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25% 컷오프가 무슨 놈의 당의 헌법…박근혜 대선후보 될지 알 수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2-03-21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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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수? 나는 아주 좋게 평가한다
    • 전여옥 얼마나 억울하겠나? 보복이라 생각한다
    • 자기들은 나중에 물갈이 대상이 안 되나?
    • 박근혜, 대선후보 경선 때 돈 한 푼 내놓지 않았다
    • 우파 재집권 위해 잔류 결심…경선 흥행 위해 역할 하겠다
    “25% 컷오프가 무슨 놈의 당의 헌법…박근혜 대선후보 될지 알 수 없다”
    4·11총선 D-30일인 3월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모처럼 많은 기자가 모여들었다. 새누리당 김무성(61) 의원의 회견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이하 공천위)는 영남 공천의 최대 관심사였던 김 의원의 지역구 부산 남구을을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했다. 이로써 그가 공천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당연히 기자들은 그가 ‘탈당→보수신당 결성, 또는 무소속 출마’ 수순을 밝힐 것으로 예상했다. 한때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이었던 4선 중진 김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하면 낙천자 연쇄 이탈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상당수 기자의 예측이었다.

    “분열의 핵 되지 않겠다”

    오전 11시 30분 김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준비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저는 우파 분열의 핵이 되지 않기 위해 백의종군하기로 했습니다. 당과 동지를 떠나면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도(正道)로 가야지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회견장이 술렁거렸다. 탈당이 아니라 당 잔류 선언이었다. 기자들은 황급히 데스크에 보고하고 긴급 기사를 송고하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다만 일부 기자들은 “과연 부산 사나이 김무성다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모처럼의 신선한 충격”이란 말도 들렸다. 정치를 하면서 신의와 보수의 가치를 중시해온 그의 진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평가였다.

    이틀 뒤인 3월 1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420호 김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4~5명의 보좌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의원집무실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방을 둘러보니 한글로 딱 네 글자가 적힌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네 덕, 내 탓.’ 책꽂이 위에 놓인 도자기에도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마치 김 의원의 현재 마음가짐을 듣는 듯했다. 방에 들어온 김 의원에게 물었다. “평소 신조인가 보죠?” “하하, 천주교와 원불교에 있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계속 보고 있지….”



    그의 표정은 조금 침울하면서도 홀가분해보였다. 인터뷰 내내 지금의 심경, 앞으로의 계획, 우파 정권 재창출 필요성 등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당 공천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 새누리당 낙천 의원, 다른 보수 정당 등과 함께 새로운 정치결사체를 만들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기보다는, 하게 되면 그 길로 가는 게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을 했던 거죠. 복잡할 것 없어요. 사람만 모이면 돼요. 가령 자유선진당 15석에 새로 15석만 더 보태면 30석은 금방 되죠. 내가 나오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같이 하겠다고 얘기가 된 의원이 15명 정도는 됐어요. 30석이면 큰 정당이죠. 그러면 원내 제3의 교섭단체가 되니 국고보조금도 많이 나오고….”

    ▼ 그럼에도 탈당 의사를 접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민주통합당 좋은 일 만드는 것 같고 해서 접어버렸지. 계기라면 내 마음이 계기지. 원래 ‘백의종군 회견문’과 ‘탈당 회견문’, 두 가지를 다 준비했다가 (테이블에 놓인 탈당 회견문을 들어 보이며) 이걸로 결심하고, 12일 아침에 나와서 비대위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언론사에는 오후에 회견을 하겠다고 연락하고… 방송사에서는 생중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걸 쭉 읽다가 아휴, 다시 곁에 있던 백의종군 회견문을 읽어보니 ‘이게 옳다’ 싶었어요.”

    김 의원의 잔류 선언은 새누리당 낙천자들의 탈당 도미노를 차단하고 오히려 ‘백의종군 선언’ 도미노 현상을 가져왔다. 이른바 ‘김무성 효과’다. 그러자 김 의원의 잔류 결심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치권 원로의 조언이 있었다는 추측에서부터 청와대의 만류설까지 나왔다.

    ▼ ‘김무성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나요.

