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일상적 치료에 연구비 수십억 원, 재료비는 국민 돈?

스텐트 시술 임상시험 대가성, 리베이트 의혹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입력2012-03-21 14: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국의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 의료기관에서 막힌 심혈관을 뚫어주는 스텐트 시술 임상시험이 한창이다. 여기에 4개 의료기기 회사에서 총 22억 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제공한다. 재료비 135억 원은 건강보험급여로 지급된다.
    • 그런데 일단의 의사, 교수 그룹이 이들 임상시험에 대가성이 크고, 연구비는 리베이트의 성격이 강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특정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은 특정 회사의 매출만 올려준다는 주장.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일상적 치료에 연구비 수십억 원, 재료비는 국민 돈?
    올 1월 초순의 어느 날.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왔는데 책상에 서류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 첫 장 첫 줄 제목은 ‘관상동맥 스텐트 관련, 리베이트로 의심되는 건별 대가성 임상시험’. 둘째 줄은 ‘ 2010년 11월 추진된 스텐트 임상시험 예’였다.

    리베이트, 2010년 11월, 임상시험….

    2010년 11월은 정부가 제약사나 의료기기 회사가 의사와 약사, 한의사 등 의료인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할 경우 제공자만 처벌하던 기존 법 조항을 수정해, 금품과 향응을 받은 의료인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한 법(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이 시행된 시기다(11월 28일). 이른바 ‘리베이트 쌍벌제’라고 불리는 이 법은 그해 5월 27일 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시행일은 6개월 뒤인 11월로 정해졌다. 법 개정이 확정된 후 제약사와 의료기기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는 “앞으로 영업 다했다”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보 문건의 첫 사례를 읽는 순간, 그 서류 뭉치가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으로 각종 접대, 현금 등 직접적 리베이트 제공이 어려워진 의료기기 회사가 임상시험이라는 합법적 통로를 이용해 편법 리베이트를 주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문제는 그 서류에 제보자의 이름이나 연락처가 전혀 없었다는 점.

    연구비 22억 원, 매출 135억 원



    한 달여의 추적 끝에 제보자 그룹과 선이 겨우 닿을 수 있었다. 단서는 제보 문건에 쓰여 있는 자문 의사들 이름이었다. 이들에 대한 취재 결과 문건을 제공한 사람은 4개 의료기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이하 IRB)에 속한 교수들로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 그룹이었다. 각 의료기관의 IRB는 병원 소속 의사들이 신청한 임상시험 계획의 적정성을 심사한 후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곳으로, 병원 소속 의료인과 외부인사가 절반씩 섞여 있고 그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임상시험이 승인된다. 이들은 “IRB 임상시험 심사과정에서 제보문건에 나온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지했지만 번번이 승인이 나는 현실이 안타까워 제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보 내용을 검토한 결과, 각 임상시험은 의료기기법과 의료기기산업협회 공정경쟁규약(이하 규약)이 정한 대로 자체 의료기관 IRB의 승인절차를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합리적 의심’을 가질 만한 논란거리가 적지 않았다. 제보에 참여한 한 지방 대학병원의 교수는 “법과 규정이 정한 대로 형식적으로 서류를 얼마나 잘 갖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임상시험이 연구비를 내는 특정 제약사나 의료기기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임상시험의 대상이 되는 환자의 권리가 얼마나 잘 보호되는가, 연구비의 규모나 쓰임새는 적정한가를 따져야 하는데 그냥 일사천리로 승인이 나는 모습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며 “나도 의사지만 임상시험에 있어 의사가 가진 독점적 권리는 모든 상식을 초월한다”고 지적했다.

    제보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심혈관용 스텐트를 제조 판매하는 의료기기 회사 4곳이 수십여 곳의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대학병원 포함)에 임상시험에 대한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총 22억 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혹이 있고, 의료기기 회사는 이 임상시험으로 135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제보 문건의 첫 사례를 그대로 소개한다.

