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벗어나 혁신의 DNA 갖춰야
전민구│투투모로우 이사│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자동차 프리우스는 기업 혁신을 통해 탄생했다.
혁신 부문을 보면 글로벌 기업 평균이 65점, 한국 기업 평균이 43점으로 22점의 큰 차이가 난다. 혁신 부문은 상위 등급으로 갈수록 더욱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확인돼 혁신 부문이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 그리고 등급별 기업의 차이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속가능한 혁신적 기업은 사회에 무엇이 결핍됐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의 이용을 촉진하며, 자원과 에너지 효율이 높고 환경영향이 적은 제품을 생산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또 소외된 계층에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새로운 사업과 시장을 발굴하고 자원과 사람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성과와 리더십을 보여주는 기업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그 사례를 살펴보자. GM이 실험적으로 친환경 차량모델을 개발하고 그 성과를 자랑할 때 도요타는 프리우스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을 개척하며 수익까지 창출했다. IBM의 우수한 혁신 노력은 지난 5년간 시행해온 ‘글로벌 혁신 전망(Global Innovation Outlook·GIO)으로 대표된다. IBM은 이 프로그램에 수백 명의 전문가, 정책가, 경영자, 대학 연구소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끌어들였다. IBM은 GIO를 통해 건강관리, 에너지 및 환경, 아프리카의 경제발전과 전 세계 수자원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중요한 지속가능성 이슈를 도출했고, 이를 보고서와 리서치를 통해 공유했다. 그리고 GIO에 참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협업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의 현황은 어떨까? 한국 기업 중 LG전자, LG생활건강, 삼성전기, 기아자동차 등 4개사가 모두 67점으로 최고 점수를 획득했지만 이는 아쉽게도 글로벌 기업 전체의 평균과 동일한 수준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체 90개 글로벌 기업 중 다논, 나이키, 지멘스, 인텔, GE, HP 등 혁신 부문에서 90점 이상을 차지한 리더 기업군을 포함해 총 36개, 전체의 40%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한국 선두 기업의 최고 점수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산업별 점수도 여전히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이 큰 차이를 보이지만 유사한 점 하나는 소비재 산업(FMCG)과 전기전자(Electronics) 2개 부문에서 혁신 부문의 평균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첫째, 소비재 산업에서 LG생활건강이 P·G와 유사한 ‘열린 혁신체제(Open innovation)’ 체계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생산 및 사용과정에 대한 제안을 반영한 제품 출시 및 공정 개선 사례 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LG전자와 삼성전기 등 전기전자 산업이 제품 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상품 기획 단계에서 협력회사의 참여, 공급망의 사회책임 관리를 위한 다자간 협업 노력에 참여한 것 등이 인정받은 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기업에 비해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와 혁신 부문 점수가 낮은 것은 아직 한국 기업들이 핵심 사업의 리스크와 기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의사를 결정할 때 최고경영진 혹은 이사회 수준에서 논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친환경이라는 이름의 제품 모델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혁신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없다. 공식적 체계를 통해 모든 제품 라인 그리고 제품 전 과정서 환경과 사회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혁신의 리더십으로 인정된다.
자원과 에너지 고갈이 가져오는 경영의 리스크와 기회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는 기업, 이를 바탕으로 전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을 만들어 매출이 신장하는 기업,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영향을 줄이는 연구개발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 새로운 형태의 협업체계를 만들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환경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기업…. 이는 바로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지속가능한 혁신의 DNA를 갖춘 기업의 모습이다.
환경 사회 리스크 대응 부족
양인목│디 에코 대표·투투모로우 비상임 이사│
2012년 모바일월드 콩그레스에 출품된 하이닉스 반도체 제품.
거버넌스는 참여(Engagement) 거버넌스와 전략(Strategy) 거버넌스로 구분된다. 전략 거버넌스는 평가 대상 30개 사 중 하이닉스, LG전자, 삼성전기, 포스코, 한국가스공사 5개사 외에는 긍정적 평가를 할 적절한 근거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사회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인 ISO 26000을 제정할 때 한국 대표로 참여한 노한균 국민대 교수는 거버넌스를 ‘기업의 목표와 목표 달성 수단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거버넌스는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요구사항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핵심 사항이다.
