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김일성대 출신 중국대사관 M씨 정체는?

‘블랙 對 블랙’ 유우성 사건 속 공작전

  • 특별취재팀

    입력2014-03-20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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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중국·북한 국적 모두 가진 유우성
    • 2010년부터 유우성 의심하며 역용공작한 국정원
    • 중국은 자국 내 한국 블랙이 매우 불편하다
    김일성대 출신 중국대사관 M씨 정체는?

    민변 변호사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유우성 씨(가운데).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여권법 위반 혐의에서는 유죄를 받았다. 여권법 위반이 확정되면 그는 추방될 가능성이 크다.

    유우성을 장본인으로 한 서울시 간첩 사건의 공방이 치열하다. 조작시비와 자살시도, 화교(華僑), 이중간첩, 블랙요원, 선양(瀋陽), 싼허(三合), 화룽(和龍) 등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지명이 난비한다. 난마처럼 얽힌 이 사건을 풀어보기로 하자.

    먼저 국정원 부분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대공(對共)수사국은 국정원 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조직으로 꼽힌다. 이는 대공만의 특징이다. 기무사나 경찰에서도 간첩을 잡는 조직은 그들끼리만 뭉친다. 기관이 달라도 대공이면 통하지만, 대공이 아니면 같은 기관에서도 거리를 두는 것이 간첩 잡는 요원들의 특징이다.

    이유는 비밀이 많기 때문. 대공 수사는 수년에 걸쳐 이뤄진다. 증거가 확실한데도 잡지 않고 내버려둠으로써 더 많거나 더 거물을 잡는 역용(逆用)공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A팀이 하는 일을 B팀이 알지 못하게 하는 ‘차단의 원칙’도 철저히 적용된다. 따라서 팀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대공수사국은 국제화가 덜 된 조직이다. 국내를 주무대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를 경유한 간첩 침투가 적지 않기에 일부 요원을 해외로 내보낸다. 조총련이 있는 일본, 북한과 가까운 중국이 대표적이다. 이들 요원은 영사 타이틀을 달고, 주재국 정보기관에는 국정원 요원이라고 밝히는 화이트가 된다. 이번 사건에 등장한 선양 총영사관의 이인철 영사가 그런 경우다.

    화교 알고도 풀어준 ‘역용공작’



    북한에는 2만여 명의 화교(華僑)가 산다. 유우성은 1980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년제 경상의학전문학교를 나온 화교 3세다. 그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유가강’. 그는 24세인 2004년 몰래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온 후 ‘유광일’이라는 이름으로 탈북자 행세를 하다, 한 달 뒤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도착한 탈북자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수사기관의 합동신문(합신)을 받는다. 합신은 깐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쩐 일인지 그는 탈북화교 유가강임을 들키지 않았다. 순수 탈북자 유광일로 인정받은 것. 2007년에는 연세대 중문과 3학년에 편입해 2011년 졸업했다. 4학기를 4년에 걸쳐 다닌 것인데 그때 특이한 행동을 했다.

    2008년 1월 19일 그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 난민 신청을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제3국에 나가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드문 일이다. 그는 탈북 난민으로 인정받아 영국 정부로부터 매주 40파운드(6만8000원 상당)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때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6개월 뒤인 7월 17일 어학연수를 끝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귀국했다.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2004년 미국을 시작으로 선진국들이 앞다퉈 ‘북한인권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한국은 미제정). 이 법은 탈북 난민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북한 민주화를 위한 예산 집행을 인정한다. 따라서 여러 탈북단체가 이 법을 제정한 나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움직이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돈이 없어’활동이 미진했던 탈북자 단체들의 살림이 순식간에 넉넉해진 것. 단체 수도 크게 늘었다. 연세대생인 유씨는 여러 탈북자 단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자금을 만질 수 있었다는데 그는 그것을 기화로 ‘환치기’를 했다.

    그 무렵 국정원은 그가 몰래 북한을 다녀왔다는 것과 탈북한 화교라는 첩보를 확보했다. 한국에 올 때 그는 전문학교 졸업증을 갖고 왔는데 거기에 이름이 유가강으로 돼 있었던 것 등이 그 근거였다. 따라서 ‘스리 쿠션’방식으로 조사해보기 위해 인천해양경찰서에 그의 환치기 사실을 알려주었다.

    2009년 12월 14일 인천해경은 그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 동부지검에 송치했다. 이 조사에서 그는 북한에 다녀왔다고 자백했다. 이유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다녀온 것이라고 했다.