    2010년 11월 추진된 스텐트 임상시험의 예

    총 20개 의료기관 총 700명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특정 회사(A사)의 특정 스텐트를 사용하는 임상연구로서 한 건당 연구자에게 30만 원이 지급되도록 배당했다. 이 연구의 문제는, 다른 스텐트를 사용해도 연구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스텐트로 제한했다는 것이며, 일상적인 치료 이외의 추가적인 노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급성심근경색환자에서는 건당 30만 원이 의료인에게 지급되는 구조이고, 해당 스텐트 회사는 건당 보험수가로 200여 만 원에 해당되는 매출을 올리게 돼 이 경우는 리베이트를 위한 연구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가 수행되면, 의료진은 총 2억1000만 원의 금전적인 이익이 있고, 특정 스텐트 회사는 15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환자보상비 및 임상검사료는 없고, 건의 전액이 연구자의 인건비로 지급이 된다.

    문건에는 같은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한 B사와 C사, D사(3개 회사 공동)의 사례가 적시돼 있었고 서류 뭉치에는 각 의료기기 회사의 임상시험 의뢰를 받은 각 병원 의사들이 자체 IRB에 올린 임상시험 심사신청서와 연구계획서 요약자료, 연구비 내역 등 각종 부대서류가 첨부돼 있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의료기관, 대상 환자의 수와 임상시험에 제공된 스텐트의 숫자, 그 대가로 지급된 연구비만 서로 달랐지 그 내용은 모두 비슷했다.

    A사는 총 20개 의료기관, 총 700명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건당 30만 원씩(총 2억1000만 원, 임상시험 기간 3년), B사는 총 24개 의료기관, 총 1000명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건당 50만 원씩(총 5억 원, 2011년 3월부터 2년), C사는 총 28개 의료기관, 2000명의 협심증 환자를 대상으로 건당 30만 원씩(총 6억 원, 2011년 1월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D사는 총 25개 의료기관, 3000명의 협심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건당 30만 원씩 연구비를 각각 지원토록 했다(총 9억 원, 2012년 1월부터 2년).

    임상시험=의료기기社 매출 증대?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은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심장을 관상처럼 둘러싼 동맥)이 혈전(피떡)으로 막히면서 발생하는데, 혈관을 제때 제대로 뚫어주지 않으면 환자는 심장마비 증세가 일면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일단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이 일어나면 가슴이 쥐어짜이듯 아프며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심장마비가 와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이때 넓적다리의 대퇴동맥을 타고 관상동맥으로 들어가 막힌 부분을 뚫어주는 금속망이 바로 스텐트다. 이 시술을 스텐트 시술 또는 심혈관성형술(관상동맥 중재술)이라 한다.

    관상동맥에 들어간 풍선이 부풀면서 막힌 부분을 뚫으면 스텐트는 혈관이 제 모양을 유지하도록 반영구적으로 지지한다. 요즘은 혈관에 쌓이는 지질을 녹여 딱딱하게 굳는 것을 막고 혈관이 다시 엉겨 붙는 재협착 현상을 막기 위해 스텐트에서 혈전을 녹이는 약물이 나오도록 고안된 약물방출형 스텐트가 주로 쓰인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이 심한 상태가 아니면 주로 혈전을 녹이는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응급상황에선 스텐트 시술 외에 대안이 없는 형편이다. 스텐트 시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관상동맥우회술로 치료한다.

    2012년 2월 현재 관상동맥 스텐트는 A, B, C, D사를 포함한 10개 회사가 7종 17품목을 공급하고 있다. 일반 스텐트와 약물방출형 스텐트로 대별된다. 일반 스텐트는 시장 수요의 2%에도 미치지 못하며 사양화하는 추세. 약물방출형 스텐트의 경우도 전체 수요의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어 업체들 간의 수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은 100% 보험급여 적용대상이라 의사가 시술할 때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기 회사로 치료비용이 지급된다. 의사의 선택은 곧 의료기기 회사의 매출로 연결되며 그 돈은 국민이 부담하는 셈이다. 보험급여로 지불되는 가격은 각 회사 스텐트 제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200만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 제보의 내용은 의료기기 회사들이 전국 각 의료기관의 스텐트 시술 전문의들에게 스텐트 시술을 할 때마다 건당 30만 원에서 50만 원의 연구비를 지급하고 임상시험을 시켰다는 것. 제보자들은 의사들이 받는 임상시험의 연구비가 대가성이 있어 리베이트일 개연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스텐트 시장 포화상태, 경쟁 치열

