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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남한강 상류 시인 신경림의 작은 왕국

충주 목계장터와 소태마을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남한강 상류 시인 신경림의 작은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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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상류 시인 신경림의 작은 왕국

소태마을 입구 남한강(왼쪽) 목계나루터 신경림 시비(오른쪽)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시 ‘갈대’의 한 대목이다. 지금처럼 정치판에 아예 주연으로 나서기 이전, 신경림의 시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갈대’도 그렇고, ‘목계장터’는 또 얼마나 민초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던가. 남한강의 상류는 신경림의 왕국이다. 목계대교 옆에 서 있는 거대한 입석엔 ‘신경림 시비 목계장터’라 새겨져 있다. “이 일대는 나의 영토”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목계장터가 대중에게 알려진 데에는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가 한몫했다고 봐야 한다.

야위어가는 고향

충주 땅을 휘감아 흐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은 ‘목계강’이다. 당연히 ‘목계리’가 있고 ‘목계나루’가 있다. 예전 목계나루는 중부지방 산물의 집산지였다. 남한강안(南漢江岸) 수많은 나루 중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시 ‘목계장터’에서 신경림은 자신의 고향 마을인 목계나루를 배경 삼아 떠돌이들의 삶과 생명력을 노래했다. ‘목계장터’란 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래의 시구는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신경림의 시는 민중의 삶과 민요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한국인에게는 익숙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분석이다. 목계장터는 강물이 말라붙은 갈수기에도 늘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남한강 수운의 가항종점(可航終點)이다. 조선시대에는 재정 확보를 위해 거둔 쌀과 베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인 가흥창(可興倉)도 있었다. 가까이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목계나루엔 인천항에서 소금, 건어물, 젓갈류, 생활필수품 등을 싣고 내륙으로 온 황포 돛배가 수십 척씩 붐볐다고 하니 화려한 과거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과거의 영화는 간데없다. 위용을 자랑하던 조창은 모두 허물어졌다. 주춧돌 몇 개와 깨진 기왓장만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남한강 상류 시인 신경림의 작은 왕국

소태면소재지

남한강 상류 시인 신경림의 작은 왕국

화로에 볶는 땅콩

수십 년 만의 추위라는 기상 캐스터들의 흥분된 예고에 걸맞게 목계장터의 겨울은 살을 에는 듯 춥다. 깊어가는 겨울 강은 거대한 물안개를 만들며 장관을 이룬다. 목계다리 입구, 위압적으로 서 있는 시비를 뒤로 하고 10여 분간 차를 달리면 ‘소태면’이라는 동네가 등장한다. 소태 밤으로 유명한 충주의 숨어 있는 땅이다. 이곳 사람들이 소태면을 얘기할 때에는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교통이 불편한 저 홀로 버려진 궁벽한 마을임을 연민하는 것이다. 소태면을 보면 도로망이 특정 지역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도로망에서 벗어나는 순간 절대오지로 전락한다.

소태면은 면소재지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수십여 채 건물이 전부인 초라한 마을이다. 평일임에도 인적을 찾기 힘들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칼바람에 나부끼는 플래카드다. 누구누구의 손자가 OO대학에 합격했다고 쓰여 있다. 젊은이들을 만나기 어려운 늙어가는 고향, 대학에 합격한 10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된다. 이만큼 두고 온 고향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간다.

면사무소를 뒤로하고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오량리’라는 작은 산촌이 등장한다. 순간 눈앞을 턱하니 가로막는, 대문에 붙어 있는 커다란 입춘첩(立春帖)이 눈길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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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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