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br>김소연 지음, 문학과지성사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주동자’ 중에서
밤새 비를 맞은 장미나무가 꽃송이는 다 잃어버리고 가시만을 남긴 모습을 보고, 시인은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 견뎌낸 장미나무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를 읽어낸다. 그러면서 가시만 남겨놓고 꽃잎을 모두 잃어버린 장미나무의 심정은 아마도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듯하다고 속삭인다. 시인은 이러한 날카로움과 다정다감함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포착해낸다. 표제작 ‘수학자의 아침’에서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보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 사람,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므로. 때로 어떤 사물들은 인간의 몸속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다. 음식이 바로 그런 사물이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는 ‘백반’이 바로 교감의 매개가 된다.
사물 속에 담긴 인간의 숨소리
그 애는
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들 속에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 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 그 애의 숟가락에 생선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백반’ 중에서
무엇이 ‘그 애’로 하여금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게 만들고,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해답은 “풍경이 되어버린 폭력들”에 있다. 이제는 너무나 일상화되어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당연한 풍경으로 전락해버린 ‘폭력’이 할퀴고 간 폐허 위에 이 아이는 서 있다. 흰 쌀밥과 미역국과 계란말이와 생선살은, 스스로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믿는 아이, 삶의 동력을 증오와 분노로 삼아버린 이 아이의 깊은 슬픔 속으로 들어가는 사물이다.
독자는 한 아이와 한 시인이 ‘백반’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엿듣는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한 아이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마음은 언어를 넘어 백반의 따스함 속에 깃들어 있다. 백반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뿐 아니라 두 사람이 나눌 수 없는 대화까지도 듣는다. 자기가 사랑한 것들을 앗아간 세상을 증오하는 아이의 숟가락에 생선살을 발라 얹어주는 시인의 마음속에, 타인에게 닿을 수 없지만 끝내 닿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물들의 비명소리
어떤 존재는 가엾게도 형상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와 플랑크톤처럼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띄는 형상으로 그려낼 수 없는 분노나 기쁨 같은 것도 있다. 아예 존재 자체가 보이지 않는 사물의 비명을 듣는 것, 그것이 시인의 반가운 임무이기도 하다. ‘장난감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사물은 바로 ‘어떤 절규’다.
어떤 절규가 하늘을 가로질러 와 발밑에 떨어졌다
나는 오후에 걸쳐 있었고 수요일에 놓여 있었다
-‘장난감의 세계’ 중에서
이렇게 사물 깊숙이 밴 존재의 슬픔을 읽어내는 힘은 바로 “도무지 묶이지 않는 먼 차이”를 사랑하는 마음, “출구 없는 삶에 문을 그려 넣는 마음”“도처에 소리 소문 없는 죽음들”(‘걸리버’)을 보는 눈에서 나올 것이다. 시인은 “세계 지도를 맨 처음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고, “내가 부친 편지가 돌아와 내 손에서 다시 읽히는”(‘걸리버’) 아픔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산문집 ‘마음사전’과 함께 읽는다면 시인의 문체는 물론 시인의 독특한 버릇, 사유하는 습관, 시인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것과의 교감 속에서 이 시집을 더욱 풍부하고 깊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절연체로 둘러싸인 그릇이 온도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도 이 순간에 멈춰 있자고 말하고 싶어진다. 더 뜨거워지지 말자. 더 차가워지지도 말자. 마개를 꼭꼭 닫아두자. 당신과 나라는 그릇이 성능 좋은 절연체를 두른 보온병과도 같은 지금.
-‘마음의 절연체’ 중에서(‘마음사전’)
시인은 보온병이라는 평범한 사물 속에서 사랑의 온도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이렇듯 흥미롭게 그려낸다. 한편으로 ‘마음사전’은 김소연 시인의 창작 비밀 노트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렇게 사물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상상하고 기억하고 증언하는 열정이 그녀의 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구나, 느끼게 만든다. ‘마음사전’에 실린 ‘유리와 거울’을 통해 나는 유리에 달라붙은 매미 한 마리를 보고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시인이 지닌 사유의 냉철함과 감각의 따뜻함을 한껏 만끽해본다. 시인은 유리와 거울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오려낸다.
어느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미와 나 사이에서 유리는,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미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는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유리와 거울’ 중에서(‘마음사전’)
아늑한 소극장의 콘서트
보이고 싶으면서도 만져지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을 시인은 유리에 빗대었다. 사물이 사람에 은유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물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 전도된 감각이 우리의 지친 영혼을 문득 쉬게 만든다. ‘수학자의 아침’을 통해 김소연의 시가 한층 더 애틋하고 아련한 얼굴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녀는 말 못하는 사물들 속에 깊이 밴 인간의 한숨 소리, 땀과 눈물과 하품과 재채기 소리를 복원해낸다. 사물들은 때로 영혼의 녹음기가 되어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인은 ‘마음사전’에서 속삭인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누군가의 손이 우리의 몸을 만지는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 설움,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고. 그녀의 시 또한 바로 그런 ‘손’을 닮았다. 우리 영혼에 깊게 베인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고, 어루만져주는 손이 된다. 시인은 사물과 사물이 교감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가장 따뜻하게 증언하는 시간들을 그려낸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동물원에서 목격하는 가장 평화로운 풍경 중 하나는, 따사로운 양지에 원숭이들이 일렬로 앉아 서로의 털을 손질하며 기생충을 잡아주는 모습이다. 우리의 손길은 그렇게 마음의 기생충을 잡아주며 위무한다. 기생충을 박멸하는 듯한 연인의 격렬한 애무는, 깊고 깊은 우울마저 소독해낸다.
-‘손’ 중에서(‘마음사전’)
‘마음사전’이 시인의 마음을 영혼의 음표로 그려낸 세밀한 ‘악보’라면, ‘수학자의 아침’은 시인이 바로 지금 독자를 향해 연주하는 아늑한 소극장의 콘서트 같다. 나는 김소연의 시를 통해 사물이 제가 지닌 가장 슬픈 울음을 내는 소리, 사물이 제가 지닌 가장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는 소리, 사물이 제가 지닌 가장 밝고 환한 빛을 뿜어내는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