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참전 용사께 대하여 경례!” “고마워요, 한국”(6·25 참전 노병)

  • 타클로반=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4-07-23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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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군과 함께 부르던 아리랑, 지금도 불러
    •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 보은(報恩) 파병
    • 필리핀 초등학교, 일장기 대신 태극기
    • 태풍 피해 주민 “한국 영원히 기억할 것”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아라우부대 장병이 6월 24일 필리핀 레이테 주 타클로반 시에서 복구작업을 하기 전 한국전 참전용사인 도밍고 라가스에게 보은의 경례를 하며 예를 갖췄다.

    도밍고 라가스(88) 씨는 6·25전쟁 때 국군과 함께 부른 ‘아리랑’을 지금껏 기억한다. 64년 전 2600㎞ 떨어진 나라에서 터진 전쟁에 포병 장교로 참전했다. 한국 민요를 부르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중공군 공세 탓에 후퇴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 유엔(UN)군이 없었다면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는 없을 것이다. 아무 것도 없던 폐허의 나라가 부자 나라가 돼 필리핀을 돕는다. 참전은 일생의 자랑이다.”

    라가스 씨는 필리핀 레이테 주(州) 타클로반 시(市)에 산다. 한국이 필리핀에 T-50(고등훈련기)을 수출하는 것, 일본과 갈등을 빚는 것을 알 만큼 한국 소식에 밝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파병했다. 169명이 불귀의 객이 됐다(사망 112명, 실종 57명). 229명이 다쳤다.

    베라르미노 필리핀 8사단장은 “7420명을 파병했다. 부대 명칭은 한국탐사대(Philippine Expeditionary Forces to Korea)다. 8사단 예하 3개 대대가 최전선에서 공산군에 맞섰다”고 말했다.

    라가스 씨는 “내가 속한 대대 병력이 1000명인데, 전우 수십 명이 이제껏 살아남았다. 잊지 않고 노병(Old Soldier)을 찾아줘 고맙다. 한국군이 은혜를 갚고자 왔다는 게 더욱 기쁘다”면서 웃었다.



    국군은 지난해 11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피해 복구를 돕고자 12월 27일 레이테 주 동부지역에 아라우부대(필리핀합동지원단)를 파병했다. ‘아라우’는 현지어로 태양, 희망이라는 뜻이다.

    아라우 부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로 정비를 비롯해 도시 기능 회복을 도운 것. 긴급 구호 활동을 하면서 1월부터 학교 병원 관공서를 1주일에 한 곳꼴로 재건했다. 팔로(221㎢)·타나완(78㎢)·톨로사(23㎢) 시 29곳에서 건물 개축 및 보수 공사를 완료했다(7월 1일 현재). 직업학교 운영, 무료 급식, 한글학교 운영, 무료 진료 활동도 펼친다.

    합동참모본부 윤용권 중령은 “아라우부대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 280명으로 짜인 합동파병부대로 6·25전쟁 참전국에 대한 보은(報恩) 파병이자, 유엔이 아닌 재해 당사국 요청을 받아 인도주의 목적으로 파병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7000명 사망, 110만 채 붕괴

    지난해 11월 필리핀을 타격한 태풍 하이옌(海燕·바다제비) 탓에 레이테 섬은 쑥대밭으로 변모했다. 관측 사상 가장 센 태풍(순간 최대 풍속 379㎞)이 7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옥 110만 채를 파괴했으며 이재민이 390만 명에 달했다.

    6월 23일 하늘에서 내려다본 레이테 섬의 집과 토지는 거칠어져 못쓰게 된 게 태반이었다. 방파제가 아직도 부서진 채로 파도를 맞았다. 폭풍해일 탓에 육지로 밀려온 대형 선박에는 이재민이 살림을 차렸다. 휘어져 녹슨 철골이 을씨년스럽다.

