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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ssue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에 대비할 때

  • 박성필|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 sppark@kaist.ac.kr

애플보다 무서운 ‘특허괴물’에 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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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소송이 우리나라에서 진행됐다면 거대 글로벌 기업인 피고 회사들은 훨씬 수월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특허제도하에서는 패소하더라도 소소한 규모의 손해배상으로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특허권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 고의 침해(willful infringement)의 경우 3배 배상(treble damages)까지 인정된다. 더구나 이 소송은 친(親)특허적 판결이 가장 많이 내려지는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피고들은 무명(無名) TMT의 특허 공세에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TMT 같은 특허관리회사는 제조, 판매 등 다른 사업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반소(反訴) 제기나 크로스 라이선싱 전략으로 방어하기 어렵다.

결국 소송은 소외(訴外) 합의로 종결되었다. TMT와 삼성전자, 애플, 샌디스크의 합의 조건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분쟁 결과가 그렇듯 이 세 회사가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TMT에 지불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MP3 플레이어 관련 특허의 로열티 수입을 최대한 보수적인 관점에서 추정해보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심으로 시장 규모가 큰 25개국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판매된 관련 기기 데이터를 수집했다. MP3 플레이어 기술은 매우 다양한 기기에 적용될 수 있지만 MP3 플레이어와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 스마트폰 세 종류의 기기만 대상으로 삼았다.

자료 조사 결과, 우리가 설정한 시장과 기간에 MP3 플레이어 관련 기기는 총 13억7000만여 대가 팔렸다. 여기에 기술 요율을 곱하면 바로 로열티 규모가 나온다. 엠피맨닷컴은 과거 경쟁업체들과의 로열티 협상에서 2개 특허에 대해 각각 1.5%, 총 3% 로열티를 판매금액에 부과한 바가 있다. IT업계 라이선싱 전문가들에게도 물으니 특허당 기기 가격의 1.5%를 적절한 기술료 요율이라고 말했다.

2006년 이후 가장 많이 팔린 MP3 플레이어인 애플 아이팟의 경우 대당 가격이 200달러에서 700달러까지 다양한데, 최소 200달러라고 해도 (2개 특허에 대한 기술 요율3%를 적용할 경우) 대당 로열티가 6달러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변수도 많고 특허기술이 적용된 기기의 유형도 다양하므로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수준의 기술 요율을 적용하기 위해 MP3 압축기술의 원천특허를 보유한 독일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의 로열티 책정 방식을 참조했다. 이 연구소는 업체들이 큰 반발 없이 수용할 만한 수준인 기기당 정액 2달러를 적용한다.

MP3 플레이어 특허의 로열티도 기기당 2달러를 적용하면 6년간 추정 로열티는 27억4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는 3조 원을 웃돈다. 고스란히 우리 기업들의 몫이 될 수 있었던 막대한 가치가 우여곡절 끝에 외국 특허관리회사 손에 들어간 것이다. 태권도처럼 ‘종주국’ 타이틀을 붙이며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기술개발국의 자부심도 함께 사라졌다.

방어 목적 ‘특허 사재기’도

TMT와 같은 특허관리회사들은 주로 미국에서 출현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한다. 특허관리회사는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당시 공급 중시 경제학 기조에 따라 반독점(anti-trust) 정책을 후퇴시키고 강력하게 펼쳐온 친특허정책(pro-patent policy)의 부산물이다. 특허권자에게 우호적인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이 위치한 텍사스주 댈러스의 소박한 마셜(Marshall) 시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특허 소송 당사자들로 인해 어느덧 관광명소가 됐을 정도다. 웬만한 기업조차 소송 하나로 휘청거릴 정도로 소송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가을 미국 보스턴대 로스쿨 교수진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특허관리회사들이 제기한 소송으로 피고 기업들이 약 5000억 달러의 피해를 보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피해를 본 기업 대부분은 연구개발 투자에 집중하는 기술기업이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소송비용으로 연구개발에 대한 재투자가 줄어든다는 점, 특허관리회사에 흘러들어간 돈이 최종적으로 발명가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시장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기업들은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며 특허 전담부서를 양적, 질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방어 목적의 특허펀드 혹은 특허풀에 가입하거나 공격 성향이 강한 특허관리회사들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한다. 나아가 최근 여러 기업은 알짜배기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 자체를 인수하는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 예로 2009년 파산한 캐나다의 통신장비회사 노텔(Nortel Networks)의 특허 6000건이 매물로 나왔을 때 LTE, 와이파이, 데이터 네트워킹, 인터넷, 반도체 등 IT 분야 핵심 기술이 망라된 핵심 특허들로 인해 시장이 들썩였다. 지난해 7월 이에 대한 인수전에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에릭슨, EMC, RIM, 소니 컨소시엄이 무려 45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제시해 구글과 인텔을 누르고 낙찰을 받았다. 이 컨소시엄은 이때 인수한 특허를 관리하기 위해 애플을 최대주주로 하여 록스타 비드코(Rockstar Bidco LP)를 설립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가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에 대해 특허침해 주장과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제 특허권을 연구개발(R·D)의 열매로 보기보다는 소송을 매개로 한, 수익성 높은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특허관리회사와 관련한 이슈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TMT 같은 소규모의 ‘순수’ 특허관리회사들이 주를 이루지만, 록스타 비드코 같은 거대 제조회사들이 투자한 회사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계 최대의 특허관리회사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소니, 노키아, 애플, 구글, 이베이, SAP, 엔비디아(Nvidia)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그야말로 ‘별들의 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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