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마다 공공기관 개혁이 ‘경영쇄신 방안’이니 ‘선진화 방안’이니 하면서 이름만 바뀌어 되풀이돼왔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실행하겠다고 천명했다. 지난해 12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파부침선(破釜沈船)의 결연한 각오”라면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및 실행계획을 내놓았다. 파부침선은 밥 지을 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구상 발표에서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통해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겠다”면서 “먼저 공공부문 개혁부터 시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월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때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해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겨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勞政) 갈등 더 거칠어질 듯
공공기관 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공공기관 노조 간 노정(勞政) 갈등이 더욱 깊어질 듯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3월 10일 두 노총 산하 6개 공공부문 연맹 대표자회의를 개최해 304개 공공기관 노조가 동시에 임금단체협상에 참여하는 공동투쟁 일정을 논의했다. 공공기관 노조는 정부의 ‘공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고 주장한다.
공기업 개혁에 대한 다수 국민의 여론은 호의적이다. 공공기관 개혁 방안과 관련해 정부의 논리는 보도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나, 공공기업 종사자의 견해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신동아’는 공기업 노조의 목소리를 통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이견(異見)과 반론(反論)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주영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위원장은 노동계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부당하다고 보는 이유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공공노련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석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 등이 속해 있다.
김 위원장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국민이 박수치는 것을 잘 안다”고 전제하면서도 “정부가 여론을 호도해 실상이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은 결코 정부가 죄인 취급하는 것처럼 부도덕한 집단이 아니다” “공공기관 부채는 경영 탓이 아니라 정부 정책 탓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노조와 대화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라고 강조했다.
▼ 공공기관의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데는 노조도 동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상화를 하자는 거다. 정부가 정상화를 하자는 이유가 뭔가? 공공기관의 과다한 부채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채를 해소하는 것이 정상화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 안(案)에는 부채 해소를 위한 근본적 대책이 빠졌다. 오히려 그 원인이 공공기관의 복리후생인 양 호도하지 않는가. 노조 주장은 부채가 문제라면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근본적 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조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귀를 막는다.”
현오석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14일 공공기관장들을 불러놓고 과도한 부채 등을 질타하면서 “파티는 끝났다”고 말했다.
“정책사업 공기업에 떠넘겨”
▼ 2012년 말 부채 상위 20개 공공기관 총 부채가 417조 원에 달한다. 특히 공공노련 산하 8개 기관의 부채는 이 중 70%에 해당하는 292조2000억 원이다. LH, 한전은 부채가 각각 138조 원, 95조 원에 달한다. 현오석 부총리 말대로 민간기업이었다면, 감원 칼바람이 수차례 불고, 사업 구조조정도 있어야 할 상황 아닌가. 다수의 국민이 공기업은 개혁 대상이라고 여긴다.
“공공기관 부채는 원인과 성격이 민간 부문의 그것과 다르다. 대부분의 부채는 정부가 해야 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공기업이 대신 수행하면서 발생했다. 4대강 사업과 보금자리주택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부가 비정상적인 공공서비스 요금 정책을 유지하면서 부채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사기업에 정책 사업을 강제로 떠넘길 수 있나? 비정상적으로 서비스 공급을 강요할 수 있나? 그랬다면 당장 기업이 간판을 내리게 됐을 것이다.
LH를 보라. 보금자리주택 정책 탓에 지난 정권에서 부채가 52조 원 증가했다. 지금도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매일 빚이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한전도 마찬가지다. 경쟁 체제를 도입한다면서 민간 발전회사를 확대해 한전이 부담해야 할 도매 전력요금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민간 발전사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민간 기업들이 발전소를 짓겠다고 해놓고 결국 포기하면서 한전과 한전 자회사들이 빚을 얻어 발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정책 탓에 ‘적자 한전’이 ‘흑자 삼성전자’를 지원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탓에 막대한 부채를 떠안았다. 부채의 주범인 정부가 공공기관에 책임을 떠넘긴 후 개혁의 대상으로 호도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을 개혁하려면 먼저 정부부터 개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