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1년 다 됐네 그만 나가 줄래?”

11개월 비정규직의 비애

  • 한혜진 |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전상현 |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입력2014-07-18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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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 은행, 공공기관, 방송사까지…
    • 타인 명의 계약, 개인사업자 분류…
    “1년 다 됐네 그만 나가 줄래?”
    “벌써 11개월 일했네? 한 달만 쉬고 와. 다시 채용할게.”

    서울 D아트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최모(25) 씨는 최근 매니저에게서 이런 통보를 받았다. 매니저는 회사의 내부 규정이라고 했다. 한 달을 놀다 회사로 다시 돌아온 최씨에게 건네진 것은 새 근로계약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회사가 왜 이렇게 하는지 몰랐다.

    12개월을 넘겨 일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도 한 달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8조)은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가 30일치의 평균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도록 한다. 최씨는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1년에서 한 달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자괴감 들지 않을 수 없어”

    최씨처럼 고용주의 ‘꼼수’로 퇴직금을 못 받는 사례는 대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빈발하고 있다. 양태도 다양하다. 1년을 계약 기간으로 했더라도 그전에 그만두게 하는 경우, 처음부터 11개월만 계약하는 경우, 1년 이상 일하게 하면서도 미리 계약의 명의를 타인으로 바꾸도록 하는 경우…. 모두 사용자 측의 꼼수이고 편법이다. 최씨는 “구직난에 시달리는 20대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대우를 받으면 비정규직으로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계열 S사는 얼마 전 공연장 도우미로 6개월 이상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면접에 합격한 박모(28) 씨는 그러나 채용 담당자로부터 “10개월만 일하자”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이유를 물었지만 내부지침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박씨는 “알고 보니 이곳에서 10개월 이상 일한 아르바이트생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지인의 이름으로 ‘유령 계약서’를 작성해 계속 일한 사람은 있었다고 한다.

    같은 계열사인 모 시네마에서 일한 이모(26) 씨도 채용 담당자로부터 11개월동안만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엔 계약 만기로 퇴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우리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은 퇴직금은 꿈도 못 꾼다. 실업급여라도 받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로 인기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어떨까. 김모(23) 씨는 커피빈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채용 담당자가 “근무기간을 9개월로 쓰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11개월로 계약하는 사람은 간혹 있지만 1년 넘게 일한 예는 전무했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사용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간제 근로자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간제 근로자를 뽑는다”면서 “이런 회전문 채용 방식은 민간과 공공기관을 막론하고 곳곳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런 편법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11개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봤다. 기간제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게시 글이 수두룩하게 떴다. 언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 Y사는 “최장 11개월짜리 임시직 근로자를 채용한다”는 글을 올렸다. M사의 게시 글도 11개월만 일해야 한다고 명시해두었다. 모 이동통신사의 게시 글 제목은 ‘장기근무 가능한 아르바이트생을 찾는다’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단 3개월에서 최장 11개월 단기 아르바이트 모집이었다.

    한 대형 은행의 편법은 이보다 더 정교했다. 장모(50) 씨는 이 은행 안양 석수동 지점에서 2010년 8월부터 3년 8개월간 기간제 근로자로 일했다. 계약서는 한 달에 10일, 6개월 동안 일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은행은 한 달의 나머지 20일을 10일씩 나눠 장씨 가족 두 사람의 이름으로 된 6개월짜리 계약서 두 개를 각각 만들었다. 그다음 6개월은 장씨의 또 다른 지인 3명이 계약서의 당사자가 됐다.

    은행 지점장은 “일의 효율이 높다”면서 장씨에게 계속 일을 맡겼다. 계약서상으로는 1년에 6명이 일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장씨 혼자다. 장씨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한다. 장씨는 “다른 은행도 이런 식으로 명의를 돌려가며 계약한다”고 말했다.

    “5일 모자라게 계약”

    공공기관의 편법 양태는 민간보다 더 교묘했다. 공공기관이 가장 흔히 쓰는 퇴직금 꼼수는 ‘부러진 1년 계약’을 맺는 것이다. 계약 기간이 언뜻 보기에는 1년이지만, 실제 근무 일수는 1년에서 며칠이 모자라 퇴직금을 안 줘도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일했던 봉혜영(49) 씨는 “2012년 말 40명의 계약직 근로자가 일시에 해고당했다. 그중 15명이 퇴직금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말했다. 이 15명의 계약 기간은 2012년 1월 3일부터 12월 28일까지였다. 1년에서 5일이 모자랐기 때문에 ‘법대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다.

    40명 중 나머지 25명은 2011년 1월부터 1년 넘게 일해 퇴직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도 근무 날짜가 2년에서 며칠 모자란 탓에 무기계약직 전환에는 실패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인재개발부 담당자는 “이들은 단순한 계약 만료였다. 법대로 일을 처리했을 뿐이다. 퇴직금은 다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담당자는 “우리 기관이 영리 단체도 아닌데, 무슨 악덕 기업처럼 계약을 무단으로 해지하고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공공기관 구직자가 부러진 1년 계약을 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공공기관에 채용되는 기간제 근로자는 대부분 파견 회사를 통해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계약은 주로 회계연도인 12월 말을 기준으로 끊어서 한다. 1월 1일부터 계약해 일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근무 일수는 1년이 채 안 되기 때문에 퇴직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구직자가 많이 살펴보는 인터넷 공간에서 공공기관은 대놓고 광고하듯 부러진 1년 계약을 게시해놓고 있었다. 국내 최대 구인·구직 사이트 중 하나인 알바몬에 접속해 ‘공공기관’으로 검색했다. 780여 건이 검색됐다. 제목에는 사무 보조, 행정 업무, 상담원, 총무와 같은 용어가 많았다. 근무 환경이 좋다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상세 내용이 적힌 페이지로 들어가 보니 4대 보험을 포함한 보험, 숙식 제공, 경조사비 등 혜택 목록이 길게 적혀 있었다.