    일상적 치료에 연구비 수십억 원, 재료비는 국민 돈?
    제보자 그룹이 제시한 리베이트 의혹의 가장 큰 근거는 우선 이들 임상시험이 특정 회사, 특정 스텐트로 대상을 제한했다는 점. 제보에 나온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의 경우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 의료기관의 연구자가 먼저 의료기기 회사에 임상시험을 제안하고 제약사가 임상시험의 목적, 프로토콜, 연구비 규모와 그 적정성 등을 검토한 후 동의를 하면, 각 임상 의료기관의 연구자들이 각각 자체 의료기관 IRB의 승인을 받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만 속 내용은 전혀 다르다는 게 제보자 그룹과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의 반응이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료기기 회사가 먼저 임상시험 제의를 한다는 것. 현직 관상동맥 스텐트 영업사원 김모 씨의 설명이다.

    “서류만 보면 법과 규약에 저촉되는 부분이 전혀 없죠. 그건 형식적인 것이고요. 스텐트 시장에선 임상시험을 해야만 제품이 팔린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예전부터 2개 회사에서 새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계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과열된 2010년 이후에는 (임상시험을) 안 하면 바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습니다. 모든 회사가 한다고 봐야죠. 어떤 교수님의 경우 2개 회사의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교 임상을 해도 되는데 따로 하는 이유가 뭘까요? 뻔하지 않습니까. 연구비를 챙길 수 있으니까요. 이왕이면 임상시험 대상이 된 스텐트를 쓰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의료기기 회사는 그게 바로 매출로 연결되는 거고요. 의사가 뭐가 답답해서 임상시험 요청을 회사에 합니까. 환자 보기도 바쁜데요.”

    의료기기법과 규약은 의료기기의 시판허가 임상시험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승인 대상이 아닌, 각 의료기관의 IRB 승인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규약은 ‘임상시험이 단순히 의료기기를 홍보하거나 의사의 의료기기 채택, 선정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스텐트 임상시험을 진두지휘한 모 대학병원 책임연구자급 김 모 교수는 “법과 규정상 특정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금지하는 조항이 따로 없고, 임상시험의 결과물로 논문이나 보고서가 나오기 때문에 절대 단순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임상시험을 한다고 해서 꼭 해당 스텐트만 쓰는 게 아니다. 임상시험이 의사의 스텐트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거짓이다”고 잘라 말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교수 대부분도 영업사원 김 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제보자 그룹의 주장은 다르다.

    “의사가 진정으로 스텐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면 의료기기 회사와 관련 없는 기관 단체의 지원을 받아 여러 제품에 대한 비교 임상을 해야지 왜 특정제품에 대해서만 임상시험을 합니까. 그것도 특정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면서 바로 그 회사가 연구비를 대는데 제대로 된 임상 결과가 나오겠어요. 특정 회사의 연구비로 진행되는 특정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은 특정 회사의 매출과 이익에만 기여할 따름이죠.”

    “의심은 가지만 확증이 없다”

    스텐트 임상시험에 연구비를 지원한 각 의료기기 회사는 공식적으로 임상시험과 매출 증대의 상관관계를 부인한다. 자사 스텐트 제품의 밝혀지지 않은 효능과 안전성, 부작용 등을 추적관찰 임상시험을 통해 알아낸 후 미비점을 보완하고 의료발전에 공헌하기 위해서라는 게 임상시험 연구비 지원의 목적이다. A사 관계자는 “2010년 11월 스텐트 임상시험을 시작한 것은 단지 우연일 뿐 리베이트 쌍벌제 실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임상시험이 매출과 관련성이 있다는 부분을 부인하지 않는다. 의료기기 회사의 간부가 익명을 전제로 한 말이다.

