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 있을 땐 개인 생활 접어야
- 여성고용 증대는 지속가능성장에 필수
- 남자들의 사적 커뮤니케이션에 소외감
- 박 대통령 불통? 말 잘 통하고 피드백 빨라
- 노래방에서 내가 노래하면 분위기 싸늘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곳이 없으면
나뭇잎들의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휴지들의 구겨진 꿈을
누가 거두어 주나
우리들 사랑도 마음 한구석에서
싹트는 것이니까.
“1년도 전에 신문에서 우연히 본 시예요. 시인은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데 제목이 ‘구석’이에요. 너무 좋지 않아요?”
“지금 딱 들어도 좋은데요.”
나는 가볍게 신음하며 겨우 한마디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확인해보니 이창건 시인의 ‘구석’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렇게 은은히 마음을 울리는 시가 좋다. 이런 시를 가슴 지갑에 넣고 다닌다는 건 축복이다.
3월 8일 조윤선(48) 여성가족부 장관은 세계여성의 날 106주년을 맞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0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축사를 했다. 조 장관은 축사에서 “여성이 경제·사회·정치적 위치를 찾고 경력단절이 없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숙제가 많아요”
조 장관과의 단독 인터뷰는 그에 앞서 2월 하순 이뤄졌다. 올 초 다보스와 앙굴렘에서의 활약상을 보고 더는 구경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녀는 바쁜 일정을 쪼개 시간을 냈다. 마침 취임 1주년을 맞은 시점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수행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그녀는 세계경제포럼(WEF)과 양성평등 태스크포스 추진 업무협약을 맺었다.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국제만화축제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하는 데 발 벗고 나서 큰 성과를 거뒀다.
오후 4시 반, 이탤리언 레스토랑에 남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녀의 얼굴이 뜻밖에도 핼쑥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신동아’ 인터뷰만 빼고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부터 찍었다. 기운이 없을 텐데도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자주색, 노란색, 하늘색이 어우러진 색동 스카프가 멋스럽다. 그림들이 전시된 실내에서 먼저 찍고 이어 뜰에 나가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작고 파리한 얼굴에 서서히 생기가 차오른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단아하다. 소화가 안 돼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기에 걱정을 해주자 “이럴 때도 있어야 해요” 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너무 많이 먹어 그런 건지. 아휴 참 내….”
“원인이 뭐예요. 과로?”
“과로는 아니고요. 말하기 창피해요.”
“술?”
“아니….”
그녀가 숨넘어가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내젓는다. 세월의 소리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포성과도 같다. 갸름한 오후 햇살이 그녀의 연한 목주름을 파고든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여성가족부가 정말 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료 보셨어요? 일이 진짜 많죠? 그러니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하겠어요.”
그녀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신 나는 표정을 짓는다.
“장관님이 너무 욕심내는 것 아니에요?”
“제 욕심이 아니라 숙제가 떨어져서 그래요.”
숙제라는 표현이 재밌다. 그녀가 말하는 숙제란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을 토대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확정한 국정과제다.
“여성가족부 정원이 233명이거든요. 정부 부처 공무원의 2%예요. 예산은 0.15%. 그런데 국정과제는 10%예요. 140개 중 14개.”
“장관 선에서 줄이면 안 되나요. 직원들이 힘들어할 것 같은데.”
“할 일이 많아요. 그동안 소홀히 했던 분야라. 국민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선진국이 될수록 보강해야 하는 부처인 것 같아요.”
“휴식은 좀 취하세요?”
“변호사 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훈련을 받았어요. 순서를 잘 정해 밀도 있게 일하는 법. 그래서 일할 때 무리하지 않아요. 변호사 할 때와는 달리 집에 가서는 책이나 TV를 보며 일을 싹 잊어버려요. 주말에도 행사에 참석하거나 전문가들 만나느라 바쁘지만, 조절을 하기 때문에 일에 파묻혀 산다는 느낌은 안 들어요.”
조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김&장에 입사했다. 국내 최고 로펌으로 꼽히는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여성 변호사를 채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대통령께서 국무회의 때 말씀하셨어요. ‘공직자로 일하는 기회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국민이 좋아하고 국민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일 따로 취미 따로는 아닌 것 같다.’ 저도 그 생각이 맞는다고 봐요. 이 자리에 있는 동안 개인 생활은 접고 일해야 한다고.”
‘노예들의 합창’
“문화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시잖아요. 취미도 그쪽이고. 요즘은 문화생활 못하시겠네요.”
“예. 따로 문화생활을 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제가 좋아하는 쪽으로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에 참석한 것도 그렇고, 지난해 여성가족부 활동을 알리는 홍보 동영상을 많이 만든 것도 그래요.”