    “나는 그런 계산은 일절 안 했어요. 혼자 이럴까 저럴까 고민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반향이 일어난 거예요. 사실 낙천한 동료의원들은 경험도 별로 없고, 어떡할까 고민을 많이 했겠죠. 그래서 김무성만 나오면 지난번(18대 총선 때 낙천한 뒤 친박 무소속연대 결성)에 성공했으니 그리 가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내가 던져버리니 다시 고민에 빠진 거지. 전화가 많이 왔어요. 나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형님 저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 비워라. 난들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나. 이 길이 옳은 것 같다. 우리 마음 접자. 그리고 곧 대선이 있지 않나. 대선에서 우리가 할 일을 찾자’ 그렇게 설득했죠. 나 참 마음 아파서….”

    “혼자 내린 고독한 결정”

    김 의원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특히 공천에서 탈락한 김학송 유정현 김성회 의원을 거명하며 “그들은 당명에 충실해서 (본회의장에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고 싶어 했겠는가. 그런 사람들을 다 탈락시키고… 권영세 사무총장에게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안됐다. (2위와의 여론조사 차이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탈락한) 유정현 의원에게는 재심을 청구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 이명박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설 등도 있던데요.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혼자 고독한 결단을 했어요. 내가 정치지망생일 때 ‘사쿠라 논쟁’에 휘말렸던 우리 선배들을 굉장히 비판했었죠. 나는 절대 저렇게는 안 한다, 내가 죽으면 죽었지 안 한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치를 시작하면서는 어떤 경우라도 당은 옮기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한 번도 옮긴 적 없어요. 통일민주당 이후 당명만 계속 바뀐 거죠. 4년 전 18대 총선 때는 (친박계 공천 배제로) 낙천한 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탈당했다가 당선돼서 돌아왔죠.”

    ▼ 이번에도 공천에서 탈락했는데요.

    “25% 컷오프가 무슨 놈의 당의 헌법…박근혜 대선후보 될지 알 수 없다”

    3월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잔류 선언을 한 김무성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때는 대선 직후였고, 지금은 대선을 앞두고 있죠. 상황이 달라요. 탈당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나 혼자 탈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공천해서 당선된 구청장, 시·구의원들이 동반 탈당해야 효과가 있죠. 또 몇 천 명에 달하는 막강한 당원 조직을 다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을 또 해야 하나, 대선을 앞두고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했죠. 결국은 그게 우파 분열이 되니까요. 내가 나가서 당을 비판하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면 당장 내 속, 내 입은 시원해도 마음으로는 과연 옳은 행동인지 계속 번민하게 될 것 같았어요. 당의 후배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데 선배가 이런 짓을 해서 후배들의 비판을 받는 것이 과연 가야 할 길인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근 스포츠서울미디어가 국회의원 보좌진을 상대로 실시한 ‘함께 일하고 싶은 국회의원’ 설문조사에서 김 의원은 조윤선 의원(새누리당)과 공동 1위에 올랐다.

    ▼ 백의종군 선언 후 박근혜 위원장이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후 다른 연락이 있었나요.

    “아직은 없어요. 박 위원장도 바쁘고, 나도 (잔류 선언 뒤) 지구당이 확 뒤집혀 난리가 났어요. 부산에 내려가서 수습하는 게 더 큰일이었고, 당원들이 막 붙잡고 우는데, 일일이 설득을 다했죠. 제가 모르는 많은 분도 전화를 걸어 와 울면서 격려해주셨는데, 그때 ‘아, 내가 정말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 잔류 선언을 하면서도 새누리당의 공천 방식을 질책했는데,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봅니까. 계파논리가 작용한 부분인가요?

    “아뇨,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4년에 한 번씩 총선 때마다 나오는 ‘물갈이’라는 말이에요. ‘현역 물갈이’, 이걸 언론에서 들고 나와서 막 몰아가지 않습니까. 그럴 때 당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역마다 경쟁력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죠. 민주통합당은 이번에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물갈이 보도에 흔들렸어요. 정당이란 것은 선거를 최우선으로 해야지, 공천은 당선될 사람에게 주는 거 아닌가요. 공천을 받아서 당선되면 그게 최대의 공신 아닙니까. 훈장을 줘야죠. 다만 연세가 너무 많다든지, 그 사이에 개인에게 하자가 생겼든지, 아프다든지, 이런 사람은 제외하고 나머지는 줘야죠. 언론에서 물갈이라고 한다고 주요 당직자들이 덩달아 물갈이, 물갈이 하면 나쁜 사람들이지. 동료 의원 가슴에 못 박는 일이에요. 자기들은 나중에 물갈이 대상이 안 되나? 그 시점에 당직자 한다고 해서 그러면 안 되죠.”

