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업, 운동, 명문고 진학률 등 최고
- 사립초 마치고 조기유학 가는 재벌 4세 늘어
- 재벌가 2세대 일본→3세대 미국 MBA→4세대 중국 유학 선호
- 경기초, 영훈초, 국제학교, 대원외고 선호
- 재벌가 학맥은 혼맥, 사업까지 이어져
지난해 비경제적 사회적배려대상자(한부모 가정) 전형으로 영훈국제중에 입학한 이군은 서울시교육청의 국제중 감사에서 영훈국제중이 일부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빚어지자 결국 자퇴했다. 지난해 6월 초 일부 언론이 “이군이 한국에서 교육받기 어렵다고 판단, 상하이에 갈 예정”이라고 보도하면서 그의 상하이행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신동아’ 취재 결과, 이군은 상하이가 아닌 미국 사립 기숙중학교에 재학 중이다. 지난해 9월 열린 입학식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에 전화와 e메일로 확인을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학생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기자는 이군이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빨강, 핑크, 보라색 옷을 입고 등교하는 학교 행사에 참석한 사진 등을 확인 했다. 사진 중에는 이군이 동양계 학생 5명과 함께 분홍 넥타이와 바지를 맞춰 입고 밝게 웃는 모습도 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진학률이 80%가 넘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유층인 재벌기업 총수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는 국민적 관심사다. 재벌가 자녀는 학창시절에 학업 능력을 기를 뿐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재벌 총수는 자녀들이 향후 기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배우게 하기 때문에, 이들이 받는 교육에는 재벌 총수들의 미래관이 투영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유명 사립초 예체능 수업 광경.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신동아’는 국내 주요 대기업 오너가(家)의 청소년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취재했다. 재벌 4세 대부분은 국내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해외 유학을 가거나 국내 국제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가 자녀가 가장 많이 선택한 학교는 서울 영훈초, 경기초 등 전통적 명문 사립초등학교와 경기 성남에 위치한 서울국제학교(SIS),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국제학교, 서울 대원외고 등이었다.
‘신동아’는 재벌가 자녀들의 취학 실태를 파악했지만 그들이 미성년자임을 감안해 안전한 학교생활과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이름과 학교, 학년을 특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재벌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나 그들이 받는 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감안해 일반적인 정보는 공개한다.
취재 결과 LG, 현대차, 롯데 등 다수의 대기업 오너가 자녀가 국내 국제학교에 진학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학교는 부모 중 한 명 또는 본인이 외국인이거나, 본인의 외국 거주 경력이 3년 이상이면 지원 가능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두 자녀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자녀 등은 미국에서 태어나, 속지주의를 따르는 미국법에 의해 국제학교 입학 자격이 있다.
국제학교는 수업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입학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영어, 수학 등 교과목 필기시험을 보고 별도의 면접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안윤정 에듀프로아카데미 부원장은 “재벌가 자녀는 사립초 졸업 후 어떤 학교에 진학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국제학교는 유치원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전 학년이 연계돼 진학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재벌 4세는 이전 세대보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는 추세다. 재벌 2, 3세가 한국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친 후 미국 유학을 갔다면, 재벌 4세는 사립초를 졸업한 후 중·고교 시절 유학을 선택한다. 신세계, 삼성, SK가 자녀는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유학을 떠난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교육컨설턴트는 “재벌가 자녀는 교우관계에도 제약을 받는데 해외에서는 훨씬 자유롭고 활기찬 학교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조기유학을 선호한다. 최상의 교육환경을 갖춘 해외 명문학교는 학비가 많이 들지만 돈에 구애하지 않는 재벌가 자녀에겐 그만큼 선택의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학 부정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영훈중학교. 영국의 한 사립학교 수업 광경. 국내 모 국제학교의 체육 수업 장면.(왼쪽부터)
중국 유학 간 SK 두 딸
삼성 이 부회장 아들이 다니는 미국 기숙학교는 어떤 곳일까. 미국 동부에 위치한 이 학교는 미국에서도 입학이 까다로운 명문으로 꼽힌다. 6학년부터 9학년까지, 4개 학년을 운영하는데 올해는 19개 나라에서 온 학생 250여 명이 재학 중이다. 학생 대 교사 비율은 5대 1 수준. 모든 교사가 전교생 이름을 알 정도로 친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학업 성적으로도 미국에서 손꼽히지만, 예체능 수업 프로그램이 우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술 수업의 경우 드로잉, 페인팅, 목공, 도예 등 다양한 강좌가 있으며 음악 과목도 아카펠라, 밴드, 재즈 등 다양하다. 스노보드, 레슬링, 등산, 수영 등 체육 교육도 다채롭다. 특히 이 학교는 아이스하키, 축구, 테니스 등 팀을 이뤄 승부를 겨루는 팀스포츠를 중시하는데, 이를 통해 협동심과 책임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1년에 세 가지 운동을 필수로 배워 졸업할 때까지 평균 10개의 운동을 익힌다.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 대다수가 미국 10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1년 학비는 5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중국으로 유학 가는 재벌 4세도 늘어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의 두 딸도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오른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익히고 중국 시장 개척과 관련해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비해 거리가 가깝고 같은 동양문화권이라는 점,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국제학교가 많다는 게 중국 유학의 장점이다.
