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학생 수 줄이고 예산 늘렸지만 교육성과 의문(혁신학교)
교육과정 다양화 아닌 입시 위주 교육 변질(자사고)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7-23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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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1인당 교육비 연 15만 원(일반고) vs 연 99만 원(혁신고)
    • 자사고에 치이고 혁신학교에 차별받는 일반고
    • 결정은 교사가, 책임은 교장이 지는 이상한 구조
    • 교육시장에서 외면받는 자사고, 자연도태 분위기
    • 일반고 황폐화 주범은 자사고 아닌 특성화고?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앞으로 4년 동안 ‘혁신학교’가 교육계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13명의 진보성향 교육감 모두 핵심공약으로 혁신학교 확대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선 직후부터 경쟁하듯 혁신학교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교육대통령’으로 불리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없애고 일반고(사실상 혁신고)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이었다.

    이에 발맞춰 진보언론은 혁신학교의 긍정성과 자사고의 폐단을 부각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진보교육의 아이콘인 혁신학교와 보수교육의 아이콘인 자사고를 선악 대결로 몰아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권학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등학교, 그리고 민족사관고 같은 자립형사립고다. 비싼 등록금, 학생 선발 방법 등 모든 면에서 자사고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도 진보교육 진영에서는 자사고만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 논리다.

    혁신학교 800개 시대



    또한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면서도 정작 중점 지원하는 대상은 그 일부인 혁신학교다.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분간 이들이 말하는 혁신학교는 말 그대로 ‘특혜 받은 시범학교’, 또 하나의 특권학교일 뿐이다.

    혁신학교가 무너진 공교육을 살릴 좋은 대안이라면 빨리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진보교육 진영의 주장처럼 혁신학교가 최선의 대안일까. 자사고는 정말 공교육을 망친 주범일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사고와 혁신고의 교육성과를 일반고와 비교해보았다.

    혁신학교는 2010년 서울, 경기 등 6개 지역에서 당선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도입했다. 진보교육 진영은 혁신학교에 대해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이 수업의 중심이 돼 토론하고 참여하는 창의적 수업을 통해 모든 구성원의 개별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학교”라고 설명한다. 또한 “교사는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수업을 교사 간에 공유하고 연구하며, 학생은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꿈과 끼를 학교에서 찾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혁신학교는 일반 국공립학교 중에서 신청을 받아 선정하는데, 현재 전국에서 578개교가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13개 자치단체에서 800개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는 전국 61개교에 달한다. 서울에는 10개교가 있다. 올 2월 전국 18개교, 서울 3개교에서 혁신학교 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혁신고와 자사고, 일반고의 교육 여건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강북 지역에서 서로 인접한 A고(혁신학교), B고(일반고), C고(자사고)의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A혁신고는 B일반고에 비해 특혜라 할 만큼 좋은 교육 여건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B일반고는 학급당 학생수가 35.2명이었다. 일반고 중에는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에 가까운 곳도 있었다. C자사고도 33.2명 수준인데, A혁신고는 27.1명이었다. 다른 혁신고들도 27명 수준으로 30명을 넘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도 B일반고 17.4명, C자사고 16.8명인 데 비해 A혁신고는 12.1명밖에 안 됐다. 다른 혁신고들도 14명 수준이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을수록 수업의 질 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적으면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학생이 ‘선생님이 내게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하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조 교육감 “혁신학교 1억 지원”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비교해보자. 사립고인 B일반고의 올해 예산은 약 63억 원이다. 이 가운데 인적자원운용(인건비) 예산이 약 57억 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여기에 ‘학교 일반운영’ ‘학교재무활동’ 등 기본 경비와 선택적 교육활동(수학여행비, 보충학습비)을 제외하고 ‘학교시설 확충’ ‘기본적 교육활동’ ‘교육활동 지원’ ‘학생복지/교육격차 해소’ 등 순수하게 학생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비용만 뽑아 학생 수로 나눈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약 15만 원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A혁신고는 같은 방법으로 계산한 결과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약 99만 원에 달했다. 다른 혁신고도 약 152만 원, 128만 원으로 계산됐다. 일반 사립고보다 6~10배 많은 셈이다.

    C자사고는 일반고에 비해 3배 가까운 등록금을 받는 데다, 재단지원금이 5억 원 넘게 들어오기 때문에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99만 원에 달했다.

    한 사립학교 교장은 “사립학교는 정부 지원금이 공립 일반고의 70~80%에 불과하다. 자사고처럼 재단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학생으로서는 사립보다 국공립학교를 가는 게 이익이다. 혁신학교는 더 많이 지원해주니 사립학교 학생은 이중으로 차별을 받는 셈”이라고 푸념했다.

