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 Baa(국내 2위), 기아차·LG생활건강·삼성전기 B(3위)
- 국내 기업 평균, 글로벌보다 15점(100점 만점) 뒤져
- 지속가능경영 평가가 넘쳐나지만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부족하다.
- ‘신동아’는 세계 최대 검증 실적과 신뢰성을 갖고 있는 영국의 지속가능경영 평가 회사인 투투모로우와 공동으로 국내 기업의 미래가치를 검증했다.
- 국내 기업에 대해 글로벌 평가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댄 이번 미래가치평가(TVR)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미래가치평가(Tomorrow‘s Value Rating·TVR)는 영국의 지속가능경영 평가 회사인 투투모로우(Two Tomorrows)가 “미래에 지속가능한 리더 기업이 되기 위해 지금 어떤 특성을 개발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갖고 전 세계 주요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전략, 이해관계자 참여, 혁신, 거버넌스, 경영 시스템 등을 분석하는 지표다.
객관적인 지속가능경영 지표인 TVR은 국내와 해외 기업 모두 동일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등급엔 단 두 곳뿐
국내 평가는 DJSI 월드, 한국거래소의 사회책임투자지수 등 국내외 지속가능경영 평가에서 4곳 이상 수상 또는 선정된 기업이 1차 대상이었다. 투투모로우의 전문가집단이 이 가운데 30곳을 가려 최종 평가작업에 들어갔다. 글로벌 평가작업은 모두 564개 주요 기업 가운데 지속가능경영 관련 수상과 지표에 3회 이상 오르고 포춘의 글로벌 100대 기업에 선정된 기업 92개(한국 기업 2개 포함)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한마디로 지속가능경영 분야에서 최고 중의 최고를 뽑는 평가(Best of the best rating)였다. 글로벌 평가는 지난해 말 영국 가디언지에 발표됐으며, 국내 평가는 2월 말에 끝나 이번에 ‘신동아’에 처음 공개된다.
TVR은 등급 기준으로 기업을 공시하되 기업의 개별 점수는 공개하지 않고, 등급별·영역별 평균점수만 공개하기로 했다. 평가에서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정성적(定性的) 방법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점수 차이가 있어도 같은 등급에 오른 업체는 동일 수준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글로벌 평균은 100점 만점에 68점, 국내 평균은 53점에 그쳐 15점이라는 큰 수준차이가 났다. 구체적으로 글로벌과 국내의 전략 부분은 68점 대 53점, 이해관계자 참여는 58대 46, 혁신은 65대 43, 거버넌스는 55대 32, 경영시스템은 73대 57로 드러났다.
TVR 분석 결과 투자등급(Investment Grade)인 Aaa~Baa엔 LG전자와 하이닉스 2곳, 투기등급(Speculative Grade)인 Ba~Caa엔 현대건설·동부증권·KT·포스코·아모레퍼시픽·삼성전자 등 16곳, 투기관리등급(Aspiring Grade)인 Ca~C에는 국민은행·롯데쇼핑·SK텔레콤 등 12곳이 포함됐다. 투자와 투기 등 등급 구분은 투자용어에서 빌려왔고, 실제 해당 기업의 투자와 투기 적격성과는 무관하다.
투투모로우는 Aaa~Baa 등급에 속한 기업들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가능경영의 리더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지속가능경영의 우수한 실천사례를 보여주는 이들 기업이 미래에도 강력한 기업으로 유지되고, 사회와 기업의 진정한 공유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평가했다.
이번 평가에서 등급이 낮은 Ca~C에 속한 기업들이 다른 지속가능경영 평가에서 우수 기업으로 꼽힌 곳이라는 점은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우선 그들 기업에 붙었던 ‘녹색’ ‘윤리적’‘지속가능한’ 등의 수식어가 과연 신뢰성 있는 표현이었는가. 이 등급에 속한 기업은 국내 30개 평가 대상 기업 가운데 40%인 12개사, 글로벌은 90개 기업 가운데 10%인 9곳이었다. 이들 기업이 다른 평가에서는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군에 속했다.