한편 재벌 4세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재벌가 자녀를 가르쳤던 한 교사는 “교사들은 면학 분위기를 위해 ‘쉬쉬’하고 기업 차원에서도 학교에 ‘소문나지 않게 도와달라’고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어느 집 자녀인지 알려지지 않는다. 동료 학생들 역시 생활수준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당 학생의 가계에 대해 크게 관심 두지 않거나 알더라도 말을 옮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호원이나 통학용 자가용이 있는 경우는 있지만 학교생활에서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아 그런지 예의가 바르고 학업 능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는 대학을 졸업한 모 대기업 총수의 장녀는 언론에 학교가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어 학창 시절 내내 친구, 교사 대부분이 그의 신분을 몰랐다. 결국 국내 대학까지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다녔다”고 말했다.
2세는 이건희 회장 등 일본 유학파
재벌가 자녀에게 유학은 필수 코스다. 유학을 통해 해외 선진 문물을 경험하고 양질의 인적 네크워크를 형성하기 때문.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가하기 전에 자유로운 외국 생활을 경험한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은 박두병 회장 때부터 ‘오너가 자녀는 모두 해외 공부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훈육 방침이 있을 정도다.
한편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호하는 유학 국가도 바뀐다. 2세는 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3세는 한국에서 중·고교를 마친 후 미국 유명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다녔다.
반면 4세는 국내 사립초나 국제학교에 다니다 조기유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이 G2로 떠오르면서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 유학을 선택하는 재벌 4세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부산사범부속초 5학년 때인 1953년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는 아버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지시 때문이다. 도쿄에는 이미 큰형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둘째형인 고 이창희 씨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온 이 회장은 고교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이후 이 회장은 수시로 일본을 방문하며 ‘일본 배우기’를 강조했다. 2011년 1월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우리가 겉모습은 앞서지만 속의 부품은 일본을 한참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유학 시절 일본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경영전략을 짤 때 늘 일본을 한국의 벤치마킹 및 반면교사 대상으로 삼았다.
재벌 2세 중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고교뿐 아니라 대학교육까지 국내에서 마친 국내파다. 구본무 LG 회장, 허동수 GS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 등은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후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은 미국에서 경제학, 정치학, 통계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19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재벌 3세는 주로 국내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이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명문대학에 입학하거나, 미국 대학으로 유학 가는 경우로 나뉜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복고 졸업 후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휘문고를 나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정몽준 의원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은 대일외고와 연세대 경영학부를,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은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재벌 3세 미 MBA 필수 코스
고교 졸업 후 바로 미국 유학을 간 재벌 3세도 많다.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서울예고 졸업 후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진학했고,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부장 역시 영동고 졸업 후 미국 로체스터대 공대에 입학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상무 역시 한영외고를 거쳐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국내외에서 대학을 마친 재벌 3세의 경우 하나같이 미국 유명 사립대학 MBA 코스를 마쳤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게이오대 대학원 석사를 마친 후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정의선 부회장은 샌프란시스코대 MBA 석사과정을 마쳤다. 구광모 부장 역시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쳤다.
재벌 3세들에게 미국 MBA가 필수 코스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 관계자는 “미국 MBA과정을 통해 엘리트 교육을 받음으로써 경영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배울 뿐 아니라, 회사 경영에 참가하기 위한 스펙을 갖춘다. 해외 유명 MBA에서 인맥을 쌓을 뿐 아니라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전 자유로운 생활을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평준화 후 사립초 외고 인맥 주목받아
한편 재벌 3세가 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에는 중·고교 평준화가 시행되면서 ‘중·고교 인맥’을 형성하기 어려웠던 때라, 명문 초등학교에서 만난 동기생이 사회 친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사립초 인맥이 주목받는다.
가장 많은 CEO를 배출한 사립초는 경기초와 경복초다. 1965년 개교한 경기초는 리라·경복초와 함께 서울 3대 명문 초등학교로 꼽힌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가 3남매와,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이 경기초 출신이다. 한편 경복초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현대가 출신이 다수 졸업했다.
주목할 만한 재벌 3세 고교 학맥은 경복고와 보성고다. 이재용 부회장,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인 구본혁 상무, 이해욱 대림산업 대표 등이 졸업한 경복고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두 아들 등이 졸업한 보성고 출신이 많다. 또한 이부진 사장(대원외고), 허윤홍 상무(한영외고) 등 외국어고 출신도 많은데, 이는 고교평준화 이후 명문 학교의 개념이 바뀌면서 외고 입학을 선호하게 된 경향을 반영한다.
재벌 3세의 학맥은 성인이 된 후에도 유효하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은 경복초 친구였던 조현식 한국타이어 사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과 현재까지도 친분관계를 이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언론은 정 부회장이 사기성 CP(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 중인 구 LIG넥스원 부회장을 위로하기 위해 수차례 서울구치소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한편 중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과 장선우 극동유화 전무는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박세창 부사장은 장선우 전무가 세운 ‘우암건설’의 지분 29%를 확보한 후 금호건설의 평택~시흥 간 고속도로 공사 하도급을 우암건설에 맡겼고, 우암건설은 금호를 통해 매출 50억 원을 올렸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둘도 없는 친구가 도움을 요청해 응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