참여 거버넌스의 핵심은 의사결정권자인 경영진과 이사회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고려하면서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있느냐다.
이 부분에서는 LG전자가 가장 앞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2009년 CEO를 위원장으로 하고 각 사업 책임자와 글로벌 지역 대표가 참여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위원회를 발족했다. CSR위원회는 공식적 조직인 CSR그룹을 통해 이해관계자와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기업 운영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2010년 전자산업시민연대(EICC·Electronic Industry Citizen-ship Coalition) 가입과 글로벌 노동 방침 공표는 참여 거버넌스 프로세스에 의해 CSR위원회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CSR그룹은 CSR 운영체계를 수립하고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CSR위원회와 이사회에 보고하고 결정된 결과를 이해관계자에게 피드백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 참여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로는 대구은행을 들 수 있다. 대구은행은 그룹 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서 지속가능경영실무협의회를 통해 보고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사항을 고려해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전략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점은 리스크를 관리할 때 지속가능경영 이슈를 얼마나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대 격언이 있다. 리스크 관리는 경계의 범위에 포함된다. 리스크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며, 발생했다 하더라도 사전 준비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는 일반적인 예상보다 큰 피해를 보거나 조직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리스크에 노동, 인권, 환경, 윤리와 같은 지속가능경영 이슈들이 부상하고 있다. 나이키는 1996년 협력회사의 아동 노동 문제로 1997년 영업 이익이 37% 감소했으며 BP는 2010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로 명성이 추락하고 10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전략 거버넌스 총체적 부재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들은 환경과 사회 이슈 관련 비재무적 리스크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부족하다고 파악된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현황과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열심히 공시하고 있지만 이는 재무적 리스크와 법률적 리스크에 집중돼 있다. 그나마 사회·환경적 비재무 리스크가 핵심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세스의 수준이 높은 분야는 전기전자와 유틸리티 산업으로 나타났다.
하이닉스는 전사위험관리 프레임워크에서 거버넌스와 경영목표 달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과정의 대상이 되는 위험요인(리스크)을 7개 분야 340개로 분류했다. 340개 리스크에는 기후변화관리, 지역사회, 에너지 관리, 인사관리, 아웃소싱 및 공급망 관리 등 사회·환경 분야의 리스크가 포함되어 있으며 조사·분석 과정을 통해 ‘핵심(key) 리스크, 중급(middle) 리스크, 낮은(low) 리스크’로 구분해 대응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가치사슬에서 위험 유형을 도출했다. 여기에는 가스 생산 단계에서 사고, 재난 및 환경 위험과 운영 단계에서 노사 분규, 직원 안전 등의 사항이 포함돼 있다. 위험 유형은 사전에 대비하는 상시 위험관리 활동, 위험 요소가 위기 상황으로 전개될 경우의 위기대응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합적으로 거버넌스의 수준이 가장 낮게 평가된 분야는 자동차와 건설, 유통 분야였다. 거버넌스 평가가 낮다는 것은 경영진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략 거버넌스 측면에선 경영진이 변화의 추세를 외면하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거버넌스에 대한 평가가 낮은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이 형식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기업이 간과하고 있는 사회·환경적 위험 요소에 의해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과 사회를 동시에 유지 발전시키자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경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경영 의사결정이 이해관계자와 소통되고, 리스크 관리에서 사회·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경영진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친환경 자동차 너머 지배구조 개선까지
서은영│투투모로우 전임연구원│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레이.
