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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라이벌 ⑨

아디다스 vs 나이키

스포츠용품 시장의 영원한 맞수

  • 전성철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awn@donga.com

아디다스 vs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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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vs 나이키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팅 인텔리전스’는 최근 2007~2008 시즌 이후 5년간 유럽 축구 클럽의 유니폼 판매량을 조사해 발표했다. 공동 1위를 차지한 클럽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국제축구연맹이 20세기 최고의 축구 클럽으로 선정한 레알 마드리드로 140만 벌씩을 팔았다. 인기의 척도인 유니폼 판매량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클럽의 유니폼은 공교롭게도 각각 스포츠용품 업계의 영원한 라이벌 나이키와 아디다스 브랜드를 달고 있다.

스포팅 인텔리전스가 발표한 유니폼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든 팀을 살펴보면 더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나이키는 이 가운데 3위 바르셀로나(스페인·115만 벌), 7위 아스날(영국·80만 벌), 8위 유벤투스(이탈리아·48만 벌), 9위 인테르(이탈리아·42만5000벌) 등 총 5팀을 후원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포함해 나머지 4위 첼시(영국·91만 벌), 5위 바이에른 뮌헨(독일·88만 벌), 6위 리버풀(영국·81만 벌), 10위 AC밀란(이탈리아·35만 벌)은 모두 아디다스 브랜드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유럽의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축구에서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셈이다.

다슬러 형제의 신발공장

스포츠용품 업계의 두 라이벌 가운데 브랜드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큰형님’은 당연히 아디다스다. 아디다스는 1920년 독일의 아돌프(아디) 다슬러와 루돌프 다슬러 형제가 20㎡ 남짓한 어머니의 세탁실에 차린 신발공장에서 만든 수제 스포츠화로 출발했다.

다슬러 형제의 신발이 처음 빛을 본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였다. 리나 라드케 선수가 아디 다슬러가 만든 신발을 신고 여자 800m 달리기에서 세계 최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4년 뒤 세계대공황의 그늘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다슬러 형제는 또다시 주목받는다. 아디 다슬러는 스티치로 신발에 스트라이프를 새기고 구멍쇠를 보강한 신형 트랙 스파이크를 선보였다. 독일의 아더 요나트 선수와 미국의 빌 헬미나 선수는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신고 각기 남자 100m와 여자 100m 달리기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스타 제시 오언스도 아디 다슬러의 신발을 신고 달린 스타다. 그는 특별한 위치에 스파이크를 박은 ‘로우 컷 어퍼’ 신발을 신고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해 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린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가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다. 이 대회에서는 ‘체코의 증기기관차’로 불린 에밀 자토펙 선수가 아디 다슬러의 경량신발을 신고 1만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을 획득하며 스타가 됐다. 아디다스는 그해 삼선(三線)과 함께 브랜드로 상표 등록을 했다.

하지만 큰 성공은 형제 사이를 갈라놨다. 사업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루돌프 다슬러가 1948년 ‘퓨마’를 설립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다. 아디 다슬러는 이듬해인 1949년 8월 18일 5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아디다스를 창립했다.

아디다스는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독보적인 브랜드파워를 구축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올림픽 역사에서 아디다스를 신었던 스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는 금방 확인된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에밀 자토펙은 7일 동안 5000m, 1만m,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이 됐다. 미국 출신의 밥 마디아스 선수는 아디 다슬러가 직접 제작한 스파이크를 신고 허들과 장대높이뛰기에 참여해 10종 경기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디다스의 성공시대

남반구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인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아디다스는 원반 던지기의 전설 알 오터에게 스파이크를 갈아 끼울 수 있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발을 제공했다. 3단 뛰기에서는 발에 전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앞쪽 스파이크 바닥을 개선한 신발을 신은 브라질의 아데마르 파비아노 데 실바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아디다스의 신발을 신은 선수들이 세운 세계 최고기록만 무려 33개에 달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당시 18세 소년이던 무하마드 알리가 아디다스의 삼선(三線)이 선명한 복싱화를 신고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캥거루 가죽에 나일론 스파이크 밑창을 단 초경량 스파이크를 신은 미국의 윌마 루돌프가 육상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전체 육상경기 참가 선수의 75%가 아디다스를 신었다. 아디다스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1964년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는 전체 육상선수의 80%가 아디다스를 신었고 그중 99명이 메달을 땄다. 그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트랙용 신발은 신발 한 짝의 무게가 135g에 불과한 아디다스의 ‘도쿄 64’였다. 1만m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미국 선수 빌리 밀스도 당연히 도쿄 64를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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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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