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법 지원 활동 ‘허술’…“본말 뒤바뀐 조직”
- ‘저질 투서’ ‘책 도둑’ ‘질 낮은 보고서’…
- 정치권 추천 등 ‘알음알음’ 들어와 ‘고위’공무원 오르기도
- 관장은 야당 몫 ‘낙하산’…“누구도 감시 않는 곳”
- “전문가는 거의 없고, 실제 일하는 사람에 비해 간부가 너무나 많다. 데이터베이스 관리, 대민업무 등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 본업이 돼버렸다. 그렇다보니 각종 스캔들이 난무하고, 인사에만 관심을 쏟아 붓는 조직이 돼버렸다.”
“도올 선생님께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선물한 것 같은 ‘동경대전’이 헌책방을 통해 나에게로 왔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격도 없고 예의도 없구나.”
그는 도올(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서명과 ‘홍준표 의원님께’라는 글이 적힌 사진도 첨부했다. 다수의 이용자가 이 트윗을 리트윗했다. 홍 지사는 순식간에 트위터에서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버렸다고 할 것” “도지사라는 사람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나” “도올 선생은 왜 그런 사람에게 책을 선물했을까?” 등의 트윗이 꼬리를 물었다.
홍 지사는 이튿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해명 글을 올렸다.
“국회의원을 그만두게 되거나 연말에 직원들이 책 정리를 할 때 쌓인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헌책으로 버리게 된다. 도올 선생의 책은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해 이런 일이 생겼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국회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지난해 초 이렇게 말했다.
“국회도서관에는 사회의 상식은 도서관의 비상식, 도서관의 상식은 사회의 비상식이라는 말이 있다. 부조리가 수없이 많았지만 사건화한 적이 거의 없다. 도서관 직원이 수년 동안 의원실로부터 수집하는 책을 몰래 팔아먹다가 발각된 일도 있다.”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원 사무실이 입주한 의원회관에 도서함을 비치해 국회의원실에서 더는 보관할 필요가 없는 책, 문건을 기증받아왔다. 이렇게 확보한 도서 중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국회도서관 소장자료로 등록했다. 소장하지 않는 것으로 판정한 도서는 외부에 기증했다.
국회도서관 직원 B씨가 국회의원들이 기증한 책들을 탐냈다. 국회의원실에서 기증한 도서 1952권을 소장자료로 등록하거나 외부에 기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내다팔아 2219만 원을 챙긴 것. B씨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B씨 외에 3급(부이사관) 2명과 서기관 1명도 징계를 받았다.
“최고의 지성을 초빙하자”
올해 초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야당 몫인 국회도서관장 직을 국민 모두가 동의하는 최고의 지성을 초빙하는 방법으로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자신의 제안과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의 서명을 받았다.
국회도서관 관장은 차관급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관례적으로 야당 몫이었다. 18대 국회 전반기에는 유종필 현 관악구청장, 후반기엔 유재일 전 민주정책연구원 이사가 관장을 맡았다. 유 전 관장은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와 가깝다. 황창화 현 관장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한명숙 전 총리 측근.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도 사정은 같았다.
원혜영 의원의 주장은 이렇다.
“학계,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국회도서관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고의 지성을 초빙하자. 2년마다 국회 제1야당이 추천하고 국회 운영위원회의 동의를 거쳐 국회의장이 임명하다보니 국회도서관장의 권위와 상징성은 사라지고 정치적 편향성과 당파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1952년 개관한 후 19명의 관장이 평균 2.8년간 재임하다보니 짧은 임기로 인한 리더십 부재와 단기 계획에 의한 도서관 경영의 비효율성을 초래했다. 국회도서관장 개방은 우리 민주당의 결심만으로 손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기득권 포기이자 국회도서관의 권위와 상징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황창화 국회도서관장의 견해는 달랐다.
“대법원 대법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의 야당 추천권처럼 민주화가 진전하는 과정에서 권한이 분산된 것이다. 야당 추천 없이 국회의장이 임명하게끔 하는 것은 추천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사 추천을 잘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국회도서관이 감시의 사각(死角)에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야당몫이다보니 다른 조직과 다르게 국회의 감시가 느슨한 데다 감사원도 국회 조직을 감시하는 일에는 부담이 있다는 것.
국회 관계자는 “관장이 2년마다 바뀌다보니 그때마다 줄서기가 치열하다”고 말했다. 한 퇴직 직원은 “본말이 뒤바뀐 조직이다. 인사에만 목을 매 별의별 사건이 다 일어났다” “e메일 발송 건수가 직원 업무 평가에 반영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신동아’가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전직 국회 관계자, 전직 국회도서관 직원 등으로부터 국회도서관과 관련해 수집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아무런 감시도 없고 아무도 견제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부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부조리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사이에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국회에 대한 입법 지원 업무는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승진에만 몰두하는 조직이 됐다.”
