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팔라우 해역 다이빙 할 때보다 차갑고 어두운 통영 바다 탐사할 때 더 가슴이 뛴다”

제주도 해양보호구역 생태지도 만드는 명정구 한국해양연구원 박사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입력2012-03-21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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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학자 명정구 박사의 연구실은 물속에 있다. 수십 미터 깊이 해저에 개척한 생태 탐사로에서 어종을 분석하고, 생태지도를 만든다. 바다 밑 세계를 알고 싶어 공기통 메고 심해에 뛰어든 지 35년째.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현역인 그를 서귀포에서 만났다.
    “팔라우 해역 다이빙 할 때보다 차갑고 어두운 통영 바다 탐사할 때 더 가슴이 뛴다”
    2월21일 제주도 서귀포항에는 비가 내렸다. 바다 수온은 연중 최저치인 14도. 음력 그믐, 사리 때라 조류도 빨랐다. 짙게 드리운 안개를 뚫고 문섬으로 향하는 고깃배는 바람과 파도에 밀려 여러 번 요동쳤다. 그 위에서 명정구(57) 박사(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는 묵묵히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챙겼다. 어류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에게 바다는 연구실이자 실험실이다. 그는 “바다를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바다 안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10여 년간 바다목장 사업에 참여하며 인간의 노력으로 해양 생태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실험’했고, 최근엔 독도 주변 10개 수역을 수심 약 50m까지 탐사하며 생물종에 대해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태지도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한국해양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독도·울릉도 해양생태지도는 바닷속에 분포하는 생물 각각의 크기와 개체 수를 지형 및 수심에 따라 기록한 자료. 연구 대상 해역의 지형도를 그리고, 그중 특징적인 장소를 골라 탐사에 적합한 다이빙 루트를 개척한 뒤, 반복 조사를 통해 각각의 지점에서 발견된 생물종 정보를 모으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자료를 활용하면 누구나 바닷속에 만들어진 가상의 루트를 따라 움직이며 해양 생태 변화를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지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최근 남획으로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혹돔의 경우를 보자. 생태지도에는 독도 주변 혹돔 서식지(혹돔굴) 4곳과, 각각의 장소에 머무는 혹돔의 크기 및 마리 수, 잠자는 위치까지 표시돼 있다. 누구든 이 자료를 토대로 혹돔 서식지를 탐사해 개체 수 증감과 크기 변화 등의 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기존의 생태 연구에 비해 훨씬 정밀하고 체계적이다.

    해양생태지도

    2008년 독도 주변 해역을 탐사하며 이 같은 연구 방법을 제안한 명 박사는 이어 울릉도 해역까지 탐사한 뒤 지난해부터 제주도 연안 생태 탐사에도 뛰어들었다.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용역을 받아 ‘해양보호구역 생태계 현황과 생물의 서식 실태를 지속적으로 조사·관찰하기 위한 지침서’를 개발 중이다. 서귀포 인근 문섬, 범섬, 섶섬은 국토해양부가 지정한 해양보호구역. 이번 용역 대상에는 근방의 지귀도 서쪽 연안까지 포함됐다. 이 지역 해양생태를 정밀히 조사한 뒤 독도·울릉도 해양생태지도 같은 형태의 자료로 만들어 향후 지속적인 조사·관찰의 기초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게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주문이다. 명 박사는 이에 따라 지난해 사전 조사를 통해 네 개 섬 주변의 해양 지형을 파악했고, 탐사 루트를 정해 공동연구자들과 공유한 뒤 7월과 10월, 두 차례 수중 탐사를 마쳤다. 이날 다시 배에 오른 건 이 해역 생태가 겨울철에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적하기 위해서다. 연구를 위해 일부러 한 해 중 물속이 가장 추운 날을 골라 제주에 왔다. 기자를 만난 건 전날 이미 범섬과 섶섬 주변 해양 생태를 탐사하고, 당일 오전 일찍 지귀도에 대한 조사까지 마친 뒤였다. 잠시 뭍에서 숨을 돌린 뒤 다시 문섬행 고깃배에 오르는 그와 동행했다.