    김 의원은 비대위가 마련한 ‘현역 의원 하위 25% 컷오프’ 룰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구별 여론조사를 통해 지지율과 교체지수가 낮은 현역 의원 25%는 무조건 탈락시킨다는 규정이었다. 정홍원 공천위원장은 “25% 컷오프는 새누리당의 헌법과 같다”며 “비대위가 정한 룰이므로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 룰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지역에서 A, B, C 후보가 있으면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판단해야지, 물갈이 폭 25%를 정해놓고 여기다 25%를 더해서 50%를 하겠다, 다선 중진 중심으로 하겠다고 했다. 아니, 다선 중진이라면 당에 공을 세운 사람들인데 왜 그들을 뽑아내겠다는 건가. 그렇게 물갈이해서 국회가 좋아진 게 뭐 있나.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나 터뜨리고 말이야, 의원들 자질만 더 낮아졌지. 이게 무슨 놈의 당의 헌법이야.”

    ▼ 본인은 왜 컷오프에 걸릴 정도로 여론조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나요.

    “역선택이 있었어요. 오래해서 유명한 사람일수록 찍어내야겠다 하는 심리가 작용하니 경쟁자가 유리해지는 거죠. 그 다음으로는 ‘죽어도 박근혜’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김무성이 저러는 것 이해한다’ 이런 사람도 있지만, ‘김무성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죠.”

    ▼ 18대 때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과 지금 친박계가 주도하는 공천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4년 전과 지금은 달라요. 당시는 새로 권력을 쥔 쪽에서 의도적으로 자기 사람들을 심기 위해 상대를 많이 탈락시켰던 게 사실이죠. 이번에도 그런 게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예를 들기 참 힘드네요. 전여옥 의원을 공천 안 준 건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몇 가지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시스템 공천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 점은 인정하고 싶어요.”

    박 위원장의 대변인을 맡았다가 가장 강력한 ‘박근혜 비판자’로 변신한 전여옥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국민생각에 입당해 최고위원과 공동대변인을 맡았다. 그는 김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전 의원은 3월 13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잔류는) 정도가 아니다. 나 자신, 개인의 정치적 미래 등을 계산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던지지 않으면 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그 말에 대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 의원이 얼마나 억울했겠나. 지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3월 12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FTA, 해군기지 건설을 종북좌파들이 모두 뒤엎으려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해군을 해적이라고 칭하는 세력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순 없다. 우파 재집권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저부터 그 일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보수세력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전선에서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내에서는 그가 총선 공동선대본부장이나 부산·경남 선대위원장을 맡아 영남권에 상륙한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차단하며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백의종군 선언이 정계은퇴 선언은 아니죠?

    “그럼요. 내가 지금 분하고 억울하지만 접은 것은 오로지 대선 승리를 위한 것이니, 그때까지 내 역할을 해야죠.”

    ▼ 구체적으로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나만큼 대통령선거 경험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두 번, 이회창 전 대표 때 두 번, 그리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도 박근혜 후보를 도왔지요. 지금은 자리에 연연할 생각은 없고, 경험을 살려서 뭔가 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부산에서 노무현 바람이 처음 시작됐을 때 확 초전박살을 냈어야 되는데 대응을 제대로 안하니 ‘문·성·길’이 뜬 거지. 계속 뜨니까 나보고 잡으라는 거야. (당 지도부에서) 문재인하고 붙으라고도 합디다. 내 지역구가 있는데 그렇게는 못하고, 보다보다 안돼서 1월 2일 부산시당 신년교례회 때 ‘종북좌파들이 민란을 일으키겠다고 하는데 다 보고만 있을 거냐’ 이렇게 외치고 나니 그 다음부터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되더군요. 그런 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예요.”