    “스텐트 시장은 지금 포화상태인 게 맞습니다. 전체적인 시장수요는 답보 상태인데 제품의 종류는 늘어났습니다. 결국 다른 회사 부분을 빼앗아 와야 하는데 임상시험을 하면 자회사 제품의 장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열리죠. 교수나 전문의들이 우리 회사 스텐트를 하나라도 더 선택해주지 않겠습니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관상동맥 스텐트 보험급여 청구현황에 따르면 약물방출형 스텐트는 2008년 5만4539개(건), 2009년 5만8227개, 2010년 6만6547개, 2011년 6만6871개가 시술됐으며, 일반 스텐트는 2008년 3150개, 2009년 2847개, 2010년 2396개, 2011년 1608개가 시술됐다. 2011년 약물방출형 스텐트의 청구금액은 1370억 원, 일반 스텐트 청구금액은 25억8000만 원 규모로, 자료를 보면 약물방출형 스텐트가 시장의 98% 이상을 차지하고 일반 스텐트는 갈수록 사용량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제보 문건에 드러난 임상시험 건수만 해도 한 해 보험청구 건수의 10%가량이 되는 셈이다.

    심평원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시판 후 추적관찰 임상시험이라고 하지만 스텐트가 고가의 의료기기라는 점에서 피험자가 6000명이 넘어간다는 것은 너무 많다. 이건 뭔가 비정상적이다”고 밝혔다. 식약청의 한 관계자도 “정황상 리베이트라는 의심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물증이 없다. 더욱이 우리 청(식약청)의 승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약품이나 다른 의료기기의 경우 시판 후 추적관찰 임상시험이 1년 판매량의 10%에 달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제보에 등장한 의료기기 회사 중에는 올해 말 판매가 중지될 제품에 대해 임상시험을 한 곳도 있다. 이 회사의 임상시험 기간은 2013년 3월까지. 그것도 지금은 사장(死藏) 단계에 놓인 일반 스텐트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임상시험을 진행했지만 실적이 83건에 머무르고 있다. 당초 목표는 총 24개 의료기관이 참여해 총 1000명에 대해 임상시험을 하기로 했지만 10개 의료기관만이 참가했고 그 실적도 미미한 상태다. B사 관계자는 “사장되는 제품이라 매출을 올리기 위해선 임상시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임상시험을 하지 않으면 (의사들이) 우리 제품을 써주지 않는다. 물량이 적지만 의미 있는 임상결과가 나오면 다음 제품의 개발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 의료기기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자사 스텐트에 대한 시판 후 임상시험에 나서는 상황에서 임상시험에 쓰이는 스텐트의 재료비를 국민이 낸 준조세 성격의 국민건강보험료로 지급하는 게 타당한지 여부도 논란이다. 특정 회사, 특정 제품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추적관찰 임상시험에 왜 보험급여를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의료기기법과 규정은 식약청 승인 대상인 시판 전 임상시험(판매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에 대해선 재료비를 제약사나 의료기기 회사가 부담토록 하고 있지만 시판 후 임상시험에 대해선 명문 규정이 없다.

    일상 치료행위 VS 고가의 노동행위

    일상적 치료에 연구비 수십억 원, 재료비는 국민 돈?

    심근경색 증세가 심각한 응급상황에선 스텐트 시술 외에 다른 치료법이 없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회사 측은 “시판 후 임상시험은 임상시험 대상자를 따로 모집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시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 시술을 받는 과정이나 시술 후 환자의 상태를 추적 관찰한 후 결과물을 내는 게 목적이므로 재료비가 보험급여에서 지급되는 게 당연하다. 세계적으로 의료기기의 시판 후 임상시험은 국가 건강보험의 급여나 각 민간보험 회사에서 지불하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재료비 외에 임상시험 과정에서 의료기기 회사가 각 의료기관에 지급한 연구비는 얼마나 적정한 것일까. 제보자 그룹이 ‘임상실험 연구비가 리베이트를 위한 연구의 성격을 띤다’고 밝힌 이유는 ‘일상적인 치료 이외에 의사가 임상실험을 위해 추가적으로 해야 할 노력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회사는 각 임상시험에 건당 30만 원에서 50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임상시험을 예정대로 마치면 총 연구비는 각 회사마다 수억 원에 달하게 된다. 각급 임상시험 의료기관이 자체 IRB에 올린 연구비 내역서를 보면 임상 참여 의사와 간호사 인건비가 75~80%를 차지하고 간접비가 10%, 나머지는 의료기기 관리비, 연구소 관리비로 구성된다. 임상시험에 참가하지 않은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심장내과 한 교수의 말이다.

