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피사의 사탑도 똑바로 세울 수 있다”

고려이엔시 변항용 대표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7-22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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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초보강기술(JP), 기둥보강기술(BT) 등 특허 기술 14개
    • 산모 입원 가능할 정도로 3무(무소음, 무진동, 무굴착) 공사
    • 기운 건물 바로 세우고, 지하·지상 동시 증축
    • 사전 대비로 ‘사고 예방’ ‘비용 절감’해야
    • ‘건설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나라 건설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피사의 사탑도 똑바로 세울 수 있다”
    지난해 인천의 한 아파트가 지반 침하로 기울어 안전성이 문제됐다. 기울기 정도를 진단한 결과 철거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E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몇 달 뒤 이 아파트가 말끔하게 똑바로 세워져 화제가 됐다. 고려이엔시(www.krenc.co.kr)의 보강공사 덕분이었다. 고려이엔시는 2006년 광주의 19층 아파트와 2009년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연맹 건물이 기운 것도 바로 세운 바 있다.

    1999년 창업한 고려이엔시는 직원이 11명에 불과한 데다 전남 화순에 본사가 있다. 언뜻 영세업체처럼 생각되지만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리모델링 보강전문기업이다. 특허등록을 14개나 가지고 있으며, 국제특허도 있다. 국토해양부로부터 기초보강기술(JP)개발 건설신기술(2011), 기둥보강기술(BT) 개발 건설신기술(2013), 구조보강기술 녹색기술(2012, 2013)을 인증받았다. 2006년 대통령 표창, 2009년 진단학회 기술상, 2014년 시공학회 기술상 등도 수상했다. 변항용(62) 고려이엔시 대표를 만났다.

    리모델링 시대

    ▼ 신축 공사가 아닌 리모델링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0년 가까이 건설현장 소장으로 일하면서 특화된 분야에서 최고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나라보다 10년, 20년 앞선 나라들을 살펴봤는데, 리모델링 사업이 일본은 전체 건설시장의 15%, 유럽은 30~40%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5% 미만이었다. 10년 후엔 우리나라도 시장성이 있겠다고 확신하고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5년 정도 늦기는 했지만 이젠 우리 사회도 리모델링 시대에 접어든 것 같다.”



    ▼ 왜 리모델링인가.

    “건물은 수명과 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잘 지어진 건물은 잘 지어진 대로, 잘못 지어진 것은 잘 고쳐서 수명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건물도 그 시대의 용도에 맞게 고쳐야 가치가 올라간다. 건물 수명을 연장하고 시대 흐름에 맞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 가치를 상승시켜주는 게 리모델링이다.”

    한쪽으로 기울어 사용이 불가능한 건물을 똑바로 세우면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 그보다 가치 있는 리모델링 공사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무게가 수천, 수만 톤이나 되는 대형 건물을 똑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건물이 기울면 바닥 보강공사를 통해 기운 부분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건물을 옆으로 옮겨놓고 보강작업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보강공사를 위해 땅을 파고 진동을 주는 순간 건물은 더 많이 기운다. 건물 안에서 땅을 파지 않고 말뚝을 박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가진 신기술이다. 우리 기술로 피사의 사탑은 물론 지구상의 어떤 건물이든 기울면 다 똑바로 세울 수 있다.”

    고려이엔시에서 진행한 리모델링 공사 중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게 많다. 건물을 그대로 옆으로 옮기거나 회전시키고, 지하층을 더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하 4층이던 것을 10층까지 새로 만들어줬다. 백화점 측으로선 땅을 추가 매입하지 않고 매장을 2배로 늘린 셈이다.

    지하층을 늘리거나 지상층을 늘리는 것은 물론 지하층과 지상층을 동시에 늘리는 공사도 여러 건 수행했다. 요즘은 부산의 한 병원을 공사 중인데 지하 1층, 지상 5층인 건물을 지하 2층 지상 14층으로 증축한다. 그런데 이 정도 공사면 소음이나 진동 때문에 공사 기간에 건물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병원 업무가 건물 안에서 아무 문제없이 이뤄진다. 심지어 신생아와 산모들도 입원 중이다. 3무(무소음, 무진동, 무굴착) 상태로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이뿐 아니다. 건물 한 층의 높이(층고)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4층 건물의 1층 층고가 3m이던 것을 6m로 높인 경우도 있다. 1층과 2층을 트는 공사를 한 게 아니라 1층 높이를 올린 것이다. 쉽게 말해 2층부터 건물 전체를 3m 위로 들어 올린 셈이다.

    만화를 현실로

    “건물 1층 높이가 3m면 활용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6m로 높이면 은행이나 커피숍으로 활용이 가능해 수익성이 높아진다. 강남 YMCA 건물도 4층의 층고가 5m여서 강당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걸 8m로 높여서 예식장으로 사용하게 만들었다. 옥상을 뜯어내고 공사를 한 게 아니다. 옥상에 있는 실내골프연습장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4층을 3m 높인 것이다.”

    ▼ 그게 가능한가.

    “기둥을 절단하고 보강작업을 해서 건물 전체를 들어 올리면 된다. 그게 기술이다. 중국에선 수몰 위기에 있던 옛날 도교사원 건물 전체를 1.3m 수직으로 들어 올려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는 작업도 했다. 철거될 운명에 처한 문화재를 보존해놓으니까 중국 TV에서 두 차례나 방영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건물을 공중부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만화를 현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 안전엔 문제가 없나.