그녀는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을 냈을 정도로 문화에 대한 소양이 깊고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명박 정부 때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문화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오페라도 못 보시겠죠?”
“한 번도 못 봤어요, 대선 때부터.”
그녀는 오페라 마니아다.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책을 냈고, 오페라 강연도 다녔다. 요즘은 몇 시간씩 잡아먹는 오페라 대신 전시회나 박물관 관람으로 문화적 허기를 채운다고 한다. 주말이나 외국 출장 때 틈틈이 들른다는 것.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도 못 보셨나요?”
“못 봤어요.”
장관 일이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그 난리법석인 ‘겨울왕국’을 못 보다니. ‘겨울왕국’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주제가 ‘Let it go’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중독성 강한 리듬에 이디나 멘젤의 힘차고 폭발적인 고음이 인상적이다. 조 장관은 “TV 뉴스에서나 잠깐 들었을 뿐 따로 들을 기회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장관 해보니 어떤가요. 국회의원 할 때와 어떻게 다른지.”
“국회의원 할 때는 일에 경계가 없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지만, 집행할 인력이 부족한 게 늘 아쉬웠어요. 여기는 비록 작은 부처지만, 일이 라인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피드백이 있는 게 좋아요. 정말 보람이 있어요. 권력부서나 큰 부처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회를 가진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제가 이제까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다 쏟아 붓고 있어요.”
문득 실내에 흐르는 노래가 귀에 꽂힌다. 조 장관에게 물어보니, 전문가답게 곧바로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라고 알려준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3막에 나오는 노래다. 그녀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건 합창이 아니라, 나나무스쿠리가 편곡해 부른 것 같네요.”
“여성가족부는 허브”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의 존재가 크게 부각된 데는 조 장관의 공이 크다.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대변인으로 박 대통령을 밀착 수행했던 핵심 측근이라는 무게감에다 일도 잘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올 1월 동아일보와 채널A가 공동으로 각계 전문가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17개 부처 장관 평가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여성가족부는 2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실시한 정부기관 종합평가에서 국방부, 외교부와 함께 ‘우수 등급’을 받았다.
2월 초 정부가 발표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은 여성가족부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주도하는 일에 기획재정부, 교육부,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5개 부처가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2월 11일 조 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영상으로 ‘2014년 업무추진계획’을 보고했다. 크게 네 가지다.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는 그대로 행복한 사회 ▲청소년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사회 ▲경력단절 예방과 해소로 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사회 ▲여성·아동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
“재임 중 이 일만은 꼭 해내야겠다고 맘먹은 게 있다면?”
“어느 하나라고 말할 수 없고요. 여성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목표지요. 여성가족부가 허브가 돼 어디에 뭐가 필요한지 알아내 지원하는 거예요. 저는 딸 둘을 뒀는데, 걔들한테는 지금과 같은 환경을 물려주지 말아야겠다고 늘 다짐하죠.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딸 가진 엄마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딸 가진 아빠들도 그렇더라고요. 제가 장관이 되고나서 저보다 15세, 20세 많은 선배들이 축하 전화하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우리 딸이 공부를 잘해 딸 자랑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딸이) 결혼해 애 낳고 나서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애 뒷바라지만 하는 걸 보니 너무 속상하더라’고.”
“저도 딸 있어서 그런지 그 얘기가 확 공감되네요.”
“우리가 딸을 학교 보낼 때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해 직장에 들어갔다가 애 키우는 것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면 도대체 왜 딸한테 교육을 시키나, 하는 의문이 들죠. 차라리 교육을 시키지 말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이를 경제적 비용으로 계산하더라고요. OECD에서는 우리나라 여성고용률이 남성과 비슷해지면 국내총생산(GDP)이 19년 동안 매년 1%씩 늘어난다는 거예요. IMF에서는 일본의 경우 여성고용률이 남성만큼 오르면 경제가 9% 성장한다는 통계를 내놨어요. 한국은 아마 더 클 거예요.”
여성고용률과 경제성장
“고용부나 기재부 등 관계부처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일을 너무 많이 벌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 법한데, 협조는 잘되나요?”
“우리가 부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은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걸 인정받은 거예요. 사실 우리 일이란 게 어떤 방향을 잡고 나서 관계 부처에 협조를 요청한 다음 그 부처에서 하는 일이 여성의 고용률이나 일·가정 양립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목걸이처럼 쫙 꿰서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독려하는 겁니다. 우리가 만든 정책이 현장에서 얼마나 잘 활용되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점검하는 거죠. 여성가족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기재부, 고용부, 복지부 등 다른 부처에서 같이 애써준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조 장관은 여성 인력의 활용을 자원 개념으로 설명했다.
