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고건의 꿈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4-03-20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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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화, 민주화, 새천년거버넌스 세 시대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시대적 과제를 맡아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 내가 뭘 더 하겠나. 명예를 탐하겠나.
    • 북한 산림녹화는 나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다.
    • 5월 말 평양에서 우리가 심포지엄을 여는데 그때 북한에 공식 제안하려 한다.”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고건(76) 전 국무총리는 십 수 년 넘게 대중목욕탕에서 반신욕과 요가로 건강을 관리했다. 날마다 서울 동숭동 자택 근처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목욕탕을 못 다니게 됐다. 장사가 잘 안 되고, 기름값이 올라 단골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대중탕이 찜질방으로 다 바뀌었더라. 간신히 한 군데를 찾았는데, 집에서 멀어 이제는 이발할 때만 들른다. 목욕탕에 이발소가 생기게 된 사연이 있다. 서울시장 할 때 일이다.”

    1980년대 후반 어느 가정주부가 ‘고건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퇴폐이발소가 동네까지 들어와 두 아들을 보낼 곳이 마땅찮다”는 내용이었다. ‘대중목욕탕에 이발소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청 보건사회국장이 “보건사회부 규정이 막고 있다”면서 난색을 표했다. “보사부 규정이 위생적인 이발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닌가. 무시하고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보사부는 나중에 서울시를 따라 규정을 바꿨다.

    서울 지하철 5·6·7·8호선과 내부순환도로를 보자.

    고 전 총리는 “1989년 겁도 없이 2기 지하철사업에 나섰다”고 회고록에 썼다. 2기 지하철은 11년 후인 2000년 12월 6호선을 끝으로 완공됐다. ‘임명직 서울시장 고건’이 착수한 사업을 ‘민선 서울시장 고건’이 마무리한 것. 고 전 총리는 서울시장을 두 번(1988~1990년, 1998~ 2002년) 지냈다.



    내부순환도로-강변북로 순환노선은 1989년 어느 날 밤 ‘고건 시장’이 서울 도시계획전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토지보상이 필요 없는 한강변과 홍제천 위에 도로를 내는 묘안을 구상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고 전 총리만큼 국가적 과제뿐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일상 구석구석에 손때를 묻힌 공인(公人)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관 세 번(교통부·농수산부·내무부), 서울시장 두 번, 국무총리 두 번(김영삼·노무현 정부),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 권한대행(2003년 2~4월).

    우리가 푸른 산을 갖게 된 데도 고 전 총리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을 맡고 있을 때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고 전 총리 역시 치산녹화 계획을 수립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누렇다 못해 붉은 北 민둥산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남북 소통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 전 총리 얘기가 나왔다. “의욕이 대단하다” “직접 전화 걸어 동참을 요청하시더라” “사명감마저 느껴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1972년 ‘고건 내무부 새마을사업담당관’이 “저 형편없는 산을 녹화하라”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입안한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흘린 땀이 우리 땅을 푸르게 했다.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누렇다 못해 붉은 속살을 드러낸 북녘의 민둥산과 푸르다 못해 검은 남녘의 산이 대비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공조림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 시작에 고 전 총리가 있다.

    34세의 부이사관 고건은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직접 보고했다. △모든 국민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국민조림’ △홍수, 산사태가 반복되니 이를 막는 ‘속성조림’ △장기적으로는 실질적 이득이 되는 ‘경제조림’이 보고의 골자였다. 박 대통령이 밝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은 국가정책이 됐다.

    고 전 총리가 5년 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일이 3월 19일 본궤도에 올랐다. 그가 입안, 기획, 준비한 아시아녹화기구가 공식 출범한 것. 이장무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 총장, 권병현 미래숲 대표, 김동근 겨레의 숲 공동대표, 이세중 평화의 숲 이사장이 고 전 총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아시아녹화기구의 첫 프로젝트가 한반도 녹화 계획이다. 영어로는 Green Korea Project. 쉽게 말해 ‘북한 나무 심기’다. 고 전 총리는 열정을 불태우던 30대 초반의 경험을 70대 후반 나이에 북쪽에 이식해주려 한다. 북녘의 민둥산을 푸르게 물들여 ‘그린 코리아’를 완성하는 게 숙원이면서 소망이다.

