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세계경제는 점점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삶은 점점 팍팍해질까

경제위기의 본질

  • 김동은 | 마시 코리아 부사장,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객원교수 조태진 | 변호사

    입력2014-03-18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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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소득, 무역흑자 등 국내 경기지표가 빠르게 나아진다. 언론은 경제전문가를 앞세워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경기가 회복된다’는 장밋빛 기사를 쏟아낸다. 그런데 왜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하는 걸까.
    세계경제는 점점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삶은 점점 팍팍해질까
    “세계경제위기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록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2008년 이후 끝이 보이지 않던 세계경제위기의 긴 터널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음을 선언한 셈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FRB)는 미친 듯이 찍어대던 달러의 양을 줄여나가는 이른바 테이퍼링(Tapering)정책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이제 돈을 찍어 경기 부양을 더는 하지 않더라도 세계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이른바 ‘출구전략’이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테이퍼링 시행을 결정하자마자 그동안 미국의 무분별한 달러 발행에 의존하던 세계 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세계 각국 증시는 폭락했고, 신흥경제국들을 중심으로 또다시 경제대란이 찾아올 것이라는 위기론이 대두되었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긴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세계 각국 지도자, 경제 전문가, 주류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우리는 어쩌면 더욱 기나긴 경제위기의 터널로 접어든 건지도 모를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세계경제가 회복된다는 그들의 주장과 달리 우리 삶은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팍팍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노인 빈곤율 1위, 2012년까지 공교육비 민간 분담률 12년째 1위, 실질적 미혼율 1위, 청년 실업률 6위, 출산율 OECD 34개국 중 34위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매우 불량한 징후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OECD 국가들 중 자살률이 8년째 1위였다거나, 행복지수 면에서 OECD 국가 34개국 중 32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상할 일이 아닐 정도다.

    세계경제위기 진짜 원인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덮어놓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힐링(Healing)하라’ 혹은 ‘자신을 다그쳐 더 높은 스펙을 갖추라’고만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과연 이러한 노력이 우리가 처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육박할 만큼 세계경제 상황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가다. 또한 현재 우리가 겪는 공통적인 불행의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 극심한 빈부격차, 만성적 경제 침체와 소비·투자 위축 등 세계경제위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이제는 기업과 개인이 스스로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도 세계경제위기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함께 공부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진단하는 일이다. 흔히 사람들은 세계경제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을 소홀히 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병을 오진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순간, 환자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뿐 아니라 수술이나 약물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생명에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분석과 그에 따른 대응은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쉽고 달콤한 길

    세계경제위기를 진단하는 관점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쉽고 달콤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렵고 힘든 길’이다. 먼저 세계경제위기 상황의 주된 원인이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의 투자·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가 ‘실물 경제’ 속에서 투자하고 소비할 동기를 찾지 못했고, 경제활동이 부진한 탓에 일시적으로 경기가 침체한 것이다.

    이 같은 분석으로는 ‘쉽고 달콤한 길’은 매우 효율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즉 세계경제가 언젠가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므로 기업과 가계의 투자·소비 심리를 부추겨 더욱 왕성한 경제활동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는 솔선수범해 빚을 내어 무리한 복지정책을 펴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행함으로써 시중에 인위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최대한 낮추고 미친 듯이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 과정을 통해 시중 통화량을 늘려 기업과 가계가 돈을 쉽게 빌려 소비하고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업과 가계는 비로소 ‘실물경제’ 속에서 소비하고 투자할 동기를 찾아 전체적으로 경제가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현재 세계 각국의 정부, 금융기관, 주류 언론, 대다수 경제학자가 내놓은 분석이다. 이러한 진단 배경에는 현재의 세계경제위기가 단순히 잠시 쉬면 금방 회복될 가벼운 감기몸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그들의 처지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는 이제껏 수차례 반복되어온 다른 경제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기 순환의 한 국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에 반해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경제위기 상황을 전혀 다르게 진단한다. 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선진국의 산업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그 빈자리를 ‘빚을 통한 과소비와 투기, 금융경제의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메워온 안일한 경제 정책으로부터 이번 위기가 비롯됐다고 본다. 선진국은 이미 산업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해 더 이상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기 어려우므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산업 경쟁력 강화)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리 대규모로 소비·투자 심리를 자극하더라도 결국 경제 회복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어렵고 힘든 길

