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역시 당시 이 씨가 목격한 장면이 모두 사실임을 인정했다. 다만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전시관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관광과 신유옥 씨는 “조명 문제는 그렇다. 전시관을 계속 운영하다보니 군데군데 전등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럴 때 새 전구를 사서 갈아 끼운 것이다. 안 그러면 관리가 안 된 것처럼 보이지 않나”라고 했다. 작품을 신문지에 싸서 청소도구함에 보관한 데 대해서는 “그림을 넣어둔 곳은 당초 전시관을 만들 때 수장고로 쓰려고 했던 공간이 맞다. 여분의 작품이 하나 있어 거기 넣어둔 것이다. 신문지로 싼 건 그래야 빛 같은 게 좀 막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작품이 청소도구함에 들어 있었다는 얘기는 왜 나온 걸까. 신 씨는 “그 안에 청소도구가 몇 개 같이 있기는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시관에 학예사가 배치돼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비전문가니까 작품 관리를 못할 수도 있어요. 우리도 한계는 알죠. 하지만 작품 훼손 여부는 육안으로 모르는 거고….”
신 씨는 “우리 군 입장에서는 그게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였다. 그래서 그렇게 했던 건데…”라고 말을 흐렸다.
양측의 갈등은 이처럼 천 화백의 명성에 맞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전시관 운영을 바란 이 씨와 ‘선의’로 관리하면 족할 것이라고 믿은 고흥군의 아마추어리즘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 실수로 어머니 작품을 욕보였다”고 생각한 이 씨가 점점 더 강력하게 작품 반환을 요구하면서 전시관을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고흥군과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이 씨는 “기증 협약에 분명히 위약 사항이 있으면 반환 요청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도 고흥군은 계속 ‘선량한 작품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기에 작품 반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수준의 답변만 했다. 작품이 여기 있는데 어떡하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더 이상 못 참겠다. 어머니 작품을 다 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쪽 화랑 관계자와 함께 3월 말 고흥군을 방문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자 일체의 소송 포기 등에 대한 합의서를 보내온 것”이라고 밝혔다.
고흥군이 이 씨에게 보낸 합의서 문안에는 소송 포기에 대한 부분 외에도 ‘을(천경자)이 갑(고흥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작품들은 전부 을이 2007년 6월 8일자 협약(작품 기증 협약)에 따라 갑에게 인도할 당시의 상태 그대로임을 인정한다’ ‘을은 위 작품들을 인도받은 이후에도 갑이 현 명칭을 사용하여 을의 홍보에 활용하도록 한다’ 등의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고흥군 측은 “합의문 문구가 현재 작품이 손상돼 있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기증자와 더 이상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반환하지만 이후 혹시 생길지 모를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일 뿐”이라며 “이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이 씨와 논의해 얼마든지 문구 수정 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씨는 “좋은 마음으로 작품을 기증했다가 마음을 많이 다쳤다. 지방자치단체가 어머니를 마음대로 이용하려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쪽이 내게서 받을 수 있는 건 ‘작품을 되찾았다’는 영수증뿐이다. 아무 조건 없이 작품을 돌려받을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지역 출신 예술가의 기념관 등을 설립 중이다.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 등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제2, 제3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진원 한국미술협회 사무국장은 “천경자 선생뿐 아니라 다른 원로 작가 중에도 기관에 작품을 기증한 뒤 부실한 사후 관리 문제에 서운함을 느끼는 분이 있다고 들었다. 협회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기증 미술품 관리체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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