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 방증하듯, 사업 영역도 무척 세분돼 있다. 진료비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하는 ‘요양급여비용 심사’, 의료서비스 질과 비용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요양급여비용 적정성 평가’, 병·의원 등에서 국민이 부담한 비급여 진료비가 법령 기준에 맞게 부담됐는지 확인하고 더 낸 진료비가 있으면 돌려주는 ‘진료비확인서비스’, 요양기관이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컴퓨터 화면에 실시간으로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하는 ‘의약품 안심서비스(DUR)’ 등이 모두 심평원의 주 업무다. 또한 요양기관 현지조사, 응급의료비 대지급 제도 등 국민 안전과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정부정책 지원사업도 벌인다. 이처럼 국민의 건강한 삶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만큼, 심평원의 공고한 위상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심평원이 7월 1일로 창립 14주년을 맞았다. 더욱이 이에 앞서 심평원은 한국정보산업연합회 CRM·BI협의회가 주관한 ‘2014 고객중심경영대상’에서 보건의료정보의 가치융합 경영을 통한 고객만족 실현 공로를 인정받아 종합대상, 금융·유통·서비스·제조부문 대상, 공로상 등 6개 산업부문 중 최고상인 종합대상을 수상함으로써 일찌감치 겹경사를 알렸다.
심평원 수장(首長)은 손명세(60) 원장. 올해 2월 5일 제8대 심평원장(임기 3년)에 취임한 손 원장은 연세대 의학과 출신(보건학 박사)으로, 같은 대학 의대 교수와 보건대학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세계보건기구(WHO) 집행위원회 부의장 등 국제기구 경험까지 지닌 자타 공인의 보건의료 전문가다. 취임 직후부터 줄곧 분주한 행보를 보여온 그를 7월 7일 서울 서초구 효령로 심평원 본관에서 만났다.
▼ 역대 원장과 달리 취임과 동시에 의사단체는 물론 대한약사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한국제약협회 등 의료서비스 공급자 단체를 두루 방문했다.
“사실 요양기관 현장에선 심평원을 사정기관쯤으로 인식한다. 우리 국민이 연간 구매하는 의료서비스 총액이 56조7000억 원인데 이에 관한 조달조건, 즉 의료행위와 의약품, 치료재료 등 의료서비스 관련 비용과 품질 등을 심평원이 국민을 대리해 다 정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국영인 영국 등지와 달리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민간에서 사서 조달해야 하는데, 만일 일정한 구매조건이 없다면 약 80조 원이나 되는 비용이 든다. 그걸 56조 원대 수준으로 맞추는 게 심평원의 큰 역할이다. 그 때문에 심평원은 실질적인 보건의료 구매자다. 따라서 의약단체에는 갑(甲)질을 해야 하는 100% 규제행정기관이다. 하지만 이젠 심평원이 그들 단체가 제대로 성장하게끔 조력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본다. 의료공급자의 건강한 성장 또한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누리는 데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규제가 80%라면, 나머지 20%는 조장 혹은 육성행정에 힘써야 한다는 차원에서 좀 잰걸음을 걸었다.”
▼ 의약계 반응은 어땠나. 그동안 여러 의료정책 현안을 둘러싸고 심평원과 곧잘 미묘한 관계에 놓이질 않았나.
“의약단체에선 내가 먼저 찾아가 만나자니 좀 놀랍다는 분위기였다. 그간 각종 현안과 관련해 합리적 반대보다는 각자 소속 단체와 직역의 이익에 바탕을 둔 주장이 많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승적 차원에서 앞으로 서로 잘해나가자고 말하거나 구체적 요구조건을 내건 단체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의료공급자와 심평원의 협력체계 구축에 상호 긍정적 분위기를 감지한 기회였다고 본다. 일단 소통의 물꼬는 튼 셈이니, 현실은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실제로 6월 25일 추무진 신임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회장 역시 심평원을 찾아 손 원장과 예방(禮訪) 차원의 면담을 갖기도 했다. 추 회장은 노환규 전 회장에 대한 의협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6월 18일 임기 10개월의 차기 회장으로 당선됐다.
“규제보다 조장·육성에 힘쓸 것”
손 원장이 의료공급자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은 의료소비자다. 그는 4월 11일 경기 양평군 현대블룸비스타에서 연 ‘소비자단체·심평원 소통 워크숍’에서 심평원 업무에 대한 의료소비자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한국부인회, 한국소비생활연구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5개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의료소비자 참여를 매우 강조한다.
“합리적 보건의료 구매행위를 위해선 모든 의사결정이 밀실에서 이뤄져선 안 된다. 투명해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이젠 소비자시민단체들의 폭넓은 활동으로 의료수가 결정이나 진료비 심사·평가 기준 개발 등의 과정에서 의료공급자뿐 아니라 의료소비자 쪽 이해도 어느 정도 대변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은 소비자 개개인이 의료서비스 관련 정보를 직접 파악하기 힘든 제한된 여건인 만큼, 질(質) 기반의 보건의료 구매자인 심평원이 전문성을 지닌 기관으로서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고 공급자와의 중재자 구실도 함으로써 의사결정의 민주화에 더욱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