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마조마을

  • 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입력2012-03-20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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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마조마을 전경. 중앙에 해발 1125m 운장산이 보인다.

    살 다보면 생의 존귀함을 잊고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청춘의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죽음의 문턱을 넘어보거나 또 그럴 뻔한 경우를 겪게 되면 삶이 경건해지고, 그래서 한 번쯤 살아온 생을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뛰어넘은 인류 보편의 원칙이지 않은가. 비록 남루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끔씩 삶이 경건해지는 시간이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마조마을은 생의 외경을, 선방의 노스님이 죽비 내리치듯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해발 1125m를 훌쩍 넘는 운장산 기슭에 숨어 있는 산골짝 마을, 5만분의 1 축적의 지도에서나마 미미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궁벽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이 그나마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암 환자 덕분이다.

    마조마을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소백산맥 끝자락에 돌출한 부락이지만,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드는 샹그릴라 같은 곳이다. 동구 밖 과수원 길에는 여느 오지마을과는 달리 초등생들의 목소리가 봄빛이 고운 하늘가로 울려 퍼진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 중 한 명은 말기 암 환자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랄로의 바이올린 소리보다 투명하다.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마을을 세상과 이어주는 무진장 행복한 버스.

    읍에서 하루 네 번, 세 시간마다 ‘무진장 행복한’ 버스가 오가는 진안고원 마조마을에는 모두 열 가구가 산다. 그중 네댓집에서는 암 환자들이 떠나려는 생을 붙잡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김모(59·서울 K고교 교사) 씨의 부인도 말기 암 환자다. 필자와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부인은 멀찌감치 떨어져 산책하고 있다. “6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2년 전 처음 알았을 때에는 그래도 희망을 가졌는데 지금은 집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먹먹하기만 합니다.”



    암 환자 치료에 좋다는 곳을 알음알음 수소문한 끝에 그는 고교 교사직을 명퇴하고 부인과 최후의 순간을 같이할 곳으로 마조마을을 택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평, 홍천 등 서울 인근의 오지마을에는 상당한 수의 암 환자가 지푸라기 희망을 걸고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젖은 눈에서 송구스럽지만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건장한 체격의 그도 부인의 병세가 절망적이라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런 그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근거는 바로 마조마을의 공기와 물, 그리고 기적의 역사라고 한다. 6개월 시한부 암 환자들이 10년 이상 생을 연명한 사례 덕분에 오늘날 마조마을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주는 성지쯤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초등생의 아버지 역시 암 환자였다. 전세 2000만 원에 월 10만 원을 주고 빌린 농가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예상외로 밝게 웃었다. “아주 건강해보인다”는 필자의 말에 “서울아산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밤새 내려왔다. 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럽다”고 대답해 순간 할 말을 잊게 한다.

    대부분의 오지마을이 그렇듯이 마조마을에서도 인적을 찾기 힘들다. 봄이 웬만큼 들어앉은 춘삼월이건만, 나들이라도 나옴직한 노인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찾아든 곳은 마을회관. 무료하게 누워 있던 할머니 세 분이 불청객을 반긴다.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나온 마을의 역사는 더욱 남루하다. 소백산맥이 마지막 똬리를 튼 마조마을에는 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득한 시절 손바닥만한 논들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묵혀져 버려진 땅으로 변한 지 오래. 봄에는 산나물과 약초 채취로, 여름에는 뱀, 가을에는 곶감, 겨울에는 사냥을 주 수입원으로 살아왔다고 전한다.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학동분교. 오래전 폐교됐다.



    씨 없는 곶감이 일품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마을회관에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특히 골짝에는 뱀이 지천에 널려 있어 마을에는 뱀을 저장하는 허름한 공동 움막까지 존재했다는 대목에서는 등골이 서늘하다. 백사, 살모사, 칠점사 등 독사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능구렁이가 많아 한 시절 땅꾼들에게 인기였다고 한다. 특히 능구렁이가 살모사를 잡아먹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는 대목에서는 괜히 발끝이 스멀스멀거린다.