    “저도 스텐트 시술을 많이 하지만 임상 연구를 위해 별도로 드는 비용이 얼마 정도인지에 대해선 참 답하기가 곤란합니다. 보통 스텐트 시술을 하고 나면 혈관에 이식된 스텐트의 부작용은 없는지,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호전됐는지, 심장 근육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다각도로 관찰하죠. 일상적인 치료과정입니다. 임상 연구를 위한 추가적 노력이 있다면 시술 환자의 변화 상태에 대한 각종 자료와 데이터를 취합해 모델을 만들고 분석 툴에 넣어 돌린 후 그 결과를 논문이나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인데 거기에 투입되는 노동의 질과 시간은 의료인 개인마다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 건당으로 30만 원, 50만 원, 이렇게 딱 떨어지고 짜고 맞춘 듯 획일화된 건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연구비) 전체 금액이 몇 억 원씩 되는 건 분명히 과합니다.”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 박모 씨는 “의료기기 관리비나 연구소 관리비가 뭔지 모르겠다. 사실 수술방에 비치된 스텐트는 각 회사의 영업사원이 모두 관리한다. 의사가 하나를 쓰면 연락이 와 채워 넣는 식이다. 임상시험을 하기 위해 연구소를 따로 만드는 게 아닌데 왜 관리비가 드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기기 회사 측과 임상시험 참가 의사들은 할 말이 많다.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일상 치료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데이터 모집을 위해 연구 간호사를 새로 채용하는 곳도 많다. 우리(의사와 의료기기사)는 국가별로 설정한 연구비 기준, 즉 공정 시장가치에 따라 연구비를 산정한다. 임상시험 허가기관의 승인 확보에도 비용이 발생하고 국내외 학회에 발표하거나 각종 저널에 출판하는 것 또한 연구비에 포함된다. 건당 연구비를 책정하는 것도 글로벌 임상시험에서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식이다.”

    특히 C사 관계자는 “스텐트와 관련한 임상시험에서 국제적으로, 과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논문이 나온 적도 많다. 우리 회사 임상시험과 관련해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저널에서 심사 중인 논문도 있다”며 그 증거 자료 목록을 보내기도 했다. “연구비를 많이 지급하는 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심평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일상적 치료 외에 추가적으로 이뤄진 행위가 미미한데도 이처럼 많은 연구비가 지급된다면 리베이트의 성격이 강한 게 맞다. 결국 이는 스텐트 보험급여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방증이 된다. 만약 연구비가 리베이트가 맞다면 각 의료기기 회사가 지급한 연구비만큼 보험급여를 삭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들 “임상시험? 몰랐어요!”

    “저는 임상시험의 대상이 된 줄도 몰랐어요. 그때 워낙 경황이 없어서요.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 상황에서 의사가 뭔가 서류를 내밀고 짧게 설명하는데 저는 그냥 그 위에 끼적거린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임상시험 동의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분이 별로네요. 꼭 제가 실험쥐가 된 기분입니다. 임상시험에 참가해서 제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가요? 지금도 그 상황이 오면 동의를 해줄 수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부산 사상구 김모(63) 씨)

    “저는 그때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서류에 서명한 모양인데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의사가 수술 각서 비슷한 걸 작성하면서 사인을 하라고 해서 그냥 해준 모양이에요. 왜 보험이나 카드 발급할 때 직원이 동그라미 친 곳에만 서명하는 식으로요. 사람이 죽어가는데 임상시험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임상시험하면 돈도 주고 하는 것 같던데 우린 뭐 받은 게 없어요.”(서울 성북구 이모(58) 씨)

    김 씨와 이 씨는 지난해 임상시험 의료기관에서 협심증과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 증상으로 각각 응급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이들이다. 두 사람 모두 각 의료기기 회사의 임상시험 대상에 포함돼 임상시험 동의서에는 서명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정작 기자가 임상시험에 포함됐다는 내용을 알려주자 “전혀 아는 바 없다. 그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의료기기법은 모든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험자에 대한 적절한 동의 절차와 정보 전달을 임상연구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피험자가 임상시험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고 동의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친권자 또는 후견인 등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임상시험 의료기관이 자체 IRB에 올린 임상시험 승인신청서상에는 케이스별로 환자의 동의를 받을 것을 명시했다. 의료기기법은 각 IRB의 승인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추후 동의도 가능하도록 했지만 제보 문건에 붙은 임상시험 승인신청서 상에는 추후 동의인지 사전 동의인지 구분이 없었다.