    “전문 탐사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해양 생태 조사를 할 때는 보통 이렇게 어민들 배를 빌려 타요. 지금은 문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새끼섬으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다이빙을 시작해 물밑 20m 지점까지 들어간 뒤 거슬러 올라오며 1m 단위로 해양생물을 관찰하는 거죠.”

    동승한 연구진과 탐사 루트를 다시 한 번 조율하는 명 박사의 다이빙 슈트 위에는 수중 전용 메모판과 두 대의 방수 카메라, 뜰채 등이 붙어 있었다. 수심별로 나타나는 어종 변화를 스틸 및 영상으로 촬영하고, 탐사 도중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미기록 어종을 발견하면 채집해오기 위한 장비다. 무게가 15㎏에 달하는 수중 호흡용 공기통과 잠수마스크, 스노클, 납으로 만든 웨이트 벨트 등 스쿠버다이빙 기본 장비까지 더하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족히 30㎏은 돼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거뜬했다. 기상 악화로 탐사선이 지정된 다이빙 포인트에 정박할 수 없게 되자 근처 해상에 배를 멈추게 한 뒤 모든 장비를 메고 시커먼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부터 헤엄쳐 약속된 출발지까지 이동한 뒤 탐사 루트를 따라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어 다른 연구원들과 명 박사의 아들 세훈 군이 뒤를 따랐다. 해병대 출신으로 국립 부경대에서 자원생물학을 공부하는 세훈 군은 스쿠버다이빙 마스터 자격증 소지자다. 틈날 때면 아버지와 함께 바다를 찾아 수중탐사의 조수 구실을 한다.

    기자는 그들의 연구 활동을 보기 위해 문섬 수중 절벽에 설치돼 있는 밧줄을 잡고 한 걸음씩 해저세계에 발을 들였다. 스쿠버다이빙 전문가인 김병일 태평양다이빙스쿨 대표가 동행했다. 매서운 바다 위 날씨에 비해 물속은 평온했다. 몸을 깊이 담그자 오히려 추위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수압이 귀에 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퀄라이징’(코를 잡고 귀로 공기를 보내는 동작)을 끝내고 ‘아쿠아렁’(수중 호흡 장비)을 통한 숨쉬기에 익숙해지자 조금씩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해양 세계에서 특히 선명해지는 건 시각이다. 눈앞에 펼쳐진 해저 풍경이 총천연색 그림처럼 생경하리만큼 또렷하게 다가왔다. 암벽을 따라 무리지어 피어 있는 산호 사이로 전갱이 떼가 헤엄쳐 지나가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자 노랑자리돔 파랑돔 주걱치 등 열대어종이 곁을 스쳤다. 몇 마리일까 제대로 세기도 전 또다시 다가오는 다른 어류에 눈이 팔렸다. 그 너머로 명 박사와 손 과장 등 연구진이 이미 심해에서 거슬러 올라오며 해양 생태를 기록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티태스킹

    태양의 가시광선은 색깔에 따라 파장이 다르다. 빨강·주황처럼 파장이 긴 색은 물속에서 빠르게 흡수되고, 파랑·초록·보라 등 파장이 짧은 쪽은 더 깊은 해저까지 도달한다. 이 때문에 수심 15m 지점에 이르자 산호초가 점점 청록색 계열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연구진이 해저 촬영을 위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면 순간 번쩍, 숨어 있던 제 색이 모습을 드러낸다. ‘울긋불긋 꽃대궐’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붉고 노란 꽃무리의 향연이다.

