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헤어진 애인이 아이 안고 찾아올 때

  • 입력2013-01-22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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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순이는 헤어진 애인인 병돌이의 딸을 낳았다. 병돌이는 딸이 태어난 줄 모르고 있었다. 갑순이는 병돌이를 상대로 친자확인 및 양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이 소송에서 이 아이가 병돌이의 딸임을 확인한 뒤 “병돌이는 딸의 과거 양육비로 920만 원, 장래 양육비로 딸이 성년이 되는 날까지 매월 7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병돌이의 처지에서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수 있다. 딸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아빠 노릇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던 갑순이가 갑자기 나타나 아빠의 의무만 이행하라고 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컸을 것이다.

    이 판결 소식을 듣고 불안해진 남성이 꽤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이혼이 느는 추세이니 양육 문제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양육권은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다. 부부 중 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지는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법원에 양육권자를 지정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이혼소송 시 양육권 청구도 함께 제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양육비 얼마나 부담할까



    양육권에 관해 합의할 때는 누가 얼마나 양육비를 부담할 것인지, 양육하지 않는 쪽이 아이를 어떻게 만날 것인지도 함께 합의해야 한다. 부모가 합의했더라도 양육권자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법원이 양육권자를 변경할 수 있다.

    이혼한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있으면 부모는 이혼 후에도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양육 책임을 갖는다. 보통 양육비라고 하면 아이를 키우지 않는 쪽이 아이를 키우는 쪽에게 주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쪽은 양육비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쪽도 양육비를 부담할 의무를 갖는다. 다만 전체 양육비 중 일부를 양육하지 않는 쪽에게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이혼한 부부의 수입과 재산이 얼추 비슷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월 100만 원이 든다면 양육하는 쪽은 본인이 50만 원을 부담하고 양육하지 않는 쪽에게 50만 원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양육비를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없다. 법원은 부모의 재산상황, 소득, 도시가구의 평균 소비 지출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사건마다 양육비를 정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가정법원은 양육비 산정 기준표를 만들었다. 이는 대도시의 이혼사건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육비 산정 기준표는 부모의 합산소득과 자녀의 나이에 따라 양육비에 차등을 뒀다. 예를 들어 자녀가 0~2세이고 부모 합산소득이 200만~300만 원이라면 양육비는 월 59만8000원이 된다. 합산소득이 700만 원 이상이면 양육비는 월 119만 원이 된다. 다른 재산은 없이 남편과 아내가 각각 월 400만 원과 300만 원씩 버는 부부가 20개월 된 딸을 낳고 이혼한 뒤 아이는 엄마가 키우기로 했다면 부부 합산소득이 700만 원이고 아이가 0~2세 사이이므로 월 양육비는 119만 원이 되는 것이다. 이때 엄마는 딸의 아빠에게 양육비로 월 68만원을 양육비로 청구할 수 있고 나머지 51만원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1994년 이전 대법원은 혼인 외 자녀의 실제 아버지는 ‘인지’ 절차에 의해 법적으로 친부-친자 관계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혼인 외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르면 병돌이는 갑순이로부터 아이를 낳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한 이후에만 양육 의무를 지기 때문에 그전에 발생한 양육비는 부담하지 않아도 됐다.

    자식의 존재 몰라도 의무 져야

    그런데 대법원은 1994년 판결에서 “부모의 자녀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과거의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종전의 입장을 변경했다. 이후 법원은 과거 양육비의 부담을 인정해왔다.

    다만 법원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엔 과거 양육비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육자가 홀로 자녀를 양육한 것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경우, 자녀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어긋나는 경우다. 이러한 사정이 있다는 증거는 양육비 청구를 당한 쪽(주로 친부)이 제시해야 한다.

    아이가 있는 줄 몰랐던 친부에게 과거의 양육비를 한꺼번에 부담시키면 친부에게 큰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법원은 친부의 이러한 처지를 고려해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의 양육비 산정기준과 이전 기간의 양육비 산정기준을 다르게 둔다.

    그렇다면 이혼한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양육 문제와 관련된 법원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엄마인 성춘향은 법원에 의해 아이의 양육권자로 지정됐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고 있던 아빠 이몽룡은 법원 결정 이후에도 아이를 계속 양육했다. 참다 못한 춘향은 고집을 부리는 몽룡을 상대로 아이를 인도해줄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몽룡은 “그동안 내가 키웠으니 양육비를 달라”고 했다.

    몽룡이 양육한 기간은, 이혼소송을 진행해 판결이 선고되기 전의 양육기간과 판결이 선고된 후의 양육기간으로 나뉠 수 있다. 전자는 적법한 양육이고 후자는 불법한 양육이다. 춘향은 불법 양육기간 의 양육비는 몽룡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양육비 지급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금전채권에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듯이 양육비 청구에도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있다. 이는 그 양육비가 구체적인 권리가 되는지 여부에 따라 다르다. 다시 말하면 양육비가 부모의 합의 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그 양육비 청구에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반면 갑순이와 병돌이처럼 양육비에 관해 협의할 기회조차 없는 경우의 양육비 청구권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재산권으로 볼 수 없으며 소멸시효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아이를 키우는 쪽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아이를 키우는 쪽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이때 ‘양육비를 지급할 사람이 이미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또 의무를 불이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할 사람에게 미리 상당한 금액의 담보를 제공하라는 담보제공명령을 함께 신청할 수 있다. 담보제공명령에도 불복종한다면 법원은 양육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할 것을 명할 수 있다. 법원의 이행명령이 있었는데도 이를 불이행하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고 이에 더해 30일 이내 감치를 당할 수 있다.

    헤어진 애인이 아이 안고 찾아올 때
    또한 이를 키우는 쪽은 양육비 지급 의무자의 고용주를 상대로 양육비를 직접 지급하도록 명령해줄 것을 신청할 수도 있다. 최근 신설된 직접지급명령제도다. 양육비 지급 의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가정법원에 직접지급명령을 신청하면 법원은 고용주에게 양육비 직접 지급을 명령한다. 이 경우 고용주는 양육비 지급 의무자인 직원의 급여에서 양육비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제해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만일 고용주가 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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