    스텐트 임상시험의 승인에 IRB의 일원으로 2회나 참가했던 제보자 그룹의 한 교수는 “IRB에서 스텐트 임상시험을 두고 논란이 됐던 사안 중 하나가 피험자에 대한 동의 부분이었다. 피험자 대부분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응급상황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는데 임상시험에 대한 동의와 정보전달이 제대로 될 수 있느냐는 부분과 설사 가족의 동의를 받더라도 응급상황과 병원의 우월적 지위를 감안하면 특정 회사 특정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피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회사들은 “연구비 지원 계약서에는 연구자(임상시험 참가 의료진)가 IRB 의견과 관련법규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임상시험 동의 부분은 연구자가 알아서 할 부분이다. 시판 후 임상시험은 의료기기의 기본적인 안전성과 효과가 증명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이) 걱정하거나 화낼 일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김 씨와 이 씨의 시술을 담당했던 임상시험 참가 교수들은 한결같이 “동의서를 봐라. 서명이 되어 있고 우리에겐 분명히 설명을 잘 들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시술도 잘됐고 경과도 매우 좋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상시험에 왜 보상이 없나

    환자보상비와 임상검사료도 논쟁거리다. 의료기기법은 피험자에 대한 보상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각 임상시험 연구자들이 자체 IRB에 올린 임상시험승인신청서상의 연구비 내역에는 환자보상비와 임상검사료가 포함되지 않았다. 제보 문건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A사 측은 “의료기기법에 정의한 보상의무는 임상시험 중 시험대상자에게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시판 후 임상시험은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 임상검사료도 일상적인 치료 외에 투입되는 게 없기 때문에 계상할 부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보자그룹 측은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인데 추적관찰 임상시험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임상시험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이는 의료기기 회사들이다. 따라서 스텐트 시술이 끝난 후 환자가 받는 모든 검사 비용은 환자와 보험급여에서 낼 게 아니라 연구비에 포함돼야 마땅하다. 시술 이후 나온 검사결과 자료가 결국 임상시험의 자료가 되고 분석 대상이 되는데 그 비용을 환자나 국가가 무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스텐트 임상시험으로 인한 의사의 과잉진료는 전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심평원 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스텐트 시술은 대부분 응급상황에서 시행되고, 할 수 있는 경우가 정해져 있다. 응급상황이 발생할 것을 미리 대비해 시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보험급여를 지급한 후 심사조정 과정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선 확실하게 조사를 하기 때문에 ‘100%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임상시험이 많이 이뤄진 지난해에도 시술이 전년에 대비해 그리 늘지 않은 것을 봐도 (과잉진료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스텐트 판매 영업사원들은 각 의료기기 회사의 임상시험 경쟁에 제동을 걸어줄 만한 견제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텐트 임상시험 연구비는 결국 회사 회계상에는 영업비용으로 잡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몫이 그만큼 줄어들고 결국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한 영업사원의 말이 우리 의료계가 처한 슬픈 현실을 그대로 말해준다.

    일상적 치료에 연구비 수십억 원, 재료비는 국민 돈?
    “세법에도 접대비를 기업이 영업활동을 위해 쓰는 비용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잖아요. 회사에서 지급되는 법인카드나 현금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 학회 같이 가야죠. 한 달에 한두 번은 골프 치고 술 먹어야 하죠. 이런저런 기념일이 되면 선물해야죠. 그런데 임상시험 경쟁이 붙으면서 접대비가 확 줄었어요. 리베이트 쌍벌제 실시 이후로 회사에선 합법적인 선에서만 영업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내 주머니를 털어야지요. 정말 죽을 맛입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