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먹방 전성시대’의 사회심리학

  • 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이혜미 |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4년

    입력2014-03-18 17: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 팬들 사이에 때 아닌 ‘치맥 열풍’을 불렀고, 3월 3일(한국시각) 미국 LA에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브래드 피트 등 세계적인 톱 배우들이 ‘피자 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먹방’의 전성(全盛)에 깃든 사회심리학.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혼자 사는 남녀의 식생활 문화와 로맨스를 그린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4)은 실연의 고통에 빠진 두 젊은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복경찰 금성무는 4월 30일까지 유통기한이 정해진 파인애플 통조림을 계속해서 먹는다. 전 애인이 파인애플 통조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정복경찰 양조위는 매일 패스트푸드점에서 스튜어디스 애인이 즐겨 먹었던 샐러드를 산다. 이들은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애인이 좋아했던 음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사회적, 심리학적 맥락에서 보면 두 젊은 경찰관은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젊은 세대가 갖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허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는 이른바 ‘먹방’ 트렌드도 ‘중경삼림’에 나오는 두 경찰관의 심리구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무엇을 먹는다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육체적 욕구(need)를 해결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거나 허기진 위장을 채우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는 욕구의 배고픔이 아니라 욕망(desire)의 배고픔에 빠져 있다.

    정서적 식욕, 그 욕망의 배고픔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Roger Gould)는 탐식 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왜 사람들이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연구했다. 정신과 의사인 그에게 온 많은 환자는 사랑에 실패하거나 다른 사람이 몹시 미워서,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과식을 하고 탐욕스럽게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다. 환자들의 탐식 기저엔 ‘무기력증’이 있었다. 식욕은 자신의 무기력증을 메우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니 아무리 먹어도 탐식은 해결되지 않는다. 환자들이 갖고 있는 무기력증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굴드가 제기한 것은 ‘정서적 식욕(emotional eating)’의 문제였다. 결국 폭식이나 탐식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는 탐식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욕구는 해결됐다. 그러나 남아 있는 빈 밥그릇을 보면서 허기를 느낀다. 나는 우리 시대 젊은 세대가 갖는 마음의 상태를 ‘정서적 허기(sentimental hunger)’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욕구만 채우면 되는 동물이 아니기에 정서적인 허기를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있어서 더 큰 허기를 야기한다.



    정서적 허기는 경제적 결핍과 관계적 결핍에서 비롯된다. 경제적 결핍은 문자 그대로 경제적 관계로부터 빚어지는 허기다. 젊은 세대는 경제적 관계로부터 배제된다. 젊은 세대가 신자유주의 물결이 초래한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젊은 세대는 청년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확대로 파편을 맞는다. 동시에 이들은 관계의 과잉 속에서 허기를 느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나타나는 관계의 과잉,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밖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가상공간에서 이어지는 불안감 등이 관계적 결핍을 야기한다. 가능성이 상실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가상의 관계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불안감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부추긴다. 이 모순성이 심리적으로 관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맛에서 ‘먹는 것 보기’로

    우리는 정서적 허기로부터 다양한 문화 트렌드가 부상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불어온 힐링 열풍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면서 떠올랐다. 복고나 향수도 현재의 불안과 좌절에 대한 방어로서 과거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보여준 건 지금의 30대가 10대와 20대에 겪은 첫사랑의 기억이다. 또 로봇 인형을 모으는 키덜트(ki-dult) 현상도 유행한다. 일종의 세대 퇴행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 고착되는 것이다. 배타적 공격성과 자기비하, 여성 및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감을 보여주는 일베 현상도 이와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먹방 트렌드도 정서적 허기가 투영된 다양한 문화현상 중 하나다.

    음식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음식 문화는 그만큼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변화를 극명하게 반영한다. 음식 문화의 변화에 따라 음식 관련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화해왔다. 전통적으로 음식 프로그램은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주부들이 주 시청 대상이었다. 참살이(웰빙) 열풍이 불어오면서 안전한 먹을거리, 몸에 좋은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화두였다. ‘잘 먹고 잘 사는 법’(SBS), ‘한국인의 밥상’(KBS)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먹는 음식들이 안전한지도 관심을 끌게 됐다. 음식과 시사 프로그램이 결합하면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채널A) ‘미각 스캔들’(jTBC)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외식산업이 확대되면서 맛집 탐방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VJ특공대’(KBS)는 음식만을 다룬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세 꼭지 중 하나는 맛집 탐방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식신로드’(Y-STAR) ‘테이스트 로드’(OLIVE) ‘찾아라 맛있는 TV’(MBC) 등은 맛집을 소개한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도 있다. ‘결정 맛 대 맛’(SBS), ‘마스터 셰프 코리아’‘한식대첩’(OLIVE) 등은 고급스러운 요리로 보는 이의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먹방은 기존 요리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요리 프로그램이 맛 그 자체로 출발한다면, 먹방은 음식을 요리하거나 미각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시각(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남이 먹는 것을 본다는 점에서)과 카타르시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TV에서 먹방 중계는 전체 프로의 10~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방송 아이템이다. 아프리카TV의 먹방 중계와 맞물려 지상파 방송에서도 먹방 아이템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아왔다.

    먹방 주제는 아니었지만 프로그램 속에서 소박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이상할 정도로 높았다. ‘아빠 어디가’(MBC)는 무너지는 가족관계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이지만, 시청자는 가족관계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윤후가 짜파구리를 먹는 모습에 열광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에서도 추사랑(추성훈의 딸) 먹방이 흥밋거리다. ‘해피투게더’(KBS2)의 야간매점도 먹방을 소재로 한다. 스타들은 다양한 야식 레시피를 소개하고, 간단한 재료로 저렴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인다. 방송이 끝나면 소개된 레시피는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tvN)나 ‘나혼자 산다’(MBC)는 1인 가구의 먹방 라이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이는 증가하는 1인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나홀로 문화’를 반영한다.

