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최초 문제 제기 박지원 “만만회는 소설 아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실체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4-07-23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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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수록 커지는 ‘그림자 실세’ 국정개입 논란
    • 장관 후보자도 언급한 ‘삼성동팀’과 정윤회
    최초 문제 제기 박지원 “만만회는 소설 아니다”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재벌은 자식이 원수이고, 권력은 측근이 원수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살아 있는 권력의 핵심 측근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의 지론이다. 대기업 오너는 자식 형제의 분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실세 참모의 전횡으로 국정 성과가 빛이 바래기 일쑤라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1년 반 만에 ‘그림자 실세’들의 국정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세월호 참사에 따라 국가개조론을 설파하며 첫 단계로 인적쇄신에 나섰지만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가 연달아 낙마했다. 장관 후보자 가운데 일부도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잇단 인사 참사로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어왔다.

    이재만, 질의에 무응답

    인사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박 대통령이 미리 점찍은 인물만 발탁한다는 ‘수첩 인사’라는 분석이 많았다. 여기에 덧붙여 최근엔 ‘그림자 실세’들의 개입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비선(秘線)이 인사전횡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아직 확인된 적은 없다. 정치권에서도 실체가 없는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렸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한 인사에서도 참사가 일어나자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던 박지원 의원이 “‘만만회’라는 게 움직인다”며 공론화했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 씨, 고(故) 최태민 목사 사위 정윤회 씨를 지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권 일각에선 박씨가 정씨의 견제를 받아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창극 총리 내정 이후 문 후보자를 정씨가 박 대통령에게 천거했다는 소문이 정가에 퍼지면서 ‘만만회’의 파장은 예상외로 커졌다. 심지어 모 장관 후보자도 정씨의 적극적 추천으로 발탁됐다는 말도 나왔다. 그 후보자는 사석에서 ‘삼성동팀’을 언급하며 정씨와의 친분을 은근히 과시했다고 한다. ‘삼성동팀’은 정씨가 2012년 대선 기간에 서울 삼성동에 사무실을 두고 운영했던 외곽 캠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인사개입설이 확산되자 정씨는 한 보수 성향 언론인을 통해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만만회’는 소설이다” “재산, 이권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비선 활동, 나의 모든 걸 조사하라” “잘못이 있으면 감옥에 가겠다”는 등의 말을 격정적으로 쏟아냈다.

    커튼 뒤에 있던 정윤회 씨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자 후속 기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씨가 고(故) 최태민 목사의 딸인 부인 최순실 씨와 최근 ‘극비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결혼 기간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한 비밀 함구 등의 조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만만회’로 지목된 인물 가운데 정씨와 박씨는 공인이 아니다. 자신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억지로 끌어낼 명분이 약하다.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나 뚜렷한 정황은 없고 소문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인 신분인 이재만 비서관은 다르다. 청와대 참모로서 정치권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소명해야 할 위치다. 특히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가신그룹 중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안살림을 챙기는 자리다. 청와대 돈의 출납을 담당한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비자금까지 관리했던 자리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까지 차관급 총무수석비서관 직제가 있었을 정도로 핵심 요직이다. 여기다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담당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정부 요직 인사에도 간여할 수 있다.

    경제학 박사인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대권주자일 때는 주로 공약과 정책을 챙겼다. 그는 6·7·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 예춘호 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의 아들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의 제자다. 예춘호 전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화당 사무총장까지 지냈지만 유신 개헌에 반대해 탈당하고 야당 생활을 했다. 박 대통령과 이 비서관의 연결 고리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문고리 권력 3인방 가운데 대통령의 신임을 따지면 이 비서관이 1위일 것”이라고 했다. 또 “3인방은 모두 정윤회 씨 휘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3인방은 박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이재만 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이다.

    “서류 들고 나간 적 있다”

    정윤회 씨는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첫 입성했을 때 정가(政街)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의원회관 주변에서 ‘정윤회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국회 보좌진 직제에 ‘비서실장’ 직함은 없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일 때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인지 의원회관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정 실장’은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의 공식 참모진을 꾸리면서 이춘상·이재만 보좌관, 정호승·안봉근 비서관을 채용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 정 비서관은 고려대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안 비서관은 박 대통령에게 달성 지역구를 물려준 김석원 전 의원의 수행비서를 하다가 보궐선거 때 합류했다. 고인이 된 이춘상 보좌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지금의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다.

    문창극 전 총리 내정자가 지명됐을 때 정가에선 ‘정윤회의 작품’이란 말이 나돌았다. 정씨가 서울고를 나왔고 고교 선배인 문 전 내정자를 박 대통령에게 천거했을 것이란 추측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서울고 출신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이 비서관이 서울고를 나왔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7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비서관을 정조준했다. 그는 “이 비서관이 종종 청와대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으로 나간다는 소문이 사실상 확인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서 인사 실무 업무도 맡는 이 비서관이 정부 요직 인사 자료를 그림자 실세인 정윤회 씨에게 ‘보고’하러 다니는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추궁을 받자 이 비서관은 “밤에 청와대 밖으로 서류를 들고 나간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필자는 이 비서관의 얘기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로 ‘인사와 관련한 야당의 공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며 통화를 요청했지만 역시 답신이 없었다.

    현재 청와대 인사위원장은 김기춘 실장이다. 인사위원회 실무책임자는 김동극 인사지원팀장(2급 선임행정관)이다. 청와대 시스템이 아닌 비선이 인사에 개입하는 데 따른 불만도 있을 법했다. 그러나 김 팀장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 비서관에게 보낸 것과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신이 없었다.