    혁신학교는 에서 보듯이 일반고나 자사고보다 학교 규모가 작은데도 사무직원 수는 더 많다. 행정실무사가 추가 투입돼 교사들이 행정 잡무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운영비도 일반고에 비해 풍족한 편이다. A혁신고는 지난해 교사용 교과서까지 학교 예산으로 구입했다. 또한 전문상담원 인건비로 약 1600만 원, 혁신학교 운영비 명목으로 1억여 원이 집행됐다.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곽노현 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만들며 1억5000만 원씩 지원했다. 문용린 전 교육감이 평균 7000만 원으로 줄인 것을 조희연 교육감은 다시 1억 원 정도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혁신학교에 대해 추가지원까지 해준다.

    초등학교의 경우 이에 따른 갈등이 심하다는 게 일선 교장의 이야기다.

    “혁신학교는 준비물까지 다 학교에서 지원한다. 한 혁신학교는 학생 수가 학년당 100여 명 수준인데 1억 원을 추가 지원해줘 뮤지컬 관람도 하고, 스키장도 갔다. 어떤 학부모가 만족하지 않겠는가.”

    경기도 광명에선 한 초등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인근 33평대 아파트값이 1억 원 이상 뛰었다. 서울 웬만한 지역 아파트값 못지않은 가격이다. 전세금도 올라 그곳에 살던 아이가 그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이사 가는 경우까지 생겼다. 그 학교 학부모들은 외지에서 위장전입 하는 것을 막겠다며 감시단까지 꾸렸다. 과거 강남에서 벌어졌던 행태와 똑같다. 전인교육, 인성교육을 지향한다며 만든 혁신학교의 역설적인 뒷모습이다.

    더 떨어진 학업성취도

    이렇듯 사실상 특혜를 받으며 3년 동안 교육한 결과는 어떨까. 고교 교육은 ‘교양 있는 시민 육성’이 일차 목표다. 아쉽게도 학생의 교양과 인성, 적성 개발 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는 없다. 또한 교양 있는 시민 육성이 학력이 떨어져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학생 학력의 대표적인 잣대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다. 이 평가는 순위를 매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이해했는지 기본기를 묻는 수준이다. 고등학교는 2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각 학교의 교육성과를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다.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난이도를 조절해 쉽게 출제한다고 해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큰 게 현실이어서 보다 객관적 비교를 위해 강북 지역에서 서로 인접한 혁신고와 일반고, 자사고를 표본으로 삼았다. 이곳 혁신고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그 학군에선 비교적 입지가 좋은 학교다. 저소득층 자녀의 비율을 알 수 있는 급식지원자 비율도 혁신고가 27%로 일반고(33%)보다 낮았다. 자사고는 12%였다.

    그런데도 에서 보는 것과 같이 혁신고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인근 일반고에 비해 전체적으로 떨어진다. 또한 중학교 때 실력과 비교한 학업성취 향상도도 일반고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말했듯이 고교 교육의 목적이 대학 진학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고교를 평가할 때 대학진학률을 빼놓을 수 없다. 진보교육 진영에서조차 혁신고의 장점으로 입시에서 교육부가 확대를 적극 권장하는 학생부종합전형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할 정도다.

    혁신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수업도 체험, 실습 위주로 구성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대부분의 혁신고가 대학 진학 목적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교에 텃밭을 만들어 학생이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송현섭 서울교육연구정보원 연구사는 “혁신고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주요 평가요소인 비교과 영역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토론과 발표 위주의 수업을 통해 주제에 대한 사고력도 키울 수 있어 일부 학생부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평가하는 면접에서 유리하다”며 “같은 실력의 자사고 학생보다는 내신에서 유리하고, 같은 내신의 일반고 학생보다는 학생부전형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분석했다.

    혁신고가 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하다면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대학이 서울대다.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과 수시 일반전형 등 전체 모집의 82.6%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에 1명 이상 합격시킨 고등학교는 전국 1500여 개 학교 중 864개였다. 하지만 입시전문매체 베리타스알파 발표에 따르면 졸업생을 배출한 18개 혁신학교에서 단 2명만이 합격했다.

    수능시험 성적도 혁신고가 일반고보다 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4학년 정시모집에서 진학닷컴에 모의 지원한 재학생 10만7082명 중 혁신고 학생과 일반고 학생의 수능 백분위 평균을 비교한 결과다. 인문계열에서 일반고는 평균 62.8점이었던 반면 혁신고는 56.9점에 그쳤다. 자연계도 일반고 60.6점, 혁신고 57.5점이었다.