    이들의 설명은 1950~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 선진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룰 때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후 복구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무역량이 증가했으며, 교통·에너지·통신 등 신기술 전파, 과학기술·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이 한데 어우러져 폭발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길지 못했다. 1970년대 들어 이러한 성장에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선진국들의 장점을 모방하며 급성장해 이들을 크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계경제의 중심 축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가는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반면 삶의 질에 대한 선진국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다. 경제성장은 날로 둔화돼 가는데 국민의 소비 수준은 높아만 갔고, 복지에 대한 열망 역시 수그러들 줄 몰랐던 것이다. 이럴 때 지혜로운 정치인이라면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며 국민에게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으니 다 함께 허리를 졸라매자”고 설득하며 산업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꾀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당장 표를 구걸해 정치 생명 연장하기에 급급했던 대부분의 정치인은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소비·복지 수준을 유지할 다른 방편을 찾았다(국민 역시 정치인이 제공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기꺼이 정치적 몰락에 동참하게 된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등 세계 주요 정치인들이 이른바 ‘적극적 통화정책을 통한 경제 발전’ ‘신자유주의’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정책’과 더불어 ‘금융을 통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리고 훗날 이러한 정책은 시중의 흔해진 돈이 주식·부동산 등 금융시장으로 몰리고 그로 인한 금융의 거품이 터지며 발생한 ‘금융시장의 위기’, 대기업·금융소득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유층과 근로소득으로 연명하는 서민 사이의 극심한 빈부 차에 따른 ‘사회적 위기’, 정치인과 금융·경제인의 야합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며 마침내 2008년 세계경제위기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 중 하나이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세계 최대 규모의 보험회사 AIG의 몰락 등으로 상징되는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이면에는 사실 이 같은 세계경제 속 오랜 기간 누적된 고질적인 병폐, 즉 세계경제 불균형의 위기, 금융시장의 위기, 사회적 위기, 정치적 위기가 주요한 원인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다.

    세계경제는 점점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삶은 점점 팍팍해질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락했던 주가지수가 회복하고 무역수지 등이 개선되었지만 서민의 생활 여건은 오히려 2008년보다 더 열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잘못된 진단, 잘못된 처방

    세계경제위기를 진단하는 두 가지 시선인 ‘쉽고 달콤한 길’과 ‘어렵고 힘든 길’,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그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쉽고 달콤한 길’을 고수해온 우리 사회가 겪어온 문제점들을 들추어보더라도 ‘쉽고 달콤한 길’이 갖는 문제점은 금방 드러난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경제 회복을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정부 재정적자,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한 취득세 감면 등 각종 ‘쉽고 달콤한’ 정책을 단행했다. 덕분에 2011년 2/4분기 이후 1% 미만에 맴돌던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2013년 2/4분기에 1.1%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는 위와 같은 일련의 정책 덕분에 수출이 늘어나고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해 우리 경제도 점차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우리 서민의 경제지표는 더욱 나빠져 같은 기간 물가 상승률은 소득 상승률을 넘어 가계경제에 주름이 깊어졌다. 또한 부동산 거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서민이 무분별하게 부동산시장에 뛰어들어 하우스 푸어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이미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빚을 져 소비와 투자는 도저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가계는 지갑을 닫아버려 내수 시장은 더욱 취약해졌다. 은행 기준금리는 하락했다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시중금리는 여전히 높아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기업 대출이 어렵다.

    증세 없는 복지를 부르짖던 이번 정부가 갑자기 방침을 바꾸어 소득세율을 높이는 바람에 자본·금융 소득 없이 근로소득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서민 대부분은 앞으로 더욱 힘겨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쉽고 달콤한 길’은 ‘세계경제는 좋아지는데 우리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인 ‘쉽고 달콤한 길’의 잘못된 처방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설상가상 앞으로 세계경제위기는 더욱 급격한 속도로 악화될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우선 그동안은 경제성장에 관한 한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자연환경·에너지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훼손·고갈되고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변해 종국엔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방사능 오염과 전력 부족으로 인한 경제 침체를 겪은 이웃 나라 일본이 그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깡통 걷어차기

    또한 심각한 고령화 저출산 문제로 2060년경 청년 한 명이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인구 구조의 변화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인구 구조의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미리 계획을 세우고 대비했어야 할 문제인데, 우리의 경우 그 시기를 놓쳐버려 앞으로의 후폭풍이 더욱 우려되는 바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현재 1000조에 달하는 가계 빚이 정부 빚으로 흡수되는 경우다. 2009년, 과거 200년에 걸친 전 세계 금융위기 사례를 조사한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에 따르면 경제위기 이전에는 가계와 기업 등 민간에 몰려 있던 빚이 경제위기 이후 정부 빚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정부가 가계·기업 빚을 떠안아 정부 빚이 GDP 대비 90%를 넘을 경우 심각한 수준의 경제위기 상황이 최소 23년 이상 계속되고, 이 기간 중 실질 GDP 성장률이 당초 기대치보다 매년 평균 1.2% 이상 하락하고, 빚을 모두 갚을 즈음엔 이미 실질 GDP 성장률이 당초 기대치보다 평균 25%가량 하락한다는 사실 등도 함께 밝혀냈다.