    한 게시 글은 우수 직원은 표창하고 해외 연수 기회까지 준다고 했다. 그러나 퇴직금을 준다는 말은 찾기 어려웠다. 게시 글 대부분은 근무 기간과 관련해 ‘채용 시~12월 말’이라고 썼다. 1년 미만이었다. 원천적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기간이다. 그런데 일부 게시 글들은 옆에 ‘퇴직금 지급’이라는 말을 나란히 적어놓았다. 근무 종류는 파견회사에 소속돼 11개월만 일하는 계약 근무이거나 3개월 단위로 짧게 일하는 한시적 근무가 대부분이었다.

    근무 조건을 1년 이상이라고 적은 한 업체를 골라 전화로 문의했다. 회사는 “근무는 2년까지로 제한하며 1년 단위로 끊어서 계약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업체가 실제로 1년에서 며칠을 모자라게 근무시키면서 모집 땐 1년 단위로 계약한다고 광고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만약 구직자가 이들 파견업체에 고용돼 1년을 다 채우지 못하면 법에 명시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저희는 공공기관이므로…”

    기관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근무자를 모집하는 곳도 많았다. 한 게시 글은 “공공기관명은 회사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하며 서류 합격자에 한해 자세히 안내해드리겠다”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이 업체에 “회사명을 왜 기재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담당자는 “1차 전형에서 서류가 통과되면 알려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이곳의 근무 기간은 11개월로 역시 1년 미만이었다. 해당 기관에 직접 채용되는 것인지 물어보니, “파견 회사 소속으로 계약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11개월 근무 이후 계약을 연장할 수 없느냐”는 질문에는 “급여는 162만 원이다”라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11개월 이상 고용하지 않는 것이 퇴직금 때문이냐”는 질문에는 “확인해봐야 한다”며 정확한 대답을 피했다.

    통화 내내 이 담당자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바로 “저희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다. 근로조건이나 복리 후생이 꽤 괜찮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 되풀이해서 한 말이다. 그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퇴직금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왜 11개월만 채용하느냐는 질문에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인터넷에 게시된 여러 공공기관에 퇴직금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은 “1년 이상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1년 이상 일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거의 같았다. 이들은 공공기관이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감과 고용 안정성 등으로 구직자를 끌어당겼지만 채용에 관한 추가 질문에는 내부 사정을 이유로 대답을 피하거나 거절했다. 이 내부 사정은 모두 비밀이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업자로 등록하는 기관도 있었다. 한국교직원공제회콜센터에서 2011년 1월부터 1년 7개월간 근무한 현희숙(59) 씨는 퇴사 후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현씨의 계약은 개인사업자 형태였다. 그녀의 출퇴근과 근무 내용은 정규직 근로자와 같았지만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고 퇴사 후 퇴직금도 받을 수 없었다. 현씨는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분류했다.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법이다. 구직자가 이를 모르고 계약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모(24) 씨는 2013년부터 1년 넘게 모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몇 달 전 회사 전산 시스템을 확인하니 퇴직금이 0원으로 찍혀 있었다. 계약기간도 2014년 3월 1일부터 2016년 2월 28일로 자기도 모르게 변경돼 있었다. 정씨는 “퇴직금에 대해 아예 몰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 대부분이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학생이 무슨 퇴직금을 생각하겠어요. ‘월급만 잘 받으면 그만이지’라는 마음으로 일해왔어요.”

    1년 이하 근로자 급증

    정씨는 자기처럼 일하는 동료 모두 1년 넘게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공계 출신 연구원 대다수가 그럴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들이 계약서에 서명할 때 계약 조건을 잘 챙기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5~6년이나 근무하고도 퇴직금을 못 받는 사람도 있다. 특수고용인 신분으로 계약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수고용인은 보험모집인,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와 같은 고용 형태를 말한다. 근로자처럼 보이지만 성과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기 때문에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현행 법규상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이 관계자는 “근로 계약을 할 때 퇴직금 지급 여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5월 한국고용정보원 김두순 전임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체 고용 계약에서 ‘1년 이하’ 고용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2.5%에서 2011년 20.3%로 크게 늘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박지순 교수(노동법 전문)는 퇴직금 꼼수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선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사용자가 편법을 일삼아 고용 불안이 더 심화됐다”고 했다.

    비정규직을 1년 미만으로 쓰고 해고하는 행위는, 사용자의 처지에서 볼 때 퇴직금 비용을 줄이는 합리적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처사는 너무 비인간적이다. 이로 인한 비정규직의 정신적·경제적 고통이 큰 것은 사실이다.

    기업 측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대기업 L사 인사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르바이트생을 10개월 이상 고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L사 인사부 관계자는 “따로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이어 “어떤 말을 해도 부정적으로 보일 것 같다”고 했다.

    기업 측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이모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퇴직금이 법으로 강제돼 있기 때문에 기업의 처지에서 추가적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이런 퇴직금 문제가 왜 파생되는지 구조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면서 “퇴직금 제도를 비롯한 현행 노동법이 변화된 시장 구조를 유연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시장에 갖춰진 법적인 틀이 적정한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취재해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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