    간첩 혐의는 없지만 사후 신고도 없이 북한을 다녀온 것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탈북자가 간첩 활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고향을 다녀온 것은 봐주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김일성대 출신 중국대사관 M씨 정체는?

    유우성 사건은 함경북도 회령과 중국 지린성의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를 주무대로 한다. 지도에서 보듯 룽징 시 안에 있는 싼허(三合)진은 함북도 회령을 마주보고 있다. 그 왼쪽에 화룽(和龍)시가 있다.

    탈북여성으로 입국한 유가려

    국정원은 그가 화교인지 탈북자인지 궁금해, 그에 대한 증명을 요구했다. 한참 후 그는 북한에 있을 때 발급받았다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을 제출했다. 재북(在北) 화교는 이 동맹의 맹원이 될 수 없다. 국정원은 이 맹원증을 보고 바로 가짜임을 알아차렸다.

    이 맹원증은 1995년 7월 2일 발급한 것으로 돼 있었는데, 그땐 이 동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있다가 1996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됐다. 북한은 1997년 7월 8일부터 문서와 증명서에 주체 연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맹원증에는 ‘1995년’과 함께 ‘주체 84’라는 북한 연호가 수기(手記)돼 있었다.

    더 웃긴 것은 사진이었다. 1995년이면 그는 만 15세의 소년인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진이 붙어 있는 것. 맹원으로 활동했다면 ‘맹비납부란’에 한 번이라도 맹비를 납부한 기록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다. 그런데도 그를 기소유예로 풀어주게 했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처벌 조항이 없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음지에서 더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더 크고, 더 확실한 것이 걸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역용 공작’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풀려난 그는 주민등록번호가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돼 있다며 주민번호를 바꾸고 이름도 유광일에서 유우성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연세대를 졸업한 2011년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것을, 대공수사국은 은밀히 지켜보았다.

    2년 뒤인 2012년 10월 30일 드디어 뭔가 걸려들었다. 중국에 들어갔던 유우성이 ‘유광옥’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함께 제주로 온 것. 이 여성은 탈북자라고 밝혔고, 바로 합신을 받게 되었다. ‘자신감’이 있었던 국정원은 합신을 강화해 그로부터 ‘유가강(유우성)의 친동생인 유가려’란 자백을 받아냈다. 그리고 유우성의 가짜 맹원증 내력도 알게 됐다.

    유가려는 “오빠가 탈북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연락을 해오자, 아버지(유진룡)가 함북도 보위부 반탐부를 찾아가 전했다(반탐은 방첩과 비슷한 의미). 그리하여 도 보위부 부부장(성명 미상)의 지시로 한현남이라는 지도원이 유광일 명의로 된 맹원증을 만들어주었다. 아버지는 이를 중국에 사는 친척 국상걸 씨를 통해 한국에 있는 오빠에게 전해주었다”는 요지의 진술을 했다.

    국정원은 유우성이 한국에 온 2년 뒤인 2006년 처음 밀입북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것이 지금 문제가 된 그 밀입북인데, 밀입북한 이유는 매우 ‘인간적’이었다.

    회령을 비롯한 국경 부근의 북한 지역에서는 중국 휴대전화가 잘 터진다. 따라서 한국에서 간 사람들은 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고 중국으로 불러내 만날 수도 있다. 이를 역이용하면, 국정원은 북한에 민주화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총력을 다해 중국 휴대전화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유가려는 “2006년 5월 회룡에서 어머니(조인화)가 중국 휴대전화로 통화하다 보위부원에 적발돼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 그런데도 보위부원은 중국 휴대전화만 챙기고 쓰러진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어머니 사망 소식은 한국에 있던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유씨는 즉시 중국 싼허(三合)로 갔다. 싼허와 회령 사이에는 ‘해관(海關)’이라고 하는 북·중 출입국사무소가 있다. 중국 해관은 변방대가 관리한다. 그는 변방대와 줄이 닿은 중국인 조하여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은 중-북 국경지역 주민에 한해서는 변방대에서 발급한 통행증만 있어도 북한 방문을 허가한다.

    2006년 밀입북 때 포섭(?)

    유우성은 화교이지만 북한에서 자랐기에 중국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 조하여는 유우성과 나이가 비슷한 자기 아들 조빈화의 호구(호적과 비슷함)에 있는 사항을 이용해 그의 본명인 ‘유가강’ 명의로 된 가짜 통행증을 발급받게 해주었다. 통행증에는 1년짜리 복수(갑종)와 단수(을종)가 있는데, 그가 손에 쥔 것은 단수 통행증이었다.