    고 전 총리는 인터뷰 요청을 사양했다. “관심 가져준 것은 고맙지만, 당분간 언론 인터뷰 안 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아니라 설명을 듣는 형식으로 3월 13일 서울 연지동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약속시각보다 일찍 도착해 회의 탁자 앞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탁자에는 북한 산림녹화 관련 자료가 정리돼 놓여 있었다.

    고 전 총리는 기억에 의존해 말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질문을 들은 후 자료에서 관련 대목을 찾아 얘기하곤 했다. 자료의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면서 이 대목을 읽어보라고 할 때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고 전 총리와 기후변화센터에서 함께 일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그와 관련해 쓴 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이 확고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발언을 아끼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 몇 차례 그의 바로 곁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을 때 나는 정작 회의에서는 그저 건성으로 참여하며 그가 써내려가는 메모지를 훔쳐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그처럼 가지런히 정리하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더 큰 감탄은 늘 며칠 후에 밀려온다. 며칠 후 다시 열린 회의에서 그는 어김없이 참석자 중 가장 탁월한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 며칠 동안 그는 엄청나게 많은 책과 자료를 읽었고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합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무섭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Green Korea 완성 목표

    그는 “북한 산림녹화는 고건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탁자 위에 놓인 ‘한반도 녹화 계획’ 문서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녹화기구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전화를 다 걸었다. 이 문서도 내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한반도 녹화 계획’이란 제목이 붙은 문서는 ‘추진경위’ ‘추진방향’ ‘추진계획’으로 나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부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치산녹화 경험을 살려 한반도 북쪽의 황폐산지를 녹화’ ‘백두대간의 생태를 복원하고 푸른 한반도·그린 코리아 완성’.

    고 전 총리는 2009년 기후변화센터 안에 북한산림녹화정책연구위원회를 꾸렸다. 서울대 윤여창, 이경준 교수, 고려대 손요환, 이우균 교수 등과 함께 ‘북한 나무심기’ 계획을 5년째 다듬어왔다. 2010년 세계임업연구기관연합회 총회 개최 기념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치산녹화, 그리고 북한의 산림’ 녹화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2011년, 2012년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사이드이벤트로 이 주제를 다뤘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옌볜대에서 ‘동북아지역 산림생태계 보호 복원’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해 11월엔 고려대에서 아시아산림녹화기구(GAO·Green Asia Organization) 설립 추진을 위한 다자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했다. 고 전 총리의 노력으로 고려대, 평양과기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겨레의 숲, 평화의 숲, 미래숲,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MOU에 서명했다. 3월 19일 아시아산림녹화기구가 출범하면서 이 같은 5년 노력이 일단락된 것이다.

    ▼ 북한 나무 심기에 관심 갖게 된 까닭이 뭔가.

    “이대로라면 훗날 통일을 이뤘을 때 북한에 들어가 가슴 아프게 생각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영유아 지원과 산림녹화가 그것이다. 길 닦고 하는 것은 그때 가서 해도 된다. 영양 부족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세대가 성인이 돼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에 가보라. 여자 근로자 체격이 우리 초등학교 아이보다 부실하다. 통일 후 그 사람들이 ‘남쪽에서 살찐다며 다이어트 하던 시절 우리는 굶어서 이렇게 됐다. 그때 뭐 좀 보내주지 그랬느냐’고 원망하면 가슴이 무척 아플 것이다. 총리로 일할 때 남는 우유는 북한에 보내라고 했다. 우유는 군용으로 갈 수 없지 않은가. 산림녹화는 1, 2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단 10년, 20년 넘게 걸린다. 통일 후에 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때는 더 악화돼 사방복구 공사를 함께 해야 한다. 그러면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 우리도 1970년대에 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으면 녹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녹화사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다. 1인당 하루 인건비가 10만 원인 데다, 나무 심으러 산에 들어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는 “내가 뭘 더 하겠어. 명예를 탐하겠어”라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북한 산림녹화가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했다.