    ▼ 당장 총선에선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무슨 일이라도 해야죠. 내가 (역할을) 요구할 생각은 없고, 우선 내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은 서용교 후보를 당선시켜야겠죠. 다음으로는 저쪽에서 낙동강 전선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니 그걸 방어해야지 않겠습니까. 다른 지역도 유세지원이라든지, 그런 방법을 생각해봐야죠. 지금은 직책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아직 후보가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김 의원을 얘기할 때 박근혜 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우파 재집권론’을 펼치며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박 위원장과의 관계 회복 여부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금 내가 박 위원장에게 돌아갔다 이런 차원은 아니다”면서도 “오로지 우파 정권 창출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야 되기 때문에 박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당을 위해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의원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박근혜 위원장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으냐, 당내는 물론 당 밖의 주자들이 참여하는 경선 흥행이 있어야 하고 내가 흥행을 위해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 될 것 같습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휴~ 무망한 건 아니고… 지금 어려운 싸움이지. 그런데 내가 지금 이 말 하면 잘못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후보가 정해진 건 아니잖아요? ‘대세론’에 빠지면 안돼요. 당내에서 (다른) 훌륭한 대권주자들도 있으니까 (그들과) 흥행 경선을 해야만 돼요. 지난번에 MB가 540만 표 차이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도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예측불허의 대결을 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 현재 당내에선 박 위원장과 팽팽히 맞설 유력한 흥행 파트너는 없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죠.”

    ▼ 정운찬 전 총리 같은 외부 인사가 참여할 수도 있겠군요.

    “(잠시 뜸을 들인 뒤) 하여튼 우파 후보를 단일화해야죠. 자유선진당, 국민생각 등과도 연대해서 우파 단일후보가 나와야 합니다. (새누리당에서는) 당내에서 거론됐던 분들이 있고, 정운찬 전 총리도 이 대열에 합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새누리당 일각에선 안철수 원장과의 대선 연대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나옵니다만.

    “그럼요, 안 원장도 생각할 수 있겠죠. 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한번 논의할 필요가 있어요.”

    ▼ 새누리당과 안 원장의 지향점이 비슷하다고 보는지요.

    “안 원장은 종북좌파는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이제는 안 원장의 선택이죠. 좌파들의 손을 들어줄 것이냐, 우(右)로 올 것이냐 결정해야 합니다. 이쪽이 자기가 추구하는 바와 맞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내가 참여해서 그쪽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냐’ 이런 역사적 선택을 해야겠죠.”

    ▼ 개인적으로 안철수 원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나는 아주 좋게 평가해요. 다만 정치는 현실 70%, 이상 30%의 조화입니다. 이상만 앞서가면 안 되죠. 안 원장이 훌륭한 분인데, 정치를 하려면 현실로 들어가서 현실을 인정해야죠. 그렇게 안하면 ‘안철수의 미래’는 없어요.”

    ▼ 안 원장과 부산 동향인데 개인적 친분이 있나요.

    “전혀 없어요. 그런데 안 원장에 대해 말하자면 (정치를 하려면) 멘토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의문이 생기는 게 윤여준 전 장관이나 김종인 전 수석 같은 분은 훌륭한 멘토들인데 지금 다 멀어지고 있잖아요.”

    내친김에 여권의 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들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 정운찬 전 총리는 어떻습니까.

    “훌륭한 분인데 평생 학교에만 계셨죠. (총리를 하면서) 세상 밖에 나와서 겪은 많은 경험이 보태졌으니….”

    ▼ 김문수 경기도지사는요.

    “‘문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 자기 이미지를 털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문수는 내가 볼 때 큰 재목이지만 비타협,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야죠. 정치는 협상과 타협입니다. 협상, 타협 하면 안 좋은 이미지로 보이는데, 이것은 ‘네 덕 내 탓’과 같은 거죠. 자기 양보 없이는 협상, 타협이 안 됩니다.”

    ▼ 경선 흥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흥행 성사를 위해 본인이 직접 어떤 역할을 할 수도 있겠군요.

    (말없이 고개만 끄덕임)

    ▼ 구체적인 방법은요.

    “그분들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지금 상태로는 (박근혜 위원장이 앞서 나가 있어서) 매치가 안 되니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당장은 ‘새누리당이 박근혜당이 됐는데 내가 들어가서 들러리 하라는 거냐’ 이렇게 나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면 ‘꼭 그런 건 아니다’고 설득하고 룰을 만들어야죠.”