    집 잃은 이는 움막을 연상케 하는 나무집을 짓고 산다.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제공한 천막으로 비바람을 막으면서 삶을 버텨내는 이도 많다. 뿌리째 뽑히거나 허리가 잘려나간 야자나무가 살풍경(殺風景)하다.

    권두영 아라우부대 공보과장(소령)의 설명이다.

    “타클로반 항(港)에 해군 함정을 댄 후 처음 상륙했을 때는 건물 잔해와 쓰레기더미가 지역 전체를 뒤덮어 이동조차 불가능했다. 한동안 길을 내는 일과 재건 활동을 병행했다. 현재는 도로 전기 수도가 70%가량 회복됐다.”

    초대형 태풍은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는 참전 용사 라가스 씨의 집도 파괴했다.

    “심장병을 앓는데, 운 좋게도 태풍 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집에 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병원에 비바람이 들이닥쳐 의료장비가 다 망가졌다. 한국 NGO가 의료기기와 약품을 지원해줬다. 또한 한국군이 도로를 정비하고 경찰서, 소방서를 재건했다. 이웃들이 하나같이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말한다.”

    레이테 주 어린이들은 국군을 보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 ‘기브 미 캔디(give me candy)’를 외친다. 국군은 사탕, 초코파이를 어린이에게 나눠준다.

    6월 23일 오전 11시 톨로사 시 오퐁초등학교. 아라우부대원들이 학교를 방문하자 교사와 전교생이 반가운 얼굴로 운동장에 몰려 나왔다. 군인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이 학교는 아라우부대가 필리핀에 와서 처음으로 재건한 학교다. 1월 24일 준공했다.

    오퐁초등학교 주변에서는 아라우부대 급수차가 주민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부대원을 발견한 주민들은 하나같이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치켜 올렸다. 한 주택 울타리에는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우리는 당신의 친절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한글로 적은 푯말이 세워져 있다.

    6월 25일 오전 11시 부락초등학교에서는 아라우부대가 마련한 무상급식이 진행됐다. 파병 6일째인 1월 2일부터 무상급식을 시행했다. 이날은 쌀밥과 돼지고기를 곁들인 몽구스(필리핀 음식) 250인분을 마련했다. 식단은 레이테 주의 시장들과 의논해 결정한다. 컵라면이나 토스트를 낼 때도 있다.

    조만득 원사가 줄 서 있는 아이들에게 “손 먼저 씻고 와”라고 말하면서 미소 짓는다. 병사들이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그릇에 밥과 반찬을 가득 담아준다. 유니세프가 제공한 천막에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의 표정이 귀엽다.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6월 26일 필리핀 레이테 주 톨로사 시의 한 주택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우리는 당신의 친절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한글로 적은 푯말이 붙어 있다.

    작전명 ‘아라우 엔젤’

    “초기엔 주로 이재민촌에서 무료급식을 했다. 한 아이가 한 끼에 여섯 번씩 찾아오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녁식사까지 챙겨간 것이다. 도시가 안정을 찾으면서 이재민촌 주변에 값싼 식당이 들어섰다. 장사하는 주민에게 폐가 될까 싶어 요즘엔 초등학교 중심으로 무료급식을 한다”고 조만득 원사는 말했다.

    레이테 주 어린이에게 국군은 무너진 학교를 다시 세워주고, 병을 치료해주며, 먹을 것을 나눠주는 ‘천사’다. 아라우부대는 필리핀에서의 작전 명칭을 ‘아라우 엔젤’이라고 지었다.

    필리핀은 400년 넘게 식민지배(스페인 360년, 미국 50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수빅만(灣)에서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때는 1992년. 외국군 주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철원 필리핀합동지원단장(아라우부대장·대령)의 설명이다.