    궂은 날씨 탓인지 연구진을 제외한 다이버는 물 안에서 전혀 만날 수 없었다. 온전히 수중탐사만을 위해 펼쳐진 듯한 대자연 안에서 명 박사는 자유로이 유영했다.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어종을 촬영하고, 메모장에 그림을 그리거나 수치를 기록하며 조금씩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수중 연구자에게 필요한 건 심해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다이빙 실력과 육안으로 어종을 구별하고 크기와 개체 수를 파악할 수 있는 해양 지식이다. 공기통 하나로 심해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40분 남짓. 탐사를 마무리할 시간은 이내 찾아왔다. 다시 밧줄을 잡고 뭍으로 기어오르자 물속에서는 미처 몰랐던 피로가 단숨에 몰려왔다. 그러나 명 박사는 여전했다. 해상에 떠 있는 고깃배의 뱃전을 잡고 ‘영차’ 몸을 솟구치더니 이내 배 위로 뛰어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꼼짝도 못하는 기자 앞에서 태연히 장비를 정리하는 그가 50대 후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놀랄 일은 계속 이어졌다. 서귀포항으로 돌아와 다이빙 슈트를 벗고 막 샤워를 마쳤을 무렵, 그에게 연락이 왔다. “횟집에 좋은 고기가 들어왔다니 같이 가자.”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점심시간을 상당히 넘긴 때였다. 곧바로 따라나선 길, 차를 몰고 횟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맛있는 식사를 기대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건 거대한 가오리 모양 어류의 출산 장면이었다. 알고 보니 명 박사는 제주도 어민과 횟집 주인 사이에서 이미 ‘물고기 박사’로 유명했다. 평소 보지 못한 어종이 잡히면 사람들은 그를 찾는다고 했다. 이날도 가오리처럼 생겼지만 어딘지 다른, 난생처음 보는 물고기가 잡히자 그에게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명 박사는 물에서 막 나온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 그리로 달려간 참이었다. 아들 세훈 군도 그 사이 어디선가 ‘원색한국어류도감’까지 구해들고 와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고 횟집 주인이 수족관 어항에 넣어둔 물고기를 막 꺼내는 순간, 모두의 눈앞에서 예의 출산이 시작됐다. 난생(卵生)인 줄 알았던 생선의 배 안에서 다 자란 새끼가 나오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명 박사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출산 장면과 물고기의 앞뒷면을 꼼꼼히 기록했다. 입을 벌려 날카로운 세 줄의 이빨까지 확인한 뒤 내린 결론은 “전자리상어 같다”였다. 도감에서 해당 항목을 찾은 결과는 그의 추정과 일치했다. 이후 서귀포항 횟집 앞은 순식간에 해양학 강의실로 변했다. 둘러선 어민들이 ‘상어’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 것이다. 이 자리는 ‘좋은 고기’에 들뜬 명 박사가 ‘전자리상어’를 25만 원에 구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횟집 주인이 최초에 부른 액수였다.

    바다에 미친 남자

    “이 물고기가 제주 앞바다에서 잡히는 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급속 냉동한 뒤 서울로 보내 박제를 만들어야겠어요. 2013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문을 여는데, 그곳에 전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는 길이 1m20cm, 무게 13㎏에 이르는 이 생선을 바로 냉동시킬 수 있는 시설을 찾아 일을 맡기고, 서울의 담당자와 연락해 추후 절차를 의논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결국 명 박사와 밥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은 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 식사 자리에서 한 번, 이후 경기도 안산 한국해양연구원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또 한 번,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 체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심해 다이빙 두 번에 어류 조사와 해양학 강의까지 하시고도 피곤한 기색이 없으시네요.

    “원래 일하다 보면 피곤한 것도, 밥 먹는 것도 곧잘 잊는 성격입니다. 전자리상어를 만난 건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는데,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잖아요. 표본을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어요.”

    “팔라우 해역 다이빙 할 때보다 차갑고 어두운 통영 바다 탐사할 때 더 가슴이 뛴다”

    수중 생태 탐사 중인 명정구 박사.

    ▼ 아까 상어 가격을 부르는 대로 다 주셔서 좀 놀랐습니다. 어차피 팔지도 못할 생선인데, 좀 저렴하게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종의 도네이션이에요. 제가 거기서 가격 흥정을 하면 다음에 좋은 고기가 잡혔을 때 또 연락하겠습니까. 매일 바다에서 사는 어민들은 저보다 훨씬 많은 어류를 봅니다. 그들이 도와줘야 제가 또 좋은 고기를 보고요.”

    ▼ 우리나라에 박사님만큼 심해에 자주 들어가는 학자는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합니까.