    ▼ 차기 대통령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된다고 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무엇보다 권력을 아는 사람이 돼야죠. 지금까지는 권력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됐거든요. 권력을 알아야 권력을 다룰 줄 알지 않겠어요? 우리나라 공무원, 그리고 기업인들이 우리 사회를 이만큼 끌어왔는데 공무원은 굉장히 애국심이 강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죠. 다만 공무원 집단은 특유의 눈치 보는 게 있어요. 그런데 권력자가 너무 알은 체하고 이것저것 간섭하면 공무원들이 권력의 눈치를 볼 거 아닙니까. 일하다 잘못되면 혼나니까. 그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죠.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참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고 이런 게 권력자의 할 일입니다. 그게 권력게임이죠. 대통령은 잡다한 지식이 많은 것보다는 전문지식을 갖고 올바른 판단을 해서 국가운영을 장악해가는 능력이 중요하죠.”

    ▼ 지금 거론되는 대선주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그건 지금 내가 말을 못하죠. 다만 문제는, 혼자로는 안 돼요. 유능한 참모를 많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죠. 참모 기능을 존중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항상 집단이 돼야지, 혼자서는 안 돼요. 참모는 지도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죠.”

    박근혜 위원장과 그 주변을 의식한 말처럼 들렸다. 김 의원은 박 위원장 주변을 감싸고 있는 측근들이 정치적 동지로서가 아니라 상하관계처럼 돼버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MB? 잘한 일이 훨씬 많다”

    ▼ 오랫동안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준비된 대통령이었죠. 임기 초기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치고 나가서 다 성공시키지 않았습니까.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척결 같은…. 지금 (역대 대통령 중에서) YS가 가장 저평가돼 있는데 언젠가는 아주 훌륭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 이명박 정부 4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 부분을 말하자면 용기가 필요한데(웃음), 지금 전부 MB를 비판하고 있잖아요. 두둔하면 돌팔매를 맞는 지경까지 됐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잘한 일이 훨씬 많아요. 다만 ‘정치’를 제대로 안 한 거죠. 정치는 중간과정이 중요한데 결과를 가지고 보여주겠다고만 하니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고 봐요. 정치철학의 문제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세계의 경제가 불같이 일어나서 웬만큼 못해도 괜찮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전 세계가 어려운데 대응을 잘했기 때문에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 1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만 양극화 현상을 예상하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서 국민을 위로하고 설득했어야 하는데,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게 정치인데, 그걸 못한 거죠. 그래서 저평가받는 것이지 정책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인터뷰 내내 ‘보수정권 재창출’이란 용어 대신 ‘우파정권 재집권’이란 표현을 여러 번 썼다. 그리고 자신이 분명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점도 누차 강조했다.

    ▼ 우파 재집권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요.

    “우선 새누리당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분들도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쳐야지, 불출마하고 탈당은 안 하지만 돕지는 못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꾸준히 설득해야지요. 그래서 원내 1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19대 국회에선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이 어려울 것이므로 무소속이든 보수정당이든 연대해야죠. 그 다음은 대선인데, 먼저 경선흥행을 벌여 후보를 확정한 뒤에 보수대연합을 통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가장 기뻤던 때는 YS 당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출신인 김 의원은 부산 남구을에서만 15대 국회부터 내리 4선을 했다. 16년 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 친박계의 좌장이었지만 세종시 논란 등을 거치며 박 위원장과 멀어졌고, 친이계 핵심부의 도움으로 선출직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에게 정치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가장 기뻤던 것은 YS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였죠. 그 다음으로는 기뻤다는 표현보다는 큰 보람을 느꼈던 것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졌지만 대의원투표에서 이겼을 때입니다. 지지하는 지구당 위원장 수가 이명박 후보 진영의 절반밖에 안될 정도로 절대 열세였지만 해냈어요. 당시 박 후보는 돈 한 푼 내놓지 않았어요. 전부 우리가 발로 뛰고, 각자 호주머니 털고 해서 대의원투표에서 이겼는데, 그건 기적이었죠. 그날 내가 설렁탕집에서 많이 울었어요. 결과적으로 져서 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토록 몸을 던져서 그런 결과가 나왔구나, 조금만 더했으면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아쉬움, 이런 게 뭐 복잡하게 얽혀서 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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