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br>손무 지음,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손자병법’은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무(孫武)가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강론한 열세 편의 병법서다. 합려는 이 책을 읽고 3만의 군사로 30만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는 등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다. 손자는 손무를 높여 부르는 칭호다.
합려가 손무의 실력을 검증한 뒤 기용한 에피소드는 매우 흥미롭다. 손무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 합려는 병서 강의가 아니라 현장 지휘 능력을 보고 싶었다. 이때 손무는 궁녀들을 대상으로 삼아 병법의 효험을 시범했다. 군사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궁녀들을 데리고 지휘하겠다니 합려와 주변에서는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고 여겼다.
손무는 궁녀 180명을 두 편으로 나눴다. 그중 왕의 총애를 받는 두 사람을 지휘자로 임명했다. 손무는 궁녀들에게 좌향좌, 우향우 같은 기본적인 제식훈련 동작을 가르치고 명령대로 따라 하라고 지시했다. 사전에 동작 요령을 알려주고 복종하지 않을 때는 도끼로 처형한다는 규칙을 충분히 설명했다. 궁녀들은 키득키득 웃기만 할 뿐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손무는 다시 설명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도 궁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손무는 “명령이 불명확할 때는 장수가 책임을 지지만 반복해 명확히 설명했는데도 명령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지휘자의 책임”이라면서 두 지휘자의 목을 쳤다. 그 후 다른 두 사람을 새 지휘자로 임명하고 명령을 내렸더니 궁녀들은 군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손자병법’은 인류 최고의 병법서로 통한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대목이다. 중국 혁명가 마오쩌둥이 가장 좋아한 구절이기도 하다. 그는 공산당 정부를 수립한 뒤 서양 정치인들을 만나 글을 써줄 때 이 구절을 가장 많이 인용했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전쟁은 나라의 대사이다. 전쟁에서 최하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고, 최상책은 모략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 책은 전쟁에 이기는 법을 다섯 가지로 명쾌하게 제시한다. 첫째, 싸움을 할 수 있는 경우와 싸울 수 없는 경우를 잘 분간하는 일이다. 둘째, 적을 공격할 때 병력을 얼마큼 동원할지를 정확하게 계량하는 것이다. 셋째,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한다. 넷째,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다섯째, 지휘관이 풍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손무는 먼저 전쟁에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그것이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어떤 부정적 파급 효과를 낳는지 매우 치밀하게 계산해냈다. 전쟁과 경제의 상관성이다. 그는 이를 토대로 전쟁 개시 시점, 전장 선택, 전투 유형, 전쟁 기간, 종전 결정을 내릴 때 최선의 방안을 선택했다.
손무는 지도자가 백성들로 하여금 한마음을 갖고 전쟁을 벌이도록 하는 사회적 결속의 가치를 역설한다. 그는 군사학에 뛰어난 것은 물론 지리, 재정, 경제 같은 분야에도 탁월했다.
이 책은 장수의 자질로 지혜, 믿음, 어짊, 용기, 엄격함을 들었다. 현대의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과 일맥상통한다. 손자병법에는 네 종류의 장수가 등장한다. 용장(勇將)은 지장(智將)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보다 한 수 아래이며, 덕장도 복장(福將)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 복장은 운장(運將)을 뜻한다.
무성(武聖)’으로 추앙
‘손자병법’ 열세 편 가운데 마지막은 간첩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다룬 ‘용간’(用間) 편이다.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 붓는 전쟁을 치르면서 적에 관한 정보를 모르는 장수는 군사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에 장수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다. 적을 제대로 알기 위해 간첩의 활용을 강조한 것이다.
간첩은 현지 민간인 첩자인 인간(因間), 적의 관료를 스파이로 쓰는 내간(內間), 적의 간첩을 역이용하는 이중간첩인 반간(反間), 적에게 죽임을 당할 정도로 거짓 정보를 흘리는 사간(死間), 적진에서 살아 돌아와 보고하는 파견간첩인 생간(生間) 등 다섯으로 나뉜다. 손무가 이 가운데 가장 중시한 것은 반간이다. 반간을 통해 인간·내간을 얻을 수 있고, 사간 작전도 벌일 수 있으며, 생간의 안전 생환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탁월한 지혜가 없으면 간첩을 쓸 수 없고, 백성에 대한 사랑과 정의로운 목적이 없으면 간첩을 부릴 수 없으며, 미묘한 판단력이 없으면 첩보에서 참된 정보를 얻어낼 수 없다.”