    은사시나무가 제 잎을 떨구는 늦가을이 되면 마조마을은 가장 바쁘게 돌아간다. 감 수확 철, 그러나 감나무에 올라갈 젊은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일손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고 결국 진안군청 공무원과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마을을 찾아 감 따기를 돕는다. 마조마을에서 생산되는 곶감은 씨가 없다. 운장산 우라늄 광맥의 영향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른다. 여기에다 일교차가 큰 고랭지에서 말리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 인기가 좋다. 그래서 늦가을 한철 돈을 좀 만질 수 있다고 한다.

    마조마을과 인근 학동마을을 조금 벗어난 계곡에 위치한 용담호는 석양이 아름다운 호수다. 남한의 개마고원으로 불리는 진안고원 깊숙이 자리 잡은 이 호수는 2000년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 전북 동부 산악지대인 진안군 정천, 주천 등지에서 흘러드는 하천을 막으면서 당시 이 지역 대부분이 수몰되었다. 1읍, 5면, 68개 마을이 잠기면서 한때 깊은 밤에는 귀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괴담이 나돌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석양의 용담호는 일반적으로 호수의 낭만적인 이미지보다는 적막, 고독 등 애상적인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리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용담호는 새벽 물안개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은 이곳의 새벽을 렌즈에 담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운다. 특히 호수 주변의 가을 낙엽은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선명하다고 한다. 물위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때문에 서리를 직접 맞지 않아 색조가 유난히 곱다는 게 셔터 누르기에 열심이던 권태균 선생의 설명이다.

    마조마을을 옆에 둔 인근 학동마을도 마조마을과 쌍벽을 이루는 오지마을이다. 첩첩산중으로 예전엔 정천면 소재지까지 나가려면 12개의 돌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을 정도로 외지다. 여름철 비만 오면 초·중학생들은 결석하기 일쑤였고 수업 중에도 비가 내리면 징검다리가 잠길까봐 학동마을 아이들은 무조건 귀가시켰다고 한다.

    신도 세명의 초미니 교회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마조마을의 토종탉들. 암환자의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마을에는 116년을 조금 넘긴 손바닥만한 교회가 하나 있다. 구한말 서양 선교사가 지었다는 학동교회인데 일반 교회의 화장실보다도 훨씬 작은, 그야말로 초미니 교회다. 단언컨대 지구상에 이보다 더 작은 예배당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칠이 벗겨진 종탑은 보통 사람 크기만하고 교회 안은 그저 열 명 정도 앉으면 꽉 찰 정도다. “겁나게 오래 됐지유.” 현재 신도가 세 명이라고 나무를 때던 예배당 옆집 최한규(76) 할아버지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한다.

    살다보면 그리움이 깊어지는 시간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동마을 입구에 생을 다한 조림초등 학동분교를 둘러보면 된다. 달랑 시멘트 건물 하나가 잡초더미 속에 웅크리고 있는 학동분교는 찾는 이에게 그리움의 의미를 한껏 전해 준다. 무너질 듯한 건물 앞에는 석고상이 있다. 이름 하여 ‘책 읽는 소녀’다. 어느 먼 서양 소녀상을 흉내낸 듯한 벗겨지고 낡은 소녀 조각상이 석양에 야위어간다. 저 소녀가 읽고 있는 책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래도 소공녀일 것 같다. 지금의 신세대들이야 화투 뒷장 같은 디자인의 빨간 표지판 ‘소공녀’‘소공자’를 알기나 하겠는가.

    그리움이 깊어지는 시간

    산골짝 마을에서 만난 폐분교 앞에서 여행자들은 저마다의 영감을 느낄 것이다. 빛바랜 교사, 무성한 잡초, 냄새조차 말라버린 푸세식 화장실, 풀꽃. 아득한 시절 문 닫은 학동분교에는 운장산 기슭, 이 작디작은 마을의 과거와 현재, 사랑과 추억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하여 모든 틈입자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의 분교 앞에서 저마다의 그리웠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숨 가쁘게 살아온 삶 돌아보게 하는 말기 암 환자의 샹그릴라

    116년 된 학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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