친환경 고연비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세다. 고유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제성뿐만 아니라 탄소배출량까지 감소시킨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 산업은 유한한 자원인 석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핵심사업 모델 자체를 지속가능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혁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선도하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 리더들은 친환경 자동차 모델 개발에만 나서는 게 아니다. 진정한 리더들은 자동차 산업이 가진 다른 많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투투모로우는 글로벌 및 한국 TVR 평가 과정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이 지속가능성 리더가 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지속가능성 과제를 파악하고 이를 전사적 전략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및 비재무적 리스크와 기회가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 내재화되는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글로벌 리딩 기업들은 이사회(또는 최고경영진 수준)에서 사회책임 및 지속가능성 이슈들을 재무적 성과와 동등한 수준으로 반영하는 공식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자동차 리콜 사태도 보고서에 담아야
BMW는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오늘날의 복잡한 글로벌 경제는 극심해지는 경쟁으로 인해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막대한 리스크 사슬을 만들어낼 것이라 우려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소개하고 있다. 정치, 사회, 환경 및 경제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연료소비와 탄소배출 등 자동차 산업 고유의 리스크, 그리고 협력업체 리스크 등 모든 지속가능성 이슈를 리스크 관리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균형 있고 투명한 보고가 절실하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보고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리고 ‘보고하는 내용이 올바른가’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균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사례는 도요타로 평가된다. 도요타는 가속페달 결함으로 인한 리콜사태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그 문제를 지속가능 보고서에 공개하고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과 품질 관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TVR 평가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셋째, 자동차 기업들은 특히 산업의 핵심 이슈인 제품 책임 및 혁신과 관련해 성공한 사례를 나열하는 식의 보고에서 벗어나 더 넓은 범위의 사회·환경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포드는 ‘포드 뉴 아이디어/컨슈머 혁신 오피스’를 통해 누구든지 신기술 또는 발명 아이디어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블로그와 쇼셜 네트워크 사이트 등과 연계되는 ‘포드 소셜’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이해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한다.
도요타 프리우스, 폭스바겐 제타, 포드 퓨전, BMW 액티브, 그리고 국내에서는 기아차와 현대차가 각각 K5와 쏘나타 하이브리드로 글로벌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연료 절감과 저탄소라는 사회와 환경의 이슈를 먼저 고민하고 투자한 기업들만이 지금 친환경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복잡해지는 미래의 시장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관심사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들이 우려하는 지속가능성의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혁신을 통해 대비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일부가 아니라 포괄적 참여 필요
서은영│투투모로우 전임연구원│
● 대도시의 큰 기업 건물 앞에서 개인 혹은 단체가 그 기업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장면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런데 그런 기업들도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고, 때로는 그 가운데 어떤 기업은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런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이해관계자 참여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속가능한 기업은 한마디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표현할 수 있다. 기업이 이해관계자 신뢰를 얻기 위해선 기업 활동에 가치를 창출해내는 이해관계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들의 의견을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즉 이해관계자의 피드백을 얻고 대응하는 이해관계자 참여는 기업 지속가능경영의 중요한 과정이다.
다국적 의류브랜드 갭은 이해관계자 참여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의 초기단계에 있는 기업들은 이해관계자가 제기하는 지속가능성 이슈들 중에서 듣기 좋고 잘 관리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만 다루려고 하는 특성을 보인다. 고질적이고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사업 관행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변화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친환경’ 또는 ‘지역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번 TVR 2011에서 투자등급으로 평가받은 지속가능 우수 기업들은 그 반대였다.
