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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친일은 없었다…학병 권유는 힘 기르라는 뜻”

육당 장손 최학주가 말하는 ‘내 할아버지 최남선’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친일은 없었다…학병 권유는 힘 기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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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족은 대치욕”

▼ 육당이 평소 강조하던 말씀이 있다면.

“도산(島山)의 가르침인 무실역행(務實力行·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과 진실정신(眞實精神·거짓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전하고 남기자)입니다. 아울러 지방색 타파도 강조하셨어요. 인사(人事)건 혼사(婚事)건 지방색을 가리지 말자는 뜻이지요.”

▼ 육당이 친일파라는 비난을 들은 건 언제쯤인가요.

“중학교에 들어가서였을 거예요. 국어, 역사, 공민…그런 순서로 육당의 글과 이름이 등장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육당의 역사적 행적과 공과에 관한 세평을 곁들여 알려주셨어요. 그러면 육당이 제 할아버지인 것을 아는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제 친구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선생님들한테 별로 시원한 설명이나 답변을 들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의문은 남아 있어요.”



▼ 할아버지가 왜 친일파로 몰렸다고 봅니까.

“모르겠어요. 정말 연구 대상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직후 육당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돼 한 달 정도 투옥됐을 때 당신이 직접 그런 혐의를 받게 된 이유를 ‘자열서(自列書)’라는 제목으로 일간신문 등을 통해 설명했습니다. 당시 받고 있던 혐의에 대해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로 입장을 밝히셨어요. 두 세대 정도가 더 지난 현 시점에서 다른 해석이 있더라도 저로서는 자열서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생각이 없습니다. 육당의 공과(功過)는 격랑의 시대를 한반도에서 함께 버텨낸 동시대인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의 ‘친일파’ 분류 논쟁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일 뿐 별 의미가 없어 보여요.”

1949년 3월 9~10일 ‘자유신문’에 실린 자열서는 육당이 수감 중이던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반민특위 위원장 앞으로 쓴 글이다. 최학주 씨는 2011년에 펴낸 저서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근대의 터를 닦고 길을 내다’에 자열서 전문을 공개했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반민족(反民族)의 지목을 받음은 종세(終歲)에 씻기 어려운 대치욕이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자열서에는 변절자라는 오명을 쓴 육당의 심경과 해명이 담겨 있다. 주요 대목을 살펴보자.

“친일은 없었다…학병 권유는 힘 기르라는 뜻”

육당이 직접 작성하고 조판한 독립선언서 원본.

“임박한 신운명에 대비하자”

(…) 문제는 세간의 이른바 변절로부터 시(始)하여 변절의 남상은 조선사편수위원(朝鮮史編修委員)의 수임(受任)에 있다. 무슨 까닭에 이러한 방향 전환을 하였는가. 이에 대하여는 일생의 목적으로 정한 학연(學硏) 사업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지고 그 봉록(俸祿)과 그리로서 있는 학구상 편익을 필요로 하였었다는 이외의 다른 말을 하고 싶지 않다. (…)

이 ‘조선사’는 다만 고래(古來)의 자료를 수집 배차(排次)한 것이요, 아무 창의와 학설이 개입하지 아니한 것인 만큼 그 내용에 금일 반민족행위 추구(追究)의 대상될 것은 일건일행(一件一行)이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

소위 대동아전쟁의 발발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일본인은 나를 건국대로부터 구축(驅逐)하였다. 고토(故土)에 돌아온 뒤의 궁액(窮厄)한 정세는 나를 도회로부터 향촌으로 내어몰았다. 이제는 정수내관(靜修內觀)의 기(機)를 얻는가 하였더니 이사의 짐을 운반하는 도중에서 붙들려서 소위 학병 권유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

처음 학병문제가 일어났을 때 나는 독자(獨自)의 관점에서 조선청년이 다수히 나가기를 기대하는 의를 가지고 이것을 언약한 일이 있었더니 이것이 일본인의 가거(可居)할 기화가 되어서 그럴진대 동경 일행을 하라는 강박을 받게 된 것이었다.

당시 나의 권유 논지는 차차(此次)의 전쟁은 세계역사의 약속으로 일어난 것이매 결국에는 전 세계 전 민족이 여기 참가하는 것이요, 다만 행복한 국민은 순연(順緣)으로 참가하되 불복한 민족은 역록(逆綠)으로 참가함이 또한 무가내하(無可奈何)한 일임을 전제로 하여 우리는 이 기회를 가지고 이상과 정열과 역량을 가진 학생 청년층이 조직, 전투, 사회 중핵체 결성에 대한 능력 취위성(取爲性)을 양성하여 임박해오는 신운명에 대비하자 함에 있었다. (…)

이상의 밖에 나에게 총집하는 죄목은 국조 단군을 무(誣)하여 드디어 일본인의 소위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에 보강 재료를 주었다 함이다. 상래(上來)의 몇 항목은 일이 다만 일신(一身)의 명절(名節)에 관계될 뿐이매 그 동기 경과 내지 사실 실태에 설사 진변(陳辯)할 말이 있을지라도 나는 대개 인묵(忍默)하고 만다. 그러나 이 국조문제는 그것이 국민정신의 근본에 저촉되는 만큼 일언의 변파(辯破)를 용훼(容喙)치 못할 것이 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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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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