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 등 유력 대선주자들. 이념 성향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통상국가 한국이 살길은 글로벌 전략에서 찾아야 하는데 우리 정치권과 행정부만큼 국제정세에 어두운 곳도 없다. 대기업은 해외에서 일류지만 우리 정치는 방향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5월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모습
지난 2월 29일 영어 온라인 커뮤니티 ‘Oh No They Didn‘t (ONTD)’에 민망한 글 하나가 등장했다. ‘K-Pop or KKK-Pop? 노골적인 반(反)흑인 음악이 미국을 휩쓸고 있다’는 글이다. 여기서 KKK는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 단체 KKK(Ku Klux Klan)를 의미한다.
이 글에서 아이디 ‘IFUA SKEDMETO’를 쓰는 흑인 네티즌은 K-POP 가수들의 흑인 희화화를 비난했다. ‘강심장’(SBS)‘청춘불패’(KBS) 같은 지상파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흑인 성대모사를 하거나 흑인 분장을 했었다.
정신 나간 지상파 3사
지난 1월에는 ‘세바퀴’(MBC)의 출연진이 흑인 만화 캐릭터 분장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유튜브에 항의 영상이 올라왔다. 가수 타이거 JK는 당시 ‘올케이팝’에 기고한 칼럼에서 의도성은 없었다고 하지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 국민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미국의 시각으로, 그것도 백인우월주의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한번 반문해봐야 할 일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KKK-Pop으로 불려도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미국은 6·25전쟁 이후 우리가 가장 동경해온 나라다. 지금도 이런 기류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민을 가고 싶어 한다. 최근 들어서야 겨우 비자 면제를 받았다. 미국을 너무 동경한 나머지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만 제대로 보는 것 같은 환상, 그 환상이 아직도 한국 사회를 배회 중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11년 12월 5일 오후 4시 40분 대한민국은 수출 5155억6000만 달러, 수입 4860억 달러로 전체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에서 9번째다. 1962년 5억 달러에서 50여 년 만에 2000배 이상 무역을 늘렸다. 덕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주요 경제지표(PGI)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82.2%로 G20 국가 중 1위다. 2위인 독일(61.6%)과 2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난다. 무역의존도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1년 무역의존도가 100%에 근접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1990년 51.1%, 1995년 50.3%를 거쳐 2000년대 들어 60%대를 유지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등했다. 한마디로 현존하는 지구상 최고의 통상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나라 밖 일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사건 하나에도 무역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에서 외신 보도의 비율은 매우 낮다. 이 정도 통상국가라면 미국의 CNN 이상으로, 또 실시간으로 24시간 국제뉴스를 전해도 모자랄 판인데, 뉴스 후반부에 찔끔 전하는 것이 전부다.
한국 정부의 ‘거지 근성’
외신이 헤드라인에 오르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면 비중 있게 취급되지 않는다. 우리 언론, 그 중에서도 여론을 선도한다는 지상파 3사의 국제화 수준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흑인 비하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세상사에 무관심한 나라가 어떻게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는지 가끔은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그냥 한국인’ 따로, ‘장사하는 한국인’ 따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무심해도 괜찮은 걸까? 그들이 우리를 KKK라고 부르건 말건 무시하고 살면 그만일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세계에 진 빚이 많다. 무역으로 이익을 남긴 결과 잘 먹고 잘살고 있어서 그렇다. 또한 일제로부터 해방될 때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다 허물어진 나라를 되살려낼 때도, 전후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남의 나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 누가 봐도 번듯한 나라이지만 한국 정부의 ‘거지 근성’은 여전하다.
예컨대 세계 무역 협상에서도 기후변화 협상에서도 한국 정부는 ‘개도국 지위’ 유지에 사활을 건다. 온 세계가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데도 우리만 개발도상국이라고 부득부득 우기는 격이다. 알고 보면 세상에 빚을 많이 진 나라, 그 결과 졸부가 되었지만 끝까지 부자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제 할 도리를 하지 않는 나라, 바로 이것이 국제사회에 비친 한국의 자화상이다.
