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말순의 시어머니 노릇에 스트레스를 받은 며느리 애자(황정민)가 자살을 기도하자 아들네 식구들은 오말순을 양로원으로 보내려 한다. 치킨을 사달라는 철부지 손자를 만나러 가던 중, 오말순은 영정용 사진을 찍을 겸 청춘사진관이라는 곳에 들른다. 그곳에서 나온 그녀는 50년 전의 청춘을 되찾는다. 어차피 가족이 자기를 가출한 것으로 여기리라고 본 오말순(심은경)은 박씨 집에서 하숙을 한다. 평소 좋아하던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따서 이름을 오두리로 바꾸고 손자가 하는 밴드의 리드 싱어가 된다. 또 그녀를 흠모하는 음악프로그램 PD 한승우(이진욱)와 사랑을 꽃피운다.
‘지나간 내 청춘이여…’
노년의 주인공이 젊은 시절로 돌아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룬다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노년 인구가 급증하는 사회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한국인 평균 수명은 여성은 84.5세이고 남성은 77.8세다. 출산율 저하와 맞물려 우리 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노령화하고 있다. 현재의 노령층은 청장년 시절 지독한 가난과 근대화를 체험한 세대다. 이들에겐 자아실현보다 생존이 더 절실한 문제였다. 성공한 노인이든, 그렇지 못한 노인이든 ‘아~, 지나간 내 청춘이여’라고 한탄할 법하다. 이어 ‘남은 인생이라도 멋있게 살자’라고 다짐할 것이다.
대중문화는 노인의 이런 정서를 적극 반영한다. 2013년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온 ‘꽃보다 할배’(tvN), ‘마마도’(KBS), ‘꽃보다 누나’(tvN)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제작됐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나이 많은 배우들이 중년층이나 젊은 층 배우와 짝을 이뤄 배낭을 짊어지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노년에 이른 이들이 젊은 시절 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모습에 많은 동년배 노인이 공감한다.
노년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 나타나는 복고 바람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 영화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경향이 두드러진 때는 2000년대 중반이다. 주로 1970년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곽경택·2001), ‘클래식’(곽재용·2002), ‘말죽거리 잔혹사’(유하·2003)는 한 개인의 성장사와 현대사를 결합했다. ‘살인의 추억’(봉준호·2003), ‘실미도’(강우석·2003),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2005),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2004)은 1970~ 80년대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을 재현했다. ‘효자동 이발사’(임찬상·2004), ‘그해 여름’(조근식·2006)은 유신정권 등 시대적 배경을 차용해 허구적 사건을 다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2001), ‘품행 제로’(조근식·2003), ‘인어공주’(박흥식·2004)는 1970~80년대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 코드를 재연했다. 몇몇 영화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거나 현재의 인물이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형식을 취한다. 이에 따라 사건이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 백’ 기법이 자주 사용된다.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요즘 다시 복고 흐름이 나타났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의 과거 회귀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로 다룬 것과 달리 최근의 과거 회귀는 1990년대를 지향한다. ‘써니’(강형철·2011), ‘건축학개론’(이용주·2012)이 그렇고, 텔레비전 드라마로 ‘응답하라 1997’(tvN·2012), ‘응답하라 1994’(tvN·2013)가 이를 대표한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은 1990년대에 유행한 대중가요를 자주 부른다.
이러한 텍스트들은 대체로 199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30대 중반~40대의 집단기억에 소구한다. 이전 세대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흐름을 겪으면서 자랐다면 이들은 소비문화, 휴대전화, PC통신을 처음 쓴 N세대였다. 20대에 민주화를 겪은 세대는 ‘386세대’라는 이름의 사회적 중진으로 등장했지만, 1990년대 세대는 아직 자신에게 합당한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도 사회적 중진이 됨으로써 자아실현, 욕망, 힐링을 추구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책임감과 피로감을 점점 더 느끼면서 말이다. 이것이 중년 이상 세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향수의 바탕이다.
노년이나 중장년 인물이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예전에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과거로의 회귀 경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이클 제이 폭스가 주연을 맡은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로버트 저메키스·1984), 미래의 주인공이 현재의 주인공과 기계를 통해 소통하는 ‘터미네이터(Terminator)’(제임스 캐머런·1983), 40대 여인이 우연히 10대 고교 시절로 돌아가는 ‘페기 수 결혼하다(Peggy Sue Got Married)’(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986), 어느 양로원 풀장에 숨겨진 외계인의 누에고치 에너지로 노인들이 회춘한다는 ‘코쿤(Co-coon)’(론 하워드·1985)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기 할리우드의 제작 관행, 산업 규모, 주제, 관습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를 ‘뉴 할리우드(New Hollywood)’라고 한다. 이전의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는 대형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 상영을 수직 통합해서 일괄 제공했다. 이들은 1950, 60년대를 거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여름방학 대목을 바라보고 막대한 예산을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놓게 된 것이다. 미국 전역과 전 세계 극장에 공급하고 이후 비디오로 출시하며 영화 전문 케이블 방송에 판권을 판매하는 식으로 전환됐다.
노년에 찾아오는 욕망과 꿈
사회적으로는 1970년대의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쟁 철수, 이란에서의 인질 구출 실패 등으로 미국의 영향력과 지도력에 의구심이 커졌다. 따라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던 1940년대 후반~1950년대에 대한 향수가 나타났다.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내용의 할리우드 영화 중 상당수는 바로 1940년대 후반~1950년대로 돌아가는 영화다. ‘백 투 더 퓨처’와 ‘페기 수 결혼하다’는 그 시절의 청춘과 가족을 다뤘고, ‘페어웰 마이 러블리(Farewell, My Lovely)’와 ‘빅 슬리프(The Big Sleep)’는 그 시절 미국에서 등장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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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미국과 2010년대의 한국은 레이건, 부시,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성향 대통령이 통치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들 대통령은 이전 시기의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사회 분위기와 결별하고 보수적 가치를 확립하려 한다. 이와 함께 이전 시기에 기성의 권위에 도전한 베이비 붐 세대는 노년으로 진입한다. 이들 세대는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는 어떤 상실감을 강하게 느끼며 욕망, 꿈, 향수에 집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