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트렌드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먹방 전성시대’의 사회심리학

  • 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이혜미 |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4년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2/3
외식산업이 확대되면서 맛집 탐방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VJ특공대’(KBS)는 음식만을 다룬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세 꼭지 중 하나는 맛집 탐방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 ‘식신로드’(Y-STAR) ‘테이스트 로드’(OLIVE) ‘찾아라 맛있는 TV’(MBC) 등은 맛집을 소개한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도 있다. ‘결정 맛 대 맛’(SBS), ‘마스터 셰프 코리아’‘한식대첩’(OLIVE) 등은 고급스러운 요리로 보는 이의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먹방은 기존 요리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요리 프로그램이 맛 그 자체로 출발한다면, 먹방은 음식을 요리하거나 미각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시각(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남이 먹는 것을 본다는 점에서)과 카타르시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TV에서 먹방 중계는 전체 프로의 10~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방송 아이템이다. 아프리카TV의 먹방 중계와 맞물려 지상파 방송에서도 먹방 아이템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아왔다.

먹방 주제는 아니었지만 프로그램 속에서 소박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은 이상할 정도로 높았다. ‘아빠 어디가’(MBC)는 무너지는 가족관계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이지만, 시청자는 가족관계 회복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윤후가 짜파구리를 먹는 모습에 열광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에서도 추사랑(추성훈의 딸) 먹방이 흥밋거리다. ‘해피투게더’(KBS2)의 야간매점도 먹방을 소재로 한다. 스타들은 다양한 야식 레시피를 소개하고, 간단한 재료로 저렴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인다. 방송이 끝나면 소개된 레시피는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tvN)나 ‘나혼자 산다’(MBC)는 1인 가구의 먹방 라이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이는 증가하는 1인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나홀로 문화’를 반영한다.

먹방 트렌드는 인터넷 문화에서 먹방 축구 중계로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아프리카TV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을 먹방 축구 중계로 진행했다. 축구해설자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먹방과 축구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동시 최다 접속자가 1만4659명에 이르렀고, 우즈베키스탄전 때에는 총 20만 명이 시청했다. 영화에서도 먹는 장면은 스토리와 관계없이 관객의 관심거리다. ‘황해’나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맛있게 먹는 장면은 ‘

하정우 먹방’으로 인기를 끌었다.



먹방 트렌드를 보면 음식에 대한 의미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적 허기를 채우고, 기본적 욕구인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정서적 허기를 채우면서 타인이 음식 먹는 장면을 즐기면서 ‘보는’ 탐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카타르시스 디시(Catharsis Dish)’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답답하거나 억압된 감정을 먹방을 통해 분출하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의 확장

먹방 트렌드는 먹는 문제로 비롯한 게 아니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 대부분은 라면요리, 치킨, 도시락 등 일상생활에서 간편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유명한 요리사의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을 나르시시즘의 확장으로 파악한다.

나르시시즘은 내면의 공허함이 심각할 때 생긴다. 나르시시즘은 정서적 허기가 심리적으로 표출되는 방식이다. 나르시시즘은 자존감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로 ‘외부 거울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방 트렌드에서 외부 거울은 다른 사람의 먹는 행위에 대한 자기동일시를 의미한다. 과식 환자의 내면에 무기력증이 있는 것처럼, 먹방 트렌드의 내면엔 외부 거울에 의존해야만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도피적 공허함이 잠재해 있다.

자아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집착은 경쟁적 개인주의 문화로부터 형성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생존경쟁에 대한 두려움과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타난 나홀로 문화는 먹방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부추긴다.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다룬 책 ‘트렌드 코리아 2013’(김난도 외, 2012)은 ‘나홀로 라운징(Along with lounging)’과 ‘미각의 제국’을 주요 트렌드로 지적했다. 나홀로 라운징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 안에서 공허를 느끼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개인적 노력을 의미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만의 분위기를 만들며 혼자서 놀기, 새로운 문화권으로 혼자 여행 떠나기, 혼자 영화나 공연 보러 가기 등은 나홀로 라운징이다. 이는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있다.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 2012년 25.3%, 2035년엔 34.3%에 달해 무려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대부분 먹방은 가족과 함께 보기보다는 자기 혼자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다.

‘미각의 제국’은 맛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맛집과 특이한 음식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디저트와 푸드 스타일링이 발달하며, 간단한 ‘야메 요리’든 정식 요리든 취미로 요리를 하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을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하며 맛과 미각에 대한 취향이 보다 정교화하고 다양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난도 등은 소비 행태를 중심으로 나홀로 라운징과 맛의 제국을 설명했지만, 사회심리적 행태로 보면 먹방 트렌드는 나홀로 라운징과 맛의 제국을 넘어선다. 단순히 1인 가구 증가와 맛에 대한 관심이 먹방 트렌드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1인 가구 증가가 나홀로 라운징을 초래한 건 맞지만, 먹방 트렌드는 한 단계 넘어 개인이 외부 거울에 의존하는 내면적 자아로 빠져들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맛과 미각을 넘어 카타르시스 디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3
주창윤 |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oo@swu.ac.kr 이혜미 | 서울여대 방송영상학과 4년
목록 닫기

정서적 허기 달래는 ‘카타르시스 디시(dish)’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