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차로 설치 19개 노선만 사고 증가
- 과속, 신호위반, 곡예운전 일상화
- 보행자 대규모 무단횡단 진풍경
- 서울시의 안전 불감증 심각
지난해 10월 말 오전 5시경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중앙버스정류장 횡단보도에서도 박모(66·오피스텔 경비원) 씨가 무단횡단하다 버스에 치여 숨졌다. 도로가 한산한 새벽 시간 정류장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급행버스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이 중앙버스차로는 서울과 일산 출퇴근 시민을 수송하는 버스들이 달린다.
서울 전체 교통사고 줄었지만…
서울시가 중앙버스전용차로(이하 중앙버스차로) 제도를 도입한 지 10년이 됐다. 시는 2004년 7월 대중교통체계 전면 개편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다. 도로 중앙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한 결과 버스 운행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국 주요 도시가 앞다퉈 중앙버스차로를 설치했다. 서울시도 총 연장 115.3km까지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확대했다. 그러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취재 결과, 서울시의 경우 전체 교통사고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면, 중앙버스차로 교통사고는 같은 기간 오히려 24.0% 증가했다. 특히 사망률은 중앙버스차로 사고가 전체 사고보다 많게는 5배까지 높다. 버스 사고는 차량의 특성상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의 중앙버스차로가 설치된 구간 19곳 가운데 강남대로, 경인로, 공항대로, 노량진로, 도봉·미아로, 삼일대로, 수색·성산로, 신반포로, 왕산로 등 9곳을 방문해 살펴봤다. ▲보행자의 무단횡단 ▲버스의 과속과 신호위반 ▲혼란스러운 교통체계 ▲부실한 인프라 등이 확인됐다.
“다른 데선 안 그러는데…”
7월 8일 오전 서울 강남역 중앙버스차로 구간에서 여러 시민이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광경.
중앙버스차로 신설 이후 중앙버스정류장 때문에 보행자들이 도로에 고스란히 노출돼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버스차로 사망사고 41건 가운데 44%(18건)가 횡단보도에서 일어났다. 또한 횡단보도 사망사고 18건 가운데 중앙버스정류장에서의 사고가 83%(15건)를 차지했다.
중앙버스차로는 무단횡단을 부추기는 면이 있어 더 심각하다.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갇힌 중앙버스정류장은 가로변에 있는 버스정류장과 달리 길을 건너야 버스를 탈 수 있다. 이수지(25·강서구 방화동) 씨는 “다른 곳에서는 무단횡단을 거의 하지 않지만 중앙버스정류장 앞에서는 신호를 기다리다 버스를 놓칠 것 같아 무단횡단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버스정류장 설치로 차선이 줄어든 것도 보행자로 하여금 무단횡단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서울시가 보행자 150명을 조사한 결과, 무단횡단 경험이 있는 시민의 74%는 2차로 횡단보도에서는 무단횡단을 해도 된다고 여겼다.
일부 중앙버스정류장에는 ‘무단횡단 금지’ 안전표지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 팻말을 눈여겨보는 시민은 별로 없다. 일산에서 서울 광화문을 오가는 김기훈(54) 씨는 집 앞 중앙버스정류장에 빨간색의 무단횡단 금지 표지가 다섯 개나 붙어 있는데도 “무단횡단 금지 팻말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삐~’ 과속 방지 벨 울리고
강남대로 일대 중앙버스차로 정류장과 가로변 정류장은 21곳에 이른다.
중앙버스차로는 버스의 평균 운행속도를 많이 올렸다. 도봉·미아로에서는 평균 속도가 시속 9.0km(81.8% 증가율) 향상됐다. 속도가 높을수록 제어력은 떨어진다. 서울시 버스의 70% 이상(2012.12 기준)을 차지하는 고상버스는 바퀴를 잡는 마찰력으로만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에 제동거리가 길다. 수도권과 도심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중에는 대형 리무진버스도 많아 더 심각하다. 일산과 서울역을 오가는 1000번 버스 운전기사 강모 씨는 “승객들이 차면 브레이크를 꽉 밟아도 안전거리 이상으로 한참 밀려나간다”고 말했다. 게다가 광역버스는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악명이 높다. 급행버스는 먼 거리를 잇다보니 기사도 승객도 속도를 즐기는 경향이다.
5월 28일 오후 10시경 광화문에서 일산으로 가는 광역 급행버스를 탔다. 수색·성산로를 달리는 이 버스는 대부분의 정류장을 지나쳤으며 추월차로를 이용했다. 예를 들어 세브란스병원 앞 정류장에서 정차한 다른 버스를 피해 추월차로로 핸들을 틀었다. 큰 몸집을 추월차로 안에 온전히 가두지 못했다. 연세대 앞을 지난 뒤 더 한산한 곳을 골라 중앙버스전용차로, 추월차로, 일반차로를 넘나들었다. 사람이 없으면 빨간불을 무시하고 그대로 횡단보도를 달렸다. 시속 72km를 넘으면 삐-소리가 나는 과속 방지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영락없는 초대형 구급차다. 곡예운전이 따로 없었다.
