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슈&인물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고건의 꿈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2/4
Green Korea 완성 목표

그는 “북한 산림녹화는 고건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탁자 위에 놓인 ‘한반도 녹화 계획’ 문서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녹화기구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직접 전화를 다 걸었다. 이 문서도 내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한반도 녹화 계획’이란 제목이 붙은 문서는 ‘추진경위’ ‘추진방향’ ‘추진계획’으로 나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부제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치산녹화 경험을 살려 한반도 북쪽의 황폐산지를 녹화’ ‘백두대간의 생태를 복원하고 푸른 한반도·그린 코리아 완성’.

고 전 총리는 2009년 기후변화센터 안에 북한산림녹화정책연구위원회를 꾸렸다. 서울대 윤여창, 이경준 교수, 고려대 손요환, 이우균 교수 등과 함께 ‘북한 나무심기’ 계획을 5년째 다듬어왔다. 2010년 세계임업연구기관연합회 총회 개최 기념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치산녹화, 그리고 북한의 산림’ 녹화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2011년, 2012년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사이드이벤트로 이 주제를 다뤘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옌볜대에서 ‘동북아지역 산림생태계 보호 복원’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해 11월엔 고려대에서 아시아산림녹화기구(GAO·Green Asia Organization) 설립 추진을 위한 다자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했다. 고 전 총리의 노력으로 고려대, 평양과기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겨레의 숲, 평화의 숲, 미래숲,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MOU에 서명했다. 3월 19일 아시아산림녹화기구가 출범하면서 이 같은 5년 노력이 일단락된 것이다.

▼ 북한 나무 심기에 관심 갖게 된 까닭이 뭔가.

“이대로라면 훗날 통일을 이뤘을 때 북한에 들어가 가슴 아프게 생각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영유아 지원과 산림녹화가 그것이다. 길 닦고 하는 것은 그때 가서 해도 된다. 영양 부족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세대가 성인이 돼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에 가보라. 여자 근로자 체격이 우리 초등학교 아이보다 부실하다. 통일 후 그 사람들이 ‘남쪽에서 살찐다며 다이어트 하던 시절 우리는 굶어서 이렇게 됐다. 그때 뭐 좀 보내주지 그랬느냐’고 원망하면 가슴이 무척 아플 것이다. 총리로 일할 때 남는 우유는 북한에 보내라고 했다. 우유는 군용으로 갈 수 없지 않은가. 산림녹화는 1, 2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단 10년, 20년 넘게 걸린다. 통일 후에 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때는 더 악화돼 사방복구 공사를 함께 해야 한다. 그러면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 우리도 1970년대에 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으면 녹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녹화사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다. 1인당 하루 인건비가 10만 원인 데다, 나무 심으러 산에 들어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는 “내가 뭘 더 하겠어. 명예를 탐하겠어”라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북한 산림녹화가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했다.

백두대간 생태 복원

고 전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한 대목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민둥산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특사로 온 1972년만 해도 북쪽의 산이 더 울창하다고 말했는데, 금강산에 다녀간 남쪽 사람들이 북한의 산이 헐벗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특히 악화했다. 오래전부터 산에 다락밭(비탈진 땅에 층층으로 일군 밭)을 조성했지만, 통계를 보면 그 시기에 대대적으로 늘어난다. 땔감으로 쓰고자 남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산에 나무를 심는 방식이었는데, 북한은 경사진 비탈 밭을 녹화해야 한다. 우리가 국민식수를 했듯 북한도 나무를 심기는 하는데, 성과가 별로다.”

▼ 북한 산림녹화 사업은 민족사적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런 거창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말허리를 돌렸다.

“이후락 부장이 북한에 간 1972년이 남북의 산림 모습이 갈라지는 해다. 그때만 해도 북한 산림이 울창했다. 북한의 황폐산지를 녹화해 푸른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백두대간 생태의 복원이기도 하다.”

그가 북한 산림녹화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것은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으로 일하던 2010년 1월이다. 사회통합위원회가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북한 산림녹화’를 핵심과제로 내놓은 것. 고 전 총리의 논리는 이랬다.

“이념 대립 해결을 위해 보수, 진보를 망라해 전 국민이 참여할 사업이 필요하다. 북한에 국민 한 사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이념 대립이 해소되고 사회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양묘, 조림, 연료 확보, 방재, 소득 창출 등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진행하고 나무심기 노임을 양곡으로 지원하면 된다.”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2/4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北 민둥산 푸르게 하는 게 공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소명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