“OECD에 가보니 여성의 고용 증대를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더군요. 국가가 성장하는 데 지금까지 쓸 수 있는 자원은 다 썼고 여성만 안 썼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원을 활용해야만 성장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여성에 관한 이슈가 경제의 핵심 이슈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라가르드 IMF 총재도 여성고용률과 경제성장에 관한 보고서를 내라고 했거든요.”
조 장관은 “남성 장관들이 여성가족부 일을 잘 이해하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안 도와주면 대통령한테 혼날까봐 그러는 것 아닌가요.”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하이톤의 웃음을 터뜨린다.
“게다가 대통령 신임이 두터운 실세 장관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 그건 아니고요. 대통령께서 부처가 서로 협조하면 그렇게 칭찬을 하세요. 대선 당시 전방 군부대를 방문해 여군들과 2시간 반 이상 간담회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나온 얘기가 결혼한 여군의 어려움이었어요. 대통령께서 육아와 모성보호 문제를 인수위 때도 얘기하셨는데 별 진전이 없었어요. 그러다 여군 사망 사건 이후 여성가족부와 국방부가 양해각서를 체결했는데 그 일로 대통령께 여러 번 칭찬을 들었어요.”
지난해 2월 강원도 최전방부대에서 여군 이신애 중위가 임신 중 과로로 숨졌다. 육군은 애초 이 중위의 죽음을 일반사고로 처리했다가 국가권익위원회의 권고로 뒤늦게 순직으로 인정했다. 그해 9월 여성가족부는 국방부와 군 장병 지원 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군인 가족에 대한 복지·문화 활동 지원 ▲예비 아버지 교육 및 성폭력 예방교육 강화 ▲군부대 내 공동육아 나눔터 설치 ▲군 여성인력의 역량 강화 및 취업 지원 등이다.
가족 친화 경영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여성이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뭐라 생각하세요.”
“엄마한테 모든 일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엄마가 맡아야 한다는 생각. 애들 키우고 가사 돌보고 부모 봉양하고…. 이 모든 걸 여자가 하잖아요. 행복한 국가는 곧 행복한 국민이에요. 국민 행복의 기초는 가정의 행복이고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돕는 게 국가의 책무예요. 그러려면 엄마 한 사람한테 떠맡겼던 가사 부담을 덜어줘야 해요. 결혼한 여성도 사회에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해요. 회사 일에만 몰두해온 아빠에게는 가족과 함께 지낼 여유시간을 갖게 해주고요.”
“유교적 가부장제도 하나의 원인이겠지요. 남편은 어땠나요.”
“잘 도와준 편이었어요. 제가 바쁠 때는 아이들 데리고 나가 놀기도 하고 아이들 식사도 챙겨주고…. 요즘 세대 아빠들은 육아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더라고요.”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정책 중에는 좋은 게 많다. 그런데 실천하려면 하나같이 돈이 들어간다.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만 해도 남성 육아휴직자 급여와 대체인력 지원금, 그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를 인상하려면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비정규직 육아휴직자의 고용지원금 확보도 마찬가지다.
조 장관은 이에 대해 그다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OECD나 IMF에서 그런 계산법이 나온 건 선진국에서도 여성 분야에 많이 투자한다는 걸 뜻해요. 우리는 여성 인력을 지하자원으로 생각해요. 라가르드 IMF 총재가 말하더군요. 자기는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여성고용률이 너무 낮고 여성 잉여인력이 많기 때문에 그 문제만 잘 해결하면 된다는 거예요. 또 정부 돈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에요. 기업이 투자해야 하는 면도 있어요. 여성가족부에서 오랫동안 가족 친화 경영을 강조해왔어요. 회사에서 이윤을 더 내려면 직원의 창의성이 필요해요. 그런데 창의적 사고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삶에 여유를 갖고 자기계발을 하는 데서 나올 수 있어요. 이처럼 일, 가정 양립은 장기적으로 기업에 큰 이익을 안겨줘요. 이런 걸 국민과 기업에 적극 알리려 해요.”
카카오톡
최근 공군사관학교는 수석졸업 여생도에게 관례와 달리 대통령상 대신 국무총리상을 주려다 성차별 비난이 일자 철회했다. 또 2년 연속 여생도가 수석 졸업한 육군사관학교는 올해부터 성적 산출 방식을 변경해 논란이 일었다. 일반학 비중을 낮추고 군사훈련과 체육 등에 가산점을 주는 이 방식이 여생도에게 불리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완곡하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규정을 알지 못하지만 남성 중심 가치관이 개입된 것 같아요. 군인의 임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관건이에요. 남성 군인의 역할만 강조한다면 성차별이 될 수 있어요. 성별 차이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한다고 봐요.”
