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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미래硏 연중기획 中·國·通

“평양은 핵 보유와 주한미군 등가(等價)로 봐”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평양은 핵 보유와 주한미군 등가(等價)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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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中은 상호 불신 관계…中 영향력도 제한적
    ●北 부담스럽지만 美·中관계 틀에선 전략 자산
    ●1인 우위 체제는 ‘민주 없는 집중제’ 될 공산 커
    ●압록강-두만강 경계로 美와 경쟁 원하지 않아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중국을 한국적 맥락에서 실사구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9월 26일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에서 이희옥(57) 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을 만났다. 그는 3세대 중국통(中國通) 중 대표선수 격이다. 중국 내 인맥이 두텁고 탄탄하기로 소문났다. 서구적 시각을 벗어나 중국만의 특수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 후 우리 문제로 되돌려 종합적·비판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한국외국어대에서 톈안먼 사건 전후 중국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재인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 아태연구센터 교환연구원,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 객좌교수, 워싱턴대 방문교수, 중국해양대학 강의교수, 일본 나고야대 특임교수를 역임했다.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중국 지린대학, 수도사범대학, 톈진외국어대, 퉁지(同濟)대학, 푸단대학 등의 겸직교수, 객좌교수, 학술고문으로 활동한다. 중국 주요 학술지 해외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중국 연구자 중 바쁘기로 첫손 꼽힙니다.
“요즘엔 저도 인터뷰하러 다닙니다. ‘성균중국관찰’의 파워 인터뷰를 맡고 있습니다. 어제(9월 25일)는 신정승 대사와 한중수교 구술 기록 관련 대담을 2시간 넘게 했어요. 강의와 연구소 운영을 함께 하다 보니 바쁘기는 하지만 소명이려니 합니다.”

“中공산당 고위관료도 ‘성균중국관찰’ 읽어”

‘中·國·通’이 다룬 여덟 번째 인물이 신정승 전 대사였습니다.(신동아 8월호 ‘북한, 대만 따돌린 25년 전 ‘동해 사업’… 이제는 부상한 中이 韓에 힘 투사하려 해’ 제하 기사 참조)
“정상기 전 주(駐)타이베이 대표부 대표, 신정승 전 대사 인터뷰에 이어 윤해중 전 주상하이 초대 총영사 등 1992년 한중수교에 기여한 실무 외교관을 중심으로 당시의 기억을 구술로 정리하는 중입니다. 국립외교원 프로젝트인데 더 이상 사장되기 전에 당시의 기록을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요.”



책으로도 냅니까.
“아뇨. 공개하기 어려운 솔직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일단 비공개로 합니다.”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가 중국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와 대학 연구소 중 활동이 가장 활발합니다. 규모도 제일 크고요.
“성균중국연구소 전신은 동아시아 지역연구소입니다. 중국에 집중해 연구하는 게 좋겠다는 학교의 의지로 2012년 확대 재편됐습니다. 중국이 중요하다면서도 연구 인프라,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지 못했습니다. 중국 연구가 외교·안보 현안에 매몰돼 정치·사회·문화를 종합적으로 들여다보지도 못했고요. 성균중국연구소는 서구의 방법론, 문제의식을 넘은 한국형 연구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북한과 결합한 중국 연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한국형 연구의 예가 될 것입니다.”

失序의 시대

중국어판 잡지도 내더군요. 중국 독자가 대상인가요.
“잡지가 셋입니다. ‘성균차이나브리프’ ‘성균중국관찰’ ‘성균차이나포커스’입니다. 그중 성균중국관찰을 중문으로 발행합니다. 중국 독자와 중국어권 연구자를 상대로 한국의 중국 연구 동향과 한국적 시각을 소개합니다. 중국어권에서 연구한 해외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한국에서 발신하는 플랫폼 구실도 하고요. 최근 중국어를 읽는 서구 연구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중국 당정의 고위관료들도 성균중국관찰 독자입니다.”