이해관계자 참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이해관계자 설문 조사다. 예컨대 동부화재는 이해관계자 참여의 방법으로 설문과 인터뷰를 담았다. 동부화재의 설문조사 질문은 “동부화재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또는 “동부화재는 업계를 선도하는 환경경영 실천 기업이다”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설문조사는 질문 및 형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동부화재의 설문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지속가능성 이슈이든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는 개방형 질문을 구성해본다면 더 깊이 있는 보고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동부화재는 이해관계자별 인터뷰를 통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공개가 부족하다’ 등 자사에 부정적인 내용도 보고서에 게재해 균형성을 보이고자 노력하긴 했다. 그런데 보고서에 담은 이해관계자 의견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반영이 되어 실질적 성과관리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해관계자 참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글로벌 의류 브랜드 갭의 사례를 보자. 갭은 웹사이트에 ‘자주 묻는 질문(FAQ)’ 항목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는 “갭은 2010년 12월 14일 방글라데시 옷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의 근로자가 사망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봐주기 식 질문이 아니다. 기업이 가장 피하고 싶지만 이해관계자가 그런 질문으로 논의를 제기했을 때 그에 정면으로 대응해 답을 하고 바람직한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선도 기업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 채널을 통해 제기된 이슈에 대해서 보고서를 통해서만 논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대응을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에 수렴하는 명확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GE는 이해관계자 참여 채널이 최고경영진에 공식적으로 수렴되는 지배구조의 우수 사례다. GE의 지속가능성 사업의 의사결정 흐름도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의 채널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사회 또는 리스크 관리 위원회 등으로 구성되는 기업의 최고의사결정 일정에 이해관계자 패널 토의, 지속가능경영 평가기관과의 논의, 기업시민위원회와 공공책임위원회 등의 지속가능경영 실행위원회와의 논의가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이해관계자가 기업에 뭔가 의사를 전달하려 할 때 그 기업의 회장이 다니는 길목에서 피켓을 드는 방식이 유일한 참여 방법이라면, 그 기업은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사회공헌에 아무리 큰돈을 지출하더라도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달고 쓴 모든 지속가능성 이슈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적절하게 대응해 행동하는 기업이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얻고 미래의 가치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환경경영의 핵심은 사회와의 소통
양인목│디 에코 대표·투투모로우 비상임 이사│
● 미래가치평가(TVR)에서 환경 부문에 접근하는 방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다. 업종별로 공정과 제품의 특성에 따라 이슈가 달라지고 있지만 전 과정을 고려하는 배경은 동일하다. 제조업은 원자재와 공급망, 제품 개발 및 생산 공정에서 빚어지는 환경 부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금융·유통과 같은 서비스업은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경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건설·석유 산업과 같이 자연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미치는 산업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존을, 공정에서 화학물질 사용이 많은 화학 산업은 환경 사고를 평가의 중요한 항목으로 선정했다. 주요 항목은 에너지와 기후변화, 천연 자원, 오염 물질, 자연환경으로 구성된다.
TVR 평가 결과 환경 부문에서 가장 개선 노력이 우수한 분야는 제품에 대한 규제가 명확하고 제품 사용 단계에서 환경 부하가 큰 전기전자 산업이었다. 자동차와 소비재 산업이 그 뒤를 이었으며 금융·건설 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금융 산업은 환경을 고려한 금융 상품이 아직 시작 단계였으며, 건설 산업은 자원 효율성과 생태계 보존 항목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곳이 없었다.
환경과 관련한 연구 개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아쉬운 면들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제품 개발이 규제 대응과 에너지 문제에 편중돼 있다. 아직 규제가 적용되고 있지 않지만 영향의 심각성을 볼 때 수자원과 광물자원 등과 같은 자연 자원의 사용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개선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혁신, 사회와 기업을 살리는 혁신, 환경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와 기업을 살리는 혁신은 기업가 정신과 소통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환경문제는 지금 이 순간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결핍이며 그 심각성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의 소통은 무엇이 문제이고 왜 필요한지, 나아가 개선의 가능성까지 알려줄 것이다.
