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 레짐 탈각” “일본 되찾겠다”
- 총리 맘대로 전쟁하는 일본
- 수직이착륙기 갖춘 해병대 창설 준비
1980년대 일본 통산성 고위 관료이던 아마야 나오히로(天谷直弘)는 무사 및 초닌 계층에 빗대 당대의 국제사회가 ‘무사 국가’와 ‘초닌 국가’ 유형으로 구성됐다고 지적했다. 즉 미국과 소련 같은 냉전기 강대국은 도쿠가와 시대의 사무라이처럼 군비를 증강하고, 국제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직접 참가하지만, 일본은 초닌 계급처럼 전후에 제정된 평화헌법 하에서 군비 증강의 제약을 안은 채, 경제발전과 대외통상에 주력하는 ‘초닌 국가’의 길을 걷는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로 취임한 이래 일본 정부가 표방한 국가전략이나 추진하는 실제 정책을 보면, 일본은 더 이상 ‘초닌 국가’에 머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아베 총리하의 일본은 ‘초닌 국가’를 넘어 본격적인 ‘무사 국가’의 길을 가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인가.
2006년에 이어 2012년 12월 다시 총리로 선출된 아베 신조는 ‘전후(戰後) 레짐의 탈각’, 혹은 ‘일본을 되찾겠다’ 등의 슬로건을 통해 자신의 정책이념을 표방했다. 그가 말하는 ‘전후 레짐’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베 신조의 저서나 연설, 그리고 실제 그의 내각이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그가 말하는 ‘탈각돼야 할 전후 레짐’이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에 부과된 소위 ‘도쿄재판 사관’의 역사인식과 교육, 그리고 평화헌법 체제하에서의 제약된 안보체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초닌 국가 → 무사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연합국은 유럽에서의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도쿄 전범재판을 열어 1931년 만주사변 이후 태평양전쟁에 걸쳐 일본이 침략 전쟁을 했으며, 이러한 일련의 전쟁 결정에 책임 있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25명을 A급 전범으로 판결하고 사형 등의 처벌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 같은 도쿄재판에서의 판결이 부당한 것이며 이로 인해 일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교육 현장에서 만연한다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
예컨대 2013년 4월 23일 아베 총리는 의회 답변 과정에서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발언했는데, 이 발언은 일본을 전범국가로 규정한 도쿄전범재판의 판결 기조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는 총리 재선출 전후에 정권을 잡으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시아 각국에 사죄를 표명한 1993년의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베 내각은 결국 고노 담화 수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올해 6월 20일 관방부장관을 통해 이 담화가 1990년대 초반 한국 정부와 밀접한 협의를 거쳐 공표됐다는 담화 검증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고노 담화를 흠집 내려 하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전후 일본 교육계는 충분한 수준은 아니지만 교직원 노조의 영향력이 반영되는 교육위원회 체제하에서 전전(戰前)의 국가주의 교육을 반성하면서 학생들에게 평화헌법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기조의 교육을 실시해왔다. 또한 1982년부터 교과서 검정 기준의 하나로 ‘근린국가 조항’을 두고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과 중국 등의 역사인식을 배려하는 교과서 기술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 같은 교육체제와 교육내용 탓에 학생들이 일본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전통과 애국심을 함양하지 못한다고 인식한다. 제1기 총리 재임 기간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기본교육법을 제정했을 뿐 아니라 제2기 재임 기간 중에도 문부교육상인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등과 함께 교육위원회 제도를 변경하고 ‘근린제국 조항’을 폐지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문예춘추’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교육개혁 방향이 ‘자학적 편향교육’을 시정하려 한 1980년대 후반 영국 대처 총리의 교육개혁법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역사 수정 시도를 통해 아베 총리는 학생 및 청년 세대에게 일본이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일본이 일본군위안부 등의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각인하게 하면서 애써 쌓아온 평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총리 판단에 따라 파병 가능
역사 수정주의와 더불어 아베 총리는 ‘전후 안보 레짐의 탈각’도 추진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점령국이던 미국의 의향이 깊게 반영된 소위 평화헌법을 제정해 국가의 정책수단으로서 전쟁이 금지되고, 육해공 군사력의 보유도 불가능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6·25전쟁 직후 육해공 자위대를 창설했지만, 자위대의 활동을 헌법 규정에 부합하게끔 하고자 1950~60년대 일본 정부는 자위대는 오로지 일본을 방위할 목적으로 운용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표명했고, 1956년 유엔에 가입한 이후에는 유엔 회원국에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적 자위권’, 즉 제3국이 공격받았을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제3국을 지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는 하지만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줄곧 견지해왔다.