    “어릴 때부터 물고기가 좋았어요. 그 마음이 아직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만나면 신기하고, 알고 싶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 번도 새롭지 않은 적이 없어요. 오늘은 문섬 밑에서 살자리돔이 텃세하는 걸 봤습니다. 이게 원래 우리나라 바다에 없던 열대 어종이에요. 수중 탐사하다 제가 최초로 발견해 이름을 붙인 놈이죠. 지난여름 조사 때 보니 한군데 터를 잡고 정착하다시피 살더군요. 오늘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갔더니 이제는 다른 물고기가 접근하면 위협해 쫓아내데요. 재밌잖아요. 다음에 또 그 자리에 가면 뭐가 달라져 있을까 궁금하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명 박사는 어린 시절 틈만 나면 바닷가에 나가 놀았다고 했다. 수영보다는 낚시를 좋아했고, 꼬물거리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다. 막내 삼촌한테서 “어디 갯벌에는 물 밖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물고기가 산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보고 싶어 밤새 잠을 못 이룬 기억도 있다.

    “하도 궁금해하니까 다음 날 삼촌이 저를 데리고 가서 보여줬어요. ‘망둥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이름은 ‘말뚝망둥어’죠. 뻘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걸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새끼 낳는 물고기

    새끼를 낳는 물고기가 있다는 걸 처음 알려준 사람도 삼촌이었다. 매년 5, 6월 무렵 손가락만 한 새끼를 낳는 망상어라는 어종이다. 이때 낚시를 하다 망상어를 잡으면 종종 암컷의 생식공에서 새끼가 튀어나와 펄떡거리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본 삼촌은 물고기 좋아하는 조카에게 이 물고기도 보여줬다. 그 경험 때문에 수업시간에 사달이 났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모든 생선은 알을 낳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새끼 낳는 생선도 있다’고 했죠. 절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어류도감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제가 본 걸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명 박사의 어머니가 생선을 손질하다 배 속에 새끼가 든 망상어를 발견했다. 다음 날 생선을 챙겨 들고 학교에 갔지만, 선생님은 요지부동이었다. ‘작은 고기를 잡아먹은 거지 제 새끼가 아니다. 물고기는 다 알을 낳는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명 박사는 “물고기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해양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바뀐 건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다에 대해 더 많이,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한번은 영도 앞바다에서 장어처럼 생긴 물고기를 잡았어요. 다들 사투리로 ‘쫄장어’라고만 하지 진짜 이름을 모르더군요. 대체 이 고기의 이름은 뭘까 한동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물베도라치’라는 이름을 찾기 위해 그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3남1녀 중 둘째인 명 박사의 이런 면을 그의 어머니는 존중하고 아꼈다. 극장에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 ‘해저의 생과 사’ 같은 해양 다큐멘터리 영화가 걸리면 다른 형제들은 다 두고 그만 데려가서 보여주곤 했다. TV도 드물던 시절,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바닷속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헤밍웨이처럼 생긴 남자가 그 속에 뛰어들어 헤엄치고, 해양생물을 잡아 올리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려주는 모습도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었다. ‘아쿠아렁’을 개발해 스쿠버 다이빙을 대중화한 프랑스의 전설적인 해양 탐험가 자크 쿠스토, 영화 속 그 남자는 이때부터 명 박사의 롤 모델이 됐다.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크면 꼭 저렇게 돼야지,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부산 수산대에 들어갔죠.”

    명 박사의 연구실 책상 앞에는 지금도 쿠스토의 사진이 붙어 있다. 철들기 전 가슴에 품은 꿈을 50년 넘도록 지켜오고 있다는 거다. 심지어 그것을 직업으로 삼은 지 30년이 흘렀는데도….

    “팔라우 해역 다이빙 할 때보다 차갑고 어두운 통영 바다 탐사할 때 더 가슴이 뛴다”

    2월 말 제주도 서귀포 인근 문섬 해양보호구역 생태 탐사를 위해 고깃배를 타고 해양으로 나가고 있는 연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명 박사다.

    강인한 팔뚝

    ▼ 내가 잘못 생각했다, 다른 길을 갔으면 좋았을 걸 생각한 적은 없나요?

    “가끔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을 때는 있죠…. 여기 한번 만져 보실래요?”

    그가 불쑥 팔뚝을 내밀었다. 수중에서 뱃전을 움켜진 채 한 번에 온몸을 끌어올리던 강인한 팔뚝. 살짝 댄 손끝에서 군살 없는 탄탄함이 느껴졌다.

    ▼ 단단하네요.