    먹방 트렌드는 인터넷 문화에서 먹방 축구 중계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아프리카TV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을 먹방 축구 중계로 진행했다. 축구해설자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먹방과 축구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시 최다 접속자가 1만4659명에 이르렀고, 우즈베키스탄전 때에는 총 20만 명이 시청했다. 영화에서도 먹는 장면은 스토리와 관계없이 관객의 관심거리다. ‘황해’나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맛있게 먹는 장면은 ‘

    하정우 먹방’으로 인기를 끌었다.

    먹방 트렌드를 보면 음식에 대한 의미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적 허기를 채우고, 기본적 욕구인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정서적 허기를 채우면서 타인이 음식 먹는 장면을 즐기면서 ‘보는’ 탐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카타르시스 디시(Catharsis Dish)’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답답하거나 억압된 감정을 먹방을 통해 분출하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의 확장

    먹방 트렌드는 먹는 문제로 비롯한 게 아니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 대부분은 라면요리, 치킨, 도시락 등 일상생활에서 간편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유명한 요리사의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을 나르시시즘의 확장으로 파악한다.

    나르시시즘은 내면의 공허함이 심각할 때 생긴다. 나르시시즘은 정서적 허기가 심리적으로 표출되는 방식이다. 나르시시즘은 자존감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로 ‘외부 거울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방 트렌드에서 외부 거울은 다른 사람의 먹는 행위에 대한 자기동일시를 의미한다. 과식 환자의 내면에 무기력증이 있는 것처럼, 먹방 트렌드의 내면엔 외부 거울에 의존해야만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도피적 공허함이 잠재해 있다.

    자아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집착은 경쟁적 개인주의 문화로부터 형성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생존경쟁에 대한 두려움과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타난 나홀로 문화는 먹방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부추긴다.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다룬 책 ‘트렌드 코리아 2013’(김난도 외, 2012)은 ‘나홀로 라운징(Along with lounging)’과 ‘미각의 제국’을 주요 트렌드로 지적했다. 나홀로 라운징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 안에서 공허를 느끼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개인적 노력을 의미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만의 분위기를 만들며 혼자서 놀기, 새로운 문화권으로 혼자 여행 떠나기, 혼자 영화나 공연 보러 가기 등은 나홀로 라운징이다. 이는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있다.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 2012년 25.3%, 2035년엔 34.3%에 달해 무려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대부분 먹방은 가족과 함께 보기보다는 자기 혼자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다.

    ‘미각의 제국’은 맛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맛집과 특이한 음식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디저트와 푸드 스타일링이 발달하며, 간단한 ‘야메 요리’든 정식 요리든 취미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을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하며 맛과 미각에 대한 취향이 보다 정교화하고 다양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난도 등은 소비 행태를 중심으로 나홀로 라운징과 맛의 제국을 설명했지만, 사회심리적 행태로 보면 먹방 트렌드는 나홀로 라운징과 맛의 제국을 넘어선다. 단순히 1인 가구 증가와 맛에 대한 관심이 먹방 트렌드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인 가구 증가가 나홀로 라운징을 초래한 건 맞지만, 먹방 트렌드는 한 단계 넘어 개인이 외부 거울에 의존하는 내면적 자아로 빠져들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맛과 미각을 넘어 카타르시스 디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억압으로부터의 탈주

    이는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분열 현상으로부터 나온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상적 자아에 집착하게 된다. 음식과 관련해서 이상적 자아에 대한 집착은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도피적 즐거움을 의미하고, 이는 내면적 나르시시즘 확장의 결과인 셈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몸에 대한 억압이 빠른 속도로 진행돼왔다. 우리 몸은 ‘내적 몸’과 ‘외적 몸’으로 구분된다. 내적 몸이 몸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 기능과 관련돼 있다면, 외적 몸은 외양과 외모를 의미한다. 그러나 내적 몸과 외적 몸 사이에 불균형이 있다. 외적 몸이 내적 몸의 가치를 지배하는 게 현실이다.

    내적 몸의 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먹는 것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대한 억압은 다이어트를 통해 강화돼왔다. 다이어트는 외적 몸을 꾸미는 방법이다. 다이어트는 정상적으로 먹는 행위를 억압해왔다. 외모가 자아의 반영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몸을 소홀히 한다는 건 개인의 게으름이나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지표로 인식되며, 심지어는 도덕적 실패로 간주된다. 또한 몸을 등한시하면 개인은 사회적으로 순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따라서 다이어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먹방 트렌드는 다이어트의 억압으로부터 심리적 해방을 가져다준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는 행위를 보는 것 자체가 자신의 육체적 허기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먹방 트렌드를 주도하는 집단은 외적 몸에 대한 관심이 높고,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먹방 트렌드가 나오게 된 외면적 배경은 1인 가구 증가, 스마트폰과 인터넷 문화의 확산, 나홀로 문화, 몸의 억압, 관계의 과잉으로부터 오는 관계의 허기 등이지만, 바닥에 깔린 건 무기력증이나 심리적 좌절의 정서다. 과거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했고, 앞으로 더 잘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압축 성장의 자양분은 가능성의 실현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장기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낙관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대중이 느끼는 정서적 허기의 강도는 다른 사회보다 셀 수밖에 없다. 세대적으로 봐도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더 갖는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현상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먹방을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우도록 이끈다. 마치 우울할 때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 그 탈주 심리가 먹방을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만들고 있다.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먹방’으로 스타가 된 가수 윤민수 아들 윤후(오른쪽),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딸 추사랑.(MBC, KBS 방송 화면 촬영)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