“큰 권력을 휘두르던 한 간부는 밤늦은 시간에도 직원을 술자리에 불러냈다.”
“잡직으로 들어와 국장으로 퇴임한 간부도 있다.”
눈살 찌푸리게 하는 투서
국회도서관에서는 오랫동안 인사 관련 잡음과 줄서기가 끊이지 않았다. C대 출신이 관장을 맡았을 때 노조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댓글을 읽어보자.
“C대에도 문헌정보학과가 생겼나요. D대는 문헌정보학과가 언제 생겼나요. D대는 문헌정보학과가 있는데, 왜 도서관이 C대판으로 변한 거죠?”
“최근 연못물을 흐린 몇 분 덕에 C대가 싫어진 것도 딱 1주년이 된 것 같네요. 개념 없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비호 C대 1주년 파티는 안 하나요? 총무과는 왜 관장 1주년 파티에만 떡 돌리느라 돈 쓰는 건지? 이번 체육대회 날은 머리고기라도 돌리려고 하나? 설마 돈 없다는 소리는 못하겠죠?”
“친일파고 매국노고 C대 출신이 우선이란 말이죠. 다음 승진 때 보세요. 기대한 대로일 거예요.”
한 국회 관계자는 “C대 출신 직원 하나가 같은 학교 출신 고위 간부를 칭송하는 글을 국회 게시판에 올려 우리 같은 입법 보좌진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노조 게시판의 익명 댓글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왜 있잖아요. 지난번 그 사건의 중심이었던. 사고 쳐도 예쁨 받는 OO의 최측근들. 오늘 탬버린 들고 나타나려나?”
“오늘밤도 두세 시까지 탬버린 흔들까? 회식이라던데.”
“혹시 그녀랑만 몰래몰래 소통?”
“사랑한다는 연서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날리니까 시끄럽잖니. 살짝 보여주지 그랬어.”
“OO님 나가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넌.”
지성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 직원이 작성한 글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황창화 관장은 “도서관 직원이 아닌 사람도 댓글을 쓴 것 같다고 하더라. 정화됐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이 있어서 스스로 다 내렸다”고 말했다.
수년 전 국회도서관 직원들은 거북한 투서를 읽어야 했다. 누군가 남성 간부 E씨와 여직원 F씨가 주고받은 e메일이라면서 투서를 뿌린 것. 사실이라고 여기게끔 하기 위해선지 수신자, 발신자, 전송시간도 적혀 있었다.
“항상 당신이 그리워요. 많이 바쁘다니 앙탈도 못 부리겠네요” “강아지 길 잃어버릴까봐 집까지 데려다주던 당신을 상상하면 너무 귀여워 문득문득 웃음이 나곤 해요” “당신 손, 당신 얼굴, 당신과 함께한 그 시간들, 보고 싶어요. 잘 자요. 안녕” 등과 같은 낯 뜨거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투서는 작성자가 목격했다는 사실을 적으면서 마무리됐다.
“그날도 도서관 개관 시간이 끝난 5시쯤 만나서 한 시간 넘게 ○○○의 사무실에서 애정행각을 벌였습니다. ‘쪽쪽’ ‘으읍’ ‘아아’ 등의 신음소리가 사무실 밖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책상 아래서 ○○○의 발뒤꿈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누군가 인사 문제 등에서 E씨를 공격하고자 질 낮은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E씨는 “황당한 일이었다. 직원들이 정황상 아닌 것을 알기에 별 일은 없었다. 동료들이 도와주고 해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살다보면 이런 조직, 저런 조직에서 있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CCTV 화면이 흐릿해 유포자를 찾지 못했고, 도서관 측에서 설득해 사건을 무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창화 관장은 앞선 책임자들과는 다르게 인사를 상대적으로 무리 없이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사 전횡이 심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안다. 사실 D대 출신에 유능한 직원이 많다. C대에는 문헌정보학과가 없다. 내가 D대 출신이어서 상대적으로 D대 친구들이 손해를 봤다. D대 출신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만 승진을 시켜줬다.”
역차별 또한 온전한 인사라고 하기는 어렵다.
“50% 감원” 주장도
국회도서관 전경.