    “그죠? 이게 서글픈 거예요. 이 팔뚝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가 웃었다.

    “아까 바다 들어가 보셨죠. 얼마나 험합니까. 물살 거칠고 춥고. 거기서 고깃배에 매달리려면 팔심과 손아귀 힘이 강해야 해요. 누가 나를 끌어올려줍니까. 혼자 해야죠. 날마다 눈뜨면 아령부터 합니다. 턱걸이도 꾸준히 하고.”

    매일 점심 때는 4㎞씩 달린다. 역시 수중 탐사를 위해서다.

    “물속에서 파도에 떠밀리면 호흡이 가빠지거든요. 그럴 때는 공기통이 있어도 숨을 못 쉬어요. 살아남을 길은 마라토너처럼 폐활량을 키우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뜁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명 박사의 체격 조건은 174㎝, 62㎏이라고 했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는 생체 나이가 30대라는 판정을 받았다. 허세가 아니라 진실로, 그는 젊은이와 함께 수중 탐사를 나가도 체력에서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 대학 때 축구부 주장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좋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필요해서 하죠. 어선에 잘 매달리자. 물속에서 오래 버티자.”

    ▼ 다이빙 하면서 아찔했던 적이 있으셨던 건가요.

    “아찔, 그런 건 없어요. 나는 해양학자니까, 수중 연구를 계속해야 하니까 관리를 하는 거죠. 보통 스쿠버 다이빙의 마지노선을 55세로 잡습니다. 그보다 나이가 들면 몸이 불고 체력도 떨어져 물속 환경을 못 버틴다는 통념 같은 게 있어요. 그런데 우리 정년퇴임이 61세거든요. 그때까지는 다이빙 계속해야 할 거 아닙니까.”

    ▼ 수중 연구를 하면서 위험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으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거짓말이죠. 한치 앞이 안 보일 만큼 탁한 물이든, 한겨울 폭풍우 속이든, 생태 조사가 필요하면 저는 들어가요. 하지만 여기서 뭔 일 있었다고 어떻게 말을 합니까. 당장 집에서 걱정할 텐데.”

    그가 씨익 웃더니 경남 통영에서 바다목장 책임자로 일하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바다목장은 해양생물자원을 유지, 보전, 증대시키기 위해 만든 수중 공간. 양식장과 다른 점은 물고기를 가두는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다. 드넓은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굳이 그 해역을 찾아와 살고 싶도록 만드는 것, 즉 물고기가 좋아하는 생태 환경을 특정 해역 안에 구현하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명 박사는 1994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 바다에 맞는 바다목장 모델에 대해 연구한 뒤 이듬해 통영 앞바다에 생긴 최초의 바다목장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물고기마다 좋아하는 해저 지형이 따로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바다 밑 볼록한 공간, 어초(漁礁) 주위에 모이죠. 바닷물이 흐르다 이런 지형에 부딪히면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그러면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가 흩어지면서 이걸 먹는 플랑크톤이 모이거든요. 자연히 플랑크톤을 먹는 작은 생물이 많아지고, 그걸 먹는 생선들이 모이고…. 그렇게 점점 큰 물고기까지 연쇄적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자원이 고갈된 통영 바다에 물고기가 모이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도 적절한 인공어초를 넣어주는 거였죠. 그런데 우리가 물고기와 말이 안 통하지 않습니까. 이놈들이 어떤 어초를 좋아하는지 아는 방법은 물속에 들어가 꾸준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요.”

    수시로 다이빙을 했다. 물고기의 움직임을 살피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2006년 바다목장이 완성될 때까지 한 달에 2~3일은 꼬박 바다 밑에서 살았다. 통영해양생물자원연구보존센터장 직함을 갖고 있는 지금은 1년에 네 번씩만 통영 바다를 찾는다. “통영에서 한창 일할 때, 제주도에서 30년간 고기를 잡았다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물고기를 모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기에 같이 한번 바다목장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물 밖에 나오자마자 바로 ‘박사님, 여기는 다이빙 할 데가 아닙니다. 목장이고 뭐고 당장 때려치우십시오. 이러다 죽어요’ 하는 겁니다.”

    내가 해야 할 일

    ▼ 뭐가 문제인 거죠?