중국 인사들과 네트워킹이 활발한 학자로 손꼽힙니다.
“제 역량이라기보다는 연구소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성균중국연구소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원, 베이징대 국가거버넌스연구원, 푸단대 조선한국연구중심, 지린대 공공외교학원, 산둥대 한국학원, 우한대 변경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과 교류합니다. 보하오 아시아 포럼의 공식 파트너기도 하고요. 국립정치대학(대만), 와세다대(일본), 말레이대(말레이시아)의 유수한 중국연구소와도 지속적으로 교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중수교 이전인 1989년 여름 홍콩을 거쳐 중국을 처음 찾았는데요.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초 한양대 중소(中蘇)연구소에 몸담았을 때 교류한 중국학자들도 있고요. 2003년부터 정부급 한중전략대화에서 한국 쪽 간사를 맡았는데 그때 교분을 나눈 젊은 학자와 관료들은 10년 넘게 세월이 흐른 후 중국에서 중량급 인사가 됐습니다. 중국 인맥을 쌓으려면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이를 제도화하고 상호 교통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사이가 돼야 합니다. 필요할 때 만난 후 일이 없다고 모른 척하면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죠. 인간관계가 국제관계의 연장인 셈이지요.”

한중수교 25주년 기념행사를 따로 개최할 만큼 한중관계가 얼어붙었습니다. 15, 20, 25주년 때는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행사를 치르면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는데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듭니다.
“한중 양국을 둘러싼 국제정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과거와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봅니다. 중국이 한중관계를 더 이상 양자관계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지역 문제나 미중관계라는 큰 틀에서 판단하고, 움직이기에 양국 간 인식 격차가 점차 커져갑니다. 서로에 대한 기대 차도 있고요. 일종의 전환기이기 때문에 한국이 위상(positioning)을 잘 찾아야 합니다.”

19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거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2기를 맞았습니다. 11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합니다. 동아시아 지정학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미·중 정상회담 결과는 한국에도 중요합니다. 중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다루기 쉽다는 견해도 나오더군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실서(失序)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질서(秩序)를 잃어버린(失) 시대란 뜻인데요. 세계정치가 혼돈의 시기에 접어들었으나 미중관계가 갈등일로로 가긴 어렵습니다. 여전히 글로벌 차원에서 미중 국력 격차가 큽니다. △군사력 △경제의 질 △에너지 안보 △연구 개발 △교육의 질 △ 거버넌스의 능력에서 그렇습니다.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 리스크, 중위 인구 질만 봐도 미국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대국 vs 상승 대국

베이징이 워싱턴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어렵다는 얘기군요.
“미국을 추격해 G-2 시대가 됐다거나 중국의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은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라는 이미지를 실체와 섞어 보는 데에서 오는 평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능가하기엔 아직 그 격차가 상당합니다. 이렇게 보면 미중관계도 전면적인 갈등 속에서 부분적으로 협력한다기보다는 협력의 토대에서 과거보다 쟁점(Flash Point)을 둘러싼 갈등이 빈발하는 것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시진핑은 미중이 협력할 이유는 1000가지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처지를 드러낸 외교적 수사(rhetoric)라고 하겠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미중 간 국력 격차가 존재하더라도 동아시아 상황은 다릅니다. 한반도, 동·남중국해, 대만해협에서 전략 갈등이 벌어집니다.
“아직은 중국이 글로벌 수준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으나 동아시아 상황은 또 다르죠. 베이징이 동아시아에서 세계 전략의 교두보를 쌓으려 하니 전략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아래 중국이 적응하는 체제가 하나, 미중 간 격돌하는 동아시아가 다른 하나입니다. 이 같은 이원적 구조가 미중관계 본질입니다. 지리적으로 멀수록, 연성권력(Soft Power)일수록 협력이 이뤄지는 반면 지리적으로 근접할수록, 경성권력(Hard Power)일수록 갈등이 심화합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는 안보 및 경성권력 사안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전형적 사례고요.”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베이징은 워싱턴에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하면서도 양국 간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국력 격차가 존재하기에 협력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동아시아 이웃국가, 중국 표현으로 주변국가에는 공세적이랄까요. 다시 말해 국익에 도움이 될 때는 적극적으로 포용 정책에 나서는 반면 국익과 충돌할 때는 강력한 제재를 전개합니다. 부드러운 곳에는 더 부드럽게, 까칠한 곳에는 더 까칠하게 나옵니다. 베이징이 지역적 차원에서 패권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만 사건이나 국면, 구조 차원에 따라 베이징의 대응이 제가끔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북한 핵과 동·남중국해 문제도 상황이 워낙 복잡해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움직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 같습니다.”