    백두대간 생태 복원

    고 전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한 대목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민둥산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특사로 온 1972년만 해도 북쪽의 산이 더 울창하다고 말했는데, 금강산에 다녀간 남쪽 사람들이 북한의 산이 헐벗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특히 악화했다. 오래전부터 산에 다락밭(비탈진 땅에 층층으로 일군 밭)을 조성했지만, 통계를 보면 그 시기에 대대적으로 늘어난다. 땔감으로 쓰고자 남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산에 나무를 심는 방식이었는데, 북한은 경사진 비탈 밭을 녹화해야 한다. 우리가 국민식수를 했듯 북한도 나무를 심기는 하는데, 성과가 별로다.”

    ▼ 북한 산림녹화 사업은 민족사적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런 거창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말허리를 돌렸다.

    “이후락 부장이 북한에 간 1972년이 남북의 산림 모습이 갈라지는 해다. 그때만 해도 북한 산림이 울창했다. 북한의 황폐산지를 녹화해 푸른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백두대간 생태의 복원이기도 하다.”

    그가 북한 산림녹화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것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으로 일하던 2010년 1월이다. 사회통합위원회가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북한 산림녹화’를 핵심과제로 내놓은 것. 고 전 총리의 논리는 이랬다.

    “이념 대립 해결을 위해 보수, 진보를 망라해 전 국민이 참여할 사업이 필요하다. 북한에 국민 한 사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이념 대립이 해소되고 사회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양묘, 조림, 연료 확보, 방재, 소득 창출 등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진행하고 나무심기 노임을 양곡으로 지원하면 된다.”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北 원동연이 면담 원했다”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산림이 황폐화하면서 토사가 유출돼 벌거숭이로 변한 함경남도 신포의 한 야산.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진 분들도 산림녹화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국토에 나무를 심는 것 아닌가. 이북에서 넘어온 1세대 분들이 강경한데, ‘고향집 뒷동산에 나무 심는 일에 반대 안 할 거지?’ 물으면 그 일엔 돈 보내겠다고 하더라.”

    고 전 총리가 뒷얘기를 소개했다.

    “현실 공직은 맡지 않는다고 거듭 얘기했는데, 박형준을 비롯해 청와대 수석들이 삼고(三顧)가 아니라 다섯 번씩 찾아왔다. ‘와라 가라 하지 마라, 독립적으로 한다’는 조건부로 맡겠다고 했다. 사회통합위원장을 맡은 저의(底意)는 사실 북한 녹화에 있었다. 보수와 진보 공통분모 찾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이념을 초월해 할 일이 북한 나무 심기라고 봤다. 보수 진보를 대표하는 담론가인 문정인(연세대 교수), 복거일(소설가)의 제의 형식으로 신문에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반응이 왔다. 북한 원동연(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나를 만나자는 거였다.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논의를 발전시키자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북한이 관심 있는 분야도 구체적으로 밝히는 등 적극적이었다.”

    ▼ 실제로 만났나.

    “청와대에 곧바로 알렸다. 맹형규 특보 통해서 MB(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했다. MB가 해외 순방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갔다 와서 소식이 없더라. 그래서 못 만났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이 같은 요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김상협 전 대통령녹색성장기획관의 설명이다.

    “내부적으로 ‘그린 데탕트’를 준비했으나 남북관계 상황이 좋지 않아 실현하지 못했다. 환경 및 기후변화와 관련한 북한의 대응에 국제기구와 함께 도움을 주겠다는 구상이었다. 기상 및 기후정보 교환에서부터 시작해 조림사업 등을 통해 신뢰를 더욱 강화하려고 했다.”