    정부 빚이 위험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단지 정부 재정이 부실해진다는 의미를 넘어 해당 국가가 만성적인 경제 침체, 경제위기 상황으로 접어듦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정부 빚은 GDP의 30%대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동안 간과되고 있다 최근 문제의 심각성이 집중 부각되는 공기업 빚,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복지비용 증대, 연금 고갈 등 정부 빚을 급격히 늘릴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나라 역시 조만간 ‘정부 빚의 덫’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세계경제위기는 지금, 아니 앞으로도 오랜 기간 해소되지 않을 세계경제의 고질이 돼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해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지금 당장의 위기를 잠시라도 면피하려고만 한다. 고통스럽게 ‘어렵고 힘든 길’을 가기보다 공동체의 운명이야 어찌 되든 나 하나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쉽고 달콤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모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러한 임시방편적 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를 ‘Kicking the Can down the road’ 즉 ‘깡통 걷어차기’라 표현했다. 또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외면한 채 길 위의 깡통을 앞으로 차내듯 다음 세대, 다음 세대로 자꾸만 전가하다가는 결국 세계경제가 나락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도 덧붙였다. ‘쉽고 달콤한 길’에만 의존한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해결책을 크게 반성하며,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용기를 갖고 기꺼이 ‘어렵고 힘든 길’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대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한 방향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쳐온 세계경제를 본래의 균형 잡힌 형태(Back To Balance)로 바로잡아가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불균형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현재 우리가 맞이한 모든 불행은 오랜 세월 누적된 국가, 기업, 가계 전반에 걸친 불균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던 일들이, 우리의 욕망과 이기심이 넘쳐 균형을 잃는 순간 한꺼번에 망가져 버렸다. 새로운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할 삶의 해답이란 화려하고 근사하며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다. 정부, 기업, 개인이 그동안 ‘쉽고 달콤한 길’의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이 불균형으로 치닫기 전의 상태, 즉 균형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현재의 왜곡된 시스템을 본래대로 되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다시금 균형 있게 발전해나갈 것이고, 사회 구성원 각자가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분배받는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극단으로 치우친 패러다임은 무엇이며, 되돌아가야 할 균형점은 어디인가? 먼저 국가는 왜곡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깨닫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자본주의를 되살려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신자유주의만이 자본주의가 나아갈 유일한 길인 양 믿으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주의에 젖어 살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구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신자유주의적 폐단을 바로잡고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기업들 역시 한시바삐 ‘주주 이익 극대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젠가부터 ‘주주 이익 극대화’가 기업의 유일한 존재 이유이자 복음인 양 온 세상에 울려 퍼졌지만, 그 합당성은 어디서도 증명된 바 없고 뚜렷한 역사적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업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주주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판단 기준으로 두어왔으며, 정작 기업 생산에 직접 관여한 이해관계자들(노동자, 소비자, 협력 업체, 지역사회 등)은 기업의 성과로부터 소외됐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기업 문화 특유의 문제점인 대기업 총수 이익 극대화,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 이익 극대화의 늪에서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업은 특정 기득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유물이 아니라, 기업 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야 할 사회적 공기(公器)다. 지금껏 기업은 이해관계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면서 마치 시혜(施惠)하듯 굴었지만, 앞으로는 점차 필수적인 절차로 인식될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지난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껏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비해왔다. 욕망을 부추기는 시대적 흐름 속에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에 빠져서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조화를 이룬 행복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과거와 같은 경제적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로부터 모든 행복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인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는 나 하나의 욕심을 위해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잘살아야 나도 잘살 수 있다는 상생과 중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이러한 가치가 미덕으로 권장되는 ‘선택사항’이었다면, 이제는 모두 함께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 자체가 무너져버리고 마는, 생존을 위한 ‘필수사항’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가 처한 시스템적 한계상황이 위태롭고도 절박하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인지해야 한다.

    언뜻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너무나 윤리적이고 공자님 말씀과도 같은, 다소 허무해 보이기까지 한 이 도덕적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한 이야기냐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낄 만큼 우리는 이미 ‘바른 길’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고, 다시 ‘바른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세계경제위기로부터, 우리를 짓누르는 불행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멀리 있다 생각하는 정답은 실상 우리 안에 이미 들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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