신형대국관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면서 제시한 외교 용어다. 기존 대국인 미국과 상승 대국인 중국이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면서 평화 공존을 추구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로 믿지 않는 北·中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북핵 문제도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동·남중국해 상황도 비슷하고요. 중국과 이웃한 국가 대부분이 정체성 외교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좀 더 강한 외교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후 질서에서 탈각해 평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나아가는 데다 김정은 체제도 그 나름대로 김정일 시기와는 다른 정체성 외교를 추구합니다. 러시아도 비슷하고요.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겠다는 한국 정부도 미들 파워로서 정체성 외교를 강조합니다. 북핵 문제에 운전대를 잡겠다는 생각도 그렇고요. 각 나라가 순응하거나 적응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겠다면서 정체성을 강조할 때 강대강(强對强) 국면이 나타납니다.”

중국도 정체성 외교를 벌입니다.
“베이징은 역사와 대화 중입니다. 2021년 공산당 창당 100년,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년입니다. 잃어버린 과거 역사, 외세에 의해 열린 근대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중국에 중요해요. 중국의 부상은 단순하게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재(再)부상의 맥락이 있습니다. 아편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세계총생산(GDP) 30%를 차지하던 부강한 모습을 되새기는 거죠. 요즘 길거리에 걸린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첫 단어도 ‘부강’입니다. 말씀한 대로 국익에 크게 문제 안 되는 일엔 부드럽게 행동하지만 국익이 걸리거나 국면이나 구조와 관련한 일에는 좀 더 원칙적 외교를 벌입니다. 중국 바깥의 국가들이 중국을 부담이나 위협으로 느끼는 양상이 과거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중관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中·國·通’ 아홉 번째가 서진영 사회과학원 원장이었는데요(신동아 10월호 “최악 상황엔 ‘핵무장 하겠다’ 中에 명확히 밝혀야” 제하 기사 참조). 서 원장은 “중국이 1992년 북한을 한 번 버렸다. 또 버리지 말란 법 없다”고 말합니다. 중국 국익에 해가 되면 북한을 또 한 번 버릴 수 있다는 건데요. 중국은 그간 북한을 상대로 생색내기 수준의 제재만 해왔으나 달라진 모습도 엿보입니다.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면 베이징이 평양을 버릴까요.
“북한과 중국 간 형성된 상호 불신 구조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사안이라고 봅니다. 1930년대에도 중국공산당과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간 갈등이 거셌어요. 민생단 사건이 대표적이죠.”

민생단 사건은 간도 지역에서 공산주의자, 항일운동가들이 민생단과 관련된 일본 첩자라는 혐의를 쓰고 중국공산당에 체포, 살해된 것을 가리킨다.

“최근 발견되거나 공개된 자료를 살펴보면 6·25전쟁 후 중국군 철군 과정에서 평양과 베이징의 갈등이 상당했습니다. 6·25전쟁 때도 전시작전권을 가지려는 중국과 그것에 반대하는 북한이 부딪쳤고요. 문화대혁명 때도 북·중관계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는 평양에 큰 타격을 줬죠. 한중수교 이후로도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습니다. 북·중관계가 우호적 상황에서 어떤 결정적 계기를 거치면서 나빠지는 게 아닙니다. 두 나라 간 전략적 불신의 뿌리가 상당히 깊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그랬고, 김정은 또한 이러한 인식구조를 가졌다고 봐야지요. 중국도 북한이 자국을 불신하는 현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을 짜는 것으로 보입니다.”

雙暫停, 雙軌竝行의 함의

성균중국연구소가 간행한 학술 잡지와 단행본 중 일부.[홍중식 기자]

성균중국연구소가 간행한 학술 잡지와 단행본 중 일부.[홍중식 기자]