    그린 데탕트는 환경 분야 협력을 통한 긴장 완화 사업을 가리킨다. 박근혜 정부는 황폐해진 북한 산림에 시범 조림과 병해충 방제를 실시하는 계획이 포함된 그린 데탕트 정책을 내놓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1일 발표한 2014년 신년사에서 “나무 심기를 전 군중적 운동으로 힘 있게 벌여 모든 산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림녹화는 지난해 신년사에는 없던 새로운 내용이다. 북한은 올해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산림복원계획을 추진한다.

    고 전 총리는 “북한 또한 산림녹화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우루과이 대신 북한에 심자”

    고 전 총리는 방향,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았다. 1970년대 한국의 경험을 전수하는 게 한 갈래다.

    “우리 경험을 살려 양묘, 조림, 연료, 식량을 체계적으로 연결한 패키지 계획으로 추진한다. 북한이 진행 중인 산림녹화계획과 우리의 치산녹화 경험을 접목한다. 예를 들면 80ha 연료림을 조성한다. 우리의 아까시나무 연료림 조성 경험을 살려 북한 환경에 적응할 아까시나무 수종을 연구해 양묘하는 것이다. 또한 임농복합개발 중심의 계획이다. 영어로는 Agroforestry라고 한다.”

    고 전 총리는 1974년 4월 국무회의 자료 원본을 꺼내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1972년 산림녹화 10개년 계획이 나한테 떨어졌다. 갱지로 된 작은 메모지에 대통령 친필로 지시 사항이 쓰여 있었다. 잘 안 되니까 새마을운동 담당 부서에서 하게 된 것이다. 이게 1974년 3월 보고한 1973년 결산, 1974년 계획이다. 우리는 국민조림 할 때 직장, 학교, 기관, 마을을 주체로 삼았다. 군도 나무를 심었지만 비중은 높지 않았다. 북한 계획을 살펴보니 기관, 기업소, 단체가 나무 심기 주체로 돼 있더라. 내가 기관, 기업소, 단체에 마을을 하나 더 붙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책임 경영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해냈다. 경험을 가지고 가 북한의 실상과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엔 그가 유럽 NGO 유럽연합지원계획(EUPS·European Union Project Support)이 작성한 파워포인트 문서를 보여줬다.

    “식량도 확보하고, 소득도 늘리면서 조림해야 성공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림농복합경영’이라고 한다. 이게 유럽 NGO가 북한 지역 두 곳에서 시험사업을 벌여 성공한 사례다. 지역사회 개발사업을 병행한 방식이 새마을운동하고 똑같다. 이것은 다락밭에 사방사업을 해서 밭 양쪽에 나무를 심은 것, 이것은 메탄가스를 활용한 것. 우리도 새마을운동 초기에 메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했다. 이것은 농가용 비닐하우스에서 남새를 생산하는 사진. 메탄가스를 비닐하우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 유럽 NGO가 책임관리할 조림 주체를 한 단위 10~15명씩 17개 그룹으로 짜놓았는데, 이것도 새마을운동과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지원과 관련해 유럽 NGO를 이따금 거론하던데 아마도 이 단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 대단위 산림녹화는 별도로 치고 민가 근처 산은 새마을운동 때처럼 지역사회 개발로 추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소득 증대와 주민 생활 개선이 산림녹화의 목적인 것이다. 생활 개선이 되지 않고는 나무 보호가 되지 않는다. 그간 북한 나무 심기를 지원한 한국 단체들은 묘목을 달라면 묘목을 주고 자재를 달라면 자재를 주는 형식이었다.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는데 일회성, 간헐적 방식이어서 한계도 있었다. 일방적 자재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 협력지원이 요구된다.”

    두 번째 갈래는 유엔 기후변화대응계획인 CDM(청정개발체계)과 REDD플러스(산림 황폐화 방지 복원 프로그램)를 활용하는 것이다.

    고 전 총리가 “포스코가 우루과이에 나무 심는다는 얘기 들어봤나?”라고 물었다. 포스코는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자 우루과이에서 조림사업을 한다.