‘시작은 처녀처럼, 마무리는 달아나는 토끼처럼’이라는 손자병법의 구절은 전쟁이든 무엇이든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인상 깊은 대목의 하나는 전쟁에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군주의 명이라도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허허실실 전략도 유명하다. “전쟁에서 한 번 승리한 계책은 되풀이하지 말고 끊임없이 변화시켜 형세에 대응해야 한다.” “예상을 뒤엎어 공격하고 수비하라.” “가기 좋은 길은 도리어 나쁜 길이다.”
오늘날 우리가 ‘손자병법’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남긴 책 덕분이라고 한다. 조조는 중복되는 부분을 정리하고 나름의 해석을 붙인 다음 유산으로 남겼다. 조조는 ‘손자약해’ 서문에서 “내가 병서와 전쟁 계책을 많이 보았지만 손무가 쓴 책이 가장 깊이가 있다. 자세히 계획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분명하게 꾀해야 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썼다.
중국 고문헌·고고학의 대가 리링 교수는 2000여 년 전 조조가 해설한 대목 가운데 손자 13편이 압권이라고 평한다. 불멸의 명저 ‘사기’를 쓴 사마천도 “세상에서 병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자 13편’을 들먹인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공자를 문성(文聖), 손자를 무성(武聖)으로 꼽아 문무 양대 산맥으로 기린다.
‘손자병법’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중국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1936년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의 추격으로 시골 오지인 옌안까지 쫓겨 간 마오쩌둥은 동지이자 참모였던 예젠잉을 화급히 불렀다. 그 명령 가운데는 손자병법 책을 구하라는 것도 있었다.
중국 해군은 올 들어 병사들에게 현대 해상 분쟁에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로 ‘손자병법’을 가르친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난세의 영웅 조조, 당 태종, 명대 유학자 왕양명 등도 이 책을 탐독했다. 한국에서도 예부터 많은 무신이 이를 지침으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역관초시(譯官初試)의 교재로 썼다.
인간 심리 날카롭게 통찰
‘손자병법’은 서기 717년 일본에 전해져 왕실의 비서(秘書)로 전해오다가 300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특히 무예를 숭상했던 일본 문화에서 ‘손자병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손자병법’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병서 가운데 하나다. 전쟁영웅 나폴레옹을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빌헬름 황제가 이 병서를 읽은 후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하고 술회한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이 1990년대 초 이라크와의 걸프전 지상전에 참여하는 해병대 장병들에게 90쪽짜리 ‘손자병법’을 필독서로 나눠 줬다는 뉴스가 화제를 모았다.
‘손자병법’은 6200여 자에 불과하지만 간결한 단어에 승패와 운명의 변화 원리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압축한 전쟁의 고전이다. 단순히 전쟁의 지혜를 넘어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전해준다. 이 책은 전쟁의 자잘한 수행이 아니라, 전쟁의 준비에만 여섯 편을 할애하고 있다. 전체가 열세 편임을 고려하면,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 전쟁 준비에 관한 내용이어서 경영에서도 지혜를 얻을 게 숱하다.
이 때문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손자병법’을 머리맡에 두고 경영전략서로 활용할 정도다. 마쓰시타전기 창업자 마쓰시타고노스케는 직원들에게 반드시 ‘손자병법’을 읽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의사·기업가 출신의 정치가 안철수 의원도 ‘손자병법’을 미국 유학 시절 백 번 넘게 읽었다고 그의 부친이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손자병법을 ‘선거’에 악용해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것이나, 경영에 비도덕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손무가 말한 전쟁의 철학에 어긋난다.
‘손자병법’은 과거엔 전쟁의 역사와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기업과 경영, 조직관리의 보감(寶鑑) 노릇도 톡톡히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