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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별세 이후 통일교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동서양 넘나든 종교 창시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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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어디로 가나

통일교에서는 2009년부터 ‘포스트 문선명’ 구도를 놓고 노선 갈등이 일어났다. 다툼의 중심에는 3남 문현진 GPF재단 세계의장(43), 4남 문국진 통일그룹 회장(42), 7남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33)이 서 있다.

현재 통일교 실권자는 한학자 여사라는 데에 통일교 안팎에서 이견이 별로 없다. 통일교는 지난해 신도를 대상으로 ‘참부모님 노정 섭리사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요지는 ‘한학자 여사는 하나님의 부인’ ‘문형진 회장(7남)은 섭리적인 후계자’라는 것이다. 후계자가 하나님의 부인보다 위에 위치하기는 어렵다. 실질적 교주이자 실권자는 한 여사가 될 소지가 큰 것이다.

통일교의 공식 후계자는 7남이지만, 자산·조직을 관리하는 실력자는 4남이다. 장남, 차남은 1984년, 2008년 각각 별세했다. 장남 격인 3남은 GPF를 이끌면서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통일교 안에서 공식 후계는 문형진(종교), 문국진(기업)으로 정리됐으나 3남을 따르는 신도 또한 적지 않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들이 3남을 지지하는 예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3남, 4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 분명한 회사와 달리 종교와 같은 신앙의 세계에서 신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다. 물질적 자산을 소유하는 회사와는 다르다. 누가 후계자 이슈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지 않는다.”(3남, 문현진 의장)



“후계 다툼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문선명 총재께서 통일교의 상속자, 대신자로 문형진 세계회장을 결정해주셨다. 전 세계 통일교인은 이 결정과 관련해 문형진 세계회장을 환영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 부분은 총재님 양위의 절대적 고유 권한으로 후계 문제는 종결됐다.”(4남, 문국진 회장)

문현진 의장은 문 총재를 통일교 창시자로 국한하지 않고 보편적 영성에 기초한 평화통일운동가라고 여긴다. 문 총재가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시한 것은 또 하나의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영성을 강조한 초종교· 초교파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문국진·문형진 회장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문 총재가 메시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국진 회장은 “나의 아버지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 우리는 레버런드 문(문선명 목사)이 재림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고 믿는다”고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통일교에서 벌어진 갈등의 기저에는 이렇듯 문 총재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준과 앞으로의 방향성, 메시아관(觀)의 차이가 버티고 서 있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형제간 갈등은 교권을 장악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공격한 측면이 강하다. 4남, 7남 측은 2010년부터 3남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산과 관련해 “되찾겠다”면서 소송을 벌이기 시작했다. 3남 측이 소유한 여의도 땅을 둘러싼 송사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UCI 관련 소송이 대표적이다. 문 총재가 1977년 설립한 UCI는 통일그룹처럼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다. 3남의 장인인 곽정환 전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회장은 사탄이자 타락한 천사장으로 몰렸다. 3남을 지지하는 일부 신도는 출교 조치를 당했다.

“세상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형제간 영향력 경쟁

문 총재는 임종 직전 특별한 유훈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국진·문형진 회장은 문 총재 보좌관에게 통일교 섭리와 관련해 유언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자식이 말씀을 들으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문 총재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남, 7남은 “O” “X”식으로라도 답을 듣고자 했으나 문 총재는 특별한 언급 없이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3남도 강남성모병원을 찾아 아버지를 문병했으나 이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4남, 7남 쪽 인사들이 길을 막았다.

문현진 의장은 9월 10, 11일 경기 가평군의 문 총재 빈소를 찾았으나 조문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통일교 측은 3남 부부에게만 조문을 허용하고 함께 온 신도들과 경호원의 출입을 막았다. 3남 측은 “ 아들이 아버지를 뵙는데 협상까지 해야 하느냐.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문 의장 부부만 조문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문 총재 사후 통일교가 발표한 성화위원회(장례위원회) 유족 명단에도 3남과 그의 가족 전체가 빠져 있다. 통일교 관계자는 “조문을 막은 게 아니라 부부만 조문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형제간 갈등의 밑바탕에는 ‘포스트 문선명’ 시대를 둘러싼 헤게모니 경쟁이 깔려 있다. 문선명 총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앞으로의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4남, 7남이 종교로서의 통일교(Unification Church)를 강조하는 반면, 3남은 종교의 틀을 벗어난 통일운동(Unification Movement) 평화운동에 천착한다. 형제들은 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 통일교 인사는 “문 총재의 사후 자녀들의 역할은 문 총재를 따르던 신도들에게 어떠한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벌이는 형제간 경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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