    양측의 주장은 여기에서 갈리기 시작한다. 유우성은 어머니 삼우제 등만 치르고 돌아왔다는 것이고, 국정원은 유가려의 진술을 근거로 그때 도 보위부에 포섭돼 협력자가 됐다는 것이다. 국정원 측은 “그때 유가려는, 심장마비로 쓰러진 어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만 챙긴 보위부원을 매우 원망하며 ‘지긋지긋한 도 보위부와의 관계를 벗어나고 싶다’ ‘나는 남조선으로 침투해 오빠를 지원해주라는 도 보위부의 지시를 받아 왔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유가려는 “북한에 들어온 오빠는 잠시 중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후 도 보위부에 검거됐다. 아버지가 중국 돈 3000위안(약 50만 원)을 써서 풀려나게 했는데, 도 보위부는 오빠를 풀어주면서 한국에서 협조자로 활동할 것을 지시했다. 그 때문에 오빠는 2009년 8월과 2012년 1월 사이 세 번 더 밀입북해 도 보위부의 김철호 등을 만났다. 나도 도 보위부의 지시로 중국 옌지(延吉)로 가 지내다가, 오빠가 e메일로 보내준 200여 명의 탈북자 이름과 주소 자료를 USB에 담아 몰래 강을 건너가 도 보위부에 전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출입경 기록 떼어줘

    국정원은 유우성이 2007년 5월 옌지로 가서 국상걸 씨의 도움으로 유가강 명의로 된 호구(호적)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는 완벽한 중국 국민이 된 것.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중국 측의 반대로 아직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다른 이름(본명)으로 중국 호구를 취득한 것은 불법이 된다. 탈북자가 아닌데도 탈북자정착지원법 등에 따라 지원금을 받은 것도 물론 불법이다.

    그런데도 계속 한국인 행세를 하다 2011년 6월 서울시 공무원(계약직)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를 체포한 국정원은 2013년 1월 29일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은 국가보안법과 여권법, 탈북자정착지원법 등 위반 혐의로 그를 구속 기소했다. 그는 이 위기를 2010년 동부지검 조사 때처럼 벗어나려고 했다. 화교가 아니라 탈북자라는 것부터 증명하려고 한 것.

    이를 위해 아버지에게 또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중국 옌지로 가서 대리인 자격으로 유가강 명의로 된 출입경 기록을 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출입경 기록이 이상했다. 단수 통행증으로 북한에 다녀왔으면 ‘출-입’만 기록돼 있어야 하는데, ‘출-입-입-입’으로 돼 있었던 것. ‘출-입-출-입’은 가능해도 ‘출-입-입-입’은 불가능하다.

    이 기록은 5월 23일 오후 2시 54분 그가 북한으로 나갔다가(출), 5월 27일 오전 10시 24분과 11시 16분, 그리고 6월 10일 오후 3시 17분 중국으로 돌아온(입) 것으로 돼 있었다. 이에 대해 유우성과 그를 도와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측은 “한 번만 출-입 했는데, 컴퓨터 오작동으로 가운데 입-입이 더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정원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는 잘만 이야기하면 단수 통행증으로도 복수 출입을 할 수 있다. 유가려도 오빠가 잠시 북한을 나갔다 왔다고 증언했다. 두 번째로 북한에 들어왔을 때 그가 도 보위부에 검거됐기에, 그의 아버지는 중국돈 3000위안을 써서 풀려나게 해주었다. 본래는 ‘출-입-출-입’으로 기록됐어야 하는데, 컴퓨터를 치는 이가 실수해 ‘출-입-입-입’으로 처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민변 측은 유가려가 합신에서 한 진술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않고 한 것이라 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물고 늘어졌다. 유가려는 불법 입국하려고 한 것 외에는 한국에서 지은 죄가 없으니 추방해야 한다. 국정원은 유가려의 진술이 법적인 증거력을 갖게 하기 위해 2013년 3월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그가 한 진술에 대한 증거보전절차를 밟게 한 후 그해 7월 중국으로 보냈다. 그 후 유가려는 합신에서 한 진술을 모두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8월 22일 선고를 했는데 다른 것은 국정원 측 주장을 수용했으나 유가려 진술 부분은 법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며 간첩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을 통해 항소한 국정원은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2001년 발효된 한중 형사사법공조 조약을 근거로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상위인 지린성 공안국에 유가강 명의의 출입국 기록을 요청한 것. 그러나 이 조약은 모든 나라가 범죄자로 보는 일반 형사사건에는 적용해도, 국가보안법처럼 특정한 나라(이 법의 경우는 한국)에만 있는 법을 근거로 한 사건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지린(吉林)성 당국이 거부하자 국정원은 블랙요원을 동원해 해결하려 했다. 중국에서 ‘김 사장’으로 불린 김 과장을 동원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외국인은 보이지 않는 감시를 당한다. 이를 잘 아는 김 사장은 협조자(에이전트)를 동원해 활동해왔다. 그 협조자가 한국에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은 후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속된 조선족 김모 씨다.

