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중일 수교를 위해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베이징(北京)을 방문했을 때,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이 구절을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지 않으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침략국 일본에는 촌철살인이 따로 없었다.
냉전 시기 중국 외교의 기반을 다진 저우언라이가 살아 있다면 그는 이란 제재에 팔을 걷어붙인 미국에도 같은 말을 했을 것 같다.
2011년 11월 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이란 핵 활동 보고서’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대(對)이란 경제제재로 이끌고 있다. IAEA의 보고서에는 “신뢰할 만한 정보에 근거해 이란이 핵무기 기폭장치 개발과 2008~2009년 사이 컴퓨터를 활용한 모의 핵실험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최소 12개 지역에서 무기 제조 프로그램이 가동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15쪽 분량의 보고서는 10개 이상 국가의 정보기관과 이란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이후 이란의 핵개발 추진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2010년 ‘포괄적 이란 제재법’에 이어 곧바로 지난해 12월 15일 ‘국방수권법’을 상원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과 외국 은행의 석유 및 비석유 거래를 제재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은행은 미국 금융기관과는 거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EU는 미국의 움직임에 동참해 오는 7월 1일부터 이란산 석유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영국, 오스트리아, 포르투갈은 이란산 석유 수입을 이미 중단한 상태다. 서방국가들의 제재 움직임은 곧바로 이란 내 생필품 가격 급등과 리알화 가치 급락을 불러오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석유 수출이 이란 정부 세입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올 하반기 EU의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가 실행된다면 이란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될 것이분명하다.
미국과 EU의 제재에 맞서 이란은 IAEA와 브라질, 터키, 베네수엘라 등 제3국이 참가하는 핵사찰 수용 의사와 추가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으나, 강한 반발 속에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란 핵 활동 보고서와 국방수권법
이란은 EU의 석유 수입 중단 발표 이후 선제 보복 차원에서 지난 2월 19일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국제 유가가 9개월 만에 최고로 치솟으면서 원유 수입국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실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의 4월 인도분 가격이 배럴당 110달러에 육박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도 배럴당 125달러를 넘어섰다. 이란 핵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제 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 수송 물량의 35%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공언하고, 인근 해역에서 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위협적인 태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가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카운터펀치가 될지는 의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각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이란 제재에 대체로 호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국제 유가는 200달러 선마저 붕괴될 위험이 커지고, 이 경우 이란보다는 오히려 원유 수입국들이 더 큰 경제적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남모를 속사정도 있다. 지난 3월 5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여전히 압박을 통한 외교적 방법으로 이란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에 섣부른 선제 폭격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유가 급등을 비롯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재정 파탄 지경에 이른 미국 경제가 ‘백지수표’와 같은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현재로선 역부족이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 전쟁에 약 3479조 원의 전비를 쓰고, 4487명의 전사자와 3만2266명의 부상자를 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한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600조 원의 전비를 쓰고, 1500명의 전사자와 3500명의 부상자라는 손실을 치렀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국제분쟁에 미국이 무력 개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최후의 카드다.
33년간 이란 제재, 건재한 반미 정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이 지금까지 대이란 경제제재를 단행했지만 이란의 반미(反美) 정권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2002년에 최초로 이란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쉘(Shell)과 토털(Total) 등 메이저 석유 기업들의 이란 진출은 급격히 줄었다. 2005년 강경보수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집권 이후 서방국가들과의 마찰은 곧바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재로 이어졌고, 유엔안보리 결의 1737, 1803 같은 강력한 제재가 실시되자 지멘스와 HSBC, 도이체방크, 크레딧스위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이란에서 빠져온 상태다. 경제제재로 인한 이란의 고통은 서방의 예상보다는 크지 않다는 얘기다.
앞서 1979년 이란혁명 이후 미국 의회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 12170(Executive Order 12170)’, 레이건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 12613’, 그리고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였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 12957’ ‘12959’ 등 33년간 각종 경제제재를 수없이 감행했지만 이란의 반미 정권은 건재하다.
서방과 유엔의 수많은 제재에도 이란이 건재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중국의 비협조다.
최근 ‘국방수권법’이 미국 상원의 만장일치로 통과했을 때도 중국은 반대 의사를 공식화했다.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지난 1월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국내법이 국제법 위에 올라서는 것에 반대한다. 제재는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방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앞서 2009년 11월 중국을 공식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대이란 경제제재 협력을 요청하면서, “중국이 이란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면 부족분을 미국-사우디 석유협력프로그램으로 대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후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란 비난 성명에 동참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는 미국과 서방의 독촉에도 중국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중국은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2002~2009년까지 7년간 이란의 두 번째로 큰 무기 수입국이었다. 이란에 판매된 중국제 무기 중에는 C-802(중국 코드명 HY-2) 실크웜 대함 미사일과 HN-5 대공미사일 같은, 중국이 미국 해군과 공군에 대항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최첨단 무기들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미국이 금지하고 있는 첨단 산업 기술 이전도 계속해왔다.