이들 눈에 한국은 몸집은 이미 어른이지만 생각은 아이인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공적개발원조(ODA)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확대를 주문 외듯이 할까? 반 총장의 당부는 이런 말과 다르지 않다. “내 조국이 한국이라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제발 돈 좀 풀어서 좋은 일 좀 해라. 낯 뜨겁고 쪽 팔려서 유엔 사무총장 못 해먹겠다!”
세계 9위 무역 대국이지만 세계에 관심이 없고 남이 뒤에서 뭐라고 하건 괘념치 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개념이 없는데 ‘전략’이 있을 리 없다. 나름의 국가전략이 없지는 않은데, 고작해야 내 살길을 모색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신세 진 세상 사람들에 대한 고려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로지 ‘나’뿐이다. 한반도 남단에 오글오글 모여 사는 사람들 말이다. ‘나’가 위대한 것은 맞다. 식민지 시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초토화된 나라를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국민은 아직까지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위대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통상국가 맞지?
한국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지닌 나라일 것이다. 강대국 가운데 과거에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던 나라는 없다. 미국 정도가 식민지에서 독립했다고는 하지만 제3세계 나라가 당한 것하고는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미국은 그 이후 지금까지 패권 국가였다. 아시아의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도 제국주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전통의 선진국 문명이 여전히 지구를 뒤덮고 있지만 이들이 만든 문명은 이미 한계에 봉착해 붕괴하고 있거나 붕괴 위기에 처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대다수 나라의 희망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3세계 출신의 국가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 같은 초우량 글로벌 기업을 가진 나라는 한국 외에 없다. 고유의 대중문화를 아시아로 세계로 확산시키는 나라도 한국 외엔 없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제3세계 어떤 나라에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스스로 핵무장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제3세계의 여러 나라가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이유는 이처럼 차고 넘친다. 이들은 궁금해한다. 한때 식민지였던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Pride of Asia’를 훌쩍 뛰어넘어 ‘Pride of World’가 되어야 한다는, 정작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인식하지 못한다.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 정글북으로 유명한 루디아드 키플링이 1899년에 쓴 시다. 처음에 이 말은 서구제국주의의 도덕성을 상징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엔 부담을 기꺼이 져야 한다는 명분으로 곳곳에 개입해 이익을 편취하는 행동을 상징했다. 한국이 이를 답습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반대로 가야 한다. 다른 나라가 우리로부터 물고기 잡는 방법을 원한다면 그것을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한국은 통상국가로 살아가는 것 외에 별다른 생존법이 없다. 통상국가로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선, 그러니까 소위 지속가능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선, 우리의 상품을 사주는 고객 국가들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이 취해야 하는 글로벌 전략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이를 실천하는 일을 개개인 차원에 맡겨선 안 된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청와대와 행정부 내에서 누군가 이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교관 가운데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할 법도 한데, 정작 이들이야말로 개도국 지위 고수를 자기들의 대단한 치적이라도 되는 양 홍보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이것이 애국이라는, 시대에 동떨어진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외교관은 행정부 내에서도 국제사회의 변화에 오히려 둔감하고 관습 위에 안주하며 권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공직자로 인식되고 있다.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들을 비롯한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대권주자 중 누구도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글로벌 전략을 밝히기는커녕 국제적 이슈와 관련해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이들의 시선은 오직 국내에만 머물러 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역할 따위가 표를 가져다 줄 성싶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 내지 무상 복지국가로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것이 어떤 모습의 나라일 것인지, 어떠한 방법으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비전을 전혀 내놓지 않는다.