강동원 :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국회도서관의 자체 징계 현황을 보면 정말 심각합니다. 간부들부터 밑에 있는 직원들까지 자체 징계 수위도 낮지만 그 수를 보면 우리 국회도서관이 이 정도로 부패했는지 한눈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도서관 정원이 2002년 271명이었는데 2011년 300명으로 증원됐습니다. 증원된 내용을 보면 4급 연구관이나 계약직이 10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났어요. 그리고 3급은 4명에서 8명으로 증가했고요. 이 직급이 늘어난 분야를 점검해보면 위인설관(爲人設官)이에요. 진급을 위해 그런 직급, 인력이 증원됐다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창화 : 당시 인원이 늘어난 부분은 법률정보실이 새로 개설되면서 그에 필요한 외국 관련 법률 조사관이나 조사위원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강동원 : 도서관에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 사이에 50%는 감원해도 된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요. 그리고 같은 기간에 행정부의 증원 비율은 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만 10% 증가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이 있어요. 진급하는 데 금품거래 합니까?
황창화 : 금품거래 없습니다.
강동원 : 1억 원 금품 요구·수수설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황창화 :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강동원 : 도서관 남녀 구성비율은 여성이 몇 퍼센트입니까, 300명 중에.
황창화 : 70% 정도 됩니다.
강동원 : 지금 국회도서관에는 온갖 스캔들이 난무한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간부들이 자정 넘어 새벽까지 술 마시는데, 여직원들이 술시중을 들고, 그리고….
황창화 : 그런 일 없습니다.
강동원 :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업무를 추진한다는 얘기입니까?
황창화 : 스캔들에 대한 문제라든지 지적하신 문제는 제가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황창화 관장은 3월 7일 “알아봤더니 강동원 의원 주장에는 근거 없는 얘기가 많다”고 강조하면서 “도서관에서 소문이 난무했는데, 그것 또한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인사 문제로 소문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새벽까지 술 마셨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다. 주로 간부들과 그랬다. 뭐 술 따르고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동원 의원실은 “국회도서관 내부 직원들의 제보 등을 바탕으로 질의한 것이다. 사회에서도 지양해야 할 일이 공공기관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질의 과정에서 흥분해 일부 표현이 거칠었으나 팩트는 맞다. 계약 관계, 도서 구입 등에서의 부조리와 관련한 제보도 확보했으나 수사기관이 아닌 터라 확인하지 못해 질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공기관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가 화두로 내놓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도처에서 회자된다. 국회도서관에서 발생한 일은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국회도서관은 뭘 하는 곳인가. 국회도서관법 제2조는 “국회도서관은 도서관자료 및 문헌정보의 수집·정리·보존·제공과 참고 회답 등의 도서관봉사를 행함으로써 국회의 입법 활동을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정화의 정상화 필요
국회도서관은 이렇듯 보통의 도서관과 기능이 다르다.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본업, 도서관 업무가 부업이다. 도서관 앞에 ‘국회’라는 낱말이 붙은 것은 그래서다.
국회 입법보좌관 두 명은 각각 이렇게 말했다.
“국회도서관이 왜 국회에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국회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도서관은 데이터베이스 구축, 도서 선정 및 구입, 전산 등과 관련한 외주 관리가 주 업무인 듯하다. 얼마 전엔 도서관 직원이 순번을 정해 의원회관에 책 배달을 했다. 의정지원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업무를 쥐어짜낸 게 아닌가 싶다. 국회도서관이 이렇듯 ‘관리’만 하는 조직이라면 지금과 같은 인원, 특히 고위직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조직 진단이 필요하다. 미국 의회도서관에 속한 의회조사국(CRS)은 각 분야 전문가가 조직을 주도하면서 의정 활동을 지원한다. 유럽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국회도서관처럼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조직은 왜곡해 성장하게 마련이다. 조직과 조직원만을 위한 조직이 돼버리는 것이다. 입법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양질의 데이터베이스(DB)가 국회도서관에 구축돼 있어야 한다. 현재의 DB는 보이는 대로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짜깁기에 불과한 정보가 적지 않은 데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또한 빠른 회답 절차가 필요하다. 심지어 회답을 받아보는 데 두세 달이 걸리기도 한다.”