    행정전산망이 발전한 덕분에 서울 서대문구에 주소지를 둔 사람은 신분증이 있으면 부산 해운대구에서 자기 서류를 뗄 수 있다. 중국도 비슷하다. 김씨는 옌볜조선족자치주 산하 화룽(和龍)시를 파고 들어갔다. 화룽의 공무원을 포섭해 유가강 명의의 출입경 기록을 떼어온 것.

    “중국도 한국에 블랙 뿌린다”

    이 기록에는 같은 시간에 유씨가 ‘출-입-출-입’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서가 중국 기관에서 발행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럴 때에는 우리 외교관을 통해 그 문서가 제대로 발급된 것인지 확인한다. 국정원은 선양영사관에 나가 있던 이인철 영사에게 이 일을 맡겼다. ‘한 식구’인 그는 화룽시에 확인해보지도 않고 확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것이 제출되자 2심 재판부는 주한 중국대사관에 두 기록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아봐달라고 문의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중국대사관 측은 유우성 측이 가져온 것이 진짜고 국정원 것은 가짜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런데 요상한 일이 발생했다. 문의는 법원이 했으니 답변도 법원이 받아, 피고와 원고 양측에 보내주든지 해야 하는데, 법원이 받기도 전에 먼저 피고 측이 받아 버린 것. 민변은 법원이 답변을 받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대사관 측이 유우성 것은 진짜이고 국정원 것이 가짜”라고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국정원이 문서를 조작했다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이 대목에서 적잖은 관계자는 중국대사관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법원이 물었는데 왜 민변에 먼저 알려주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 답변을 보내준 중국대사관의 M씨(여)는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관계자들은 북한 보위부와 중국 측의 커넥션을 의심한다.

    “중국은 한반도가 안정된 분단 상태로 있는 것을 원한다. 그 때문에 남과 북을 놓고 수없이 저울질하는데, 최근 북한이 크게 밀리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정보원이 중국을 누비고, 중국 국민인 조선족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자국민인 유우성이 한국에서 간첩죄로 검거되는 것도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만 중국에 블랙을 넣는다고 보면 오산이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도 다양한 방법으로 블랙을 침투시켜 정보 수집을 하고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한국 여론을 돌려놓으려고 한다. 정보와 공작의 세계를 안다면 북한 보위부와 중국 외교부 간의 커넥션도 의심해봐야 한다. 역용공작은 모든 나라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대사관의 한마디에 온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현대판 사대주의다.”

    한 소식통은 “지금 국정원은 2015년 북한 급변 상황을 만든다는 목표로 대북공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간첩과 종북세력을 잡는 방첩에도 큰 비중을 둔다. 국정원이 움직이면 보위부 등 북한 정보기관과 국가안전부 등 중국 정보기관도 뛸 수밖에 없다. 지금 한반도에는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의 정보기관이 몰려 ‘바보만 죽는’ 치열한 첩보전, 공작전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적법한 증거 확보 중요

    국정원의 치열한 정보활동은 격려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북한에서 찍었다고 하는 등 수준이하의 활동으로 증거 위조 논란에 휘말린 것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유우성 씨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와 간첩 증거를 위조했다는 것이 별개라고 해도 그렇다.

    이 사건 판결은 법원이 간첩 사건에 대해서도 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 법원은 피고가 간첩활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만 따지지 않고, 국정원이 제시한 증거가 정확한지, 그리고 적법하게 수집했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보겠다는 방침을 보여주었다.

    국정원이 협조자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협조자와의 관계를 돈으로 구축하다보면 김씨처럼 조작한 자료를 제공하는 이도 나오게 된다. 국정원의 가장 큰 실수는 목표에 과도하게 집중해 자료 검증을 게을리 했다는 점. 이는 정보활동의 기본을 무시한 큰 실수다. 2015년 북한 급변 상황 유도 등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국정원은 내부 감찰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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