    “미군 철군 이후 국군이 외국군으로서 필리핀에 처음 주둔한 것이다. 필리핀인은 자존심이 강하다. 도움 주는 사람이 을(乙), 도움 받는 사람이 갑(甲)이라는 관점에서 활동한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6·25전쟁 때 희생에 보답하러 왔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주둔지를 마련하기 전인 1월 3일 ‘아라우 엔젤’ 작전을 곧바로 시작했다. 외국군이 와서 지원은 게을리하고 주둔지나 짓는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해군 함정에서 생활하면서 파병 한 달도 안 된 1월 24일 오퐁초교 완공식을 했다.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2월 방문해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라고 하더라. 필리핀의 친구, 은혜를 갚는 벗이란 평가를 듣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6월 26일 필리핀 레이테 주 톨로사 시 산타엘레나초등학교 건물 외벽에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가 그려져 있다. 아라우부대가 초등학교를 보수 공사한 후 태극기를 그려 넣었다. 이 벽면에는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자이카)가 리모델링 공사를 해준 뒤 그려 넣은 일장기가 있었다(위).

    장병들은 주둔지 없이 해군 함정에 머무르면서 복구 지원을 하던 한 달여가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주둔지 건설을 민간업체에 맡기고 아라우 엔젤 작전에 주력했다. 주둔지는 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었다.

    더위가 장병의 가장 큰 적이다. 오전 8시 수은주가 35도 넘는 날이 허다하다. 40도 넘는 대낮의 지붕 공사가 특히 고되다. 한 병사는 공병대원 5명이 반나절에 1.5L들이 물 20통을 마신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장병 1명이 사용하는 생활관 공간은 군용 매트리스 한 장 남짓. 컨테이너마다 에어컨을 설치해 주둔지에서는 더위를 달랠 수 있다. 오후 6시 이후엔 장교, 준사관, 부사관도 부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미군과 관련해 필리핀 여성이 겪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국군은 주둔지 밖에서는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다. 대신 필리핀 군인이 국군을 경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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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3일 아라우부대 장병이 필리핀 레이테 주 타나완 시 산페르란도초등학교에서 지붕 공사를 한다.

    이렇듯 고생하는 아라우부대 장병 전원에게 6월 10일 볼테어 가즈민 필리핀 국방부 장관이 유공표창과 메달을 수여했다. 필리핀 정부는 아라우부대의 활동상을 각국에 알리고자 주(駐)필리핀 외국 무관단에게 아라우부대를 둘러보게 하기도 했다.

    이철원 단장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 친한화(親韓化) 활동에도 역량을 투입한다”면서 “하반기엔 학부모와 어린이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초등학교 지원 사업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초등학교 40곳 보수

    레이테 주 초등학교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태극기가 ‘올라가고’ 있다.

    이 지역 상당수 학교는 일본 정부가 환경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건물을 개축해준 것이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때(1965~1986) 일본이 신축한 학교도 적지 않다. 일본은 고속도로도 닦아줬다. 일본이 짓거나 보수한 학교에는 필리핀 국기와 일장기가 교사(校舍) 벽면에 그려졌다.

    아라우부대는 이 지역 초등학교 83곳 중 16곳을 보수했다. 연말 철군 때까지 40곳을 수리하는 게 목표다. 국군이 개축하거나 보수한 학교 건물마다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가 함께 그려졌다. 일장기가 있던 자리에 태극기가 자리 잡은 것.

    백명현 중위는 “각국 NGO가 학교 지붕만 수리하는 것과 다르게 국군은 전기, 수도 시설 등을 보수하고 PC도 설치해줘 각 학교 교장이 우리 학교부터 해달라고 앞다퉈 요청한다”고 전했다.

    6월 24일 오전 10시, 쉬는 시간이 되자 바라스초등학교 학생들이 태극기와 필리핀 국기가 그려진 학교 건물 앞에서 뛰어 논다. 이 학교는 아라우부대가 4월 완공했다. 녹색 슬레이트로 지붕을 마감하고 연두색으로 벽면을 도색했다. 유치원, 1~6학년 238명이 이 학교에서 공부한다. 학생 7명이 지난해 태풍 때 사망했다.