북한은 중국에 사람으로 치면 목구멍(咽喉)입니다.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 같은 관계면서 해양세력(미국, 일본)으로부터 안보를 지키는 요충이죠.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미중관계 재조정 과정에서 북한이 가진 전략적 가치가 중국에서 다시금 주목받습니다. 중국의 대미 인식도 2008년을 기점으로 변화했고요. 당시 베이징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복합국면(Social Conjuncture)으로 파악한 듯싶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 자본주의 체제가 민낯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중국이 세계 질서와 관련해 대안 패러다임을 고려하기 시작한 때도 그즈음인 것으로 보이고요.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에 빠르게 접근한 것도 이러한 중국의 대미 인식 속에서 북한의 전략가치를 다시 주목한 것으로 본 것이지요. 중국에 북한은 내심 부담스러운 존재지만 미중관계 틀에서 보면 여전히 전략적으로는 자산입니다.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뤄지면 미중이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되면 베이징이 가지는 전략적 고민은 더욱 깊어지겠죠. 이렇게 보면 지금 상황은 베이징이 북한과 상호 전략적 불신이 있지만 상황 악화를 방지하면서도 평양의 체제가 변화하도록 압박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이 중국이 내심 설정한 레드라인을 침범하면 모르겠으나 과정이 힘들더라도 북한을 변화시켜 얻는 이익이 클 때는 지정학의 이점을 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통일 및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서울과 베이징이 각자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공통분모를 찾을 법한데 엇박자가 반복됩니다. 한중 간 교집합을 넓히면서 해법을 마련하려면 베이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베이징이 북한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는 있죠. 국제적 고립이 심화될수록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고요. 그런데 중국 처지에서 영향력은 사용하지 않을 때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했는데도 북한이 바뀌지 않으면 상황이 우스워지죠.

2006년 핵실험 때 베이징은 평양이 제멋대로(悍然) 핵실험했다며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타국을 제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에도 이례적으로 참여하고요. 그런데 이듬해 워싱턴과 평양이 베이징과 서울을 패싱(passing)해 양자 합의를 맺습니다. 북한의 이후 핵실험 때 베이징이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그때 학습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영향력은 행사하는 것보다 보유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고, 영향력을 사용하면 영향력이 사라지는 딜레마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란다면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베이징의 외교 공간을 넓혀줘야 해요. 한국, 중국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 베이징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마저 미국을 대변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아요.

북한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한중 간 넓은 공감대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는다’ ‘체제 붕괴를 시도하지 않는다’ ‘통일 드라이브를 급속하게 걸지 않는다’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등과 관련해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낸 상태에서 역할을 분담해야 공동의 방법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천명합니다. 한국이 추구하는 평화통일과 중국이 말하는 자주적, 평화적 통일은 어떻게 다릅니까.
“베이징은 한반도 사안을 한국과 북한의 문제라고 봅니다. 남북이 통일 과정에 실제로 접어들지 않는 한 중국이 움직일 유인이 없습니다. 통일 과정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면 베이징이 자신들의 역할을 찾을 겁니다. 중국이 말하는 자주적, 평화적 통일은 평화적 협상을 통해 남북이 자주적으로 통일 과정에 접어드는 것을 뜻합니다.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배제한 채 합의한 후 통일로 나아가는 것은 중국 처지에서 위험 부담이 클뿐더러 타국에 간섭하는 것이기에 저어할 겁니다. 현재처럼 남북이 교착된 상황에서는 통일과 관련해 베이징이 역할을 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중국은 평화공존이라는 탈(脫)분단 과정을 거쳐 질서 있는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

1인 우위 체제의 경직성

시진핑이 김정은을 만나지 않는 까닭은 뭘까요.
“베이징의 대(對)한반도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가 골자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깬 것입니다. 또한 북·중 정상회담은 미중관계, 한중관계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중국 처지에서 볼 때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실마리를 보여주지 못하면 당분간 추진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쌍잠정(雙暫停·북한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동시에 중단하는 것)은 대북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평양의 요구를 베이징이 받아들인 겁니다.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해 추진하는 것)은 미국이 주장하는 ‘선(先)비핵화, 후(後)평화체제’와 북한이 주장하는 ‘선(先)평화체제, 후(後)비핵화’를 절충한 것이고요. 중국은 쌍잠정, 쌍궤병행 원칙을 러시아와도 합의했습니다. 쌍잠정, 쌍궤병행이 현 시점에서 중국의 북핵 문제를 푸는 방법론이라고 봐야 합니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성공하려면 평양을 ‘핵 동결’이란 입구로 불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입구에 일단 들어서서 긴장도를 낮춰야 하는데, 북한은 핵 보유와 주한미군을 등가(等價)로 보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지요. 핵 포기를 전제로 한 핵 동결 협상에 북한이 나올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없죠. 따라서 중국도 어렵게 만든 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훼손하면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당장은 어려워 보입니다. 북한 또한 북·미 간 직접 대화로 핵 문제를 푸는 게 효과적이라고 여기고 있고요.”

