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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남자 무용수, 수학교사…엘리트 탈북자를 ‘통일 열쇠’로 쓰자

‘北 전문직’ 탈북자 좌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여군, 남자 무용수, 수학교사…엘리트 탈북자를 ‘통일 열쇠’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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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막는 ‘만 35세’라는 벽

김영진 북한에서 4년제 대학 교육 받았다는 걸 인정받으려면 그 대학이 어디 있는지, 건물 구조며 과목이며 매 학년 코스를 다 적어내야 해요.

기자 세 분 다 한국에 오신 후 다시 공부하고 싶었죠?

이소연 저는 1975년생이에요. 2008년 8월 남한에 왔으니 넉 달 후면 만 35세가 되는데, 정부에서 탈북자 대학 입학 및 학비 지원은 만 35세까지예요. 9월에 “나 대학 가고 싶어요” 했더니 이미 늦었다는 거예요. 너무 안타깝더라고. 하나원에서 이런 내용을 알려주거나 멘토가 있었으면 9월 가을학기에 맞춰서 빨리 입학원서 내고 했을 텐데….

김영진 저는 남한 왔을 때 만 39세였어요. 하나원에서 “어차피 주간대는 못 간다. 35세가 커트라인이다. 사이버대나 다녀라”고 했어요. 사이버대가 뭔지 몰랐거든요. 그냥 서울대, 연세대처럼 이름이 사이버인 줄 알았죠.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 아닌 직업은 해본 적도 없지만 하나원에서 나온 다음에 정말 갖은 고생을 했어요. 자동차 부품 조립하는 것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다…. 그런 아르바이트도 인터넷 할 줄 모르니 알음알음 수소문해서 찾아갔죠. 쉬운 길도 뺑 돌아갔어요. 제가 하나원 있을 때 탈북자 150명 중 대학 나온 사람 딱 두 명이었어요. 고학력자는 특성에 맞게 교육하거나 삶의 방향을 알려주면 좋은데 아쉽죠.

이소연 탈북자 중에도 고학력이고 자기 특성 살리고 싶은 사람 있는데 무조건 무시하는 거예요. 제가 하나원에서 뭘 배웠냐면, 한복 만드는 사람 와서 “여기 취직해라” 하고, 미싱 하는 사람 와서 “미싱 해라” 하고…. 탈북자 정착 사례 발표하는데 한 아줌마는 자기 한국남자랑 연애하는 얘기하고, 한 아줌마는 교회 다니라는 소리만 하고…. 그때 느낀 게, 우리는 여기서 그냥 최하층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한복 만드는 데서 한 달에 120만 원 준다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탈북자들은 혹하는데, 사실 한국에서 살려면 120만 원으로 턱도 없잖아요.

김영진 하나원 생활이 우리한테 도움은 되지만 개인의 성향과 특성에 맞는 세부 교육과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한정민 저도 만 36세에 와서 학업 지원 못 받았어요. 나 하나 때문에 법을 바꿀 수 없다지만, 그때 제가 통일부 직원한테 들은 얘기로는 탈북자 중 서울대에 추천 입학한 학생이 70명인데 그중 딱 두 명 졸업했대요. 나랏돈으로 관리 안 되는 애들 서울대 보내고 반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 못 하고…. 이건 좀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커밍아웃’ 안 하는 탈북 청소년

김영진 북에서 수학교사였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2009년 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다니며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땄어요. 일반 대학교 사범대 수학교육과 들어가면 되지만 주간대는 스스로 부담해야 하니까. 대학원도 저는 사실 교육대학원 수학과 다니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 다녀요. 우리는 ‘북한’자가 붙으면 왠지 자신감이 생기니까요. 지금 남북한 수학교육 차이로 논문 쓰는데, 아직 연구가 거의 없는 분야예요.

기자 남북한 수학교육 체계가 많이 다르죠?

김영진 다르죠. 일단 발음이 달라요. 북한은 러시아식이고 남한은 미국식이에요. 삼각함수의 경우 남한은 ‘사인(sin), 코사인(cos), 탄젠트(tan)’지만 북한은 ‘씨너스, 코시네스, 땅게스’해요. 남한에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지만 북한에서는 세평방정리라고 해요. 수학은 용어가 개념이에요. 교사인 나도 힘든데 탈북 청소년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수학은 제일 비정치적인 과목이니까 따라갈 수 있지만 다른 과목은 정말 힘들 거예요.

한정민 한글 못 쓰는 애도 많아요. 제가 여기 와서 대안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데 탈북한 지 15년 된, 서른 다 된 애들이 아직도 철자법을 모르더라고요.

이소연 그런 애들은 잡아놓고 가르쳐야 되는데 ‘스무 살 넘었다’며 놔두는 것도 참 문제예요. 스무 살 넘었어도 책임감을 갖고 인간 만들어야 되지 않나?

김영진 제가 가르친 애들 중에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자 2세가 있었어요. 중국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에 모국어가 중국어예요. 일반 학교 가서 알림장도 못 써오고 교우관계는 더 엉망이에요. 두면 둘수록 삐뚤어지기만 하죠. 제가 그런 애들 수학 가르친다고 중국어로 수학 공부를 했어요. 수학 내용 모두 그림으로 다시 그려서 가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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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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