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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화 제스처는 제국군대 부활을 위한 꼼수

한일 외교분쟁에 대한 일본계 귀화 지식인의 고언

  •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정치학박사 |hosaka@sejong.ac.kr

일본 유화 제스처는 제국군대 부활을 위한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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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후퇴는 사무라이 수법

따라서 일본 정치인의 발언을 해석할 때는 이면의 전략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측 논리 자체도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독도영유 논리가 잘못이고 독도는 불법으로 점거되어 있으니 반드시 일본 영토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국민에게 심어놓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전략적 발언이나 지침이 많아서 왜곡을 일삼아도 일본 정치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치인의 태도도 진심으로 사과한다기보다 사과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수세에 몰리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한국 측이 일본 측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 진정성이 결여됐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말하는 것도 일본 정치인의 이런 전략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일본 측은 “몇 번 사과했는 데도 한국인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도리어 화를 낸다. 일본인은 절대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사과할 따름이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망언(妄言)과 망동(妄動)을 되풀이 한다. 일본인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한일관계의 구축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이 체화된 일본인은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후퇴하고 때가 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공세에 나선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 동남아, 유럽, 호주 등에 걸친 세계적 여성의 성 착취 문제이므로 일본에 절대 불리하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반성이나 사과 없는 전략적 후퇴 전략을 택했을 뿐이다.



현재 일본의 중단기적 외교목표 중 하나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 되는 일이다. 일본은 몇 년 전 한번 실패한 이 목표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일본이 안보리 이사국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국제적 공헌을 할 수 있는 군대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사국이 되려면 자위대를 군대로 승격시켜야만 하고, 이를 위해선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일본 헌법 제9조‘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 또는 ‘군대 보유’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헌법개정을 위해선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를 실시해 50%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여야가 보수화되면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표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군대를 부활시키는 데 50% 이상 찬성할지는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군 성노예 문제가 불거지고 다시 세계적 수준에서 비난을 받으면 헌법개정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악행이 일본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면 될수록 국민투표에서 과반 이상의 표를 얻는 것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9월 초순 들어 갑작스럽게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로 결정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엊그제까지 감정적으로 화를 내던 노다 총리가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은 한국인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 중 하나였을 테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고 전략적 판단을 하는 일본 정치의 행태로 봐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무라이 국가 일본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이기기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고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문을 잠그고 철저히 무시해버리는 한국의 유교적 문화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민족이 바로 사무라이의 후예 일본 민족이다.

역사적 사료 고의적 무시

주지하다시피 필자는 일본계 한국인이다. 2003년 한국 체류 15년 만에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1998년부터 독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현재까지 14년간 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의 연구는 극히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진실을 탐구하려는 마음이 강한 연구자일 따름이다.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저서나 양국 정부의 주장 등을 두루 살펴봤고, 필요할 때는 일본 측이 내세운 1차 자료를 어렵게 구해 보기도 했다. 4년간의 연구 결과, 필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 학자들의 주장에는 은폐와 왜곡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토대로 필자는 2002년 ‘독도영유권 문제의 미해결문제 고찰’이라는 논문을 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처음 나온 논문이었다.

그간 일본 학자와 정부는 1870년과 1877년 당시 일본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태정관이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의 부속영토이자 일본 영토 외의 섬들이라고 결정한 공문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심하게 왜곡해왔다. 2002년 첫 논문에서 필자는 1877년 태정관 지령문에 대한 일본 측의 은폐와 왜곡을 주로 다뤘다. 2005년 일본의 한 목사에 의해 태정관 지령문의 부도인 ‘기죽도약도’가 발견됨으로써 태정관이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두 섬이 울릉도와 독도라는 사실이 보다 선명해졌다. 일본 정부는 2006년과 2009년 국회에서 한 의원이 태정관 지령문에 대해 질문을 하자 “오래된 문서이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 조사 중”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2006년 필자는 태정관 지령문에 대한 질의서를 일본 정부와 자민당 등에 보냈지만 일본 정부의 답은 “현재 조사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그들은 계속 “조사 중”이라는 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태정관 지령문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그들은 조사가 끝났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다고 고백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적 행태로 보면 그들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할 것이다.

2008년 일본 북해도 사회과 교원노조가 “독도는 한국인의 주장처럼 한국 영토”라는 성명을 냈고, 2011년 9월에는 도쿄도 사회과 교원노조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증거가 없다”는 성명을 냈다.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재된 교과서를 교재로 가르쳐야 하는 일부 사회과 교사들이 그들 나름대로 독도에 대한 한국 측의 주장을 연구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 결과 많은 일본 내 사회과 교사가 독도는 한국영토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첫 번째 증거로 1877년의 태정관 지령문을 거론하고 있다.

8월 24일 노다 총리는 일본 국회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인 근거를 설명했다. 그 장면은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일본으로서는 최대의 홍보효과를 노린 이벤트였지만 결국 논리적 한계만 드러내고 끝이 났다. 노다 총리는 독도가 일본 영토인 첫 번째 근거로 일본이 17세기 중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앞서 말한 태정관 지령문은 그 논리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정관 지령문에는 ‘17세기 말 조선과 일본의 서한 왕래가 끝나 두 섬(울릉도와 독도)은 일본과 관계가 없는 섬이 되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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