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세 원장은 자타 공인의 보건의료 전문가다.
“전부터 신뢰도가 낮은 건 알았지만, 막상 직접 와보니 심평원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절감했다. 심지어 심평원이 병·의원의 편의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마련한 사업과 프로그램마저 ‘심사’나 ‘통제’ ‘삭감’을 위한 것으로 여기더라. 상당수 의사가 큰 틀에서 심평원의 행정을 보지 않고 예전 자신이 불이익을 봤다고 느낀 경험만으로 심평원 전체 이미지를 재단하려는 것 같다. 한 예로, 내가 심평원장으로 간다니까 주위 의사 친구들이 축하보다는 ‘욕 많이 먹어 오래 살겠다’는 덕담 아닌 덕담(?)을 많이 하더라.”(웃음)
▼ 6월 27일 건강보험 출범 37주년 및 전 국민 의료보험 시행 25주년을 맞아 아프리카·중동 지역 25개국 주한대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그 의의와 기대되는 효과는.
“37년 전인 1977년의 전국의료보험협의회 시절부터 심평원이 구축해온 대한민국 보건의료 시스템을 세계에 알린 행사다. 심평원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보건의료산업 분야의 수출 활성화 기반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의 심사·평가시스템 및 DUR 점검시스템 등을 소개했는데,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과 보건복지부 국제협력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제조업을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을 늘리기 힘든 시대다. 따라서 다른 나라보다 앞선 분야인 지식정보시스템으로 성장을 일궈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심평원이 갖춘 보건의료 관련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여러 나라에서 통용된다면 세계 표준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간담회에서 많은 참석자가 심평원 시스템과 관련한 공적개발원조(ODA)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요청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카타르 등 몇 나라는 시스템 구입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 현재 심평원의 심사·평가시스템과 보건의료 구매 노하우는 전 세계 의료 선진국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가.
“‘톱(top) 3’ 안에 든다. 무엇보다 심평원엔 지난 37년 동안의 보건의료 구매 자료가 다른 어느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연속성 있게 축적돼 있다. 게다가 2200여 명에 달하는 심평원 전체 직원의 75%가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직이다. 이런 방대한 지식정보 시스템과 전문가 시스템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니 세계 최고 수준이라 보면 된다.”
심평원이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은 향후 국제사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유엔(국제연합)이 공포할 ‘2015년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에 ‘보편적 의료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이 중요한 어젠다로 포함될 전망이기 때문. 이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심평원의 심사·평가시스템과 보건의료 구매 노하우가 국제적으로도 활성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심평원은 6월 25일 국가 지정 연구중심병원 10개 기관과 상호 정보교류 및 연구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이는 심평원이 보유한 빅데이터 정보의 수집·활용과 함께 분석인력 채용 및 취업, 연구성과 발표 포럼 추진 등 연구중심병원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한 것. 7월 1일엔 보건의료와 전자정부 정보화를 결합한 해외진출 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MOU도 한국정보화진흥원과 체결했다.
심사·평가시스템, 세계 최고 수준
▼ 명실상부한 빅데이터 전문기관으로서, 그걸 적절히 활용할 방안은 있나.
“현재 심평원은 자체 보유 정보를 가장 많이 공개한 공공기관 중 하나다. 심평원 제1별관(서초 평화빌딩)에 100명이 동시에 심평원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개센터를 이미 갖췄고, 제약사, 학자그룹, 안식년을 맞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학자들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대전제 아래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서로 보유 데이터를 공유하게 된다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고 가장 방대한 진료 정보가 갖춰지고, 그에 따른 각종 분석 능력도 어마어마해진다. 그렇게 되면 세계 유수 제약사들이 우리 데이터를 활용하려고 큰돈을 들여서라도 찾게 될 것이다. 그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심평원과 건보공단은 14년 전인 2000년 7월 1일 한날한시에 탄생한 쌍둥이 기관이다. 그럼에도 두 기관 사이엔 진료비 심사권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잠재해 있다. 심사권 확보는 건보공단의 최대 숙원사업. 특히 현 김종대 이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여러 차례 심사권 확보를 주장해왔다. 건보공단 주장은 보험자의 기본업무가 자격관리(가입자 관리)와 수입관리(보험료 부과 및 징수), 지출관리(급여 결정 및 비용 지급)로 나뉘는데, 이 중 지출관리에서 소외돼 불합리하다는 것. 건보공단은 올해 1월엔 ‘국민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까지 만들면서 계속 심사권 확보를 외친다.
▼ 건보공단과의 심사권 갈등 문제가 새삼 주목받는다. 이에 대한 지론은.
“진료비 청구·심사·지급은 하나로 체계화된 일련 과정이다. 자동차 제조에 빗대면 일관공정이다. 그걸 각기 다른 기능에 특화된 기관들이 나눠서 하기란 매우 힘들다. 국내의 모든 보건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심사해 각각의 구매 목적에 맞게끔 정리하는 건 그야말로 전문기관만이 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으로도 재원조달기관과 보건의료 구매기관은 나뉘어 있다. 그건 세계은행(WB)이나 WHO의 최고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두 기관은 불필요한 갈등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 된다. 각자의 역할에 매진하기도 바쁜데, 조직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그런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기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