    린 자르디가(40·여)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천막으로 임시 교실을 꾸린 후 작은 칠판을 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1~2시간만 수업하고 집으로 보냈다. 한국군이 매우 열심히 일했다. 학교에 있는 모든 것을 한국군이 해줬다. 아이들이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태풍 때 팔로시초등학교는 4개 건물이 붕괴됐다. 학생 중 6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이 학교 학생들은 천막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허물어진 구령대 밑에서도 20명이 수업을 들었다.

    6학년 담임교사 루아 아노타(50·여) 씨는 “6월 2일부터 263명이 텐트를 치고 공부한다. 2월, 3월엔 텐트도 없이 수업했다”고 말했다. 필리핀 각급학교는 6월부터 3월까지 수업하고 4월, 5월이 방학이다.

    임시교실에서 20m 떨어진 건물에선 아라우부대 장병이 지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3일 전부터 이 학교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최병일(43) 상사는 “어느 곳에 가나 필리핀 국민이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줘 힘이 난다”면서 구슬땀을 닦았다.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6월 26일 필리핀 레이테 주 타나완 시 이재민촌에서 아라우부대 의료지원팀이 열상 환자의 피부를 치료한다(왼쪽). 같은 날 타나완 시 이재민촌에 사는 한 어린이가 아라우부대 장병이 나눠주는 음료수를 받을 순서를 기다린다.

    아노타 씨는 “한국 군인이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게 특히 좋다. 우리와 의사소통도 친절하게 잘 한다. 이웃의 다른 학교를 고쳐주는 것과 그간의 각종 지원 활동을 지켜본 터라 주민, 학부모가 한국군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필리핀을 떠나면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페르란도초등학교에서도 지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학교 보수를 맡은 이윤섭 대위는 땀을 닦으면서 “국위 선양하러 왔다. 피로 빚진 것을 땀으로 갚겠다”고 말했다. 군복은 소금땀범벅이 돼버렸다. 공사로 환경이 어수선했으나 이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어윈 싱코 오카나 톨로사 시장은 6월 26일 오전 부락초등학교 완공식 때 이렇게 말했다.

    “아라우부대 장병은 스마일링 코만도(Smiling Commando)면서 하드 워킹 맨(Hard Working Man)이다. 당신들은 영원히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두 단어를 한국어로 발언)를 입에 달고 산다. 고맙다. 사랑한다.”

    “당신들은 진정한 천사다”

    6월 26일 오후 1시, 타나완 시 이재민촌에서 김지현(30·여) 대위가 감기에 걸린 어린아이를 안았다.

    아라우부대 의료지원팀은 180일 동안 1만 7000명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 진료팀은 내·외과 진단, 투약 등 의원급 진료가 가능하다. 군의관 6명, 간호장교 6명 등 35명으로 의료지원팀을 꾸렸다.

    서석현 아라우부대 의무대장(소령)은 “오전에만 환자 150명을 봤다. 십중팔구가 당뇨, 고혈압을 달고 산다. 식습관 탓인 듯하다. 위생에 무지해 어린이 잔병치레도 많다”고 말했다. 진료가 이뤄지는 곳을 가리키면서는 “이곳이 다른 이재민촌보다는 진료 환경이 낫다”고 소개했다.

    보통은 천막을 치고 환자를 보는데, 이날은 기둥이 남은 건물에서 진료했다. 진료 테이블 3개, 투약 테이블 2개, 간이수술실 1곳을 마련했다. 진료 테이블에서 필리핀 군인이 통역을 한다. 공용어인 영어를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간이수술실에서는 눈썹 위가 찢긴 어린이가 봉합 수술을 받고 있었다.

    김지현 대위는 “가벼운 질환인데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을 키운 이도 많다. 얼마 전엔 팔이 반쯤 떨어진 채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태풍 때 다쳤는데, 수술할 돈이 없었다. 우리가 사비를 갹출해 도와줬다”고 전했다.