객관적인 공시자료를 바탕으로 기업을 평가한 투투모로우는 이 등급에 속한 기업들이 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었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들 기업이 다른 평가기관의 요구에는 적극 대응해 자료를 제출했어도 그것을 일반에게는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투모로우는 이번 평가에서 기업이 대중에게 공시한 자료만을 활용했다. 그 이유는 첫째, 기업이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해관계자에 대한 ‘설명의 의무 (accountability)’를 다하고 있는지를 평가의 기본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둘째, 많은 평가 기관이 정보 수집 과정에서 기업에 불필요하게 재정적, 자원적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였다.
셋째, 평가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동안 평가의 불공정성에 대한 지적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황상규 SR코리아 대표는 최근 평가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한 칼럼에서 “어떤 기관들은 평가와 함께 시상 프로그램도 운용하고 있다. 어떤 기관은 시상을 대가로 직접(협찬금), 간접(광고)의 비용 분담을 요구한다는 제보도 있다. 가장 많은 ‘공평성’ 위반 사례는 한 기관이 컨설팅도 하면서 인증과 검증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다. 어떤 경우에는 좋게 평가해주고 상을 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ISO 원칙과 평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2011년 말부터 최근까지 약 6개월에 걸쳐 국내외 총 120개(국내 30개) 유수 기업 평가를 수행한 투투모로우는 미래가치가 높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
최고등급 기업의 특징
미래가치평가에서 3위에 오른 기아자동차는 2007년부터 아프리카 말리에서 바이오디젤 연료인 야트로파 재배를 후원해오고 있다.
△ 이러한 기업은 자사가 당면한 중요 환경적·사회·경제적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수립해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 신뢰받는 기업은 거버넌스(지배구조) 구조,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관리 시스템, 혁신을 위한 체계적 접근, 그리고 이해관계자 참여를 통한 가치창출 시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쉽게도 이번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aa에 해당되는 한국 기업은 없었지만 글로벌 기업 평가에서 이 등급에 속한 기업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최고 등급에 속하는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핵심 사업모델에 통합해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발굴해낸다.
△ 많은 기업이 여전히 자사의 사회 환경적 문제와 부정적 사업 관행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대응하며 변화하기보다는 홍보 등 ‘녹색의 포장(green wash)’으로 문제를 덮으려 애쓰는 반면, 우수 기업들은 이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지 않는다.
△ 지속가능경영이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추진되며, 전사에 걸쳐 실천된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준다.
△ 더 나은 환경 혹은 사회적 영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내재화된 절차를 갖추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을 더 적게 소모하는 제품, 폐기 단계에서 환경영향이 적은 제품 혹은 소외 계층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접근성 높은 제품 등이 여기에 속한다.
△ 공급망의 사회 환경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Aaa그룹의 기업들은 핵심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우수한 정책, 표준, 계약 및 감사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급업체와 협력해 새로운 수익 모델 및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해낼 수 있는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 이해관계자를 무한한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의 견해를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명확한 체계도 갖추고 있다. 매출과 자본의 원천인 고객 또는 투자자와 같은 전통적 개념의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규제기관, 압력단체, 학계 등의 의견도 적극 수렴해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모색한다.
공유가치 창출 필요
이번 평가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글로벌 리더 기업들에 비해 그 성과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 ‘지속가능한’ ‘녹색’ 등의 수식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기업군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특성상 향후 5년에서 15년에 걸친 장기적 발전 과정에서 리더십을 승계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구축하고 있음도 확인됐다. 과거에 비해 경영 시스템 공시가 개선되고 있고, 혁신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 경영에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거버넌스 모델도 우수기업을 중심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최근 보여준 가장 발전적 맥락이라 하겠다.
남은 과제는 이해관계자 참여 기반의 포괄적 거버넌스와 혁신의 체계를 갖추고 실질적 성과와 해결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맹목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의 보고 지침인 GRI 적용 수준만 높이려 하고 과시적 목적으로 평가에 대응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 회사가 직면한 부정적 과제와 성과에 대해 균형 있게 보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자간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무척 시급한 과제로 평가됐다. 우리 기업에 여전히 가장 부족한 것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우수한 성과와 함께 보고하는 보고서의 균형감이다. 보고의 균형감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며, 부식토라고 할 수 있다.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제품 생산과 운영 혁신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사회적 이익과 기업의 수익을 함께 추구하는 ‘공유 가치 (shared value)’를 창출하기 위한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지배구조, 이해관계자의 아이디어를 폭넓게 수렴하는 체계적 혁신의 프로세스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혁신을 통해 한국 기업이 지역사회에서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