    18개 혁신고에서 서울대 2명 합격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새누리당 신성범 의원실이 A혁신고, B일반고, C자사고의 고3 대학진학 현황을 확인한 결과도 주목할만하다(). 각 학교에서 제출한 자료라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격차가 컸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최상위권 대학 진학자가 2명(A혁신고), 5명(B일반고), 45명(C자사고)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 주요 10개 대학 합격자에서도 A혁신고 6명, B일반고 16명, C자사고 94명으로 차이가 있었다. 수도권 주요 20개 대학 진학자를 비교해도 A혁신고 6.9%, B일반고 10.2%, C자사고 44%로 큰 차이를 보였다.

    혁신고가 올해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했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긴 힘들지만 대학 진학에 관한 한 혁신고의 교육방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혁신고에서 자사고로 옮겨 졸업한 박모 군은 “일반학교에선 상위권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데 혁신고는 그런 게 없었다”며 “대학을 가기 위해선 사교육에 더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진보 인터넷 매체에서 혁신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한 4명을 모아 좌담한 기사를 올렸는데, 여기에서도 4명 모두 사교육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좌담에 참석한 학생들조차 이렇게 말했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공부를 잘하는 대로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모두를 끌고 가려다보니 무리가 따르는 점도 있다.” “동의한다. 모두가 행복한 교육은 모두가 똑같은 교육을 받는 게 아니다.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이 중요한 거 같다.”

    ‘진보’ 혁신학교 vs ‘보수’ 자사고

    일반고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돈이다.

    황영남 영훈고 교장은 ‘혁신학교가 내신 스펙을 쌓기에 유리하다’는 주장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일반고도 혁신학교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 학교만 해도 120개 동아리가 활동 중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서는 학생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혁신고 같은 지원 예산이 없어 더 체계적으로 못할 뿐이다.”

    “공정 경쟁 해보자”

    황 교장은 그러면서 “혁신학교는 좋은 학교, 일반학교는 개혁돼야 할 나쁜 학교로 취급되는데, 공정한 경쟁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똑같은 예산을 가지고 혁신학교는 교사중심 책임제로, 일반학교는 학교장 책임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누가 더 학생을 위한,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하는지 결과를 비교해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혁신학교의 교사에게 물어봤다. 지금과 같은 예산을 안 주고 학생 수가 35명 이상이어도 지금 혁신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느냐고. 못 한다고 하더라.”

    혁신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교육의 주체임을 강조한다. 교사회의인 다모임이 예산 및 인사 등 학교 운영과 관련해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교육평론가는 “일반학교는 상하관계가 확실해 회의에서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든데, 괜찮은 혁신학교는 교장과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이 ‘계급장 떼고’ 회의를 하는 거다. 나는 여기에 혁신학교의 미래가 있다고 본다”고 격찬했다.

    반면 일선 혁신학교 교장의 생각은 달랐다.

    “교사회의에서 교장의 발언권은 n분의 1일 뿐이다. 그런데 교사회의에서 결정한 교육의 결과물은 누가 책임지나. 학교장이 지게 돼 있다. 결정은 자기들이 해놓고 책임은 안 지는 구조다.”

    그는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특정집단 소속 교사와 일반 교사의 갈등도 크다고 했다.

    “특정집단 소속 교사들이 회의를 주도하다보니 대부분의 일반 교사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특정집단 소속 교사들 주장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있다. 교사들은 상대에게 상처 주지 말자는 의식이 강해 ‘아니다’ 싶어도 강하게 반대를 못한다. 그러면서 갈등이 커진다. 일반 교사들이 숨을 죽이고 있을 뿐, 언젠가는 한번 크게 터질 것이다.”

    강남 쏠림 현상 재현

    조 교육감은 7월 14일 자사고 교장들을 만나 자사고 폐지 공약을 재확인하며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는 서울형 중점학교로 선정하는 등 적극 지원하겠다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자사고 지정 취소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2조의 3항에 ‘미리 교육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어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 다양화 정책의 하나로 도입됐다. 진보교육 진영에선 자사고에 대해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해 일반고를 슬럼화하며, 비싼 학비로 입시명문을 만들어보겠다는 ‘귀족학교’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한 주범일까. 자사고 숫자는 과학고, 외고, 자립형사립고 등 특목고와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최우수 학생은 특목고가 독점한다. 자사고는 성적순 선발이 아니라 추첨이며, 지원 자격이 중학교 내신 50% 이내였다가 그마저 폐지됐다. 등록금 도 사실상 특수입시학원 구실을 하는 특목고는 자사고보다도 더 비싸다. 그런데도 특목고에 대해선 별 비판이 없다.