    간호장교와 군의관이 전해준 환자들의 반응은 뭉클하다. “당신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태풍에 대한 트라우마도 치료해줬다.” “(울면서)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군 의료팀이 왔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아리랑.” “한국 약이 최고예요. 한국 약 먹으면 하나도 안 아파요.” “이 아이들은 한국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당신들은 진정한 천사다.” “사위 삼고 싶다.” “이런 오지까지 들어와 줘 고맙다.”

    이재민촌 진료소 옆에서 국군 장병이 팝콘, 슬러시, 솜사탕, 배즙을 준비한다. 100명 넘는 아이들이 줄 서 있다. 반치문(39) 상사가 비지땀을 흘리면서 솜사탕을 만든다. 귀신 잡는 해병이다. 해병대 2사단 김포수색대에서 근무했다.

    “수색대 훈련보다 솜사탕 만드는 게 더 힘드네요.”

    줄이 더 길어진다. 아이들이 솜사탕을 기다린다. 조바심이 난다. 목이 빠진다.

    ‘은혜 갚는 천사’ 아라우부대 180일 기록

    6월 26일 아라우부대가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황대흥 중위가 선어말어미 활용법을 가르친다.

    “할아버지처럼 참전할 것”

    복구 초점이 긴급구호에서 재건으로 변하면서 아라우부대는 기존의 공공시설 복구, 의료지원 중심의 활동을 넘어 직업학교 한글학교 등 이재민의 자활을 지원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분야로 활동 범위를 확대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니켈메입니다.”

    6월 26일 오후 4시 팔로고등학교. 귀에 익은 한국어가 들린다. 아라우부대가 운영하는 한글학교. K-팝과 한류드라마 덕분에 우리말을 익히려는 학생, 어른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날 수업 내용은 선어말어미 활용법. 학생들은 동사, 형용사에 ‘했어요’ ‘해요’ ‘았어요’ ‘었어요’를 붙여 시상(時相)이 달라지는 것을 배웠다. “예뻐요” “예뻤어요”의 차이를 배운 학생들이 ‘섹시해요’ ‘섹시했어요’로 활용하면서 까르르 웃는다.

    한글학교 교사 황대흥(24) 중위는 필리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거의 모든 학교가 한글학교 유치를 원했다. 수업을 들으려고 다른 지역에서 1시간 30분을 걸어서 오는 학생도 있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두 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수업한다. 학교 방학 기간(4~5월)에는 1주일에 4~5회씩 강의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4시간씩 가르치기도 했다.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단어를 150개씩 외워온다.”

    한글학교는 어린이반, 청소년반, 성인반으로 나뉘어 있다. 3명의 교사가 번갈아가며 수업한다. 교사 중 1명은 필리핀인이다.

    로루하 아로사(14) 양은 수업이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잘생긴 한글 선생님 예뻐요. 좋아요”라고 한국어로 말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에릭슨 레과르다(24) 씨는 “한국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6월 26일 오전 8시 아라우부대 주둔지 인근의 직업학교 중장비 실습장. 3기 훈련생인 도나 벨리아 에스토헤로(24·여) 씨가 지게차 운용 실습 시험을 치르고 있다. 능숙한 솜씨로 지게차를 이용해 물건을 운반한다.

    에스토헤로 씨는 “태풍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기 전에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도시가 이 꼴이 돼 직업을 잃었다. 아버지가 지게차 운전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 직업학교에 다니게 됐다” 말했다.

    직업학교는 4월 21일 1기 43명 입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기 17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교육과정은 현지 교육기관이 제공하는 3주간의 이론교육과 아라우부대가 준비한 3주 실습교육으로 이뤄졌다. 이론 및 실습 평가에서 합격하면 중장비 운용 면허를 취득한다. 타클로반·톨로사·팔로·타나완 시에서 각각 800~15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재건 사업에 투입하지 않은 장비를 활용해 지게차 페이로더 불도저 굴삭기 크레인 운용법을 가르친다.