서울시내 노선버스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5월 24일 토요일 오후 2시경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진 강남대로. 402번 버스는 신호가 두 번째 바뀔 때까지 신논현역 중앙버스정류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세 번째로 파란불 신호를 받고 막 횡단보도를 건넌 승객들까지 태우고 나서야 겨우 정류장을 탈출했다.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사거리 빨간불을 무시하고 논현역 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다음 날인 25일 일요일 저녁 7시 반경 노량진로 중앙버스차로. 대방역 방향 노량진수산시장 중앙버스정류장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음에도 막 승객들을 태운 150번 버스가 나 몰라라 하며 횡단보도를 지나쳐 이곳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렇듯 중앙버스차로는 버스기사들의 해방구 같다. 과속과 신호위반을 밥 먹듯 한다. 시는 이를 막기 위해 일부 노면을 돌로 포장했고 중앙버스차로 전용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곳을 운전하면서 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 이런 예방 조치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뒤죽박죽 체계…뒤엉킨 차량들
신반포로 중앙버스차로의 도봉산 방향으로 가는 142번은 고속터미널 경부선 정류장(가로변)을 지난 뒤 반포역 정류장(중앙)에 갔다가 다시 영동사거리 정류장(가로변)으로 붙어야 한다. 지난 5월 25일 오후 6시경 신반포로는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는데 여기엔 중앙과 가로변을 오가는 버스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142번 버스기사 김모(54) 씨는 “계속 차선을 바꿔야 하는데 끼어들기 힘들다”며 “접촉사고도 많이 냈다”고 했다.
특히 중앙버스차로가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에서 버스 기사들은 안간힘을 쓴다. 가로변 버스정류장에서 중앙버스정류장으로, 중앙버스정류장에서 가로변 버스정류장으로 진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통 혼잡이 빚어지고 아슬아슬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144번 버스기사 정모(47) 씨는 “중앙버스차로가 시작되는 곳과 끝나는 곳에서 버스들이 줄줄이 차선을 바꾼다. 까딱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했다.
일반 차량은 중앙버스차로에서 불법 유턴·좌회전을 시도하다가 사고를 당한다. 미아로를 담당하는 강북경찰서 교통안전계 김만수 경사는 “운전자들이 중앙버스차로 사거리 좌회전 신호에 유턴을 하면서 전용차로를 통과하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강남대로와 같이 교통량이 많은 곳은 중앙버스차로가 있더라도 좌회전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중앙버스차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던 버스가 미처 교차로에 서지 못하고 좌회전하는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승용차의 앞뒤에는 보닛과 트렁크가 있어 충격을 흡수하지만 측면은 취약하다. 승용차가 좌회전 중 버스에 옆구리를 받히면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교통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중앙버스차로를 설치해 오히려 교통 혼잡을 부채질하는 경우도 있다. 경인로에서 차량 통행량이 많은 영등포로터리~영등포삼거리 구간은 중앙버스정류장과 가로변버스정류장이 동시에 들어서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근처에 직장이 있어 이곳을 자주 지난다는 최모(36) 씨는 “교통체증이 극심하다. 왜 이런 곳에 정류장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5월 25일 오후 8시경 6513번 버스가 문래동 방향으로 가는 영등포역 중앙버스정류장에 그려진 정지선을 넘어 멈추는 바람에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경인로로 진입하려는 차량들의 진로가 막혔다.
서울 도심에서 중앙버스차로가 승용차들로 막히자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한다.
강남대로, 노량진로, 신촌로도 중앙버스차로가 들어선 이후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다. 이들 구간은 각각 4일, 2주, 6개월 만에 교통체계가 조정됐지만 운전자들은 “문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책임 떠넘기기
강남대로 중앙버스차로 중 논현역으로 가는 신사역 중앙버스정류장의 추월차로는 유난히 좁아 소형차나 겨우 지나갈 것 같다. 4월 말 이곳에서 앞 버스를 기다리다 못한 한 버스가 추월차로로 나갔다. 버스는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차선으로 삐져나갔다. 반대편 중앙버스차로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와 이 버스는 정면충돌했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사망했다.
서울시 중앙버스차로의 모델인 브라질 쿠리티바 시는 중앙버스차로를 염두에 두고 도시계획을 한 터라 관련 인프라가 충분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원래 있던 도로에 중앙버스차로를 구겨 넣은 형국이어서 중앙버스차로를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
미국 대중교통협회가 제시하는 버스중앙차로의 폭은 3.7m다. 여기에 길 어깨 1.2m, 일반차로와 중앙버스차로를 분리하는 연석 0.6m도 포함한다. 서울시 중앙버스차로는 폭이 3.0~3.5m로 이보다 좁고 길 어깨나 연석 분리대도 없다.
서울시 중앙버스차로의 차선은 한 줄로 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청색 차선 두 줄로 돼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교통운영과 중앙차로팀 김효빈 주무관은 “규정상 복선(複線)으로 처리돼야 하지만 정류소 폭이나 간선도로 폭이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흐름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추월차로, 일반차로와 중앙버스차로를 분리해줄 여유 공간, 중앙선 분리 공간이 확보됐을 리 만무하다. 이런 열악한 도로 환경은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서울시는 2016년까지 중앙버스차로를 연장 139km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안전을 얼마나 염두에 두고 이런 계획을 추진하는지 의문이다. 현재 나타나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으면 더 많은 피해와 불편이 생길 수 있다.
서울시에 이 점을 문의하자 중앙차로팀은 교통사망사고대응 T/F팀으로, 이 팀은 중앙차로팀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용재 중앙차로팀 팀장은 “사고가 나면 경찰이나 도로교통공단이 합동점검을 한 다음에 개선책이 나오는 것이고, 또 그렇더라도 막상 못할 수도 있다. 설계를 하고 용역을 맡기는 과정이 있어서 대책이 금방 마련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대중교통의 4대 목표 가운데 첫째가 안전성이고 셋째가 효율성이다. 중앙버스차로는 대중교통의 효율성만 우선한 나머지 안전을 등한시하는 것으로보인다. 교통평론가 김동욱 씨는 “안전을 무시하는 태도가 세월호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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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 아래 취재해 작성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