    “우루과이까지 갈 필요 없다. 북한에 심으면 된다. 항공사들도 탄소배출권을 의무적으로 획득해야 한다. 항공 철강 발전 등 온실가스 다(多)배출 업체가 북한의 조림지를 CDM 사업으로 복구하면 남북이 윈-윈 할 수 있다. 국제적 지원을 받아 조림을 복구하는 REDD플러스는 새로운 개념이다. 북한에 식량지원할 때 배분 투명성이 문제가 된다. 선진국에서 낸 돈으로 북한에 나무를 심으면서 조림 참여 인력에 인도적 식량을 지원할 때 REDD플러스는 위성으로 감시한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어떤 나무를 심었는지,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다 살펴볼 수 있다. 이우균 고려대 교수가 이 분야 전문가다.”

    고 전 총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녹화가 완전히 잘돼서 그 속에 들어가 쉬고 싶다 싶은 사진이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1972년에 시작했으니까 숲 역사가 30~40년 된 게 좋아요. 장성 편백나무 숲은 어떨까요? 지게 지고 올라가는 사진보다 나무 심는 사진이 더 좋을 것 같아요.”

    북한 산림녹화 관련 자료에 넣을 사진과 관련한 통화였다.

    ▼ 공직에서 다른 일 할 때도 이런 식으로 준비했나보다.

    “연구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 아시아녹화기구 공동대표인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이 대북 메신저 역할을 하나.

    “북한 교육부와는 선이 닿는 데 다른 쪽과는 직접 연결이 안 된다더라.”

    5월 말 평양에서 심포지엄

    ▼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공식으로 제안해야 일이 시작될 텐데….

    “3월 19일 창립식 때 한반도 녹화계획 국제심포지엄1이 열린다. 국제심포지엄2를 5월 하순 평양과학기술대에서 열 예정이다. 그때 평양에 가서 북한에 공식 제의하고 논의할 예정이다.내가 갈 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남북관계 상황을 봐야 한다.”

    정부가 2010년 5·24 조치(대북 지원 중단)를 취하면서 공공기관과 민간이 북한 나무 심기 사업에 나서는 게 봉쇄돼 있다.

    “5·24조치? 만든 사람이 풀어야지. 이건 인도적 지원사업이라 괜찮아.”

    고 전 총리는 “일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해야 하고 특히 사람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직에 있을 때 그는 청렴무능한 이에게는 이권이 관련된 일상적인 업무, 부패유능한 이에게는 이권이 없는 어려운 과제를 맡겼다고 한다.

    “새마을운동 할 때 시멘트를 주면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나눠 갖지 말고 공동사업을 하라는 단서를 붙였다. 누가 시키는 일은 하기 싫게 마련이다. 북한에서 나무 심을 때도 동기를 유발하는 게 중요하다.”

    ▼ 단체 이름을 ‘한반도’녹화기구가 아니라 ‘아시아’녹화기구라고 지은 까닭은 뭔가.

    “그린 코리아 프로젝트는 아시아녹화기구의 1차 사업이다. 앞으로 ‘그린 아시아 프로젝트’로 확대할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한반도를 녹화하더라도 국제기구의 모자를 쓰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NGO가 참여한 국제적 NGO가 일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요로에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할 듯하다.

    “관료들도 상대해야지.”

    북한 산림녹화는 민간 주도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민관 협력사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고 전 총리의 생각이다. 민간 모금 및 민간기업의 CDM 사업과 정부 및 유엔 WFP(세계식량계획)의 식량 지원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추진한다는 것. 언론사와 공동으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할 구상도 세웠다.

    고 전 총리는 “산업화, 민주화, 새천년거버넌스 세 시대를 겪으면서 그때마다 시대적 과제를 맡아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고 말했다.

    북한 산림녹화 역시 그의 말처럼 이 시대의 과제이자 소명일 것이다.

    고 전 총리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듣고 헤어지니 저절로 나무에 눈이 갔다. 성미 급한 녀석들은 벌써부터 터질 듯한 꽃망울을 제 몸에 달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데 푸른 나무만한 게 없을 거란 단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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