    나예주(37) 아라우부대 작전지원대장(소령)의 설명이다.

    “시(市)정부들과 취업 보장 합의도 맺었다. 매일 오전 4시간씩 교육한다. 토요일에는 희망자를 상대로 보충수업을 하는데, 28~30명이 참여한다.”

    직업학교 교관인 김명수(32) 중사는 “모든 학생이 잘 따라온다. 이론, 필기시험에 100% 합격했다”면서 웃었다.

    6월 27일 오전 10시 아라우부대 다목적홀에서 직업학교 3기 수료식 및 4기 입교식이 열렸다. 수료식은 축제 분위기였다. 교관을 헹가래치고, 서로가 서로를 축하했다. 수료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4기 입교생 세르니노 글레솔라(18) 군은 6·25전쟁 때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한 세군디노 그래솔라(85) 씨의 손자다.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최전방에서 겪은 일을 이따금 얘기한다. 가족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두려웠다는 말씀도 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에 할아버지는 큰 자부심을 가졌다. 할아버지를 찾아온 한국군 장교의 얘기를 듣고 이 학교를 알았다. 중장비 면허 취득을 통해 직장을 구할 기회를 준 한국군에 감사한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아라우부대가 지역에 큰 도움을 줬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은혜를 갚는 뜻에서 할아버지처럼 참전할 것이다.”

    “한국은 나의 가장 큰 자랑”

    아라우부대 공병대 소속 김명수 대위와 장병들이 6월 24일 오전 8시 ‘아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라가스 씨 집 앞에 도착했다.

    “참전 용사께 대하여 경례!”

    “충성!”

    장병들이 “오늘의 저희가 있기까지 젊으셨을 때 희생에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자 라가스 씨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현재 레이테 주에는 6·25전쟁 참전군인 4명이 생존해 있다. 국군은 그중 3명의 부서진 가옥을 복구했고, 라가스 씨 집이 마지막이다. 아라우부대는 참전용사 및 유가족 지원조직을 구성해 주택복구, 진료지원, 생필품 지원사업을 벌여왔다.

    양근모 상병이 날렵한 솜씨로 망치질을 한다. 병사들의 몸에 구슬땀이 흐른다. 반나절 만에 지붕 절반이 앉혀졌다. 김민재 중사는 “참전용사로서 큰 자부심을 갖도록 복구공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라가스 씨를 포함한 6·25전쟁 참전군인 4명이 가족과 함께 아라우부대 주둔지를 찾았다. 사망한 참전용사 4명의 유가족도 초대받았다. 가족은 결혼식 하객처럼 아름답게 치장했다. 간호장교들과 간호부사관들이 K-팝 음악에 맞춰 공연을 했다. 아라우부대는 참전용사 후손 8명에게 각각 대학교 1학기 등록금(1만 페소·25만 원)과 노트북 컴퓨터를 지원했다.

    도밍고 테베스(85) 씨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킨 한국은 나의 가장 큰 자랑”이라면서 “태풍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필리핀을 위해 파병해준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병 대위로 강원도 철원에서 전투했다. 참전을 위해 해군에서 육군으로 소속을 바꿨다고 한다.

    직업학교에 입교한 세르니노 글레솔라 군의 할아버지 세군디노 그래솔라 씨도 철원에서 근무했다. 그는 참전용사 신분증을 꺼내 보이면서 “한국이 발전한 것이 굉장히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참전을 결심한 사실에 지금도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소피오 로브리고(85) 씨는 의무병으로 서울에서 근무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피어 마음에 위안을 주던 이화여대의 봄꽃을 잊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라가스 씨는 “연말로 예정한 철수를 늦출 수는 없느냐”며 아쉬워했다.

    ‘피의 희생을 땀으로 보답한다’(We are here to repay your sacrifices of blood with our own sweat drops)가 아라우부대 모토다. 국군 장병의 구슬땀 소금땀 비지땀이 시련, 슬픔을 행복, 웃음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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