GM의 새 환경 선언문 에코로직.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GM은 2012년 출시하는 소닉 모델에 ‘에코로직’이라는 선언문을 통해 소비자와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선언문은 환경 성능의 개선 내용이 소비자에게는 어떠한 이익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이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제3자로부터 확인받아 신뢰를 높이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환경에 대한 진정한 혁신을 위해 사회와 소통하는 것은 기업의 명성과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길이며, 1987년 세계 환경개발위원회가 정의했던 지속가능발전의 의미인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유해물질 관리와 근로자 보건 문제가 관건
전민구│ 투투모로우 이사│
보다폰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모바일 뱅킹 서비스로 지역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SMART 2020 보고서’는 2002년 기준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ICT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25% 수준(0.5GtCO2e: 이산화탄소 10억t에 해당하는 양)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스마트 그리드(기존 전력망에 정보기술 결합) 등과 같은 신기술을 통해 다른 산업의 효율을 향상시켜 2020년에는 전 세계에서 기존 배출전망치(51.9GtCO2e)보다 15%(7.8GtCO2e)를 저감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ICT 산업은 연관효과 창출뿐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이익도 만들어낸다. 보다폰의 경우 M-PESA, M-건강(Health) 서비스를 비롯해 아프리카 지역에 보급한 저렴한 휴대전화와 커뮤니티 폰 등으로 지속가능경영의 혁신과 성공사례로 계속 회자되고 있다. 특히 M-PESA 서비스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돈을 송금할 수 있는 일종의 모바일뱅킹 서비스인데 14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가 거래하고 있다. 케냐 국내총생산(GDP)의 11%에 달하는 돈이 이 서비스로 움직이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10년간 케냐 경제가 연평균 3.7% 성장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한 이 서비스로 인해 전 세계 모바일 머니 사용자 중 절반이 케냐인이 됐다. 이처럼 기업과 사회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주는 공유가치 창출로 인해 보다폰은 TVR 평가의 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반면 ICT 산업에서 반도체 부문은 용수 사용과 처리에 대한 문제, 유해물질 관리와 근로자 보건안전의 이슈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미지근한 대응으로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이 줄곧 문제를 제기해왔고, 이 문제는 삼성전자의 다양한 지속가능경영 활동의 성과를 상쇄할 정도로 영향이 큰 이슈가 됐다.
폐가전제품에 대한 처리 문제도 주요 이슈다. 중국에서는 한 해 800만 대에 달하는 휴대전화가 유통된다. 폐휴대전화의 양도 엄청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서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는 폐가전제품(e-waste) 문제는 ICT 산업, 정부,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 다자간 협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보다폰과 휴렛팩커드(HP) 등은 폐가전제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좋은 평판을 얻었다. LG전자도 폐가전제품 처리 등 CSR 리스크 인지체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비규제 지역에서도 폐전자제품 관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공시를 통해 미래 가치를 밝게 했다.
ICT에 대한 이번 TVR 에서 전기전자산업 부문에서는 7개 글로벌 기업과 4개 국내 기업이, 통신산업에선 4개 글로벌 기업과 2개 국내 기업이 리스트에 올랐다. 이들 기업 역시 국내외의 다양한 지표, 시상과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들이었으나 결과는 차이가 있었다.
인텔, HP, 파나소닉이 최고 등급인 Aaa를 획득했고 한국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LG전자는 시스코, 노키아와 함께 Aa 등급으로 평가됐다. 그밖에 우수한 성과로 평가되는 국내 기업은 한국 평가에서 2위를 기록한 하이닉스(Baa)와 삼성전기(B)로 파악되어 전기전자 산업부문에서 국내 기업의 좋은 평가가 글로벌 기업과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부문별 평가에서 한국 기업은 전략과 혁신 부문에서 글로벌 기업과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것으로 파악돼 다양한 지속가능성 이슈 해결을 위한 적극적 전략과 리더십, 이해관계자 참여 기반의 혁신 프로세스를 갖출 필요가 있음이 확인됐다.
정보통신 부문에서는 SK텔레콤이 ICT 산업 부문에서 가장 낮은 Ca평가를 받았고, KT도 글로벌 ICT 산업 평균인 Baa 등급에도 못 미치는 Caa 등급으로 평가돼 글로벌 통신산업과 국내 통신산업의 격차가 전기전자산업의 8점보다 훨씬 큰 15점으로 벌어졌다. 이는 통신산업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의 거버넌스 부문에서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평균 23점의 격차가 벌어진 데 기인한다. 통신산업의 부문 평가에선 전략 부문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여전히 전략, 참여, 혁신과 경영시스템의 모든 부문에서도 글로벌 기업과 평균 14점의 큰 격차를 보였다.