19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됐습니다. 시진핑 집권 후 중국 국내 정치에서 발생한 뚜렷한 변화로 1인 권력 강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반(反)부패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간부에게 철퇴를 가했고 정치적 걸림돌도 제거했습니다. 집권 2기 시진핑 체제의 안정성을 어떻게 평가합니다.
“베이징에서는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관건적 시기’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집단지도체제 속에서도 개인의 리더십을 강화해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집권 기간 중 앞선 5년은 낡은 술 부대에 새 술을 붓고 새로운 술 부대에 새 술을 부으면서 기존 체제와의 연속성을 강조했습니다. 매몰 비용(Sunk Cost)을 줄이는 정책을 선택한 것이죠. 그런데 시진핑은 첫 임기부터 자기 스타일로 정치했습니다. 시진핑 권력이 집단지도 체제의 틀을 무너뜨리지는 않겠으나 집단지도 체제 속에서 1인 우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정책에서도 중국식 방안(Chinese Solution)을 더욱 강조할 것이고요. 반부패 운동을 강화해 당과 국가의 기강을 잡아나가면서 공산당 체제의 안정된 기반 속에서 중국형 미래 산업 전략을 모색하는 복합적 정치권력의 모습을 그리고자 할 것입니다.”

집단체제 틀 속 1인 우위 체제에서는 시진핑의 퍼스낼러티(personality)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시진핑은 어떤 사람입니까.
“산시(陝西)성 작은 지역의 서기부터 국가주석에 오르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16번 넘게 중요 직책을 담당했으며 국가주석을 맡기 전 인구 약 1억5000만 명을 통치해봤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과를 쭉 내온 겁니다. 문화대혁명 때 하방(下放)이라는 개인적 경험도 정치를 보는 눈을 키웠을 것이고요.”

하방은 중국공산당이 당·정·군 간부의 관료주의·종파주의·주관주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고학력자, 지식분자를 낙후된 농촌, 변경의 공장으로 보낸 것을 가리킨다.

“시진핑이 3세대, 4세대 지도자들보다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강합니다. 돌파력, 추진력도 갖췄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특성이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살펴봅시다.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깨는 행동이라는 게 하나라면 시진핑이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얘기한 게 다른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 지도자의 말의 무게(立言)가 큰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사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한데 시진핑의 스타일 탓에 매듭을 풀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시진핑의 생각이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커졌다고 봐야 합니다.”

‘차이나 스쿨’이 약한 까닭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에는 지도부 내 역할 분담이 이뤄졌습니다.
“그게 시진핑 집권 이전, 이후의 차이죠. 후진타오 시절까지는 이전처럼 집단지도 체제 속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부 간 역할을 나눴습니다. 물론 시진핑 체제에서 집단지도 체제를 대체하는 것은 기존 관례와 제도를 뒤엎는 문제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집단지도 체제에서 1인 우위가 형성되고 그것이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엔 물밑에서 세력, 파벌 간 경쟁과 견제가 치열하게 이뤄졌습니다. 경쟁과 견제를 타협으로 봉합하는 구조도 정착됐고요. 1인 우위 집단지도 체제하에서도 세력, 파벌 간 경쟁, 견제는 존재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조절해 타협의 문화를 이어갈까요. 타협의 기제가 작동할까요.
“외부에서 우려하는 게 공산당 내부의 민주주의 후퇴입니다. 당내 민주주의는 협상민주주의와 함께 중국 당-국가 체제의 골간 격입니다. 당밖의 민주주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활성화돼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민주집중제의 원리가 작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시진핑의 권력이 강화된 상태에서는 ‘민주 없는 집중제’가 더욱 고착화될 공산이 크고 체제도 더욱 경직될 것으로 보입니다. 베이징이 외부 환경의 엄중함을 강조하는 것도 유념해봐야 합니다. ‘관건적 시기’는 복합적인 맥락이 있지만, 정당성의 기반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측면이 있습니다. ‘외부 환경 탓’이라는 수사의 마법이 풀리면 경직된 체제가 어려움을 겪을 소지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당과 정부 지식인 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져 있거나 지나치게 고요한 현상도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한중관계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이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요. 베이징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감을 가졌다가 실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對)중 소통 채널이 막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물밑에서 다수 채널이 가동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사드를 북핵과 연동된 개념으로 봅니다만 중국은 사드와 북핵을 분리해 보고 있어요. 연동론과 분리론의 차이를 극복해내는 게 한중관계 회복의 핵심 사안이죠. 사드 임시배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중국의 우려를 불식할 군사기술적 대화를 지속하고 중국의 안보 우려에 대한 한국의 전략 방향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통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모멘텀을 찾아야 하겠지요.