그녀는 지난 대선 때 대변인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녀에게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어떻게 해석될까.
“왜 불통 소리가 나올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국민이 오해하는 걸까요. 아니면, 언론이 뭘 몰라 그럴까요.”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이 없다.
“답변하기 곤란하신가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겪은 바로는 주변 사람들 의견을 많이 들으시는 편인데요. 결정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고. 대선 때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할 경우 그 지역에 대한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고 크로스 체크해요. 표를 의식한 공약은 지역구 의원들이 건의해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어요.”
“그런 면은 좋은데,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별개 문제가 아닌가요. 친화력이 부족하다고 할까. 장관께선 그거 잘하잖아요?”
“저는 지금껏 많은 남성 상사를 모시고 일해봤어요. 그런데 대통령을 모시고 일할 때가 가장 편했어요. 말도 잘 통하고, 피드백도 빨랐어요.”
“같은 여성이라 친밀감이 작용한 건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분위기가 약간 딱딱해졌다. 자식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조 장관의 큰딸은 미국 뉴욕대(NYU) 1학년에 재학 중이고 작은 딸은 고등학생이다. 세 모녀는 카카오톡 대화를 즐긴다.
“카카오톡이 진짜 고마워요. 가족방에서 대화하면 바로 옆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큰딸이 곁에 없는 건 아쉽죠. 예전엔 내가 집에 늦게 들어가서도 마주 앉아 얼굴 보며 얘기했는데. 부모 자식 간 교류 방식이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껴요. 어릴 때 제 손으로 다 키우질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죠. 내가 은퇴할 즈음엔 우리 애들도 결혼해 애를 낳겠지요. 손주들을 내가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여러 가지 가르치고도 싶고. 우리 애들한테 다 못해준 걸 보상하는 차원에서요. 그래서 저는 애들에게 ‘많이 낳으라’고 해요.(웃음)”
좋아하는 오페라도 못 보고 일만 한다는 조윤선 장관.
“아무래도 일하는 여성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죠.”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늘 애들 옆에 있으면 칭찬해주고 간식 챙겨주고 기분 나쁘면 기분 좋게 해줄 텐데…. 자잘한 칭찬을 자주 못 해준다는 게 가장 안타깝지요. 그런데 요즘 우리 애들과 얘기해보면 제가 로드매니저는 못 됐지만 다른 면에서 도움을 준 것 같아요. 학교나 학과를 선택할 때 적절한 조언을 준다든지, 제가 누굴 만날 때 데리고 나가 그 사람에게 뭘 배우게 한다든지, 도전적 과제를 던져준다든지…. 하여간 이런 걸 받아들일 정도로 바르게 자라준 게 고맙더라고요.”
조 장관같이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한 여성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역시 여성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모성애가 아닐까 싶다. 웬만한 여성은 자식 얘기만 나오면 진지해지고 겸허해지고 미안해한다. 입가에 웃음이 감돌고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남성과는 자식 사랑의 관점이 다르다. 뿌리와 줄기가 다른 것만큼이나.
“공직의 책임이 무거울수록 외로울 것 같은데, 언제 외로움을 느끼세요.”
“늘 식사 약속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녁 약속이 취소되면 막 ‘번개’ 하잖아요. 여고 친구는 자주 보니까 편하게 전화할 수 있죠. 그런데 여고 친구 외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하다가 ‘이 사람이 정말 나와 편하게 만날 사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래요. 의외로 몇 안 돼요.”
“맞아요. 늘 걔네들한테 전화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요즘 학교 동창생이나 친하게 지내는 사람 만나면 ‘나중에 내가 백수 되면 놀아줘야 한다’고 말해줘요.”(웃음)
“부부 사이에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잖아요. 부모자식 간에도 그렇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장에서 시간을 덜 보내게 되면 하루 24시간이 무척 길어요. 예전에는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이 미혼모나 한부모 가족 등 취약한 가족과 다문화가족에게 예산을 쪼개 지원하는 데 그쳤어요. 지금은 각 가족의 특성을 고려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해요. 상담과 지원을 하고 교육을 해요. 군인이나 학생에게는 부모교육, 부부교육을 해요. 청소년에게는 취미와 적성에 맞는 활동을 지원해요. 노인에게는 노후 부부교육을 하고 은퇴 후 생활 설계를 도와요. 독일의 아동여성청소년가족노인부가 이런 걸 잘해요. 독일 고용부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지원하고 여성부는 자원봉사를 비롯한 사회참여 활동을 안내하고 도와줘요.”
