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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다툰 천지인 스토리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한다”

삼성과 900억 소송 벌인 ‘IT산업의 다윗’ 조관현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삼성과 다툰 천지인 스토리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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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국에도 웹하드 서비스가 없을 때거든요. ‘글로벌데스크톱코리아’라는 회사를 한국에도 세웠는데, 잘 안됐죠. 2001년엔 웹하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드라이브’를 한국에서 시작했다 접었습니다. 지금은 웹하드 사용자가 많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너무 빨랐습니다.”

그가 천지인을 들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LG전자다.

“아버지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 회사를 잠시 맡아서 경영하던 때입니다. LG 계열사 사장 한 분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분을 통해 LG전자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수차 만났습니다. 마지막 미팅이 끝나고 2주일 후 LG전자가 쓰는 방식이 천지인보다 낫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LG 입력 방식은 ‘나랏글’(현재 LG 휴대전화가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나랏글보다 훨씬 떨어지는 입력방식을 사용했는데, 자기네 방식이 낫다는 겁니다. 조금 황당했습니다. 게다가 SMS(문자메시지) 기능이 퀄컴이 만든 칩의 모듈에 들어가 있어 서비스하는 것일 뿐 시장성이 없는 구색 맞추기라는 겁니다. LG 사람들이 ‘조관현 씨, 누가 휴대전화에서 문자 기능을 쓰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두 번째로 문을 두드린 곳이 삼성전자.

“삼성에는 인맥이 닿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가 소비자제안마당을 운영했는데 그곳에 제안서를 올렸습니다. 제안을 올리고 3주쯤 지났을 때 편지가 왔습니다. 전화카드(5000원) 한 장과 함께 도착한 편지 내용은 정말로 엉뚱했어요. ‘한글은 디자인학적으로 영어에 비해 떨어집니다. 세계화 시대엔 영어가 더 많이 쓰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제안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의 내용이 담겼거든요. 황당해서 편지에 이름이 적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천지인 방식이 참 좋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더니 ‘내가 전문가다. 오랫동안 이쪽 일을 했다’면서 ‘디자인적으로 한글은 영어보다 떨어진다’는 식으로 답하더군요. 더는 할 말이 없었죠.”



그가 1996년 출원한 천지인 특허는 우여곡절 끝에 2011년 국가표준이 된다. 나중에 표준이 될 특허를 들고 대기업을 찾았다 무시당한 사연을 들으면서 구글을 다룬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현 구글 부사장)이 나중에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 표준이 되는 OS(운영체제)를 들고 2004년 삼성전자를 찾아왔을 때의 일화가 ‘플렉스에서(in the plex)’라는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에 서술된 루빈의 기억이다.

“내 돈으로 항공권을 끊어 한국에 갔다. 청바지를 입고 동료와 함께 삼성의 아주 큰 회의실로 갔다. 감색 정장을 입은 사람 20명이 서 있었다. 부문장(Division head)이 회의실에 들어오자 간부들이 자리에 앉았다. 부문장은 프레젠테이션을 듣더니 ‘8명이 일하는군요. 우리는 2000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웃었다. 가격에 대한 얘기가 오가기도 전에 협상이 결렬됐다.”

루빈은 이듬해 5000만 달러를 받고 안드로이드를 구글에 팔았다. 천지인 얘기로 되돌아가보자.

그가 LG전자, 삼성전자에 천지인을 팔려다 실패한 직후 정부가 전화기에서쓰는 한글 입력 시스템의 국가표준을 정하겠다고 나섰다(휴대전화 제조업체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국가표준은 2011년이 돼서야 확정된다). 그는 천지인을 표준 후보로 제안한 후 아버지 건강 탓에 중단한 학업을 마치고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997년 말 한국에 돌아왔더니 느닷없는 제안이 들어왔다. 삼성전자 쪽에서 천지인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온 것이다.

“삼성전자 상품기획부에서 당시 국가표준으로 제안된 한글 입력 방식 중 천지인이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삼성 측에서 ‘8개월 동안 당신을 수소문했다. 미국 출장까지 가려고 했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3년간 비독점으로 천지인을 사용하는 대가로 2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외환위기 탓에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3년 후에는 대가를 훨씬 잘 쳐주겠다고 하더군요. ‘다른 회사에 비싸게 팔게끔 도와주겠다’ ‘국가표준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당근도 제시했습니다. 나이가 어려 순진할 때라 삼성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삼성 쪽에서 책임자 결재가 나지 않는 겁니다. 두 달쯤 지난 후 결재가 났다면서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처음 보는 과장이 ‘우리도 비슷한 게 있지 않아?’라는 식으로 동료에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책임자가 안 계시니 나중에 도장 받은 계약서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1998년 3월의 일입니다. 그 계약서를 ‘오늘’까지 보내주지 않고 있어요. 계약서가 오지 않아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 전화했더니 천지인과 유사한 특허를 삼성이 먼저 획득했다는 겁니다. 삼성전자 특허가 1995년, 천지인이 1996년입니다. 삼성이 8개월인가 빨라요. 사정이 이런데 왜 날 찾아 헤맸다는 건지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았죠. 삼성 특허를 봤더니 제 거랑 비슷하긴 했습니다.”

특허가 두 개인 ‘이상한’ 상황

1995년 삼성이 획득한 특허 명칭은 ‘문자입력코드 발생장치 및 방법’, 그가 받은 특허 이름은 ‘콤팩트 한글 키보드’다. 1998년 말 그는 LG전자와 다시 접촉했다.

“깍두기 전화기라고 기억하세요. 폴더형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사이즈가 작은 전화기가 있었습니다. 1998년 10월께 삼성전자가 천지인이 장착된 ‘깍두기 전화기’를 내놓습니다. 지인을 통해 이번엔 LG정보통신(2000년 LG전자에 합병된다)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삼성 휴대전화가 채택한 한글 입력 시스템이 우리 것보다 낫더라. 왜 LG에는 제안을 안 했느냐’고 말씀하더군요. ‘사실은 LG에 먼저 제안했습니다’라고 답했더니 누구한테 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연구소장 이름 대기가 뭣해서 사원 이름을 댔습니다. 사장이 곧바로 연구소에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이튿날 연구소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구석에 앉고 가운데 소장이 앉았습니다. 연구원 예닐곱 명이 배석했고요. 한 연구원이 소장에게 휴대전화 한 대를 가져다주더군요. 삼성 깍두기 전화기였습니다. 소장이 ‘작기는 작네’라고 말하더군요.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삼성 휴대전화 처음 보세요’라고 물으니 ‘우리가 왜 봐요’라고 답하면서 저를 째려보는 겁니다.”

LG는 천지인을 채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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