베이징도 경색된 한중관계에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전에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도 걱정이고, 중국과 시진핑 개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것도 부담이겠고요. 한중관계가 과거 중일관계 형태로 고착되는 것은 중국에도 외교적 부담이 크죠.

그런데 사드 문제는 근본적으로 배치와 철회라는 이분법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봐요. 극복이 아닌 관리의 문제로 넘겨 민감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가야 대화 동력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2018년 평창올림픽 이전에 한중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평창올림픽에 초청했기에 중국 지도부가 답방 형식으로 올림픽에 오도록 해야 합니다.”

외교·안보정책 수립 과정에서 중국 전문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 외교안보팀에서 차이나 스쿨이 힘을 잃고 있는 이유는 중국 커리어로는 외교 안보부처의 중요한 직책을 맡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고 유능한 외교관들은 차이나 스쿨로 가지 않으려고 하죠.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원자가 늘 부족해 인력을 겨우겨우 채운다고 합니다. 외교·안보 현안에서 중국이 미국 못지않게 중요한데도 중국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올라갈수록 정부 내 중국 전문가 풀이 굉장히 얇아집니다. 외교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미국의 프리즘으로 중국을 보는 인식을 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미 라인, 도쿄 스쿨 등 특정 지역을 오래 전담한 인사들이 외교부 요직을 차지해왔다.

“관성을 깰 필요가 있습니다. 경로에 의존하는 외교가 아니라 경로 바깥으로 나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외교가 지나치게 경로에 따라서만 움직이다 보니 창의력이 떨어집니다. 중국 관련 인력과 조직도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미국 쪽 커리어를 가진 이들이 중국에도 가고, 중국 쪽 커리어를 가진 이들이 미국에도 가면서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 순혈주의를 타파하는 것 못지않게 고위 외교관을 배양하는 시스템을 일신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중국학 정립해야”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中·國·通’ 대담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을 ‘중국통 1세대’로 규정한 후 자신과 같은 ‘2세대’는 미국에서 사회과학 방법론을 익힌 후 이론을 틀로 삼아 중국을 탐구했으나 실제로 중국을 경험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고 했습니다. ‘3세대’는 중국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중국어 텍스트로 공부했으나 사회과학 방법론에 약하고, ‘중국의 시각’에서 ‘베이징의 언어’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고요. 4세대는 2, 3세대의 장점을 계승하고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게 서진영 명예교수의 견해입니다. ‘중국통 3세대’로서 이 같은 지적을 어떻게 봅니까.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만 저는 1, 2, 3세대를 제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김준엽 전 총장 같은 1세대가 있고요. 2세대는 다시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사회과학적 훈련을 한 이들과 대만에서 자료를 다룬 그룹이 있습니다. 2세대 중 상당수는 중국 전공이라기보다는 공산권 연구의 맥락에서 중국에 접근했습니다. 서진영,정종욱 교수님 등을 빼면 중국 연구에 일가를 이룬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3세대는 1980년대 전후로 대학에 들어간 세대와 1980년대 중후반 학번을 포함합니다.

3세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일부는 서구의 중국 연구 방법을 국내에 도입해 학문을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3세대 연구자들은 한국 민주화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연구했고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한중수교 이후 많은 사람이 중국 유학을 떠나기도 했고요. 서구 학문 담론이 지배하고 중국학 영역이 마이너리티였기 때문에 중국은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마치 중국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습니다. 친중파라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요.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본 것이 3세대의 장점입니다. 서진영 교수님의 문제의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4세대는 영어, 중국어 등에 능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가 가진 단점은 치열한 학문적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역사에 대한 통시적 이해도 부족하고요. 중국혁명사, 중국현대사의 뿌리로부터 중국 사회의 결과 떨림을 익히는 데는 취약하고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보지 못하고 다소 기능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학의 학문 풍토가 이렇게 만든 측면이 있는 듯싶습니다. 결국 기능적으로 우수한 4세대가 3세대의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한국형 중국학을 꾸려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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