소비자에게 가치를 팔아라
양은영│ 투투모로우 비상임 연구원 │
유니레버코리아의 사회공헌 활동인 ‘옐로 트리 나눔 캠페인’
글로벌 기업인 유니레버가 대표적이다. 유니레버는 2010년 11월 건강과 보건, 위생 및 웰빙, 온실가스, 물, 폐기물, 지속가능한 농업 등과 관련된 ‘유니레버 지속가능 생활계획(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USLP)’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구명용 비누(Lifebuoy soap)’는 저개발국 10억 명의 위생습관을 바꿔 전 세계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설사 발생을 줄이려는 프로젝트다. 이것은 저개발국의 위생을 개선하는 활동이면서, 잠재적 비누 시장을 개발하고 브랜드 로열티를 강화하는 장기적 비즈니스 활동이기도 하다.
프락터앤갬블(P·G)은 ‘연결하고 개발하라(Connect and Develop·C·D)’ 프로그램에서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통한 혁신을 이룸으로써 지속가능한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린 혁신 체제(Open Innovation)라 할 수 있는 C·D는 직원, 소비자, 공급자, 학교,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제품 혹은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를 검토해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P·G는 자사가 보유한 수많은 연구개발 인력보다 더 큰 인력풀(pool)을 가진 셈이다. 국내에선 LG생활건강이 비슷한 형태의 ‘열린 혁신 체제’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긍정적 성과를 일구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핵심 사업 전략과 지속가능성의 연계는 시작 단계로 볼 수 있다. 지속가능경영을 잘한다고 알려진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의 경우도 지속가능제품들의 매출액이나 판매량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 이들 기업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응해 선도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려는 목표나 전략은 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또 각 기업이 모두 이해관계자를 구분하고 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있으나 여러 채널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최고경영진에까지 전달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는 못하다. 즉 상부로 올라가는 체계화된 관리 및 거버넌스의 미비로 많은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 내용이 핵심 사업에 효율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웅진코웨이의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는 의미가 있다. 경영진도 함께한 가운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토론하고 논의한 내용들이 지속가능경영 전략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기업에 단순히 제품의 품질 수준을 묻는 시대는 지나갔다. 소비자는 자신이 직접 먹고, 입고, 바르고, 마시는 물품에도 자신의 가치관을 손쉽게 투영할 수 있다. 비슷한 가격이면 자신에게 기능과 함께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시대가 왔다. 글로벌 기업들은 일정 수준의 품질을 담보한 상태에서 기업은 제품 생산과정에서 법규 수준 이상의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안전성과 친환경성을 강화하고, 공급자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과 사회공헌 활동으로 당면한 사회적 이슈에 대처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분발해야 할 시점이다
양극화 해소 위해 공정거래 관행 필요
양은영│ 투투모로우 비상임 연구원 │
LG의 동반성장 협약식.
공급업체와의 파트너십이 강조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동반성장’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공급업체와의 관계가 ‘관리와 통제(command and control)’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동반성장은 이를 넘어 ‘상생(win-win)’의 관계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강조하고 있지만 선진 경제권에서도 국내 기업 관계의 변화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 이면을 살펴보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단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대기업들이 공급업체와의 불공정한 계약을 하고, 가격도 낮춰 잡아서 공급업체인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켜온 결과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따라서 동반성장을 위해선 ‘공정거래 관행 수립’이 전제돼야 하며, 표면적인 동반성장 프로그램만으로는 기업과 공급업체와의 관계가 왜곡될 수 있는 위험(blue washing)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도요타는 원가절감과 생산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업체에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 기간을 단축하게 했으며, 심지어 아예 다른 공급업체들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품질관리가 흔들리면서 도요타는 2009년 대규모 리콜사태를 경험한다. 이후 도요타는 회생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공급업체에 안전, 제품, 인권, 노동 등에 대한 내용과 그 실천을 강조하는 CSR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한 것이다. 이는 공급업체가 도요타에 미치는 영향의 수준을 명확히 인식한 것으로, 제품의 질은 물론 공급자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제고해 도요타의 지속가능성을 증진코자 한 것이다.
기업 활동에서 공급자, 기업, 물류·유통, 소비자에 이르는 가치체계는 각 부문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체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한 부문이 흔들리면서 전체 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주요 이해관계자로 정의하고 전체적인 가치체계의 지속가능성 흐름을 파악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여러 활동이 훨씬 더 긴밀해져서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