실제 중국 국영기업이 이란에 실시한 기술 이전과 수출 금지 품목을 수출한 건수는 1997~2010년 사이 확인된 것만 89건에 달한다. 2010년 10월에는 미 국무부 로버트 아인혼 비확산 및 군축담당 특별 보좌관이 중국 베이징을 찾아 “중국 기업들이 이란에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프로그램을 지원한 사실은 명백한 안보리 제재 위반”이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이란 내수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의류, 식품, 전기, 전자, 자동차, 장난감 심지어는 히잡(hijab)까지 대부분의 소비재 공급을 도맡고 있다. 광산, 운송, 전력 등의 기간산업과 인프라 부문에도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이 이란의 최대 투자국으로 자리매김한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중국은 서방의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각종 제재로 인해 투자를 철회한 주요 석유·가스전 인수에 적극 나섰고, 2006년에는 중국의 거대 석유기업 시노펙(Sionopec)과 25년간 무려 1280억 달러의 석유와 가스 공급계약을 맺을 정도로 에너지 부문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산 석유의 20%(연간 2억5300만t, 1일 약 55만5000t) 이상을 수입하고 있고, 이는 EU 27개국 전체가 수입하는 양과 맞먹는다. 경제 제재에도 이란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의 이란 석유 수입량은 EU 전체와 맞먹어
중국과 이란, 이 두 나라의 관계는 단지 석유 수급과 경제교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과 이란의 밀접한 경제 관계는 무려 2000년의 장대한 역사를 자랑한다.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두 나라 간 거리는 1126km에 불과하다.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이 위치해 있을 뿐이다.
기원전 126년 시작된 중국과 이란 간의 교류는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침략 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실크로드를 통한 양국 교류는 빈번했다. 당(唐)나라 때에는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상인, 즉 후런(胡人)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중국 북서지방에 무역센터를 구축했고, 원(元)나라 때는 페르시아 병사, 예술가,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대거 영입해 관직을 하사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색목인(色目人)’이었다. 색목인 중 우마르(al-Sayyid Shams al-Din′Umar)는 중국 닝샤후이족(寧夏回族) 자치구를 중심으로 서북지역에 집중 분포한 소수민족 회족(回族)의 선조다.
양국은 또한 정치적으로도 제국주의로부터 굴욕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은 영국에 의해 강제 개항했고, 일본에 영토 일부의 지배권을 빼앗겼다. 이란은 차르(tsar) 러시아와 영국의 패권다툼, 소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하는 파워 게임의 진원지가 되면서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중국은 1949년 공산혁명, 이란은 1979년 이슬람 민족혁명을 통해 ‘공공의 적(common threat)’, 바로 서방에 대항해왔다.
이처럼 중국과 이란은 역사적·문화적 상호 작용을 통해 상대국의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수천 년간 지속된 다양한 교류의 축적은 현재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초 토대가 되었다.
1971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양국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조로부터 이어진 양국의 역사적 교류와 우호 관계를 반복 언급한다. 이는 단순히 ‘레토릭’이나 인사치레가 아닌, 진정으로 위대한 문명의 후계자들이라는 자부심과 ‘역사적 동맹국’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내포되어 있다.
하나 더. 서방의 대이란 제재는 중국의 대이란 핵심 외교정책과도 맞지 않다. 현재 중국의 대이란 정책의 핵심은 자국 경제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과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유용성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항해의 자유’를 반복 언급하며 남중국해에 해군력을 증강 배치하고 있지만,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일본, 베트남, 호주, 필리핀 등 인근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경제의 근간인 주요 원유 수송로, 즉 페르시아 만(灣)과 호르무즈 해협까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면 중국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방국가의 이란 제재는 오히려 중국에는 중동에서 자국의 호감도를 높이고 영향력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이란으로서는 유일한 보호막으로 중국의 활용가치가 높아졌다. 결국 양국 사이에 철저하게 ‘타산적 상호의존성(calculating interdependence·이용 가치가 높은 상대국 장점을 취해 자국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에 기초한 우호 관계가 강화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서방국가들이 수십 년간 시도했던 이란 경제제재는 명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 등 석유 수입국들에 유가 인상에 따른 피해를 안겨줬다. 한류와 ‘메이드인 코리아’ 바람이 부는 이란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은 이래저래 고심이 깊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중국의 동의 없는 대이란 제재 역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경제제재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미국과 서방은 중국과 이란 관계를 핵개발 분야뿐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군사, 안보 등 다각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이 이란에 핵개발 저지를 불러올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케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핵개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묘수’를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방이 ‘전사지불망 후사지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