이에 더해 핵무기의 제조, 보유 및 배치를 금지한다는 ‘비핵 3원칙’이나 일본에서 생산한 무기의 대외 수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무기수출금지 3원칙’, 일본의 군사력은 어디까지나 최소한도로 제한한다는 ‘기반적 방위력’의 개념을 표명해왔다.
지난해 10월 27일 육상자위대 열병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또한 7월 1일 각의 결정을 통해서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인식을 변경해 동맹국인 미국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미국을 지원해 제3국에 대한 군사적 반격이 가능하도록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유엔의 이름으로 행하는 국제 안전보장에도 총리의 종합적 판단에 의해 참가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집단적 자위권 및 국제안전보장 참가 용인 결정에 의해 일본은 지금까지 금기시돼온 자위대의 군사력을 해외 무력 분쟁에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한 아베 정부는 지난해 말 공표한 최초의 ‘국가안보전략서’와 개정된 ‘방위계획대강’을 통해 중국의 해·공군력 현대화와 북한의 군사동향을 안보 우려 요인 등으로 적시하면서 이에 대응해 자위대가 ‘통합기동방위력’의 기준에 입각해 방위역량을 강화할 것이고, 그 일환으로 ‘수륙양용부대’의 창설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일본은 2010년 전통적인 군사력 증강의 기준 개념이던 ‘기반적 방위력’ 개념을 폐기하고, ‘동적 방위력’이란 개념을 채택한 바 있는데, 아베 정부는 다시 이를 대체해 ‘통합기동방위력’이란 새로운 개념을 내놓은 것이다. 향후에는 ‘통합기동방위력’ 개념에 따라 육해공 자위대의 주요 부대와 군사장비들의 재편 및 증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방위계획대강에서 표방한 ‘수륙양용부대’, 즉 해병대의 창설은 그 핵심적인 과제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수방위’를 표방해온 일본에서는 ‘해병대’의 기능이 공격 전력이 될 수 있다고 여겨 그 보유 논의 자체를 금기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아베 정부가 과감하게 ‘해병대’의 창설을 향후 군사전략의 필수 추진과제로 명시한 것이다.
안보정책 변화에 더해 아베 총리는 향후에도 집단적 자위권 관련법의 개정 및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기하기 위해 헌법의 일부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개헌의 목표는 아베 총리가 ‘문예춘추’ 2013년 1월호에 기고한 ‘새로운 국가로(新しい國へ)’에서도 재차 강조되고 있다. 일본은 아마야 나오히로가 30여 년 전 분류한 바와 같이 더 이상 ‘초닌 국가’가 아니라 본격적인 ‘무사 국가’로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무사 국가’의 세 갈래 길
21세기 국제안보 질서를 고찰해보면 ‘무사 국가’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향유하면서, NPT(핵무기확산금지조약) 체제하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국가다. 둘째는 독일, 이탈리아, 호주 등과 같이 핵무기는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갖고, 미국과의 동맹하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자국 군대를 파견해 전투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국가다. 셋째는 북한, 이란, 시리아 등과 같이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면서 유엔 및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이른바 ‘불량국가’다.
지금까지의 일본은 평화헌법하에서 군사력의 보유 및 대외적 운용에 스스로 제한 사항을 부과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무기수출금지 3원칙’의 폐지,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해병대 창설을 포함한 육해공 자위대 군사력의 강화 등을 통해 미국과의 동맹하에 현재의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이 행사하는 수준의 국제안보 활동 확대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지향점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그를 지원하는 주요 정치세력과 지식인이 공감하는 전략 목표이기도 하다. 예컨대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과 내각의 핵심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그리고 아베 총리가 조직한 안보문제 전문가 간담회의 좌장을 맡은 기타오카 신이치 전 도쿄대 교수 등은 ‘보통국가론’의 기치 아래 헌법 일부 개정 등을 포함한 안보체제의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바 있다.
이들은 전쟁을 경험한 자민당 선배 세대들과 달리 1950년대 초반 출생해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할 때 청년 시절을 보낸 ‘신인류 세대’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경제력 측면에서 세계 2위 수준에 달한 일본이 안보 및 외교 분야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들 세대가 공유한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설령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그 후계자들에 의해 지금 전개되는 안보정책 방향이 다른 쪽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보통국가화의 안보전략이 앞으로도 역사 수정 시도와 결합하느냐다. 아베 총리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는 이유는 일본이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부당한 침략을 자행했다는 인식과 반성이 철저하지 못하고, 역사교육 등의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괴리된 견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패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하에서 군사력 강화 및 안보역량 확대를 추진했지만 국제사회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는 이유는 역사문제에 대한 반성이 국가적으로 철저하게 이뤄지는 데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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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국가화로의 안보체제 변화가 주변국의 반발과 불신 없이 진행되려면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일본 정치세력이 역사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일본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오히려 ‘불량한 무사 국가’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이것은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