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 소음 너무 커
- 신체 부딪쳐도 사과 안 해
- 승객 많은데 다리 꼬고 앉아
서울 지하철 승객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일주일간 서울 지하철 1~9호선 객차 안에서 외국인 20명을 취재했다. 이들은 서울의 지하철이 시설 면에서 쾌적하고 편리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제프 에이브럼(24) 씨는 “서울의 지하철은 별로 기다리지 않아도 돼 매우 좋다. 또 내부가 깨끗하다”고 말했다. 에이브럼 씨의 친구인 케이티 말러(24) 씨는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거의 못 봤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한 외국인들은 서울 지하철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게 이야기했다. 우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승객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서울 지하철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특성으로 꼽았다. 서울의 지하철 객차에선 남녀노소 승객 대부분이, 앉은 승객이든 서 있는 승객이든 타고 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 화면만 보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중국인 정모(22·여·K대 2학년) 씨는 “지하철 내 거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인 광경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심지어 상당수 승객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객차에 들어온다. 아마 탑승하자마자 휴대전화 화면을 보기 위해 호주머니나 가방에서 미리 꺼내 준비한 듯하다”고 했다.
“행복해 보이진 않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온 세이지 데니얼슨(20) 씨는 “미국인들도 대도시 지하철을 이용할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곤 한다”면서도 “그러나 서울만큼은 아니다. 서울 지하철 승객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세계 최고 수준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 서울 지하철에서 어떤 점이 특히 인상 깊나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만 보고 만지는 모습이 당연히 먼저 눈에 들어오죠.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걸요?”
▼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 같아요.”
▼ 억압….
“스마트폰에 집중하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아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냥 습관적으로 조그만 기기 안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는…. 그래서 억압이라는 말이 떠올랐나봐요.”
▼ 또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변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어요. 아마 스마트폰 때문에 더 그렇겠죠. 미국에선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별 거리낌 없이 말을 나누기도 하는데….”
서울 지하철 승객은 이렇게 혼자 있을 땐 스마트폰만 보는 편이지만 동승자가 있을 땐 큰 목소리로 대화한다는 게 여러 외국인의 대답이었다. 이로 인한 소음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더러 있다고 한다.
“넌 머리 푼 게 나아”
프랑스인 안드레아 로페즈(20) 씨는 “옆 승객의 스마트폰에서 음악이나 드라마 대사가 흘러나오는 것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객차에서 로페즈 씨를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한 승객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했는데 게임 음악 소리가 제법 컸다. 아마 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얼마 뒤 두 여성이 신경질적으로 대화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넌 머리 푼 게 나아” “아,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네가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아, 알아서 한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수준이었다.
노약자석의 한 할아버지는 입을 다시며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입을 다실 때마다 나는 “쯔읍” 하는 소리가 꽤나 거슬렸다.
건너편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의 대화 내용도 잘 들렸다. “아! 그 오빠 생각하면 한숨밖에 안 나. 내가 다 해야 되고…발표도 내가 해요.” “발표 잘할 거 같은데?” “발표는 잘하는데….” 이들은 주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객차 내에서 승객이 내는 소음에 주의를 기울이니 소음이 심하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로페즈 씨는 “프랑스의 경우 시끄럽게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지적을 받는다. 한국인은 많이 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지하철은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른다. 출퇴근 시간엔 상당히 혼잡하다. 자연히 승객들 간 신체 접촉이 자주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여러 외국인은 불쾌한 경험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공격적이어서 잘 부딪혀”
한국외대에서 유학 중인 멕시코인 사만다 플로리스(22), 아나 오초아(21), 로사 가마초(22) 씨는 1호선을 주로 이용한다. 1호선엔 나이가 많은 승객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플로리스 씨 등은 “자리에 앉기 위해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갑자기 떠밀리는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차 한국을 방문한 미사키 나카가와(18) 씨는 “서울 지하철 승객이 도쿄 지하철 승객에 비해 조금 더 공격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국인은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이 강한 것 같다”며 “일본인도 그렇긴 하지만 주변 사람과 경쟁하려 하진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플로리스 씨 등은 “더 큰 문제는 옆 사람을 밀쳐놓고 미안하다는 말도 잘 안 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지하철 승객은 미안하다는 표현에 상당히 인색한 편”이라고 했다. 반면 외국인이란 이유로 자리를 양보받을 때엔 거부감이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 사람인 파울린 보르티에(20) 씨는‘아줌마’를 언급하며 불만을 털어놨다. “아줌마들은 너무 거칠어요. 말도 없이 밀치고 지나가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 아줌마만큼 정이 많고 인간적인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선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몸에 부딪히지 않도록 한다. 또 부딪히면 예의상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좋다.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규범은 이제 ‘글로벌 에티켓’이 됐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지키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로페즈 씨 등 일부 외국인들은 “타려는 사람이 내리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해주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 23분 서울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에 가봤다. 4호선과 만나는 환승역인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지하철 객차가 역에 도착했다. “승객이 먼저 내린 후 타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다리는 시민들은 문이 열리는 양쪽으로 길게 늘어섰다. 언뜻 보면 질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론 이 두 줄의 간격이 너무 좁았다. 두 사람이 한 번에 내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타려는 승객들이 마음이 급해져 문 주위를 에워싸 내리는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심지어 타려는 승객들이 문이 열리는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거나 승객이 내리기 전에 먼저 오르는 모습도 목격됐다.
백팩이 얼굴 스치자…
중국인 송훈(20) 씨 등 상당수 외국인은 객차 내에서 다리를 꼬고 앉거나 가방을 다른 승객에게 향하게 해 불편을 주는 점을 지적했다.
오후 8시경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당고개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 객차 안. 승객이 많은 퇴근시간임에도 노약자석을 제외한 42석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11석에서 승객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이들의 다리는 앞에 서 있는 승객들을 향해 뻗어 있었다. 이 중 한 중년 여성의 뾰족한 구두는 서 있는 승객의 정강이에 닿기도 했다.
반대로 10여 명의 서 있는 승객이 멘 크고 각진 백팩(backpack)은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앉아 있는 승객의 어깨, 머리, 얼굴로 향했다. 일부 백팩은 앉아 있는 승객의 머리를 치기도 했다. 백팩이 옆에 서 있는 승객의 가슴팍이나 등을 누르기도 했다. 이런 일은 서 있는 승객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다. 백팩을 손에 들고 있거나 좌석 위 수납공간에 올려놓은 승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가방을 멘 한 여학생은 자리가 나자 가방을 멘 채로 앉았다. 이 여학생이 옆 자리 친구와 이야기하기 위해 상체를 돌리면서 가방이 옆에 앉아 있던 승객의 얼굴 측면에 닿았다. 놀란 승객은 이 여학생을 쳐다봤지만 대화에 집중한 이 학생은 상황을 알지 못했다. 한 번 더 부딪히자 화가 난 승객은 찌푸린 얼굴로 이 학생을 바라보더니 체념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당사자인 여학생은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백팩에 주의하라는 포스터도 부착돼 있지만 서울 지하철 객차 내에서 백팩을 멘 승객은 주변 사람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13년 동안 거주한 김동은(18) 씨는 “일본인은 지하철 객차 내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여유를 갖는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서울 지하철 문화.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는 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점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번쯤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취재해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