    “너무 어둡고 물이 차갑다는 거죠.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수질이 탁한 데가 좀 있어요. 그런 데서 실수로 그물에 걸렸다가 못 풀면 그대로 죽는 거지요. 저는 거기를 10년 넘게 드나들었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지 않습니까. 큰 사고 없었던 것, 지금도 계속 다이빙 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늘.”

    가끔씩 속도 모르고 “명정구는 지가 좋아서 물속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억울하다고 했다. “통영 바다에 한번 들어가보고 그런 소리 하시오, 그 물이 좋아서 그렇게 들어갈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소”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꾹 참는다.

    “저는 다이빙을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다이빙을 해야 바닷속을 볼 수 있으니 하는 겁니다. 해양학자가 바다에 안 들어가면 뭘 연구합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30대 후반만 되면 필드를 떠나 관리직으로 가려고 해요. 대학교수도 마흔 살 넘으면 연구 안 하고요. 루틴하게 대충 굴러가며 사는 사람들 눈엔 쉰이 넘도록 이러고 있는 제가 ‘다이빙에 미친 놈’으로밖에 안 보이겠죠.”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즐기는 다이빙은 해본 적이 없다. 생태조사차 팔라우 해변에도 가봤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 바닷속에서 헤엄칠 때보다 차갑고 어두운 통영 바다를 탐사할 때 더 행복했다. 그의 노력으로 어종이 늘고, 해초가 살아나고, 바다목장이 만들어지는 게 기뻤다. 그에게 다이빙은 ‘연구’와 ‘실험’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돌아보면 처음 ‘아쿠아렁’을 메고 바다에 들어갔던 1977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그랬다. 쿠스토 같은 해양 탐험가가 되고 싶어 수산대에 들어갔지만, 당시 학교엔 스쿠버다이빙 프로그램이 없었다. ROTC와 축구부 활동으로 바쁘게 지내며 어린 시절 꿈을 조금씩 잊어갈 무렵, 선배 몇 명이 스쿠버다이빙을 배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도네시아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다이빙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대요. 교수님 중 외국에서 다이빙을 배운 분이 있어서 특별 수업을 마련한 거죠. 수산대연구소에 있던 장비를 빌려와 해운대에서 훈련을 한다고 하더군요.”

    당장 교수를 찾아갔다. “그거 배우고 싶어 수대(수산대) 왔는데, 제발 어떻게 좀 해주이소” 졸랐다. 마침내 선배들 틈에 혼자 끼게 됐을 때, 스킨 다이빙을 며칠간 연습한 뒤 처음으로 스쿠버 장비를 착용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물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갔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지.

    “선생님이 ‘명정구 니는 원해서 하는 거니까 니부터 해봐라’ 하셨어요. 장비가 하나뿐이었는데 선배들 제치고 제가 가장 먼저 다이빙을 한 거죠. 물속으로 2m쯤 내려가니까 그 자리에서 한번 누워보라고 하시더군요. 하늘이 먼저 보이고, 선생님과 선배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이고, 내가 오늘 여기서 꿈을 이뤘구나. 이제 쿠스토처럼 물속으로 들어가 해양생태를 조사할 수 있겠구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최고였죠.”

    독도 이름 붙이기

    그는 ‘해양학자’가 다이빙을 통해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태안 앞바다 유조선 침몰 사건만 봐도 그렇다고 했다.

    “당시 정부가 바로 발표한 게 ‘생태계를 복원하겠다’였거든요.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도 사고 전 바다 상태가 어땠는지를 몰라요. 산호가 빨갰는지 노랬는지 본 사람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복원하느냐고. 그 사건 보면서 더 늦기 전에 우리 앞바다를 정밀하게 조사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국제 심포지엄에서 일본 학자를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부끄러움도 그가 연안 생태 탐사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일본 학자들은 동해뿐 아니라 우리나라 황해에 대해서도 정밀한 자료를 구축해놓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해양생태 탐사는 ‘황해에는 조기류가 산다’ 정도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일본 학자들을 보면 흑조기, 백조기 일일이 세분화해 관찰하고 1950년대부터 개체 수 자료를 축적하고 있어요. 우리가 한일어업협정 같은 거 할 때 일본에 밀리는 건 이런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지요. 당장 필요한 게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후학들이 선배가 만든 자료를 보고 아 이게 1에서 2로 바뀌었구나, 3이 1이 되었네 딱 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독도 연안부터라도. 해양생태지도 아이디어가 거기서 나온 겁니다.”