    조희연 교육감도 “외고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한 정책은 없다”고 말한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원래의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지만, ‘원래 설립 목적에 맞게’ 진학할 대학 학과의 범위를 규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 교육감의 두 아들은 둘 다 외고를 다녔는데 각각 경제학과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자사고가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서울시교육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사고 학생 중 중학교 내신 상위 10% 안에 든 ‘성적 우수 학생 비율’은 24.4%였다. 서울지역 일반고 183곳은 평균 8.7%였다. 이 정도 격차는 같은 일반고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최상위권 일반고도 ‘성적 우수 학생 비율’이 23.5%에 달한다. 반면 2.6%에 불과한 일반고도 있다. 강남이나 목동, 노원 등 흔히 교육학군 고교의 경우 명문대 진학률이 웬만한 자사고보다 높아 우수한 학생이 몰리기 때문이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자사고가 강북과 강남의 교육 격차를 상쇄하는 면이 있다. 강북의 자사고를 없애면 강남 등 명문학군 쏠림 현상이 다시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이 소외된 지역에 만들어야 할 혁신학교를 강남 등 부자동네에 만들어 지원금을 더 주고, 강북의 경쟁력 있는 학교인 자사고는 없애겠다는 정책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자사고가 당초 교육과정을 다양화, 특성화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국·영·수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으로 운영되는 것은 분명 고쳐야 할 부분이다.

    진보교육 진영에선 자사고 교육의 질이 일반고보다 등록금을 3배나 많이 받을 만큼 효과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자사고 교사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4월 한 입시전문업체가 고교생을 대상으로 현재 재학 중인 고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를 꼽는 설문조사를 했다. 특목고는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자사고는 ‘면학 분위기가 좋아서’가 가장 많았다. 현 자사고는 ‘분위기가 괜찮은 예전 일반고 수준’이지 특목고가 아니다. 학부모들도 바보가 아니다. 등록금을 3배 내고 보낼 가치가 있으면 보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보낸다. 학부모가 외면하는 자사고는 저절로 도태돼 정리된다.”

    서울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첫해인 2010년 2.41대 1을 기록한 뒤 줄곧 1.5대 1을 넘지 못했다. 신입생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곳도 있지만 미달되는 학교가 해마다 8~10개교씩 나온다. 교육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이다. 이미 자사고 4곳이 정원 미달과 재정난 등으로 지정 취소됐다.

    황영남 영훈고 교장은 일반고 황폐화 원인이 자사고로 인해 상위권 학생이 줄어든 데 있는 게 아니라 특성화고, 마이스터고로 인해 하위권 학생이 늘어난 데 있다고 했다.

    수월성과 보편성의 조화

    “과거엔 주로 저소득층 아이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공고, 상고에 갔다. 그런데 MB 정부에서 이곳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서민층 아이, 성적이 중간층인 학생이 그쪽으로 몰렸다. 그러면서 거기서 떨어진 아이들이 일반고로 진학했다. 중학교 내신 하위 10%였던 학생 비율이 25%가 넘는 일반고도 있다. 그렇다보니 일반고는 중상위권부터 최하위권까지 분포가 다양해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상위권 학생에게 불리한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사고를 없애 중상위권 학생 몇 명씩 일반고로 더 보낸다고 정상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일반고에 대한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고를 포함해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의 40% 이상은 대학 진학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교육과정은 대학 진학 중심으로 짜여 있다. 대학 가려는 학생을 위해 40% 이상의 학생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현 규정에서는 이 아이들에게 기초를 가르칠 수도 없다. 곱셈을 모르는 아이에게 미적분을 듣고 있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학교장에게 수업 배분의 자율권을 줘서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에겐 기초부터 가르치게 하고, 공부하기 싫은 학생을 위해서는 요리, 자동차 정비, 음악, 미술 같은 수업시간을 더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도 학교에서 적극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특목고와 자사고에서는 선행학습이 가능한데 일반고는 선행학습이 금지돼 있다. 일반고 학생들은 불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허재환 효문고 교장은 “공교육은 무조건 균등하게 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수월성 교육과 보편성 교육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잘하는 학생 더 잘하게 북돋워주고 못하는 학생 보듬는 게 진정한 혁신교육”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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