황창화 관장은 이 같은 지적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분석 역량이 아무래도 떨어진다. 회답이 느린 것도 잘 안다. 외국에서 사서를 양성하는 과정은 한국과 다르다. 대학에서 특정한 전공을 공부한 후 사서가 된다. 미국 등엔 대학원 과정에 문헌정보학과가 개설돼 있다. 기본적으로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터라 사서가 가진 권위가 높다. 미국은 입법조사처가 도서관에 소속돼 있다. 각 분야 박사와 사서가 결합해 일하는 형태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박사급 조사관은 공무원 급수가 고정돼 있다. 그렇다보니 사서가 도서관에서 주류다. 전문가로 들어온 사람들은 전문적인 일을 해야 하므로 간부를 시킬 수 없다. 사서 출신 간부의 지휘를 받으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고민이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엉뚱한 책 구입 많아”
미국 의회조사국이 내놓은 보고서는 한국 언론에도 자주 인용된다. ‘신동아’도 ‘북한탄도미사일 실태’ ‘중국 해군력 현대화’ ‘일본 핵 미래’ ‘소말리아 해적 현황’ ‘북한 위폐 관련 고위 탈북자 증언’ 등 CRS가 생산한 보고서에 실린 내용을 번역해 이따금 한국 독자에게 알려왔다.
CRS는 의회도서관 산하의 ‘국’이다. 1900년대 초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하는 조직으로 설치됐다. CRS는 의회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다. 의회도서관 전체가 CRS를 지원하는 구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회도서관이 확보한 정보를 가공해 상·하원 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돕는 두뇌 구실을 해왔다. 석·박사 학위를 갖춘 ‘전문가’가 각 분야 ‘전문사서’의 도움을 받아 입법 및 정책 수립을 위한 고급 정보를 생산해낸다.
국회도서관 입법지식서비스 전문가보고서 코너에 실렸던 ‘NLL 정의와 해외 영토분쟁 사례’라는 제목이 붙은 문건의 ‘낮은 수준’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건의 작성자는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로 돼 있다. 우선 문건에서 NLL을 영토분쟁과 엮어 다룬 것은 부적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영토 분쟁 성격이 있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만으로도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내용 또한 형편없다. 소제목에는 거의 예외 없이 각주를 알리는 일련변호가 붙어 있다. 소제목에 속한 내용 전체를 다른 논고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고서 전체가 짜깁기라는 얘기다. 이렇듯 국회도서관이 직접 생산한 보고서는 수준이 낮은 게 많다.
국회도서관의 ‘의회정보심의관’ ‘법률정보과장’ 등 간부직 명칭을 보면 의회전문가나 법률전문가를 떠올리게 되나 간부 대부분이 사서다. 수년 전엔 전기 쪽 일로 도서관에 들어온 인사가 입법정보심의관으로 재직했다. 특채를 통해 보조수로 들어와 부이사관으로 은퇴한 이도 있다. 잡급 등으로 들어와 국장까지 지내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회도서관에 의원들의 입법을 지원할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실·국장 직위 총수의 20% 범위 내에서 개방직을 두게끔 돼 있으나 국회도서관에서 개방직은 한 자리뿐이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의 지적을 들어보자.
“국회도서관에 영토서라는 게 있다. 동북공정과 독도문제 탓에 고구려사, 독도와 관련한 역사적 문헌을 구입하는 것이다. 최근 4년 동안 2억5000만 원을 들였다. 그런데 국회도서관에 중국서와 관련한 전문 심의자가 없다. 그래서 구입한 도서 중 엉터리가 굉장히 많다.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심의에서 제외된 도서가 단 1권도 없다. 심의를 못하기 때문에 그냥 들어오는 대로 모두 구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고대중국의 관세역사서를 영토서라고 구입한다. 명나라 일반 역사서도 그렇게 구입했다.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다.”
‘국회’도서관 vs ‘일반’도서관
국회도서관에는 중국구해관사료 166권이 수집돼 있다. 가격은 판매가 10만 위안(약 1750만 원). 한국 관련 도서라는 명목으로 구입했지만 이 책들은 1859년부터 1948년까지 중국의 관세사를 다뤘다. 역시 한국 관련 도서 명목으로 구입한 명대기본사료총간은 280권, 13만 8000위안(약 2400만 원)이다. 명대기본사료총간 역시 한국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의원 시절 “국회도서관이 관리하는 입법지식 DB에서 한미 FTA 자료를 찾아봤더니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협정문 등이 없는 것은 물론 최신 자료가 1998년 자료였다. 이게 도대체 입법을 지원하는 DB인지 입법에 지식을 주는 DB인지, 아니면 옛날 것 가지고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은 적도 있다.
국회도서관 조직은 기획관리관, 의회정보실, 법률정보실, 정보관리국, 정보봉사국, 국회기록보존소로 이뤄졌다. 의회정보실에는 정치행정자료과, 경제사회자료과, 국외자료과, 인터넷자료과가 있다. 법률정보실은 법률정보실운영과, 법률자료과, 외국법률자료과, 법률정보개발과로 구성됐다. 정보관리국은 전자정보개발과, 전자정보제작과, 정보기술지원과로 구분돼 있다. 정보봉사국은 자료수집과, 자료조직과, 열람봉사과로 이뤄졌다.