    “도대체 비서실장이 뭐 하는지”

    박 대통령 비선의 국정개입 의혹은 지금으로선 설(說)만 무성할 뿐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의혹의 실마리를 풀고자 ‘만만회’의 인사개입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박지원 의원을 7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의원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정점에 커튼 뒤의 정윤회 씨가 있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

    ▼ 정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3인방과) 접촉이 없다. 인간적인 정의(情誼)로 보면 이들이 나에게 연락하는 게 도리인데, 나는 섭섭하다’고 했는데요.

    “지금도 정씨와 3인방이 서로 연락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 정씨는 ‘만만회는 소설’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말한 건 ‘만만회’가 굳이 셋이 앉아서 조직적으로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전반적으로 비선이 인사에 개입한다는 말이 나돈다는 얘기였죠. 그걸 ‘증거를 내놓아라’ ‘소설이다’고 말하면 안 되죠. 소설도 소설 나름이지….”

    ▼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그렇다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면 국민이나 언론에서 관심을 갖겠어요?”

    ▼ 비선이 인사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개입한다고 보나요?

    “아무래도 그러지 않겠어요? 역대 대통령도 비선이 다 있었죠. 김영삼 정부 시절 문고리 권력인 장학로 부속실장이 재벌 회장들의 대통령 면담 시 자리배치 권한 행사 등으로 돈을 받은 비리가 있었고, 당시 비선 조직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물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동교동 가신그룹이 있었죠. 노무현 정권의 386친노그룹, 이명박 정권의 영포(영일·포항)라인도 다 마찬가지였죠.”

    박 의원은 “영포라인의 경우도 내가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했는데, 처음에는 실체를 부인하다가 나중에 다 드러나지 않았느냐. 박근혜 정부 비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 어느 정권에서든 비선 조직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인가요?

    “비선 자체가 나쁜 게 아니죠. 순기능이 있는데, 잘못하면 역기능이 되는 거죠. 비선이 국정을 농단하고 전횡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정하고 통제해야 하는데, 그 일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야죠. 하지만 지금은 (비선의 개입으로) 매번 인사 참극이 일어나는데, 도대체 비서실장이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 박 대통령이 주변의 압력에도 김기춘 실장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김 실장이 편해서겠죠.”

    ▼ 김 실장도 고분고분한 스타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에이, 그렇지 않아요. 항간에 들리는 얘기론 김 실장도 내각 개편, 청와대 후속인사가 모두 마무리되면 물러난다고 하더군요.”

    인사수석 신설은 개악

    ▼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요.

    “수첩에 의존하고 김기춘 실장과 비선의 말을 너무 많이 듣는 것이죠. 또 대통령이 아는 사람만 쓰려고 하는 것도 인사참극의 원인이에요. 폭넓게 봐야죠. 5000만 국민 중에 그렇게 사람이 없나요?”

    ▼ 청와대 인사 시스템 개선을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한다는데요.

    “아주 잘못하는 거예요. 가뜩이나 모든 권력이 청와대로 몰리는데 정부 각 부처 인사권까지 갖게 되면 장관이 유명무실해지죠. 그러면 장관의 영(令)이 설 수 없어요. 공무원은 승진을 먹고사는 조직입니다. 인사수석실에서 승진심사를 하게 되면 공무원들은 장관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를 보고 일하게 되는 거죠.”

    ▼ 인사수석실 신설은 개선이 아니고 개악이라고 보는 셈이네요.

    “그렇죠.”

    박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 문고리 권력 3인방이 득세할 수 없는 여건이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제가 고인이 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과 친했어요.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였는데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어느 날 저에게 ‘대통령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겠노?’라고 묻더군요. 제가 말했어요. ‘대통령은 밤 10시부터 자정까지가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저녁 만찬을 6시나 6시 반쯤 시작해서 1시간 반 정도 하고 관저에 도착하면 8시가 되죠. 8시, 9시 뉴스 보고 적막강산에 두 내외만 남아요.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 아들 현철이는 그 시간에 손주들 데려가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죠.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그 시간에 가판 신문 읽고, 보고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 댓글 달면서 시간을 보냈죠.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에 뭘 할까요. 아무래도 ‘문고리 권력’이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야 밤 12시에도 관저에 들어가 잠옷 차림의 대통령과 얘기도 하고 했지만, 여성 대통령은… 문고리 권력들이 동생 같고, 자식 같고 편하니까, 그런 특수성도 있을 거예요.”

    “정윤회가 차키 돌리며…”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가 매우 가까운 관계였던 것으로 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말했다. 박 대통령은 2002년 초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수개월 뒤인 같은 해 11월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의원실 비서실장이던 정윤회 씨와 이재만 비서관도 박 대통령과 행보를 함께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한나라당 당사의 지도부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그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의원들과 당직자들에게 “집 나갔다 어렵사리 귀가하는데 이게 잘못이니, 저게 잘못이니, 왜 이제 오니, 왜 오니 이러면 당사자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나. 박근혜 의원이 안 그래도 지금 뻘쭘할 텐데 사무실에 오면 잘 대해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박 의원이 당사 지도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정윤회 씨와 이재만 당시 보좌관이 동행했다고 한다. 박 의원이 지도부의 방에 들어가면 정씨는 부속실에 있었고 이 보좌관은 주로 부속실 밖에 있었다고 한다. 정씨가 이 보좌관의 상관이었다. 정씨는 부속실에 근무한 이 관계자와 대화할 때 승용차 열쇠를 손가락에 걸어 빙빙 돌리며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정씨가 체형이 좋은 호남형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당시 정씨가 자신과 박 의원이 상당히 친밀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자주 과시했다. 정씨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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