대기업이 글로벌 전략의 선구자
글로벌 전략은 로컬 전략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내 전략과는 다른 맥락에서 따로 만든 전략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전략과 국내 전략이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내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무관할 수 없다. 글로벌 전략은 사회가 지키려고 하는 내재적 가치의 맥락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글로벌 전략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한 미국 사회의 일반가치를 담고 있다. 세계의 대다수 국가가 미국의 글로벌 전략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을 지킬 만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미국의 가치를 받아들여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체제를 만들어온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 우리만의 가치, 우리 사회의 일반가치를 다듬고 새로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전략은 대외 전략이자 대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은 국제도시가 됐다. 2008년 11월 5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외국인들이 미국 오바마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환호하고 있다.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전략을 외면해온 사이 오히려 한국의 대기업들은 글로벌 전략을 수립해 실행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기업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래야 자사의 미래 이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이미 너무 몸집이 커져 국내 시장만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됐다. 세계시장에서 이익을 획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여러 나라에서 패권적 시장 확대를 추구하면서도 외연적으로는 현지화를 모색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이른바 ‘세방화(glocalization)’라고 불린다. 여기에는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달성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겠다는 기업의 의지가 담겨 있다. 현지화의 일환으로 기업이 자주 실행하는 것은 지역사회 기여사업이다.
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도 글로벌 나눔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연예인이나 일반인 자원봉사자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각지로 날아가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을 돕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에 관한 관심과 논의도 활발해지는 추세다. 다만 문제는 그런 논의와 행동이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들에 일관된 방향성을 부여하는 가치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일은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한다. 이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간 전문가의 역량이 함께 모아져야 하지만 이조차 정부가 앞장서야 가능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외교부 등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봤을 때 정부가 스스로 각성해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차기 대권을 쥐게 될 사람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는 나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유력 대선주자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12월 19일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제정세에 어두운 대권주자, 글로벌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는 대권주자는 여론의 힘으로 레이스에서 조기 탈락시켜야 할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각자의 글로벌 전략을 공약으로 내걸어 평가받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글로벌 전략과 관련해 한국은 우선 국수주의에 가까운 ‘한반도 남단 민족주의’를 버려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지만 이런 식의 민족주의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한반도 남단 민족주의는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를 차별하는 민족주의, 중국동포를 차별하는 민족주의, 혼혈 국민을 차별하는 민족주의,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계 국민을 차별하는 민족주의다.
‘착한 나라 한국’
조금 더 나아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 중 하나는 ‘착한 나라 한국’일 것이다. 이는 구체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방향성이다. 졸부 이미지, 몸집만 큰 아이 이미지와 같은 현재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착한 나라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단지 이미지 차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그런 사회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몇몇 국가는 이미 착한 나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스위스가 그렇고 캐나다나 북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선진국이지만 패권 지향적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자연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한다. 이들 국가의 내부에는 관용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착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착한 나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착한 경제, 착한 정치, 착한 교육, 착한 문화, 착한 과학으로 이룰 수 있다.
선행 국가를 따라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 사회의 여건은 아직 여기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러나 선행 국가를 능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차피 글로벌 전략을 논하기로 하고 새로운 가치, 나아가서 새로운 문명을 지향한다면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과학계의 탈(脫)추격(Post Catch-up) 논의다.
단군의 건국이념 되새겨볼 때
기술 모방에서 벗어나 어떤 나라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정책과 시장을 창출해보자는 것이 탈추격 논의의 핵심이다. 선진국의 선진은 ‘앞서 간다’는 의미인데 이는 현재의 한계를 넘어 아무도 가지 못한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은 구미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므로 글로벌 전략에서도 모방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인 탈추격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 전략은 좌우 이념 프레임을 뛰어넘어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훨씬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본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 서양의 고전은 대개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당치도 않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자신이 살던 고통스러운 시대, 절망적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책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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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이들의 상상력은 재평가된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상상력의 끝인 ‘최선’을 말하고자 했다. 그러면 현실은 최선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최선에 접근하게 된다. 이로 인한 편익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점 때문에 고전 속 아이디어는 황당하지만 인류의 자산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한국의 글로벌 전략도 이러한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시조 단군이 나라를 처음 세울 때 ‘홍익인간’이라는 글로벌 전략을 만들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