노래 못하고 춤 못 춰
조 장관은 현 정부 장관 가운데 가장 재산이 많다. 배우자 재산 포함해서인데, 남편은 김&장 소속 변호사다.
“미모에 능력 있고 돈 많고 명예도 누리고… 일반인 눈에는 모든 걸 갖춘 엘리트 여성인데 열등감이나 콤플렉스 없으세요?”
그녀가 “미모?” 하면서 켁켁 웃는다.
“콤플렉스 많죠.”
그녀는 일본의 세계적 기업인으로 ‘마쓰시타 전기’를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말을 인용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세 가지 결핍을 얘기했어요. 첫째가 가난, 둘째가 병약, 셋째가 무식이에요. 누구나 결핍이나 콤플렉스가 있기에 그것을 극복하려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저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여성이라는 점이었어요. 로펌에 들어가니 법대를 안 나온 사람은 저밖에 없고 남자 고등학교를 안 나온 사람도 저밖에 없더라고요. 다들 남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어요. 그래서 자기들끼리는 서로 다 알아요. 그런 깊고 넓은 네트워크 속에서 여고 4회 졸업생이 얼마나 섬처럼 느껴졌는지는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소외감인가요?”
“소외감을 엄청 느끼죠. 로펌에 있을 때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나를 비켜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적 공간에서 남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더라고요. 제 방에서 저와 얘기할 때는 중요한 정보가 빠진다는 걸 느껴요. 아마도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하면서 느낄 거예요.”
“다른 열등감은 없나요?”
“노래를 되게 못해요. 그래서 노래방 가는 게 정말 큰 스트레스예요. 못하더라도 분위기 잘 맞추고 재미있게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전 그게 안 돼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음치는 아닐 거 아니에요?”
“차라리 음치라면 재미라도 있을 텐데, 제가 노래하면 정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싸해져요. 그래서 미안해서 안 불러요.”
그녀는 춤도 못 춘다고 고백했다.
“춤은 잘 추실 것 같은데요. 몸매를 보면.”
“그렇죠? 그런데 몸치예요.”
정가 일부에서는 그녀가 문화부 장관으로 옮길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마타도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쁜 말”이라고도 했다.
“버젓이 문화부 장관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죠. 저는 어떤 일을 하면서 다음 일을 미리 준비하거나 생각하지 않아요.”
“대통령이 다른 부처를 맡기면 거절하지 못하실 것 아니에요?”
“만약 대통령께서 저를 다른 일에 더 쓰시겠다면 영광이죠. 오로지 대통령의 생각에 달린 거지, 제가 뭘 더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앞으로 더 큰일을 하실 것 같아서요.”
“여성가족부를 굉장히 무시하는 말씀을 하시네요.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데. 저희가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어요.”
“아니, 누가 여성가족부를 무시해요?”
그녀가 또 숨넘어가는 웃음을 터뜨린다.
‘나 취해 자고 싶으니…’
국회의원이던 2009년 그녀는 나와 인터뷰할 때 시 두 편을 읊었다. 여전히 시심이 있는지 궁금해 시 얘기를 꺼냈더니, 기사 앞머리에 소개한 이창건 시인의 ‘구석’을 읊조린다. 이어 이백의 ‘산중대작(山中對酌)’을 낭송한다. 먼저 한자로 말한 다음 우리말로 풀이를 한다.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둘이 마시나니 산에는 꽃 피었네
一盃一盃復一盃(일배일배부일배)
한 잔 먹세, 또 한 잔 먹세 그려
我醉欲眠君且去(아취욕면군차거)
나 취해 자고 싶으니 자네 이제 돌아가게
明朝有意抱琴來(명조유의포금래)
내일 아침 술 생각나면 거문고 들고 오든지
“이 인터뷰 기사는 3월 중순 발간되는 신동아 4월호에 실릴 겁니다. 봄이 다가오는 소리, 계절의 숨소리를 느끼시나요?”
“대선이 있던 해에는 여름에 진짜 덥고 겨울에 너무 추웠어요. 그런데 지난해 장관에 임용된 후론 계절을 싹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정말 더웠는지 추웠는지 생각이 안 나요.”
“그런 것 생각하면 허무하지 않나요?”
“여성가족부 일이 굉장히 보람 있어요. 허무함을 느낄 새가 없었어요.”
“다음에 노래 실력 확인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라….(웃음)”
레스토랑 뜰에서 작별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꽃이 필 것이고, 그녀는 더욱 바빠질 것이다. 꽃이 피었다 질 때마다 우리의 삶은 쇠잔해지리라. 그렇게 세월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