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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위장결혼 무국적자에겐 인권도 없다?

  • 김용필│동포세계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전(前)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대표

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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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법 미비 틈타 들어온 중국 동포들, 의료·취업 사각지대에서 신음

1998년 이후 국적 취득 절차가 강화돼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도 바로 국적을 받을 수는 없게 됐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서울 성동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열린 ‘국적취득교실’에서 수업시간에 그린 태극기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는 28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1998년 국적법 개정 이전에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중국동포 여성이다.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9명 중 7명도 1998년 이전에 결혼 입국해 중국대사관에 국적포기 각서를 제출하고 한국 국적을 새로 신청했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온 지 채 1개월도 안 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한국 국적은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서류와 본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각서만 제출하면 쉽게 취득할 수 있었다. 이런 법적 허점은 한창 일기 시작한 코리안 드림과 결합해 브로커에 의한 결혼 알선 증가로 이어졌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익숙한 중국동포 여성이 브로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건 당연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과 중국교포 사이의 위장결혼이 폭증했고, 진짜 결혼인데도 소개자가 위장결혼 알선 혐의로 구속돼 덩달아 위장결혼자로 몰리는 억울한 피해자도 속출했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외국인이 위장결혼을 하거나 허위서류를 제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일을 막기 위해 국적법을 개정했다. 1998년 6월 12일부터 ‘결혼비자체류 2년 거주 후 귀화신청 및 귀화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결국 김 씨의 경우 같은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문제’는 1998년 6월 12일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 쉽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던 당시 법률이 낳은 문제인 셈이다. 물론 이후에도 위장결혼과 허위서류 제출로 인한 무국적자가 발생할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현행 법령에 따르면 2년간 국내 거주 후 귀화를 신청하고 실태조사를 받고 귀화시험을 치르는 등의 절차를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는 최소한 3~4년이 걸린다. 따라서 국적취득 이전에 위장결혼 여부가 결정돼 무국적자로 전락하는 사례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무국적자 사후 관리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는 본래의 국적을 회복하기도 매우 어렵다. 국적포기 각서 때문이다. 현재는 한국 국적을 받은 상태에서 6개월부터 1년 사이에 본국 국적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지만, 1998년 6월 12일 이전에는 본국 국적을 먼저 포기해야만 한국 국적 취득 절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무국적자가 모국 국적을 포기할 때 신중을 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0년 중국동포 사이에서는 한국행 열풍이 불었다. 당시 한국에 온 중국 동포는 상당수가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건 큰 혜택이었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쉽게 일자리를 찾고 편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한국에 들어와 현재 무국적자 신세로 살아가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국적을 취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만 생각했지 무국적자로 전락해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위장결혼 무국적자에 대한 사후관리 문제다. 정부는 위장결혼을 적발한 뒤 가담자들을 형사처벌했지만, 바로 그들의 한국 국적을 말소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은 뒤에도 장기간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국 신분증과 여권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김정숙(가명·여·50) 씨는 1997년 1월 결혼 입국해 2001년 8월경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003년 7월이 되어서야 국적이 말소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하순(가명·여·55) 씨도 1998년 2월 결혼 입국해 1999년 1월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고, 국적이 말소된 건 2005년의 일이다. 한분희(가명·여·57) 씨는 1998년 2월 입국해 2001년 6월 위장결혼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5년 넘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다 2006년 7월 국적말소로 무국적자가 됐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위장결혼 판결을 받고도 3~5년 지난 뒤에야 국적말소 행정처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이들은 한국에 살면서 이미 생활기반을 이곳에 둔 상황이었다. 무국적자들은 한결같이 “솔직히 다시 중국에 가서 생활할 걸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한다. 한국 생활이 이미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박한 소망은 ‘한국인이 되어 떳떳하게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국적자가 전부 위장결혼으로 입국한 사람인 건 아니다. 이난영(가명·여·47) 씨는 1997년 9월경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뒤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씨는 1998년 8월 위장결혼 판결을 받고 2006년 11월 한국 국적이 말소돼 국적이 없는 상태다. 이 씨 부부를 소개한 브로커가 위장결혼 알선 혐의로 단속되면서 덩달아 조사받고 위장결혼자 신세가 된 것. 황당했지만 부부 둘 다 법률적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위장결혼자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한국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도 이들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 씨는 이후에도 한동안 중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단행된 한국 국적 말소는 날벼락이었다. 금융거래와 취업활동이 금지되면서 그의 삶은 고단한 길로 들어섰다. 뒤늦게 남편과 함께 법무부, 국회, 인권위 등을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한번 말소된 국적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필자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무국적자를 만나고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그들이 걸어온 고난의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대승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인도적 배려

첫째, 현재 위장결혼으로 인한 무국적자 문제는 국적법과 국제결혼제도의 틀이 상대적으로 미흡했을 때 발생한 사안이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무국적자로 생활하는 여성의 경우 그동안 실정법 위반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무국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부류는 중국동포 여성이다. 비록 국적을 상실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의미의 재외동포인 것이다. 이들의 모국이 대한민국이라는 측면을 십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에게 인도주의적인 배려가 있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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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동포세계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전(前) 무국적자 구제를 위한 시민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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