    그가 아이디어를 내자 해양식물 전문가인 경상대 오윤식, 김남길 교수, 저생(底生)동물 전문가인 한국생태연구소 손민호, 한국해양연구원 노현수 박사, 산호 전문가인 이화여대 송준임 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가 뜻을 모았다. 대부분 ‘괴짜’ 소리 들으며 바다 밑 연구를 계속한 50~60대 학자들이다.

    명 박사가 이들과 생태지도를 만들며 또 하나 병행하는 것은 수중 포인트의 특징에 맞는 우리말 이름을 붙이는 것. 천국의 문, 비밀정원, 혹돔굴, 고기탑 등 듣기만 해도 물속 생태를 상상할 수 있는 우리말을 찾아 생태지도 기록 중이다.

    “독도 서도 옆 ‘똥여’라는 작은 바위섬에서 다이빙해 수심 20m 아래로 내려가면 해저에 모래로 쭉 이어지는 하얀 길이 보여요.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제가 ‘12계단’이라고 부르는 계단 같은 지형이 있고, 그 끝의 문을 통과하면 아주 아름다운 감태밭이 나오죠. 저도 모르게 ‘아’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워요. 처음 들어선 순간 내가 천국에 들어왔구나 싶었죠. 그래서 이름이 천국의 문이에요.”

    명 박사가 바라는 건 언젠가 독도 해역에서 국제적인 학술탐사와 수중촬영 대회를 여는 것이다. 그때 세계에서 찾아온 다이버들에게 우리말 이름이 적힌 생태지도를 나눠주고 함께 이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30년만 흐르면, 독도는 누가 뭐래도 ‘우리 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명 박사의 생각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오랫동안 영유권 분쟁을 벌인 ‘시파단’이라는 섬이 있어요. 1997년 두 나라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송을 냈는데, ICJ가 2002년 말레이시아 손을 들어줬죠. 당시 근거 중 하나가 말레이시아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시파단에 사는 거북을 관찰하고 보호했다는 점이었어요. 말레이시아 법률에 ‘시파단 유역의 바다거북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죠. 우리가 독도 생태를 꾸준히 탐사하면서 곳곳에 우리말 이름을 붙여 불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공간을 보호하고 아끼며 관리하고 있다는 걸 세계에 알려야 해요.”

    하고 싶은 일은 또 있다. 어린 시절 자신처럼 바다가 궁금해 못 참는 아이들, 바닷가에서 우연히 낚은 고기 이름을 알기 위해 몇날 며칠 고생할 어린이들을 위해 괜찮은 바다 이야기 책을 쓰는 것이다. 최근 조광현 화가와 함께 ‘팔딱팔딱 바닷물고기 이야기’라는 책을 펴낸 것도 그 일환이다. ‘둥실둥실 동해 바다 물고기’ ‘잘방잘방 제주 바다 물고기’ ‘남실남실 남해 바다 물고기’ ‘살랑살랑 서해 바다 물고기’ 등 각권의 책에는 우리나라 해안가에서 보이는 해양 생물 이야기가 생생한 세밀화와 함께 담겨 있다. 2005년 펴낸 성인용 ‘우리바다 어류도감’ 머리말에 두 자식의 이름을 쓰며 ‘희정, 세훈에게 이 책에 담긴 바다의 꿈을 선물하고자 한다’고 적은 그는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더 많은 아이에게도 바다의 꿈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몸 관리 열심히 해서 61세까지는 수중탐사를 계속할 겁니다. 그리고 정년이 되면, 해양학자로서의 삶을 끝내게 되면, 제대하듯 룰룰랄라 노래 부르며 다이빙 슈트 벗어놓고 즐겁게 물속을 떠날 거예요. 어느 조용한 돌섬 꼭대기에 앉아 바다 전체를 바라보는 것. 옆에 막걸리 한잔 놓고 낚시하는 것. 그게 제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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