무분장표를 그 시점에 새로 작성했었다.
은밀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민정이 알면 안 되니까. 이 비서관은 손 떼고 민정에서 하겠다고 위에서 지시가 있었지만 진경락 과장이 다시 만든 거다. 근데 오히려 EB한테 더 했다. 더 했고. 이게 외부에 노출해도 되는 업무분장표가 아니고 실질적인 업무분장표…. 그게 모 사무관 자리에 꽂혀 있었는데도 검찰이 그걸 안 가져가더라. 검찰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종이 몇 장 가져가는 것 같았다. (※장 씨는 해당 하드디스크 내 정보는 최종석 행정관의 지시로 이미 피기한 상태였다고 했다.) 총리실 총무과 직원들이 ‘도와줄 게 있으면 도와준다’고 왔었다. 직원들이 하는 말이 ‘그냥 쇼 하는구나’였다.”
“민정이 컨트롤 된다”
2010년 7월 24일 밤 구속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서울구치소로 떠나고 있다.
“최종석 행정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 컴퓨터와 진경락 과장 것을 다 강물에 갖다 버리던지 그냥 부숴버리던지 없애라고 이야기했다. ‘검찰이 요구한 거고 민정수석실하고 이야기가 다 됐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컴퓨터를 없앨 수는 없다고 해서 수원의 전문 업체에 의뢰해 하드디스크를 삭제한 거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7월 9일 나왔다. 이미 7월 7일 최 행정관이 ‘조율이 다 되어 있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맞아들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검찰이 요구한 걸 해줬고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민주당 : 김종익(민간인) 사찰 건이 민정으로도 갔나?) 나는 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총괄 사무관이 민정 쪽 국장에게 드렸다.”
장 씨가 파기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검찰에서 복구됐다. 이 중엔 직원 정모 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있었다. 대검찰청 디지털수사담당관실의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정 씨 하드디스크의 ‘민정수석보고용’ 폴더에 김종익 씨의 다음(Daum) 아이디인 동자꽃을 파일명으로 하는 ‘다음(동자꽃)’ 한글파일이 저장돼 있는 점이 나타났다.
장 씨와 최 씨의 민정수석실 연루 증언과 이러한 컴퓨터 복원 자료는, ‘민정수석실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은폐에 실제로 개입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다만, 김종익 씨 사찰 시점과 증거은폐 시점의 민정수석비서관은 서로 다른 사람이고 증거은폐와 관련해 장 씨는 당시의 민정수석비서관이 아닌 민정 고위 간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간부는 “증거은폐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2010년 7월 6일 진경락 전 과장의 지시로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구동해 직원들의 컴퓨터 파일을 완전 삭제한 뒤 다음 날 최종석 전 행정관의 지시로 하드디스크들을 떼어 수원의 전문 업체에서 데이터를 파괴했다.
이레이저 프로그램을 구동할 때 그는 국정원이 파일을 완전 삭제하라고 교육한 사실을 떠올렸다고 했다.
“자기들은 빠져나가고…”
“국정원 과장이 와서 전 직원이 보안교육 받고 했다. 파일을 삭제할 때엔 완전 삭제하라는 그런 교육을 많이 받았다. (증거은폐 지시를 받은 뒤) 괜히 파일 삭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 것 같다. 조사심의관실이 없어진 지 5개월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겼다. 내가 조사심의관실의 마지막 서무다. 그때도 국정원(직원)이 와서 ‘이거 다 지우라’고 했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는데 CD를 하나 가져왔더라. ‘이걸 넣고 돌리면 된다. 두세 시간 걸린다’고. 그렇게 다 파기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 이거 다 파기해야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장 씨는 청와대 측의 지시에 따른 것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영문도 모르는 말단 직원 시켜 다 해놓고 자기들은 빠져나가고…”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장 씨의 주장에 대한 ‘신동아’의 반론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또 국정원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적도, 조사심의관실 자료를 삭제한 적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