    “기초보강기술과 기둥보강기술이 핵심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기술이 있지만 우리만큼 발달된 기술은 없다. 국내 특허뿐 아니라 세계 특허도 있다. 우리 기술로 하면 더 튼튼할 뿐 아니라 비용과 공사 기간도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기술이고, 환경적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기존 굴착 공사 시 발생하는 슬러지와 흙 등의 부산물도 발생하지 않으며, 기존 기둥이나 보를 그대로 사용해 보강하므로 건축쓰레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수익 100% 연구에 투자

    ▼ 수익성은 어떤가.

    “지금까지 매출은 작았다. 2012년까지 연평균 15억 원 수준을 유지했다.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지난해엔 매출이 30억 원으로 2배 늘었다. 올해는 60억 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이미 넘었고, 이대로면 100억 원은 충분히 넘을 것 같다. 당분간은 고속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잠수함이 물속에서 올라오는 컴업(come up)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점프업(jump up), 더 나아가 비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연간 2억~5억 원의 이익이 발생했는데, 지금까지 100%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했다. 웬만한 대학연구소는 물론 정부기관보다도 더 많이 연구했다. 그렇게 최고의 기술을 축적하다보니 일이 재미있었다.”

    ▼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기술력에서 앞서가니 견제도 있었고, 시비도 많이 있었다. 우리 기술을 모방하려는 기업도 있었고, 도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린 더 연구해서 더 앞서나가면 됐으니까. 어려웠던 것은 생각 안 하고 일을 즐기려고 한다. 지금도 공사대금이 제대로 안 들어와 소송 중이다. 앞으론 합당한 조건이 아니면 대기업과는 일을 안 하려고 한다.”

    변 대표는 “지어진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가치를 높이는 리모델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특히 국내는 물론 중국, 해외에 기운 문화재가 많다. 수몰 위기에 처한 문화재도 많다. 우리 기술로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대기업 눈치 보며 일할 생각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게 진짜 전문건설의 자부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대형 참사 다신 없도록 안전점검 강화, 내구성 검증 필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발생한 리조트 체육관 붕괴, 오피스텔 붕괴, 아파트단지 주차장 지반 붕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19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엔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안전 전문가들은 “국민 인식도 문제지만 정부의 근시안적인 안전 투자와 기업의 저비용 구조에 떠밀린 부실 공사 체계가 일차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노후 시설물,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대책이 시급한 사안으로 떠오른다. 우리나라 사회기반시설 대부분은 1970년대에 건설돼, 현재 30년 이상 된 시설물은 1889개에 달한다. 10년 후에는 8269개로 폭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구조부의 결함 등으로 붕괴 위험이 있어 당장 보수·보강조치를 해야 하는 것만 교량 14개, 수문 12개, 댐 9개, 건축물 8개, 기타 시설 6개 등 총 49개에 달한다. 학교시설도 즉각적인 보수·보강 조치를 해야 할 게 102곳, 당장 사용을 금지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게 2곳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에서 재난 위험이 높은 D등급과 E등급 시설물이 198곳이나 된다. 당장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E등급도 43개나 됐다. 특히 29곳이 주거용 건축물이어서 붕괴 등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35년이 넘은 건축물이 전국적으로 192만여 채에 달했다. 건물 3채 중 하나는 심각한 노후 건축물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도 시설물 고령화 시대에 진입했는데도 한국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투자액 중 인프라시설 유지보수 투자 비율은 8%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은 38%에 달하고, 선진국 대부분이 20%를 상회한다.

    시설물과 건축물은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유지보수 관리를 잘하는지가 향후 시설물의 안전과 수명을 결정짓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가 발생한 시설에 대해서만 응급 처치 수준의 보수·보강을 해왔다. 정부와 기업은 시설물에 대한 유지관리 투자에 들어가는 돈을 예산낭비라고 생각한다.

    시설물에 결함이 생겼을 때 보수·보강을 하기보다는 사전 유지관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동차도 일정 주기마다 점검을 받고, 소모품은 제때 바꿔야 안전하게 오래 탈 수 있고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시설물도 마찬가지다. 결함이 생기고 난 후에는 더 많은 안전문제와 비용문제 등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시설물 유지보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또한 자연재해도 늘고 있다. 태풍, 집중호우 빈도도 높아지고 강도도 높아진다. 특히 지진은 노후 시설물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진 발생건수는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43.6회로 과거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80여 차례나 감지됐다. 강도도 1990년대에는 5.0 이상의 지진이 한 건도 없었지만 2000년대 이후 벌써 2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건축된 지 20년이 넘으면 지진 등 외부 충격으로 인한 붕괴, 화재 위험에 취약해 자칫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데 서울시내 다가구주택 등 소규모 건축물의 내진설계 적용률은 1.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노후 시설물에 대한 보수·보강과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내진보강 등 시설물의 사전 유지관리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에서는 2011년부터 내진보강을 시행하지만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자료에 따르면 당초 수립한 내진보강기본계획에서 실제 이뤄진 것은 8%대에 불과했다.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 시설은 내진보강을 단 한 차례도 시행하지 않았다. 보강효과의 내구성 검증도 실시되지 않았다.

    “피사의 사탑도 똑바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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