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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⑩

판 페르시 없는 맨유? 非역사적이다!

질문과 비판, 하려면 똑바로 해라

  •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판 페르시 없는 맨유? 非역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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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네티즌의 주장에서 정확하게 드러났듯이 ‘더선’의 기사는 판 페르시의 대체 선수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완전히 무시된 채 작성됐다는, 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의 해전 승리에 ‘필수불가결한’ 인물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이순신 장군이 그 일을 했다는 사실이 곧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 필수불가결한 인물’이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추앙하는 마음에서 심정적으로 그렇게 주장할 수 있어도, 그것이 경험적으로(역사적으로) 증명되는 일,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의도적으로 감행할 수도 있다. 이번 전공수업 2학기 기말고사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나에게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는 기념비가 될까, 트라우마가 될까?’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外傷)이라고 하는 이 현상은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 때문에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마찬가지로 불안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트라우마는 심리적 형상이 아닌 신체에 각인(刻印)된 기억의 하나다. 인간의 몸에서 제거할 수 없는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나의 정체성에 동화(同化)될 수도 없는 어떤 것. 우리가 베트남전 같은 전쟁을 다룬 영화를 볼 때 제대 군인들이 종종 현실 적응에 실패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많은 경우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역사 기록 또는 기억의 왜곡과 관련해 또 다룰 기회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기념비냐, 트라우마냐?



내가 기말고사에 낸 문제는 조금 괘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른바 ‘지방사립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수능 점수가 낮아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가고, 밀려서 할 수 없이 이 학교에 다닌다고 생각하는(생각할지 모르는) 자기의식’을 대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우리 학과의 동료 교수와 학생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막연한 말이 아니라 동료 교수들의 구체적인 활동과 실천, 학생들의 열의와 태도에 기초한, 즉 데이터에 근거해 형성된 역사학자의 관점이다. 이런 나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니 믿음에 기반을 두고 1학년 전공수업을 활용해 가장 아플지도 모르는 테스트를 감행했다. 그리고 그 테스트는 답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은 물론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논의를 따라온 독자라면 짐작했듯이, 또 수업을 착실하게 들은 몇몇 학생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이번 문제는 ‘역사학적인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발생하지 않은 ‘허구적 질문’이므로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졸업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역사 공부가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다 해도 미래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 역사학자가 꼭 역사학적인 질문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학자가 역사학적인 질문이 아닌 질문을 놓고 논쟁을 할 수는 없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고전의 향연’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시민에게 역사와 고전에 대한 수준 높은 강좌를 제공한 적이 있다. 나는 조선시대에 대해 네 차례에 걸쳐 특강을 했고, 그중 한 꼭지를 조선의 문치주의에 할당했다. 조선의 활발한 언론 활동을 소개하는 자료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양사(兩司)가 공주의 집을 짓는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쟁론하였으나 상이 들어주지 않을뿐더러 내관을 시켜 집 짓는 일을 계속 감독하게 하였다. 정언 이헌(李 )이 상소하기를,

“신은 정성이 전하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말을 해도 신임을 받지 못하니, 관직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오늘날 대간의 관원은 있으나 마나 한 인물들이다’라고 합니다. 신이 대간에 있으나 마나 한 인물로서 나라 사람의 비평을 많이 받고 있으니 파직하십시오.”

하자, 상이 체직(遞職·해임)시키도록 했다. 이에 집의(執義·사헌부 종3품 관직) 신명규 등이 모두 이헌의 상소 내용을 끌어대어 피혐(避嫌)했는데, 홍문관이 처치(處置)해 모두 출사하게 할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현종실록 10년 6월 11일)

사안은 이렇다. 현종은 효종의 딸, 즉 자신의 여동생들인 숙안(淑安)공주와 숙명(淑明)공주의 저택을 조금 늘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다며 정책 비판을 담당하던 관청인 사헌부와 사간원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 두 관청은 각각 감찰과 언론을 담당했는데, 합쳐서 양사라고 불렀다. 통상 정책이나 행정에 비판할 일이 생기면 두 관청이 함께 의견을 모아 비판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처치하라”

원래 ‘경국대전’ 공전(工典)에 보면, 공주의 집은 50칸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그런데 숙안공주와 숙명공주의 집은 각각 27칸, 33칸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 현종은 그것 때문에 집을 조금 늘려주려고 했는데, 신하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심하다 싶은 경우가 조선 조정에서는 왕왕 있었다.

아무튼 이 와중에서 확실히 반대 의견을 관철시킨 양사 관원들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고, 그렇게 되자 양사 관원들은 관직을 내놓고 ‘피혐’이란 것을 하였다. 피혐이란, 직역하면 ‘혐의를 피한다’이지만 여기에서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일자 관직을 내놓았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자 홍문관에서 ‘처치’를 했다. 이 대목에 유의하자.

‘고전의 향연’에서 함께 강의를 진행하던 김용옥 선생께서 “처치? 처치가 뭐지?”라고 물었다. 이만한 일로 ‘처치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처치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치한다’ ‘조정한다’는 뜻이지, 요즘 영화에서 가끔 나오듯이 살벌한 뜻을 담은 용어가 아니었다. 의미론적(semantic)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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