국회도서관 조직도
전자정보개발과와 전자정보제작과는 어떻게 다를까. 인터넷자료과는 어떻게 다른 일을 하는 걸까. 자료수집과와 자료조직과는 어떻게 다를까. 위인설관이라는 표현처럼 ‘과장’ 직을 늘리려 조직을 세분한 것으로 의심하게 된다. 이에 대해 황 관장은 “입법 지원, 데이터베이스 관리, 일반 도서관 업무로 구분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도서관은 4급 이상 간부만 50명에 달한다. 대부분이 사서직이다. “직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각해 ‘완장’들만 득실거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창화 관장은 “간부 비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 실무인원이 적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국회도서관은 업무 자체가 굉장히 많다. 전체 인원 대비 간부가 많다고 볼 게 아니라 인원이 더 확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도서관에는 정치권 인사 추천 등 공채가 아닌 방식으로 들어온 이 또한 적지 않다. “알음알음으로 들어온 분들이 간부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 국회도서관 고위 인사는 “그렇게 들어온 분들이 있다. 낙하산 비슷한 것이다. 그런 부분과 관련해 불만이 쌓였다. 내년, 후년이면 다들 정년퇴직한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 퇴직 직원의 견해는 이렇다.
“새누리당 출신이 맡든, 민주당 출신이 맡든 사정은 똑같다. 전문가가 직원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직원이 전문가를 지휘하는 구조다. 간부가 엉뚱한 지시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회의 입법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을 거의 상실한 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전문가는 거의 없고, 실제 일하는 사람에 비해 간부가 너무 많다. 데이터베이스 관리, 대민업무 등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 본업이 돼버렸다. 그렇다보니 각종 스캔들이 난무하고, 인사에만 관심을 쏟아 붓는 조직이 돼버렸다. 과거 알음알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역량도 문제다. 전문 역량을 갖춘 사람이 일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국회’도서관 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반’도서관 일로만 치어서야 되겠는가.”
국회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국가’도서관 역할도 겸하는 터라 외국 의회도서관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통계에 따르면 ‘조사처’조직이 도서관과 별도로 분리된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직원 수가 29명, 독일은 91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처’가 도서관에 통합된 영국 의회도서관은 직원이 226명이다.
“본업에 충실한 조직 돼야”
국회도서관은 6·25전쟁 때인 1952년 임시수도이던 부산의 옛 경남도청 안에 공간을 마련해 직원 1명, 장서 3600권으로 출발했다.
62년 동안 외형상으로는 크게 발전했다. 장서 수는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도서관에 이어 3위. 디지털 정보는 1억5000만 면으로 국립중앙도서관보다도 많다. 1969년부터 발간한 ‘한국 박사 및 석사 학위논문 총목록’, 1964년부터 내놓은 ‘정기간행물 기사색인’은 석·박사 이상 연구자들의 보고(寶庫) 구실을 했다.
미국은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막고자 국가도서관을 입법부에 뒀다. 의회도서관은 입법부에서도 독립된 기구로 존재한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정보 양 및 분석 능력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다.
국회도서관은 1963년 국회 사무처에서 분리돼 입법부 내 독립된 기구로 위상이 높아졌으나 1984년 국회사무처법이 개정되면서 사무처의 보조기관으로 추락했다가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독립성을 확보했다. 이때부터 관장이 야당 몫이 됐다.
1995년 국회도서관 안에 입법조사분석실이 사서 조직과는 독립적인 기구로 설치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입법조사분석실 연구원들이 해고되거나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2007년 11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도서관으로부터 분리된 형태로 신설됐다.
국회 관계자는 “입법 활동 및 정책심의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제공하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이후 19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시작되면 국회의장이 바뀐다. 신임 국회의장은 관례대로 야당에서 추천한 인사를 신임 관장으로 임명할 소지가 커 보인다.
국회도서관 고위 인사는 “의원 한둘 모르는 직원이 없다. 외풍도 많다. 직원들의 요구와 지향을 잘 아는 사람이 관장으로 와야 한다. 바람막이도 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국회도서관 전(前) 직원의 고언(苦言)이다.
“국회의원이 주인 노릇을 잘해야 한다. 주인으로서의 책무를 분명하게 수행해야 한다. 일본 국회엔 국회도서관의 운영을 점검하는 ‘국회도서관운영위원회’가 존재한다. 시민사회에서도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만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 조직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감시해야 한다. 국민의 눈이 살아 있어야 국가기관이 본래의 기능을 건강하게 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